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로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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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로동당은 1945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창당된 북한의 집권 여당이다. 김일성이 북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위원장으로 추대된 후, 북조선공산당, 조선신민당과의 통합을 거쳐 1949년 남조선로동당과 합당하여 현재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창당 초기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했으나, 1970년대 이후 주체사상을 유일 지도 이념으로 확립했으며, 현재는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강조한다. 당의 최고 지도 기구는 당 대회이며, 중앙위원회,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국, 비서국 등을 통해 조직을 운영한다. 조선로동당은 북한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당의 이념과 정책은 북한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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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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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로마자 표기 | Chosŏn Rodongdang |
약칭 | WPK |
창립일 | 1949년 6월 24일 |
전신 | 북조선로동당 남조선로동당 |
본부 | 평양시 중구역 정부 청사 1호 |
지도부 | |
총비서 | 김정은 |
정치국 상무위원 | 김정은 김덕훈 최룡해 리병철 조용원 |
청년 조직 |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
어린이 조직 | 조선소년단 |
무장 조직 | 조선인민군 |
준군사 조직 | 로농적위군 |
남한 전선 조직 | 반제민족민주전선 |
조직 및 활동 | |
기관지 | 로동신문 |
가입 단체 |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
국제 조직 | 공산당·노동자당 국제회의 |
당원 수 (추정) | 약 6,500,000명 (2021년) |
이념 | |
주요 이념 | 공산주의 민족주의 김일성-김정일주의 주체사상 선군사상 |
정치 성향 | 극좌 |
종교 | 국가 무신론 |
의회 | |
의석 | 최고인민회의 607석 |
전체 의석 | 687석 |
기타 | |
당가 | 조선로동당 만세 |
상태 | 북한의 집권당 대한민국에서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불법 단체로 지정됨 |
색상 | 적색 |
2. 역사
조선로동당의 역사는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해 왔다.
1945년 10월 10일 조선공산당 북부조선분국으로 시작하여, 1946년 8월 조선신민당과의 통합으로 북조선로동당이 되었다. 1949년 6월 30일 남조선로동당과의 합당을 통해 현재의 조선로동당이 되었으며, 김일성이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초기 조선로동당은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합체 성격을 가졌으나, 1953년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계 숙청, 1956년 8월 종파 사건으로 소련파와 연안파가 숙청되면서 김일성 중심의 권력 구조가 강화되었다. 이와 함께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도 강화되었다.
1966년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자주노선을 공식화하고, 1967년에는 유일사상체계 확립과 수령론을 통해 김일성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갑산파 숙청 이후 만주파가 당내 주도권을 잡았고, 김정일이 1974년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권력 승계 작업이 시작되었다.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등장하였고, 이후 김정일 시대를 거쳐 현재 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조선로동당은 북한의 유일한 집권당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일 시대에는 선군정치를 내세워 군의 역할을 강조하였고, 김정은 시대에는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당의 지도 이념으로 내세우는 등 변화가 있었다.
김정은 시대에 개최된 당대회는 다음과 같다.
2. 1. 창당과 초기 (1945년 ~ 1953년)
1945년 9월 11일,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을 재건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1국 1당주의 명분으로 같은 해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조선공산당 서북5도 당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를 통해 친소파 공산당원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의 북조선분국을 설치했다. '분국'은 박헌영의 서울 조선공산당을 '중앙'으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89] 초기에는 김용범이 임시비서였으나 김일성으로 교체되었다. 김일성은 1945년 12월 17일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분국' 명칭을 거부하고 위원장에 추대된다.북조선분국은 1946년 6월 22일 분국 제7차회의에서 '북조선공산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서울의 조선공산당으로부터 독립한다. 소련군 지원을 받는 김일성은 박헌영을 따르는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의도를 관철했다. 이후 8월 28일부터 8월 30일까지 연안파 중심의 조선독립동맹 계열 조선신민당과 통합, '북조선로동당'을 발족하고,[90] 북반부의 유일한 집권당이 된다.
1946년 11월 23일, 서울의 조선공산당, 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이 합당하여 남조선로동당이 결성되었으나, 1949년 6월 24일 북로당에 흡수되고, 6월 30일 "조선로동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선출하며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남북로동당 합당 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서울에서 기반을 잃고 월북한 박헌영 등 남로당계는 숙청당한다.
2. 2. 김일성 권력 강화 (1953년 ~ 1980년)
1953년에는 령수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파의 주요 구성원들이 숙청되었다. 1956년에는 8월 종파 사건이 일어나, 소련파와 김두봉 등의 연안파(중국파)가 숙청되어 궤멸되었다. 김일성의 라이벌 숙청과 병행하여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가 강화되었다.1966년 10월의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자주노선을 정식화하여 이데올로기적으로 소련, 중국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내세웠다. 또한, 당 조직의 개편이 이루어져,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대신 중앙위원회 당총비서가 설치되고, 김일성이 취임하였다.
1967년 5월의 제4기 당중앙위원회 제15차 총회에서는 유일사상체계의 확립이 강조되었다. 유일사상체계란 당을 창건하고 지도하는 수령의 사상이며, 당내에는 유일사상체계 이외의 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령이란 혁명의 지도자를 의미하며, 김일성을 가리킨다. 같은 해 6월의 제4기 당중앙위원회 제16차 총회에서는 수령론이 제창되어, 혁명의 지도자인 수령이 지도정당인 조선로동당의 상위에 위치하게 되었고, 조선로동당은 수령에 종속되는 존재로 여겨졌다.[16] 이후, 김일성 지도부는 북한 고유의 주체사상을 내세우고, “수령은 뇌수, 당은 신경, 인민은 세포”라는 유기적 국가론을 주창하였다.
