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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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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지 지도는 북한 최고 지도자가 특정 장소를 방문하여 인민에게 지시를 내리는 행위로, 북한 체제의 가부장적 시스템을 보여주는 사례로 묘사된다. 김일성은 1950년대부터 현지 지도를 통해 대중 동원, 정책 점검, 관료주의 시정을 시도했으며, 김정일 시대에는 의례화되고 성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김정은은 평양에 현지 지도 방문을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며, 국가정보원은 현지 지도 사전 준비가 1년 전부터 시작된다고 보고한다. 현지 지도는 북한의 권력 구조 변화를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되며, 한국에서는 북한의 독특한 통치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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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지도
개요
유형북한의 정치 행사
내용김씨 일가의 지방 현장 방문 및 지시
목적선전, 정치적 영향력 강화
특징김씨 일가 우상화, 주체사상 선전
상세 내용
주요 활동공장, 농장, 군부대 등 방문
현장 상황 점검 및 지시
간부들에게 정책 방향 제시
주민들과의 만남
선전 방식조선중앙방송, 로동신문 등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
김씨 일가의 업적을 과장하고 우상화
주민들에게 충성심 고취
정치적 의미김씨 일가의 권위와 지도력 과시
주체사상을 사회 전반에 확산
주민들의 충성심을 유도하고 체제 유지
비판적 시각보여주기식 행사라는 비판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한다는 비판
언론 통제를 통한 선전이라는 비판
관련 용어
유사 개념순시 (정치)
관련 인물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관련 기관조선로동당
조선중앙방송
로동신문

2. 역사

북한에서 "현지 지도"는 최고 지도자가 인민에게 베푸는 은혜로 묘사되며, 북한 체제가 가부장적인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로 사용된다.[3] 북한 선전은 현지 지도를 통해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지도자가 인민에게 "자애로운 지도"를 제공하는 이미지를 강화한다.[1][2]

"현지 지도"라는 용어는 김일성의 공개 활동을 특정 장소에서 묘사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3] 이는 마오쩌둥의 대중 노선에서 파생되었지만, 김일성은 이를 더 체계적으로 활용했다.[4] 김정일도 후계자 시절 "사업 시찰", "사업 지도" 등의 이름으로 현지 지도와 유사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88년 4월 5일 "우편 및 방송 현장 방문"을 계기로 "현지 지도"라는 용어가 김정일에게도 사용되기 시작했다.[3]

2. 1. 김일성 시대

"현지 지도"라는 문구는 김일성의 공개 활동을 특정 장소에서 묘사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3] 북한은 김일성의 첫 현지 지도를 1945년 9월 24일 평양 공장 방문으로 공식 인정하지만, 1940년대에는 계획적이고 정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불규칙하고 간헐적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실제로 지도 순방이었는지는 의심스럽다.[4] 제도화된 현지 지도는 1956년 12월 강선제강소에서 이루어졌으며, 김일성은 이곳에서 급속한 경제 발전을 위한 대중 경쟁 운동인 천리마 운동(1957–1961)을 시작했다.[5] 김일성은 이러한 캠페인과 다른 새로운 정책을 시작하기 위해 현지 지도를 계속 이용했다.[6]

김일성 시대에 현지 지도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평범한 노동자 시민 사이의 친밀한 접촉을 포함하는 매우 현대적인 형태의 연극"이었으며, 김일성은 전국을 광범위하게 방문했다.[7] 김일성의 집단 농장, 공장 및 기타 장소에 대한 널리 홍보된 방문은 "현장 지도" 관행이 국가 권력과 국가 권위를 구현하려는 의도를 강력하고 실감나게 전달했다.[2]

학자 임재천은 김일성에게 현지 지도의 목표는 여러 가지였다고 썼다. 첫째, 그는 직접 대중에게 호소함으로써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대중 동원을 원했다. 둘째, 최고위층에서 결정된 자신의 정책이 하위 조직에서 의도한 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셋째, 최고위층에서 새로운 정책 문제를 결정하기 전에 하위 조직에 존재하는 상황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현지 지도를 이용했다. 요약하자면, 현지 지도는 북한 지도자의 통치 방법이자 대중 동원, 정책 점검 및 현실 점검뿐만 아니라 관료적인 형식주의를 시정하는 수단이기도 했다.[8]

