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레이스 윌슨
1. 개요
호레이스 윌슨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교육 시스템 현대화에 기여한 미국의 외국인 고문이다. 그는 도쿄 제국 대학의 전신인 개성학교에서 영어학 교수로 재직하며, 1872년 또는 1873년 학생들에게 야구를 소개하여 일본 야구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윌슨은 미국 남북 전쟁 참전 용사이기도 하며, 1877년 미국으로 돌아가 1927년 사망했다. 2003년에는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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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의 고용 외국인 -
프란츠 에케르트
프란츠 에케르트는 독일의 군악대장이자 작곡가로서 일본 해군 군악대장으로 일본 국가 기미가요를 작곡하고 대한제국에 건너와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하는 등 양국의 국가 제정에 기여했으나, 기미가요 작곡으로 친일 논란이 있다. -
메이지 시대의 고용 외국인 -
샤를 르루
샤를 르루는 프랑스 군악대장이자 작곡가로, 제3차 프랑스 군사 고문단의 일원으로 일본 육군 군악대를 지도하며 군가를 작곡하여 일본 음악 발전에 기여했고, 귀국 후에는 프랑스 육군 군악대장으로 복무하며 일본 음악 연구 및 아악을 유럽에 소개하는 등 음악 교류에 힘썼다. -
메인주 출신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19세기 미국 시인이자 작가, 번역가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는 "폴 리버의 기행"과 "히아와타의 노래" 등의 작품으로 미국적 정체성 형성에 기여했으며, 생전 큰 인기를 누렸으나 감상적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
메인주 출신 -
서맨사 스미스
1980년대 냉전 시대에 유리 안드로포프에게 평화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 소련을 방문, "미국의 최연소 대사"로 활동하며 평화의 상징이 된 미국의 학생이자 평화 운동가가 서맨사 스미스이다. -
1927년 사망 -
김학렬
김학렬은 일제강점기 출신으로 고등고시 합격 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에서 요직을 거쳐 재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하며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정책 추진과 포항종합제철소 건설을 위한 경제협력자금 유치에 기여한 관료이다. -
1927년 사망 -
이해조
이해조는 일제강점기 신소설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제국신문》, 《매일신보》 등에서 활동하며 《고목화》, 《빈상설》, 한국 최초 추리소설로 평가받는 《쌍옥적》 등 다수의 신소설을 발표했고, 고전 소설 재해석, 쥘 베른 소설 번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한국 신소설 창시자로 인정받는다.
2. 생애
윌슨은 메인주 고럼에서 태어났으며, 미국 남북 전쟁 참전 용사이다. 1858년 가을 켄츠 힐 학교에 입학하여 1862년 봄에 졸업했고, 루이지애나에서 남군에 대항하여 제12 메인 의용 보병 연대에서 복무했다.
전쟁 후, 메이지 유신 시기 일본 정부의 외국인 고문으로 고용되어 일본 교육 시스템 현대화를 도왔다. 도쿄 제국 대학의 전신인 개성학교에서 영어학 교수로 재직하며, 1872년 또는 1873년에 학생들에게 야구를 소개했다.
1877년 미국으로 돌아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다가 1927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03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1. 미국에서의 초기 생애
윌슨은 메인주 고럼에서 태어났다. 1858년 가을 켄츠 힐 학교에 입학하여 1862년 봄에 졸업하였다.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북군 제12 메인 의용 보병 연대에 소속되어 루이지애나주에서 남군과 싸웠다.
2.2. 일본에서의 교육 활동과 야구 도입
메이지 유신 이후 윌슨은 일본 정부에 외국인 고문으로 고용되어 일본 교육 시스템의 현대화를 돕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도쿄 제국 대학의 전신인 개성학교에서 영어학 교수로 재직했다.
1872년 또는 1873년, 윌슨은 학생들이 더 많은 신체 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그들에게 야구를 소개했다. 몇 주 또는 몇 달 후, 학교는 일본 학생들과 외국인 강사 간의 7이닝 경기를 후원할 정도로 충분한 관심을 받았다. 일본 최초의 공식 야구팀은 1878년에 창설되었다.
2.3. 미국 귀국과 사망
윌슨은 1877년 미국으로 돌아와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했으며, 1927년에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03년, 윌슨은 특별 위원회에 의해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회원으로 사후에 선출되었다.
3. 일본 야구에 끼친 영향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교육 시스템의 현대화를 돕기 위해 일본 정부에 외국인 고문으로 고용된 윌슨은 도쿄 제국 대학의 전신인 개성학교에서 영어학 교수로 재직했다. 1870년대 초, 윌슨은 학생들에게 야구를 소개했고, 이는 일본 야구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최초의 공식 야구팀은 1878년에 창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