갑산파는 1967년 8월에 령수 박금철이 숙청되는 등 많은 구성원이 숙청되어 궤멸되었고, 김일성을 령수로 하는 만주파가 당내 주도권을 확립해 나갔다. 1930년대에 김일성이 수행한 항일 빨치산 투쟁만이 조선의 혁명운동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투쟁이라는 “혁명전통”이 주장되었고, 그 이외의 혁명의 역사는 부정되었다. 혁명전통 가운데 특히 강조된 것은 항일 빨치산의 수령인 김일성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이었고, 수령의 지시를 끝까지 관철하는 “혁명적 규율”이었다. 그리고 수령의 혁명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후계자의 조건이라고 여겨졌고, 혁명전통을 김일성의 가계에 소급하여 그 일족에 대한 숭배가 강조되었다.[17]
김정일은 1974년 2월의 당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로 추대되었고, 다음 날에는 정치위원회 위원(현: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달부터 “당 중앙”이라는 표현으로 노동신문 등에서 보도되기 시작했다. 4월에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 발표되었다. 이 10대 원칙은 당원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 모두에게 김일성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었으며, 헌법이나 당규약을 넘는 최고 규범[18]으로서 큰 영향을 주었다.
1980년 10월에 개최된 제6차 당대회 및 당 제6기 중앙위원회 제1차 총회에서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서기,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의 직책에 취임함으로써 김일성의 후계자임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2. 3. 김정일 시대 (1980년 ~ 2011년)

김정일이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김씨 일가의 권력이 더욱 집중되었다.[16][17][18] 조선로동당 간부들은 그의 승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고, 1981년부터 그는 시찰에 참여(및 주도)하기 시작했다.[16] 1982년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고, ''주체사상''을 저술했다.[16] 외국 관찰자들은 김정일의 지명이 젊은 세대의 참여를 증가시킬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는 ''주체사상''에서 그의 지도력이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16][17] 조선노동당 최고위급의 세습 정치와 국가 때문에 조선노동당은 국내외적으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지도력이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수 없었다.[17]
1995년 2월 25일 오진우 사망으로 김정일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정치국과 중앙위원회가 회의 중이 아닐 때 조선노동당의 최고 기관)의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위원이 되었다.[19] 1993년부터 2010년까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CMC, 군사 문제에 대한 최고 당 기관)의 위원 명단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1995년 군부 서열에 변화가 있었음이 분명했다.[19] 조선노동당 창당 50주년을 맞아 김정일은 구세대와 젊은 간부들을 달래기 위해 중앙군사위원회(그리고 일반적인 군 지도부) 개편을 시작했다.[19] 그러나 그는 1990년대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나 정부를 개편하지 않았으며, 그 구성원의 변화는 대부분 구성원의 자연사로 인한 것이었다.[19]
1995년부터 김정일은 조선노동당과 국가보다 군부를 우대했다.[19] 최소 50만 명이 사망한 북한 기근과 함께 발생한 경제 위기로 인해 그의 국가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19] 김정일은 구조 개혁을 권고하는 대신 조선노동당의 경제 통제력 부족을 비판하며 중앙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 지방 및 도 지부들을 비난했다.[19]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50주년 기념 연설에서 "인민들이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충실한 이유는 당 조직과 노동자 때문이 아니라 나의 권위 때문이다."라고 말했다.[19] 김정일은 그의 아버지가 경제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낫다며 경제를 피하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이 연설 이후, 경제를 통제하는 조선노동당의 책임은 행정평의회(중앙 정부)에 넘겨졌다.[19] 1996년 말 김정일은 조선노동당이나 중앙 정부가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고 결론짓고 군부로 권력을 이양하기 시작했다.[19] 1998년 헌법 개정으로 북한의 최고 국가 권력이 조선노동당이 아닌 군부 지도부로 넘어갔다.[19]
1997년 7월 8일 김일성에 대한 3년간의 애도 기간이 끝났다.[19] 그해 10월 8일 김정일은 새로 설립된 조선노동당 총비서직에 임명되었다.[19] 김정일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의 후계자가 아니라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임명된 이유에 대해 외국 전문가들의 상당한 논의가 있었다.[19]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규정을 명백히 위반하여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아닌 제6차 중앙위원회와 중앙군사위원회의 공동 발표를 통해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임명되었다.[19] 김정일이 임명 직후 새로운 조선노동당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해 당대회를 소집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19] 조선노동당은 2010년 제3차 당대회 때까지 조직적으로 활성화되지 않았다.[19] 그때까지 김정일은 독재자로 통치했다.[19]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조선노동당 기관에서만 사망한 관리들을 대체할 새로운 구성원과 지도자들이 임명되었다.[19] 제10기 최고인민회의는 1998년 9월 5일에 소집되어 북한 헌법을 개정했다.[19] 개정된 헌법은 이전에는 군부 감독을 담당했던 국방위원회(NDC)를 최고 국가 기관으로 만들었다.[19] 새로운 헌법이 내각과 국방위원회에 조선노동당 간부들로부터 더 많은 독립성을 부여했지만, 당을 약화시키지는 않았다.[19]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남아 조직지도부(OGD) 및 기타 기관을 통제했다.[19] 2010년까지 중앙 조선노동당 지도부 구성이 일괄적으로 갱신되지 않았지만, 조선노동당은 중요한 대중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유지했다.[19]