1970년대에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은 후계자로 지명된 후 아버지의 현지 지도를 준비하는 책임을 맡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김일성 개인 숭배가 심화되면서 현지 지도는 의례화되고 성스러운 일상이 되었다.[9] 여러 종류의 현지 지도가 등장했는데, 정기적인 현지 지도는 현장 검사를 포함했고, 이는 다른 유형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고 더 광범위한 준비가 필요했다. 특별 현지 지도는 지도자가 대중 동원 캠페인을 위한 모델로 특정 작업 부서를 선택하는 것을 포함했다.[9] 세 번째 유형은 이전에 방문한 장소를 반복 방문하여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정기 또는 특별 지도 순방 중에 지도자가 그 자리에서 장소를 방문하는 즉흥적인 지도 순방"이 있었다.[9]

2. 2. 김정일 시대

김정일김일성 시대보다 더 상징적이고 연출된 방식으로 현지 지도를 진행했다.[9] 김정일은 아버지와 달리 경제 현장보다는 조선인민군 현장 방문에 집중했다. 김정일 현지 지도의 절반 이상이 군부대 또는 군사 관련 방문이었다.[3][9] 그는 농업 및 경공업 현장도 방문했다.[3]

이러한 군사 부문 방문은 북한 주민들에게 정부의 "선군" 정책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9][10] 김정일의 많은 방문은 북한 선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3]

2. 3. 김정은 시대

김정은은 평양 중심의 현지 지도를 통해 도시 엘리트층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11] 김정은은 현지 지도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체제를 안정시키는 데 활용하고 있다.

김정은은 "산부인과 병원, 건강 단지, 스케이트장, 아파트 단지, 유원지"와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이는 북한 도시 엘리트들 사이에서 지지를 통합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11]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현지 지도"에 대한 사전 준비 작업이 지정된 공장 또는 기타 작업장에서 "실제 지도가 전달되기 1년 전에" 시작된다고 보고한다.[3] 실제 행사에서 지도자는 생산성[1] 또는 작업 조건[10]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조언"과 지시를 제공한다. 지도자는 군인, 당원 또는 정부 관료에 둘러싸여 지도자의 모든 발언(농담 포함)을 동일한 종이 노트에 주의 깊게 적어둔다.[1] 지도자의 모든 말씀을 열심히 기록하는 다양한 관료들의 모습이 국영 언론을 통해 방송되어 지도자의 전지전능한 이미지를 더욱 강화한다.[1] 행사 후에는 "충성심 결의 대회"가 열리고,[3] 방문과 발언을 기념하는 기념비나 현판이 설치된다.[3][12] 이것은 "우상화"의 도구로 사용되며,[3] 그 장소는 존경심을 받는다.[13]

분석가들은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의 북한 위계질서와 권력 구조의 차이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현지 지도" 방문에 지도자를 수행하는 다양한 북한 관리들의 존재를 사용해왔다. 이 사회 연결망 분석에서 개인의 부침을 관찰할 수 있으며, 연령 및 소속( 기관 대 정부 부처 대 군)에 따른 다른 그룹의 상대적인 권력을 볼 수 있다.[14]

3. 목적과 기능

북한에서 "현지지도"는 최고 지도자가 경제 발전을 독려하고, 정책 시행을 점검하며, 주민과 소통하고,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는 등 다양한 목적을 가진 활동으로 묘사된다.

김일성은 현지 지도를 통해 경제적 목표 달성을 위한 대중 동원, 정책 점검, 현장 상황 이해, 관료주의 형식주의 시정 등의 목적을 추구했다.[8]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의 현지지도를 준비하고, 이후 자신의 현지 지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업 시찰", "사업 지도" 등으로 불렸으나, 1988년부터 "현지지도"라는 용어가 김정일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3]

김정일 시대의 현지지도는 조선인민군 현장 방문을 강조하며 선군 정치를 부각했다.[3][9] 김정은 시대에는 평양 중심의 현지 지도를 통해 북한 도시 엘리트층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경향을 보였다.[11]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현지지도가 지정된 장소에서 실제 지도가 전달되기 1년 전부터 사전 준비 작업을 시작한다고 보고한다.[3] 현지지도 행사에서 지도자는 생산성[1] 또는 작업 조건[10] 개선을 위한 지시를 내리며, 모든 발언은 기록된다.[1] 행사 후에는 방문과 발언을 기념하는 기념비나 현판이 설치되어 우상화의 도구로 사용된다.[3][12]

