허욱 (후한)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허욱은 후한 시대의 관료로, 대사농을 거쳐 위위, 태위까지 올랐다. 광화 5년(182년) 영제의 조서에 따라 자사들이 보고한 지방관 감찰에서, 환관에게 뇌물을 받고 그들의 자제와 빈객을 제외하고 청렴한 관리들을 탄핵하여 비난을 받았다. 사도 진탐과 의랑 조조의 규탄으로 영제에게 꾸짖음을 당하고, 자신이 추천한 관리가 죄를 지어 면직되었다.

허욱 (후한)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중국에 관한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 중국에 관한 - 카자흐인
    카자흐인은 15세기 카자흐 칸국 건국 이후 명칭이 사용된 튀르크계 중앙아시아 북부 유목민족으로, "자유로운 자"를 뜻하는 카자흐라는 명칭은 권위에 저항하는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에서 유래했으며, 카자흐 초원을 중심으로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번성했고, 유목 생활과 튀르크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 여러 국가에 디아스포라가 거주하고 있다.
  • 후한의 관료 - 왕윤
    왕윤은 후한 말 관료로서 동탁 암살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황건적의 난 진압에도 공을 세웠으나, 동탁 제거 후 잔당의 반란으로 헌제를 지키다 가족과 함께 죽임을 당한, 뛰어난 능력과 충절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다.
  • 후한의 관료 - 조조
    후한 말기의 정치가이자 군사가, 시인이었던 조조는 뛰어난 능력으로 위나라의 기반을 다졌으나, 잔혹한 행위와 권력욕으로 인해 후대 평가에서 논쟁적인 인물이다.
  • 후한의 태위 - 동탁
    동탁은 후한 말 군벌로, 폭정과 권력 찬탈을 시도했으며,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옹립하여 상국에 올랐으나 여포에게 암살당했으며, 독재와 폭정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 후한의 태위 - 가후
    가후는 후한 말부터 삼국 시대 위나라의 전략가로, 여러 군주를 섬기며 뛰어난 책략과 통찰력으로 활약하여 위나라 건국에 공헌했고 사후 숙후에 추증되었다.

2. 생애

허욱은 후한 말기의 관료로, 그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2.1. 관직 임명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대사농에서 위위로 전임되었다.

광화 4년(181년) 9월, 위위에서 태위로 승진하였다.

2.2. 부정부패와 면직

광화 5년(182년) 정월 신미일, 영제는 조서를 내려 자사들로 하여금 백성을 괴롭히는 지방관을 찾아 보고하게 하였다. 허욱과 사공 장제는 환관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그들의 자제와 빈객들을 감사 대상에서 제외하고는 도리어 변방의 작은 군들의 청렴한 관리 스물여섯 명을 탄핵하였는데, 관리와 백성들은 명단이 허위로 꾸며진 것이라며 항의하였다. 사도 진탐과 의랑(議郞) 조조가 이를 규탄하니, 영제는 허욱 등을 꾸짖고는 명단의 관리들을 의랑에 임명하였다.

같은 해 10월, 자신이 벽소(辟召)한 관리가 죄를 지어 면직되었다.

3. 출전

范曄중국어의 《후한서》 권8 효영제기, 권57 두난유이유사열전, 권76 순리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