2010년 6월 26일 정치국은 "강하고 번영하는 국가와 주체적 발전을 가져오는 중요한 변화에 직면한 당의 혁명적 발전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제3차 당대회 대표들을 소집한다고 발표했다.[20] 9월 28일에 개최된 당대회는 당규를 개정하고 중앙위원회, 서기국, 정치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및 기타 기관의 위원들을 선출(및 해임)했다.[20] 김정은이 후계자로 확정되었고,[20] 리영호 원수와 김정일의 누이인 김경희 장군이 권력 강화를 돕기 위해 조선인민군과 조선노동당의 주요 직책에 임명되었다.[20] 그 이듬해인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했다.[20]
2011년 김정일이 사망한 후, 후계자로 된 김정은이 총비서 지위를 계승할 것으로 보였으나, 김정은은 2012년 4월 11일에 개최된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새롭게 당 최고 직책으로 설치된 제1비서에 취임하였고, 김정일은 “영원한 총비서”로 지정되었다.[21]
2. 4. 김정은 시대 (2011년 ~ 현재)

김정일 사망 후, 북한 엘리트들은 김정은의 지위를 공고히 했으며, 2011년 12월 19일 김정일 사망 보고서 발표와 함께 김정은은 국가 책임자로 선포되었다.[2] 2011년 12월 26일, 노동신문은 김정은을 당과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 칭송했다.[3] 12월 30일, 정치국 회의에서 김정은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공식 임명되었다.[4] 비록 정치국 위원은 아니었지만, 김정은은 조선노동당 최고 지도자라는 비공식 직책을 맡게 되었다.[5]
김정일 70회 생일 기념 행사 후, 정치국은 2012년 2월 18일 제4차 당대회(김일성 100회 생일 근처인 2012년 4월 중순에 예정됨)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이 대회를 통해 "김정일의 성스러운 혁명적 삶과 업적을 영원히 찬양하고 김정은 주위에 결집하여 주체 사상, 선군 혁명 사상을 완수"하고자 했다.[6] 김정은은 2012년 7월 공화국 원수 계급으로 승진했다.[7] 2012년 4월 11일 제4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은 영원한 총비서로 선포되었고, 김정은은 신설된 조선노동당 제1비서 및 최고위원회 직책에 선출되었다. 이 대회에서는 당규약을 개정하여 김일성주의-김정일주의를 "당의 유일한 지도 사상"이라고 명시했다.[8][9] 2013년 12월, 당은 장성택 숙청과 같은 공개적인 내부 투쟁을 경험했다.[10]
김정은 체제 하에서 당은 회의가 더 자주 열리면서 어느 정도 부활을 보였다. 2010년과 2016년 사이에 44년 만에 두 번의 당대회와 한 번의 당 대표자회가 열렸다.[11] 2015년 10월 10일 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개최한 후, 2016년 5월 6일에 제7차 당대회를 개최했다.[12] 이 대회에서는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5개년 계획이 발표되었고, 김정은은 이전의 제1비서 직책을 대체하는 새로운 직책인 위원장이 되었다.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가 소집되었고, 김정은은 위원장 직책을 대신하여 총비서 직책을 받았다.[13] 이 대회는 또한 군에 대한 노동당의 통제 강화와 군의 권력 감소를 의미하며, 대회와 정치국 모두에서 군 대표의 수가 감소했다.[14] 2021년 6월, 당이 '제1비서' 직책을 신설했으며, 조용원[15] 또는 북조선 국무총리인 김덕훈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2021년부터 김정은은 조선노동당 내에서 공산주의와 공산주의 용어를 부활시키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이념이 다시 당규약에 명시되었다.[1] 또한 그는 당규약에서 '선군'을 "인민 중시 정치"로 점차 대체했다.

김정은 시대의 당대회
조선로동당은 좌파적인 모습을 유지하며, 세계 공산당 및 노동자당 회의에 대표단을 보내 지지를 받고 있다.[1] 2011년에는 김일성 탄생 100주년 기념 결의안에 79개 정당 중 30개 정당이 서명했다.[2] 조선로동당은 스스로를 전 세계 좌파 및 사회주의 운동의 일부로 여기며, 냉전 시기에는 "혁명 수출" 정책을 통해 좌파 게릴라들을 지원했다. 당 규약에는 "공산주의 사회 건설"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원칙" 고수를 명시하고 있다.[3] 그러나 브라이언 레이놀즈 마이어스 등은 조선로동당의 이념이 배타적 민족주의이며 인종차별적이라고 주장한다.[4][5][6]
3. 이념
3. 1. 마르크스-레닌주의와의 관계
조선로동당은 좌파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세계 공산당 및 노동자당 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일정한 지지를 받고 있다.[1] 2011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탄생 100주년을 세계 인류의 위대한 정치 축제로 함께 기념하자"라는 결의안에 79개 참가 정당 중 30개 정당이 서명했다.[2] 조선로동당은 또한 전 세계 좌파 및 사회주의 운동의 일부로 자처한다. 냉전 기간 동안 조선로동당과 북한은 전 세계 좌파 게릴라를 지원하는 "혁명 수출" 정책을 추진했다. 당규약에는 궁극적인 목표가 "인민의 이상이 완전히 실현되는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원칙"을 고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3] 브라이언 레이놀즈 마이어스, 재스퍼 베커, 서대숙은 조선로동당의 이데올로기가 배타적 민족주의적이며, 인종차별적이라고 주장한다.[4][5][6]
3. 2. 민족주의
브라이언 레이놀즈 마이어스, 재스퍼 베커, 서대숙은 조선로동당의 이데올로기가 배타적이고 인종주의적인 민족주의라고 주장한다.[1]
4. 조직
조선로동당의 조직 원칙은 소련 공산당과 마찬가지로 레닌이 주창한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를 따른다.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는 상급 중앙당 조직이 아래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되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실제로는 중앙집권제가 강조된다.[91]
북한은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인민 대중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고, 지도자는 대중의 중심에 있다"는 이념을 갖고 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투쟁을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보는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주체사상은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인간 중심적인 이데올로기로, 인류 전체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투쟁은 계급 사회에서 지배 계급에 의해 억제된다고 본다. 노동 계급만이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 인류가 독립적이고 창의적으로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회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주체사상에 따라 수령은 절대적인 최고 지도자로 여겨진다. 노동 계급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수령을 통해 생각하며, 수령은 노동 계급의 유일한 합법적인 대표자이다. 계급 투쟁은 수령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수령은 결점 없고 부패하지 않는 인간으로서 항상 인민의 이익을 위해 통치한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수령 체제가 기능하기 위해 북한에서는 단일적 이데올로기 체제를 강조한다.