3. 1. 대내적 측면

지도 순방중국어 개념은 마오쩌둥의 대중 노선 이데올로기에서 파생되었지만, 김일성은 마오쩌둥보다 더 광범위하게 지도 순방을 체계적으로 활용했다.[4] 학자 임재천은 김일성의 현지지도 목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 경제적 목표 달성을 위한 대중 동원
  • 정책 시행 점검 및 상황 파악
  • 새로운 정책 결정을 위한 현장 상황 이해
  • 관료주의 형식주의 시정


1970년대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은 후계자로 지명된 후 아버지의 순방을 준비하는 책임을 맡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김일성 개인 숭배가 심화되면서 지도 순방은 의례화되고 성스러운 일상이 되었다.[9]

3. 2. 대외적 측면

북한에서 "현지지도"는 최고 지도자의 권위와 정통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현지지도는 최고 지도자가 인민을 위하는 자애로운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그의 능력을 과시하는 데 사용된다.[1][2] 이는 북한 체제가 가부장적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로, 지도자의 발언이나 권고는 고위 관리들에 의해 기록된다.[3]

또한, 현지 지도는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외부 세계에 지도자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 활용된다. 김일성 시대에는 현지 지도가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평범한 노동자 시민 사이의 친밀한 접촉을 포함하는 매우 현대적인 형태의 연극"으로 묘사되었으며, 국가 권력과 권위를 구현하는 의도로 널리 홍보되었다.[7][2] 김정일 시대에는 군사 시설 방문을 강조하며 '선군' 정치를 강조하였고,[3][9] 김정은 시대에는 평양 내 엘리트층을 위한 시설 방문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11]

현지 지도는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지도자의 모든 발언이 기록되고 기념비나 현판으로 남겨져 우상화의 도구로 사용되는 등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1][3][12] 이러한 현지 지도의 선전적 측면과 권위주의적 성격은 더불어민주당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4. 특징

북한에서 "현지지도"는 최고 지도자가 베푸는 일방적인 은혜로 묘사되며, 이는 북한 체제가 가부장적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시이다.[3] 북한 선전은 현지지도를 통해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지도자가 인민에게 "자애로운 지도"를 제공하는 이미지를 강화한다.[1][2]

"현지지도"라는 문구는 김일성의 공개 활동을 특정 장소에서 묘사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3] 김일성은 천리마 운동과 같은 새로운 정책을 시작하기 위해 현지지도를 이용했다.[6] 학자 임재천은 김일성의 현지지도 목표에 대해 대중 동원, 정책 점검, 현실 점검, 관료주의 형식주의 시정 등 여러 가지였다고 설명한다.[8]

1970년대에 김정일은 후계자로 지명된 후 아버지의 현지지도 준비를 맡았고, 이후 현지지도는 의례화되고 성스러운 일상이 되었다.[9] 김정일은 자신의 현지지도를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사업 시찰" 등으로 불리다가 1988년 이후 "현지지도"라는 용어가 김정일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3] 김정일조선인민군 현장 방문을 강조했으며, 그의 방문 중 절반 이상이 군사 관련이었다.[3][9] 김정은은 평양에 현지지도 방문을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11]

4. 1. 절차 및 형식

북한에서 "현지지도"는 최고 지도자가 방문할 장소에 대해 1년 전부터 사전 준비 작업이 시작되는 등 철저하게 준비된다.[3] 실제 현지지도 행사에서 최고 지도자는 생산성[1] 또는 작업 조건[10] 개선을 위한 지시를 내린다.

최고 지도자는 현지지도 시 군인, 당원, 정부 관료 등 고위 간부들을 대동한다.[1] 이들은 지도자의 모든 발언을 빠짐없이 기록하는데,[1] 이는 국영 언론을 통해 방송되어 지도자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 사용된다.[1]

현지지도가 끝난 후에는 "충성심 결의 대회"가 열리며,[3] 방문 장소에는 방문과 지도자의 발언을 기념하는 기념비나 현판이 설치된다.[3][12] 이는 해당 장소를 신성시하고,[13] 최고 지도자의 권위를 높이는 "우상화"의 도구로 활용된다.[3]

또한, 현지지도에 동행하는 북한 관리들의 명단을 통해 북한 권력 구조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14]

