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렬
1. 개요
김학렬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고성군 출신으로, 부산상업학교, 원산상업학교, 중앙대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고등고시 행정과 외무직에 합격하고, 미주리 대학교와 아크론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재무부 사세국장, 예산국장, 경제기획원 조정관, 부원장보, 차관, 대통령 수석정무비서관을 거쳐 제22대 재무부 장관과 제10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했다. 포항종합제철소 건설 자금 유치를 통해 대한민국 중화학공업 발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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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오 대학 동문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주오 대학 동문 -
정희택
정희택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으로 검사, 중앙수사국장 등 요직을 거쳐 제11대 국회의원, 감사원장, 방송위원회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언론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권위주의 정권과의 협력에 대한 비판도 있다. -
1923년 출생 -
잭 킬비
잭 킬비는 미국의 전자 공학 기술자이자 집적 회로의 공동 발명가로, 1958년 단일 반도체 재료에 회로 부품을 집적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1959년 최초의 집적 회로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으며,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
1923년 출생 -
밥 바커
밥 바커는 《진실 혹은 결과》와 《정가는 얼마일까요》를 진행하며 큰 인기를 얻은 미국의 텔레비전 게임 쇼 진행자이자, 은퇴 후 동물 권리 운동가로 활동하며 동물 보호를 위한 기부와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
개성고등학교 동문 -
박준태 (1991년)
박준태는 2014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 경찰 야구단을 거쳐 키움 히어로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며 8시즌 동안 통산 타율 0.219를 기록했고, 2023년 은퇴 후 2024년부터 고양 히어로즈의 외야 및 주루 코치로 활동 중인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다. -
개성고등학교 동문 -
박동원
박동원은 2009년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하여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팀의 중심 선수로 자리매김했고, 성폭행 사건 연루 등 부침을 겪었으나 KIA 타이거즈를 거쳐 LG 트윈스로 이적 후 2024년 야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는 등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다.
2. 경력
김학렬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고성군 출신이다. 부산상업학교, 원산상업학교, 중앙대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제1회 고등고시 행정과 외무직에 합격하였고, 1952년에는 미주리 대학교와 아크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재무부 사세국장·예산국장, 경제기획원 조정관·부원장보(1962년)·차관(1963년 12월 17일~1966년 9월 26일), 대통령 수석정무비서관을 역임했다. 1966년 9월 26일부터 1966년 12월 27일까지 제22대 재무부(현·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다. 1969년에는 포항종합제철소 건설 사업을 위해 일본으로부터 경제협력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해 6월 3일부터 1972년 1월 4일까지 제10대 부총리 겸 제10대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2.2. 관료 생활
1950년 제1회 고등고시 행정과 외무직에 합격하였고, 1952년에는 미주리 대학교와 아크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재무부 사세국장·예산국장, 경제기획원 조정관·부원장보(1962년)·차관(1963년 12월 17일~1966년 9월 26일), 대통령 수석정무비서관을 역임했다. 1966년 9월 26일부터 1966년 12월 27일까지 제22대 재무부(현·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다. 1969년에는 포항종합제철소 건설 사업을 위해 일본으로부터 경제협력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해 6월 3일부터 1972년 1월 4일까지 제10대 부총리 겸 제10대 경제기획원 장관을 역임했다.
2.3. 주요 업적
2.3.1. 포항종합제철소 건설 자금 유치
포항종합제철소 건설 사업을 위해 일본으로부터 경제협력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대한민국 중화학공업 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