단일 이데올로기 체제 수립을 위한 10대 원칙은 북한 주민의 행동을 지도하는 10개의 원칙과 65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헌법이나 노동당의 포고문보다 우선하는 국가의 최고 법으로 기능한다.
송분은 1957년 조선노동당 정치국 결의안에 따라 수립된 계급 제도이다. 북한 주민들은 적대, 중립, 우호의 세 가지 "세력"으로 나뉘며, 이는 세습된다. 송분은 교육 및 고용 기회, 특히 조선로동당 가입 자격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그 중요성은 감소하였다.
당대회는 당의 최고 의결 기관이며, 불규칙적으로 소집된다. 당대회에서는 중앙위원회, 중앙검열위원회, 총비서를 선출하고, 당 정책을 논의 및 제정하며, 당규약을 개정한다. 당대회 사이에는 중앙위원회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이다. 중앙위원회는 중앙군사위원회, 비서국, 정치국, 정치국 상무위원회, 중앙검열위원회를 선출한다. 정치국은 중앙위원회의 기능과 권한을 행사하며,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당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이다. 중앙군사위원회는 당 내 군사 문제에 대한 최고 의사결정 기관이며 조선인민군을 통제한다. 비서국은 최고 집행 기관이며, 중앙검열위원회는 당원과 관련된 징계 문제를 해결한다.
조선로동당은 각 지방 정부에 지방 조직을 두고 있으며, 도당위원회가 있다. 조선로동당원은 정규 당원과 후보 당원으로 나뉘며, 18세 이상이면 당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제11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지도하에 모든 활동을 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며, 조선노동당은 국가의 행정기구보다 상위에 있다. 북한은 헤게모니 정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조선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은 조선노동당의 지도성을 인정하는 위성정당이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노동당의 일당독재제이다.
4. 1. 당 대회

조선로동당의 최고 지도 기관이다.[27][28] 당 중앙위원회에 의해 소집된다. 당 강령과 규약의 채택 또는 수정·보완, 당의 노선·기본 정책 및 전략·전술의 결정, 중앙위원회의 선거 등을 수행한다.[29] 지난 당대회 이후의 성과를 보여주는 자리인 동시에, 그 이후의 국가 방침과 노선을 결정하는 중대한 대회이다.[30]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나 정치국 회의, 정무국 회의, 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 등에서도 결정이 이루어지지만, 어느 경우든 당대회에서 제시된 방침이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은 일반적으로 없다.[30]
과거에는 원칙적으로 5년에 한 번 개최하는 것이 당규약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실제로 5년 간격으로 개최된 것은 제3차 당대회(1956년)와 제4차 당대회(1961년) 사이뿐이었고, 개최 간격에 대한 약정은 유명무실화되었다. 따라서 제6차 당대회(1980년) 이후 30년 만에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의(2010년)에서 당대회 개최 간격에 관한 조항은 당규약에서 삭제되었다.[30] 그러나 김정일 사후 당 위원장이 된 김정은은 당대회를 정기적으로 소집하는 방침을 제시하고 있다.[28]
당 중앙 지도 기관에 소속된 자와 당 각 조직의 대표자들이 참석한다(제8차 당대회에서는 당 중앙 지도 기관 250명과 각 조직 대표자 4750명이 참석했다).[28] 방청인(옵서버)도 있으며 제8차 당대회에서는 2000명이 방청했다.[28]
과거 개최 실적은 다음과 같다. 당대회 회차는 조선로동당의 전신인 북조선로동당 당대회의 회차를 계승하고 있다.
김정일 체제 하에서는 조선로동당 대회가 한 번도 개최되지 않았다.