4. 2. 상징성 및 우상화

북한에서 "현지 지도"는 최고 지도자의 권위를 강화하고, 방문하는 장소를 성역화하는 등 우상화의 도구로 활용된다.[3] 북한 선전은 현지 지도를 통해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지도자가 인민에게 "자애로운 지도"를 베푸는 이미지를 강화한다.[1][2]

김일성 시대에 현지 지도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평범한 노동자 시민 사이의 친밀한 접촉을 포함하는 매우 현대적인 형태의 연극"과 같았다.[7] 김일성의 집단 농장, 공장 등 방문은 국가 권력과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다.[2]

1970년대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된 후, 현지 지도는 더욱 의례화되고 성스러운 일상이 되었다.[9] 정기적인 현장 검사, 특정 작업 부서를 모델로 삼는 특별 지도 순방, 이전에 방문한 장소를 다시 방문하는 것, 즉흥적인 지도 순방 등 여러 종류의 지도 순방이 나타났다.[9]

김정일의 현지 지도는 김일성보다 더 상징적이었고, 일반 주민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더 적었다.[9] 김정일은 조선인민군 현장 방문을 강조했으며, 그의 방문 중 절반 이상이 군사 관련 방문이었다.[3][9] 이는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의 "선군" 전략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9][10]

김정은은 평양에 현지 지도 방문을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11] 이는 김정은이 북한 도시 엘리트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으려는 시도로 분석된다.[11]

현지 지도가 이루어지기 전, 지정된 장소에서는 1년 전부터 사전 준비 작업이 시작된다.[3] 실제 행사에서 지도자는 생산성[1] 또는 작업 조건[10] 개선을 위한 지시를 내린다. 지도자의 발언은 관료들에 의해 꼼꼼히 기록되며, 국영 언론을 통해 방송되어 지도자의 전지전능한 이미지를 강화한다.[1] 행사 후에는 "충성심 결의 대회"가 열리고, 방문을 기념하는 기념물이나 현판이 설치되어 해당 장소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3][12][13]

분석가들은 현지 지도 방문에 동행하는 북한 관리들을 통해 북한의 권력 구조 변화를 파악하기도 한다.[14]

5. 비판 및 논란

현지 지도는 최고 지도자 중심의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보여주고, 주민 통제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도 순방" 개념은 마오쩌둥의 "대중 노선" 이데올로기에서 파생되었지만, 김일성은 마오쩌둥보다 더 광범위하게 지도 순방을 체계적으로 활용했다.[4] 김일성은 천리마 운동과 같은 새로운 정책을 시작하기 위해 지도 순방을 이용했다.[6] 김일성 시대에 현지 지도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평범한 노동자, 시민 사이의 친밀한 접촉을 포함하는 매우 현대적인 형태의 연극이었다.[7]

현지 지도에는 정기적인 현장 검사, 특정 작업 부서를 선택하는 특별 지도, 이전에 방문한 장소의 이행 상황 점검, 즉흥적인 지도 순방 등 여러 유형이 있었다.[9]

5. 1.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

북한에서 "현지지도"는 최고 지도자가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묘사된다.[3] 이는 북한 체제가 가부장적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진다.[3] 북한 선전은 현지지도를 통해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지도자가 인민에게 "자애로운 지도"를 제공하는 이미지를 강화한다.[1][2] 대부분의 경우 최고 지도자의 발언이나 권고는 고위 군 장교와 관리들이 기록한다.

학자 임재천은 김일성의 지도 순방 목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70년대 김정일은 후계자로 지명된 후 아버지의 순방을 준비했고, 김일성 개인 숭배가 심화되면서 지도 순방은 의례화되고 성스러운 일상이 되었다.[9]

김정일의 지도 순방은 아버지보다 더 상징적이었고, 일반 북한 주민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더 많이 피했다.[9] 김정일은 군사 관련 방문을 강조했으며,[3][9] 이는 북한 대중에게 정부의 "선군" 전략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9][10]

김정은은 평양에 현지지도 방문을 집중했는데,[11] 이는 북한 도시 엘리트들 사이에서 지지를 통합하려는 시도로 분석된다.[11]