회차 | 개최 기간 | 비고 |
---|---|---|
북조선로동당 제1차당대회 | 1946년 8월 28일~8월 30일 | 북조선로동당 시대의 당대회 |
조선로동당 제3차당대회 | 1956년 4월 23일~4월 29일 | |
조선로동당 제4차당대회 | 1961년 9월 11일~9월 18일 | |
조선로동당 제5차 대회 | 1970년 11월 2일~11월 13일 | |
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 | 1980년 10월 10일~10월 14일 | |
조선로동당 제7차 대회 | 2016년 5월 6일~5월 9일 | |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 2021년 1월 5일~1월 12일 |
4. 2. 당 대표자회
당 대회는 규모가 크고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당 대회 사이에 긴급한 안건이 발생하면 당 중앙위원회에서 당 대표자회를 소집할 수 있다. 당 대회와 마찬가지로 당 대표자회 역시 당중앙위원회에서 대표자 선거 절차와 선출 비율을 결정한다. 당의 노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에 관한 긴급한 문제를 토의·결정하며,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당중앙위원회 위원, 후보위원, 준후보위원을 제명하고, 그 결원에 대한 보궐 선거를 실시한다.1958년의 당 대표자회는 8월 종파 사건을 정리하는 회의였고, 1966년의 당 대표자회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남한의 군사 정권 등장과 베트남 파병 등으로 인해 군사 긴장이 고조된 시기에 4대 군사 노선을 다시 확인하는 회의로서, 두 차례 모두 김일성 반대파를 숙청하고 독재 체제를 공고히하는 회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0년 9월 28일 44년 만에 조선로동당 최고 지도 기관 선거를 위한 제3차 당 대표자회를 소집해 김정은에게 대장 칭호를 부여하는 등 3대 세습이 공식화되었다.[93]
; 역대 당 대표자회
개최 기간 | 명칭 |
---|---|
1958년 3월 3일 ~ 3월 6일 | 조선로동당 제1차 대표자회 |
1966년 10월 5일 ~ 10월 12일 | 조선로동당 제2차 대표자회 |
2010년 9월 28일 |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 |
2012년 4월 11일 | 조선로동당 제4차 대표자회 |
4. 3. 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위원회는 당 대회에서 결정한 사업을 구체적으로 조직하고, 세부 기관을 통해 지도한다. 당 대회 폐회 중에는 당을 대표하여 모든 당 사업을 조직하고 지도하며, 당의 재정을 관리하는 실질적인 최고 지도 기관이다. 당 중앙위원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공 조직과 정부의 모든 중요 직위에 있는 인물로 구성되어 권력 엘리트 집단을 이룬다. 당 중앙위원회는 당에서 규정한 과업을 수행하기에 당 대회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중요 문제를 토의하고, 중앙위원회 정치국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 중앙위원회 정무국과 중앙군사위원회를 조직한다. 중앙위원회는 정위원과 후보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 수는 당 대회에서 결정된다.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6개월에 한 번 이상 소집되어야 하지만, 1991년 이후 1년에 한 번씩만 열렸다. 필요에 따라 당·정 기관 및 경제 기관 등의 책임일꾼들이 참가하는 확대 전원회의를 열기도 한다. 김일성 생존 당시 당 중앙위원회는 국가 정책 전반과 조직 문제를 다루는 기관이었으나, 김일성 사망 이후 그 활동이 공개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다시금 선당 중심의 운영으로 바뀌면서 중앙위원회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
자세한 조직 현황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3. 1. 각급 당 조직
조선로동당은 북한의 3단계 지방 정부(도와 도급시, 특별시, 일반시, 시구, 농촌군과 마을)에 각각 지방 조직을 두고 있다. 각 도에는 도당위원회가 있으며, 도당위원회의 구성은 조선로동당에 의해 결정된다.조선로동당원은 정규 당원과 후보 당원의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18세 이상이면 당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당원이 되려면 최소 2년 이상 당원으로서 좋은 신분을 유지한 두 명의 당원이 추천하는 신청서를 당 세포에 제출해야 한다. 신청서는 당 세포의 전원회의에서 심의하며, 긍정적인 결정은 군급 당위원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신청이 승인되면 1년의 의무 후보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특별한 상황"에서는 이 기간이 면제될 수 있어 후보자는 바로 정규 당원이 될 수 있다. 당원 모집은 조직지도부와 그 지방 지부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다.
1988년 조선로동당은 300만 명 이상의 당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1976년에 발표된 200만 명보다 상당히 증가한 수치이다. 이러한 증가는 3대 혁명붉은 기운동 동원 운동의 결과일 수 있다. 당시 인구의 12%가 당원이었는데, 이는 공산주의 국가로서는 이례적으로 많은 수치이며, 루마니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후 당원 수는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현재 당원 수는 650만 명으로 추산된다.
북한 사회는 산업 노동자, 농민, 삼무원(지식인 및 소부르주아)의 세 계급으로 나뉜다. 1948년 이후 산업 노동자들이 당원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고, 그 뒤를 농민과 삼무원이 따랐다. 1970년대 북한 인구가 도시 인구 50%에 도달하면서 당원 구성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국영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당원이 되었고, 농업 협동조합의 당원 수는 감소했다.
4. 4. 중앙군사위원회
당 규약에 따르면 중앙군사위원회는 당의 군사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고 결정하며, 조선인민군을 비롯한 전체 무장력을 강화하고 군수 생산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조직하며 지도한다.[94]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무력을 통솔한다고 규정되어 있다.[94]중앙군사위원회는 당 내 군사 문제에 대한 최고 의사결정 기관이며 조선인민군의 작전을 통제한다.[94] 조선로동당 총비서는 당연직으로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한다.
4. 5. 중앙검사위원회
당규약 제29조에 의해 조선로동당의 재정·경리사업을 검사하는 권한을 갖고 있으며, 당규약 제21조에 의해 위원은 당대회에서 선거하도록 규정되어 있다.[94]
5. 역대 지도부
1945년 10월 10일, 조선공산당 북부조선분국으로 발족(당 창설 기념일)했다. 1946년 8월, 조선신민당을 흡수하여 북조선로동당이 되었다(제1차 당대회). 1949년 6월 30일에는 남조선로동당(남로당)과 합병하여 김일성을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조선로동당'''이 되었다.
본래 조선로동당은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 단체의 연합체 성격을 가졌으나, 1953년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파 주요 구성원이 숙청되었다. 1956년에는 8월 종파 사건으로 소련파와 김두봉 등의 연안파(중국파)가 숙청되어 궤멸되었다. 김일성의 라이벌 숙청과 함께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가 강화되었다.
1966년 10월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자주노선을 정식화하여 이데올로기적으로 소련·중국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내세웠다. 당 조직 개편으로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대신 중앙위원회 당총비서가 설치되고, 김일성이 취임하였다.
1967년 5월 제4기 당중앙위원회 제15차 총회에서는 유일사상체계 확립이 강조되었다. 유일사상체계란 당을 창건하고 지도하는 수령의 사상이며, 당내에는 유일사상체계 이외의 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경우, 수령이란 혁명의 지도자를 의미하며, 김일성을 가리킨다. 같은 해 6월 제4기 당중앙위원회 제16차 총회에서는 수령론이 제창되어, 혁명의 지도자인 수령이 지도정당인 조선로동당의 상위에 위치하게 되었고, 조선로동당은 수령에 종속하는 존재로 여겨졌다.[16] 이후, 김일성 지도부는 북한 고유의 주체사상을 내세우고, “수령은 뇌수, 당은 신경, 인민은 세포”라는 유기적 국가론을 주창하였다.
국내 빨치산파라고도 불린 갑산파는 1967년 8월에 령수 박금철이 반당·반혁명분자로 비판받는 등 많은 구성원이 숙청되어 궤멸되었고, 김일성을 령수로 하는 해외 빨치산파라고도 불린 만주파가 당내 주도권을 확립해 나갔다. 1930년대에 김일성이 수행한 항일 빨치산 투쟁만이 조선의 혁명운동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투쟁이라는 “혁명전통”이 주장되었고, 그 이외의 혁명의 역사는 부정되었다. 혁명전통 가운데 특히 강조된 것은 항일 빨치산의 수령인 일성에 대한 “무한한 충성심”이었고, 수령의 지시를 끝까지 관철하는 “혁명적 규율”이었다. 그리고 수령의 혁명전통을 계승하는 것이 후계자의 조건이라고 여겨졌고, 한편으로 혁명전통을 김일성의 가계에 소급하여 그 일족에 대한 숭배가 강조되었다.[17]
김정일은 1974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로 추대되었고, 다음 날에는 정치위원회 위원(현: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4월에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 발표되었다. 이 10대 원칙은 당원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김일성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었으며, 헌법이나 당규약을 넘는 최고 규범[18]으로서 국민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 및 당 제6기 중앙위원회 제1차 총회에서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서기,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직책에 취임함으로써 김일성의 후계자임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김일성은 1994년 7월에 사망했다. 당 최고 직책인 중앙위원회 총비서는 일성 사후 잠시 공석이었으나, 1997년 9월에 김정일이 당 총비서에 취임하였다.
당대회는 김일성 시대 1980년 10월 10일 이후 2016년 5월 6일 제7차 당대회까지 36년간 열리지 않았다. 6개월에 한 번 개최되는 중앙위원회 총회의 개최도 공표되지 않는 등 지배 조직으로서의 형해화가 지적되었다. 이것은 “선군정치”(군사 우선 정책)를 내세운 김정일이 이미 당이 아니라 조선인민군만을 신뢰의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19]
주체사상을 내세우게 된 이후에도,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집권 정당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도 이념으로 내세우고, 주체사상은 그것을 발전시킨 것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잇달아 붕괴하자, 주체사상의 독자성 강조가 강해졌다. 김정일이 총비서에 취임한 1997년 무렵부터 “선군정치”를 내세우게 되고, 일반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전위당이 사회주의 건설을 지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군을 사회주의 건설의 주력으로 보고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 구축을 시작했다. 2010년 9월 28일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채택된 당규약에서는 “사회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남았으나, “공산주의”는 삭제되었고, “선군정치”가 새롭게 명기되었다.[20]
2011년에 김정일이 사망한 후, 후계자로 된 김정은이 총비서 지위를 계승할 것으로 보였으나, 김정은은 2012년 4월 11일에 개최된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새롭게 당 최고 직책으로 설치된 제1비서에 취임하였고, 김정일은 “영원한 총비서”로 지정되었다.[21]
2016년 5월에 개최된 제7차 당대회에서 당 제1비서를 대신하는 직책으로 당 위원장이 설치되었고, 김정은이 당 위원장에 취임하였다.[22] 이 당대회에서 개정된 규약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원칙의 고수”,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명기되는 등 김정은 체제는 김일성 시대로의 회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23]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당규약이 개정(1월 9일)되고, 서기국이 5년 만에 부활함에 따라 김정은을 총비서로 하는 결의가 1월 10일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고 보도되었다.[24] 동시에, 총비서의 직무를 대행할 수 있는 직책으로 “당중앙위원회 제1비서”라는 제1비서라는 이름을 가진 직책이 신설되었다.[25][26]
당대회 폐회 중에 중앙위원회가 필요에 따라 소집한다. 당의 노선·기본 정책 및 전략·전술에 관한 긴급 문제를 토론하는 외에,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중앙위원, 중앙위원 후보·준후보 위원의 제명 및 결원 보궐 선거 등을 실시한다. 지금까지 개최된 것은 아래의 4회뿐이다. 제4차 회의에서는 김정일(2011년 사망)을 “영원한 총서기”로 지정하고, 김정은을 신설된 당 제1비서(2016년에 당 위원장으로 개칭)에 추대했다.[30]
- 김일성 체제
- * 제1차 회의: 1958년 3월 3일 - 3월 6일
- * 제2차 회의: 1966년 10월 5일 - 10월 12일
- 김정일 체제
- * 제3차 회의: 2010년 9월 28일[31]
- 김정은 체제
- * 제4차 회의: 2012년 4월 11일
당대회에서 결정된 사업 형태를 구체적으로 조직화하고, 세부 기관에 대한 지도를 수행한다. 당대회 폐회 중, 당을 대표하여 모든 당 사업을 조직하고 지도하는 외에, 당의 재정을 관리한다. 중앙위원회 총회는 6개월에 1회 이상 소집될 것으로 되어 있다. 중앙위원회 총회에서는 중요 문제의 토의 외에,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정치국원) 및 정치국 상무위원, 당 총비서 및 당 중앙위원회 서기(제7기 중앙위원회에서는 부위원장)를 선출하고, 정치국·서기국·중앙군사위원회를 조직한다. 제7차 당대회 종료 시점에서 중앙위원은 129명, 중앙위원 후보는 106명[32]이다.