국가정보원은 현지지도에 대한 사전 준비 작업이 지정된 장소에서 실제 지도가 전달되기 1년 전에 시작된다고 보고한다.[3] 실제 행사에서 지도자는 생산성[1] 또는 작업 조건[10] 개선을 위한 지시를 제공한다. 지도자는 군인, 당원 또는 정부 관료에 둘러싸여 지도자의 모든 발언을 기록한다.[1] 행사 후에는 "충성심 결의 대회"가 열리고, 방문을 기념하는 기념물이나 현판이 설치된다.[3][12] 이는 "우상화"의 도구로 사용되며,[3] 그 장소는 존경을 받는다.[13]

분석가들은 "현지지도" 방문에 지도자를 수행하는 북한 관리들의 존재를 통해 북한의 권력 구조를 파악한다.[14]

5. 2. 주민 통제 및 선전 수단

북한에서 "현지 지도"는 최고 지도자가 주민들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은혜로 묘사된다.[3] 북한 선전은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위대한 지도자가 인민에게 "자애로운 지도"를 제공하는 이미지를 강화한다.[1][2]

현지 지도는 주민들의 충성심을 강요하고, 체제에 대한 불만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최고 지도자의 발언이나 권고는 고위 관리들이 기록하며,[1] 이는 주민 통제와 선전의 중요한 도구로 작용한다.

현지 지도 행사 후에는 "충성심 결의 대회"가 열리고, 방문과 발언을 기념하는 기념비나 현판이 설치된다.[3][12] 이는 우상화의 도구로 사용되며,[3] 그 장소는 존경심을 받는다.[13]

하지만 북한 매체의 보도는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 있으며, 실제 현장의 문제점을 은폐할 수 있다. 지도자의 모든 발언을 열심히 기록하는 관료들의 모습은[1] 지도자의 전지전능한 이미지를 강화하지만, 실제로는 주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보여주기식 행정일 수 있다.

6. 한국의 시각

한국에서는 현지 지도를 북한의 독특한 통치 방식으로 이해하며, 북한 체제의 특성을 파악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로 간주한다. 특히, 중도 진보적 관점에서는 현지 지도가 북한의 권위주의적 통치, 주민 통제, 개인 숭배 등과 관련된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비판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에서 "현지 지도"는 "최고 지도자가 베푸는 일방적인 은혜"로 묘사되며, 북한 체제가 가부장적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3] 북한 선전은 현지 지도를 통해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지도자가 인민에게 "자애로운 지도"를 제공하는 이미지를 강화한다.[1][2]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현지 지도에 대한 사전 준비 작업이 지정된 공장이나 작업장에서 실제 지도가 전달되기 1년 전에 시작된다고 보고한다.[3] 실제 행사에서 지도자는 생산성[1] 또는 작업 조건[10] 개선을 위한 지시를 내린다. 이때 지도자는 군인, 당원, 정부 관료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들은 지도자의 모든 발언을 기록한다.[1] 이러한 모습은 국영 언론을 통해 방송되어 지도자의 전지전능한 이미지를 더욱 강화한다.[1] 행사 후에는 방문과 발언을 기념하는 기념비나 현판이 설치되어 "우상화"의 도구로 사용되며,[3] 그 장소는 존경의 대상이 된다.[13]

분석가들은 김정일김정은 시대의 북한 권력 구조의 차이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현지 지도 방문에 지도자를 수행하는 북한 관리들의 존재를 활용해왔다. 이러한 사회 연결망 분석을 통해 개인의 부침과 연령 및 소속에 따른 그룹의 상대적인 권력을 파악할 수 있다.[14]

참조

[1] 웹사이트 Why is Kim Jong-un always surrounded by people taking notes? https://www.bbc.co.u[...] BBC News 2014-04-25
[2] 서적 Kwon & Chung
[3] 서적 North Korea Handbook https://books.google[...] M.E. Sharpe 2003
[4] 서적 Lim
[5] 서적 Lim
[6] 서적 Lim
[7] 서적 Kwon & Chung
[8] 서적 Lim
[9] 서적 Lim
[10] 서적 Kwon & Chung
[11] 간행물 The Changing Military Balance in the Koreas and Northeast Asia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2015-06
[12] 서적
[13] 서적
[14] 간행물 Study on the Power Elite of the Kim Jong Un Regime Korea Institute for National Unification 2013-07
[15] 논문 제5장 김정은 현지지도의 특성 연구 한국통일전략학회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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