당 중앙위원회 총회가 폐회 중일 때 중앙위원회의 권한을 대행하여 모든 당 사업을 결정하고 지도한다. 정치국 상무위원 및 정치국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은 당의 최고 간부이다.
정치국 내에는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정치국 내에 설치되어 있지만, 사실상 상위 기관이며, “당 최고 지도부”라고도 할 수 있다.[30]
당의 인사 및 일상적인 현안 문제를 처리하는 기관이다. 여러 명의 서기와 그들의 지도를 받는 각 부서의 부장(서기의 겸임도 있음)이 전문 부서인 각 부서를 지휘·감독한다.
2021년 제8기 중앙위원회 당시, 구체적인 정책 실행을 담당하는 전문 부서로는 선전선동부, 노동단체부, 조직지도부, 군정지도부, 규율조사부, 국제부, 간부부, 법무부, 경공업부, 농업부, 군수공업부, 통일전선부, 재정경리부, 경제부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중 '''조직지도부'''는 당, 군, 정부, 사회단체 등 북한 권력층에 속한 인물에 대한 사상검열권, 인사권, 숙청권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안전보위성을 마치 손발처럼 부리기 때문에 북한의 진정한 권력 중추 기관으로 여겨진다.[33]
참고로, 서기국(書記局)의 정식 명칭은 “중앙위원회 비서국(中央委員会秘書局)”이며, 총서기(總書記)와 서기(書記)도 정확하게는 “총비서(總秘書)”, “비서(秘書)”이다. 일본 언론이 “서기국”, “총서기”, “서기”라고 바꿔 부르는 것은 중국이나 구소련의 호칭과 일치시키기 위함이다.[34] 서기국은 제7차 당대회 기간에만 “정무국(政務局)”으로 개칭되었고, 서기도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党中央委員会副委員長)”으로 개칭되었다.
조선로동당의 첩보기관은 서로 비슷한 명칭을 사용하며, 활동이 발각된 후에는 자주 명칭을 변경하기 때문에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2016년 시점에서는 통일전선부가 당의 정보·첩보기관으로 확인되고 있다.[39] 과거 당의 정보·첩보기관으로 작전부, 통일전선부, 대외정보조사부, 대외연락부가 존재했으며, 청사가 평양직할시 모란봉구역 전동 노동당 3호 청사에 위치하여 총칭하여 “3호 청사”라고 불렸으나, 2009년 정보기관 개혁으로 작전부와 대외정보조사부는 군 총참모부 정찰국과 통합되어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으로 확대 개편되었다.[6][40] 또한 대외연락부는 내각 소속 제225부로 강등된 후,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으로서 당 소속으로 복귀하였다.[6]
이름 | 주요 직책 | 취임 | 퇴임 |
---|---|---|---|
김일성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주석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 국가주석: 1972년 12월 28일 총비서: 1949년 6월 3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1950년 7월 4일 |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1991년 12월 24일 국가주석·총비서: 1994년 7월 8일 (사망) |
김정일 |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조선로동당 총비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 |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1991년 12월 24일 국방위원회 위원장: 1993년 4월 9일 총비서: 1997년 10월 8일 | 사망(2011년 12월 17일) |
김정은 | 조선로동당 총비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2011년 12월 30일 국무위원회 위원장: 2016년 6월 29일 총비서: 2021년 1월 10일 | 현직 |
2010년 9월 28일 제3차 당 대표자회 및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선출된 간부는 다음과 같다.
- 중앙위원회 총비서: 김정일[47]
- 중앙위원회 정치국
- * 상무위원: 김정일[47], 김영남, 최영림, 조명록[48], 리영호
- * 정치국 위원: 김영춘, 전병호[49], 김국태, 김기남, 최태복, 양형섭, 강석주, 변영립, 리용무, 주상성, 홍석형, 김경희
- 중앙위원회 서기국
- * 당 중앙위원회 서기: 김기남, 최태복, 최룡해, 문경덕, 박도춘, 김영일, 김양건, 김평해, 태종수, 홍석형[50]
- 중앙군사위원회
- * 위원장: 김정일[47]
- * 부위원장: 김정은, 리영호
- * 위원: 김영춘, 김정각, 김명국, 김경옥, 김원홍, 정명도, 리병철, 최부일, 김영철, 윤정린, 주규창, 최상리, 최경성, 우동측, 최룡해, 장성택
5. 1. 역대 당수
대수 | 역대 대표 | 직함 | 임기 | 비고 |
---|---|---|---|---|
1 | 김두봉 | 중앙위원장 | 1946년 8월 28일 ~ 1948년 3월 27일 | 조선신민당 주석 |
2 | 김일성 | 1948년 3월 27일 ~ 1949년 6월 30일 | 북조선공산당 책임비서 | |
3 | 1949년 6월 30일 ~ 1956년 6월 23일 | 남조선로동당과 합당 | ||
4 | 1956년 4월 23일 ~ 1961년 9월 11일 | |||
5 | 1961년 9월 11일 ~ 1966년 10월 5일 | |||
6 | 총비서 | 1966년 10월 5일 ~ 1970년 11월 2일 | ||
7 | 1970년 11월 2일 ~ 1980년 10월 10일 | |||
8 | 1980년 10월 10일 ~ 1994년 7월 8일 | 사망 | ||
9 | 김정일 | 1997년 7월 8일 ~ 2010년 9월 28일 | 김일성 장남 | |
10 | 2010년 9월 28일 ~ 2011년 12월 17일 | 사망 | ||
11 | 김정은 | 제1비서 | 2012년 4월 11일 ~ 2016년 5월 9일 | 김정일 3남 |
12 | 위원장 | 2016년 5월 9일 ~ 2021년 1월 9일 | ||
13 | 총비서 | 2021년 1월 10일 ~ |
6. 상징
조선로동당의 마크는 망치와 낫, 붓이다. 망치는 혁명의 로동 계급인 로동자를, 낫은 농민을, 붓은 지식인, 조선로동당 당원을 뜻한다.
조선로동당의 상징은 공산주의의 낫과 망치를 변형한 것으로, 전통적인 한글 서예 붓이 추가되어 있다. 이 상징들은 조선로동당이 설명하는 한국 사회의 세 계급, 즉 산업 노동자(망치), 농민(낫), 그리고 '사무원'(붓)을 나타낸다. '사무원' 계급은 사무원, 소상인, 관료, 교수, 작가 등으로 구성된다. 이 계급은 북한의 계급 분석에 고유한 것으로, 국가 인구의 교육 및 문해력 향상을 위해 고안되었다.[1]
7. 대외 관계
조선로동당은 대외 관계에서 여러 첩보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관들은 이름이 비슷하고 활동이 발각되면 자주 이름을 바꾸기 때문에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2016년 기준으로 통일전선부가 당의 정보·첩보기관으로 확인되고 있다.[39] 과거에는 작전부, 통일전선부, 대외정보조사부, 대외연락부가 평양직할시 모란봉구역 전동 노동당 3호 청사에 위치하여 "3호 청사"로 불렸다.[6] 2009년 정보기관 개혁으로 작전부와 대외정보조사부는 군 총참모부 정찰국과 통합되어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으로 확대 개편되었고,[6][40] 대외연락부는 내각 소속 제225부로 강등되었다가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으로 당에 복귀하였다.[6]
7. 1. 대한민국과의 관계
조선로동당은 대한민국과의 관계에서 여러 첩보 기관들을 활용해왔다. 이 기관들은 비슷한 이름을 사용하고, 활동이 발각되면 자주 이름을 바꾸기 때문에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39] 2016년 기준으로, 당의 정보·첩보 기관은 통일전선부로 확인되고 있다.[39]과거에는 작전부, 통일전선부, 대외정보조사부, 대외연락부 등이 평양직할시 모란봉구역 전동에 위치한 3호 청사에 있어 "3호 청사"로 불렸다.[6] 그러나 2009년 정보기관 개혁으로 작전부와 대외정보조사부는 군 총참모부 정찰국과 통합되어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으로 확대 개편되었다.[6][40] 대외연락부는 내각 소속 제225부로 강등되었다가, 다시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으로 당에 복귀했다.[6]
각 기관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기관명 | 역할 |
---|---|
통일전선부 | 남한 내 민간 단체와 해외 동포(일본 포함) 포섭, 남북 대화 및 교류 지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조선총련(제225부(구 대외연락부) 지도하) 등의 외곽 단체를 통해 공개적인 선전 활동을 한다.[6] 과거 문화부로 불렸으며, 구국의 소리 방송 등의 대남 지하방송도 운영했다. |
작전부 (2009년 해체[41][42]) | 스파이 호송 및 침투, 파괴 공작, 요인 암살 담당. 7~10곳의 "연락소"를 관할하며, 스파이를 한국과 일본으로 호송했다. 유고급 잠수함 침투 사건, 일본인 납치 사건 실행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
대외정보조사부 (2009년 해체[6]) | 한국 이외 제3국에서의 정보 수집, 제3국을 경유한 한국 내 스파이 침투 담당. 과거 조사부, 대외조사부, "35호실"로 불렸다. 대한항공 폭파 사건, 신상옥, 최은희 부부 납치 등의 실행 기관으로 추정된다. |
대외연락부 | 한국과 일본 등에 침투하는 스파이 및 지하 조직 관리. 과거 연락부, 사회문화부로 불렸다. 2009년 내각 제225부(대외교류국)로 축소 개편[43][44]된 후, 당 소속으로 복귀하여 현재는 통일전선부 산하 기관이다.[45] |
8. 비판과 논란
조선로동당에 대한 비판과 논란은 주로 다음과 같다.
- 권력 집중 및 세습: 조선로동당은 창당 이후 김일성 일가에 의해 권력이 집중되고 세습되어 왔다. 이는 당 내 민주주의를 저해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 인권 탄압: 조선로동당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탄압하는 주체로 지목된다. 정치범수용소 운영, 공개 처형, 고문, 강제 노동 등 반인륜적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 경제 정책 실패: 조선로동당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경제 정책은 북한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는 비판을 받는다. 만성적인 식량난과 생필품 부족은 주민들의 삶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들었다.
- 핵 개발: 조선로동당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이는 국제적인 고립을 심화시키고, 경제 제재를 초래하여 주민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 대남 도발: 조선로동당은 대한민국에 대한 지속적인 군사적 도발과 위협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등은 남북 관계를 경색시키고, 평화 통일의 가능성을 멀어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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