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다니엘 발렌시아
1. 개요
호세 다니엘 발렌시아는 아르헨티나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그는 1978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으로 우승을 경험했으며, 1982년 FIFA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클럽 경력으로는 탈레레스 데 코르도바에서 주로 활약했으며, LDU 키토, 과라니 안토니오 프랑코, 로사리오 센트랄, 클럽 호르헤 윌스터만, 클럽 산 호세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93년 37세의 나이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 이름 | 호세 다니엘 발렌시아 |
|---|---|
| 원어 이름 | José Daniel Valencia |
| 출생일 | 1955년 10월 3일 |
| 출생지 | 후후이 주산살바도르데후후이 |
| 키 | 169cm |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
| 1973–1974 | 힘나시아 후후이 (5경기 1골) |
|---|---|
| 1975–1988 | 타예레스 데 코르도바 (274경기 29골) |
| 1986 | → LDU 키토 (임대) (26경기 1골) |
| 1988 | 과라니 안토니오 프랑코 |
| 1989 | 로사리오 센트랄 (0경기 0골) |
| 1989–1990 | 클럽 호르헤 윌스테르만 (26경기 0골) |
| 1991–1993 | 클럽 산호세 (78경기 6골) |
| 국가대표팀 | 아르헨티나 |
|---|---|
| 국가대표팀 연도 | 1975–1982 |
| 국가대표팀 출장 | 41 |
| 국가대표팀 골 | 5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대회 | FIFA 월드컵 |
|---|---|
| 우승 | 1978 아르헨티나 |
| 팀 | 팀 |
-
볼리비아에 거주한 아르헨티나인 -
마리오 켐페스
마리오 켐페스는 아르헨티나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공격수로, 1978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고 득점왕과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발렌시아 CF에서 라리가 득점왕을 두 차례 차지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
후후이주 출신 -
아리엘 오르테가
아리엘 오르테가는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로, 리베르 플라테에서 프로 데뷔하여 여러 차례 리그 우승을 거두었고, 국가대표팀으로도 활약했으며, '신 마라도나'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보였지만, 다혈질적인 성격과 알코올 중독 문제로 인해 잠재력을 모두 발휘하지는 못했다. -
후후이주 출신 -
카수 (가수)
아르헨티나 출신 가수로 쿰비아와 록에서 라틴 트랩으로 음악 스타일을 바꿔 여성 권한 신장 곡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여러 앨범 발매 및 협업, 리믹스 참여와 함께 2022년 멜론 뮤직 어워드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고 여러 시상식 후보에 올랐다. -
힘나시아 후후이의 축구 선수 -
레오폴도 루케
레오폴도 루케는 아르헨티나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1978년 FIFA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으며, 월드컵에서 4골을 기록했고, 우니온 데 산타페, 로사리오 센트랄, 리버 플레이트 등에서 활약하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261경기 100골을 기록했다. -
힘나시아 후후이의 축구 선수 -
다비드 비스콘티
아르헨티나 출신 축구 선수 다비드 비스콘티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아르헨티나 리그와 칠레 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J리그 우승에도 기여한 후 유소년팀 코치와 감독으로 활동했다.
2. 클럽 경력
발렌시아는 힘나시아 이 에스그리마 데 후후이(Gimnasia y Esgrima de Jujuy)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곧 탈레레스 데 코르도바(Talleres de Córdoba)로 이적했고, 이 클럽에서 대부분의 선수 생활을 보냈다. 탈레레스에서 발렌시아는 1977년 나시오날(Nacional)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아쉬움을 겪었고, 1980년 메트로폴리타노(Metropolitano)에서 3위를 기록했으며, 네 차례 준결승에서 패배했다. 1986년 에콰도르 축구에서 리가 데포르티바 우니베르시타리아 데 키토(Liga Deportiva Universitaria de Quito)에서 활동했지만, 1년 만에 탈레레스로 돌아와 2시즌 더 뛰었다.
1988년 탈레레스를 떠나 아르헨티나 [[미시오네스(Misiones)]주에 있는 3부 리그 클럽 과라니 안토니오 프랑코(Guaraní Antonio Franco)에 입단했다. 하부 리그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후, 1989년 로사리오 센트랄(Rosario Central)에 입단하여 잠시 1부 리그로 복귀했고, 이후 볼리비아로 건너가 [[클럽 호르헤 윌스터만(Club Jorge Wilstermann)]과 클럽 산 호세(Club San José)에서 활약했다.
산 호세에서 그는 1991년 [[클라우수라(Clausura)]와 1992년 시즌 두 차례 준우승의 아쉬움을 다시 맛보았다. 또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Copa Libertadores)에 처음 출전했지만, 1992년과 1993년 모두 조 최하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발렌시아는 37세의 나이로 1993년 클럽 축구에서 은퇴했다.
2.1. 탈레레스 데 코르도바
발렌시아는 힘나시아 이 에스그리마 데 후후이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곧 탈레레스 데 코르도바로 이적했고, 이 클럽에서 대부분의 선수 생활을 보냈다. 탈레레스에서 발렌시아는 1977년 나시오날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아쉬움을 겪었고, 1980년 메트로폴리타노에서 3위를 기록했으며, 네 차례 준결승에서 패배했다. 1986년 에콰도르 축구에서 리가 데포르티바 우니베르시타리아 데 키토에서 활동했지만, 1년 만에 탈레레스로 돌아와 2시즌 더 뛰었다.
2.2. LDU 키토
1986년 에콰도르 축구에서 리가 데포르티바 우니베르시타리아 데 키토에서 활동했지만, 1년 만에 탈레레스 데 코르도바(Talleres de Córdoba)로 돌아와 2시즌 더 뛰었다.
2.3. 과라니 안토니오 프랑코
발렌시아는 미시오네스(Misiones)주에 있는 3부 리그 클럽 과라니 안토니오 프랑코(Guaraní Antonio Franco)에 입단했다. 하부 리그에서 짧은 시간을 보냈다.
2.5. 볼리비아 리그
발렌시아는 힘나시아 이 에스그리마 데 후후이(Gimnasia y Esgrima de Jujuy)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곧 탈레레스 데 코르도바(Talleres de Córdoba)로 이적했고, 이 클럽에서 대부분의 선수 생활을 보냈다. 탈레레스에서 선수 생활 이후, 과라니 안토니오 프랑코(Guaraní Antonio Franco)를 거쳐 1989년 로사리오 센트랄(Rosario Central)에 입단하여 잠시 1부 리그로 복귀했고, 이후 볼리비아로 건너가 [[클럽 호르헤 윌스터만(Club Jorge Wilstermann)]과 클럽 산 호세(Club San José)에서 활약했다.
산 호세에서 그는 1991년 [[클라우수라(Clausura)]와 1992년 시즌 두 차례 준우승을 하였다. 또한 코파 리베르타도레스(Copa Libertadores)에 처음 출전했지만, 1992년과 1993년 모두 조 최하위를 기록했다.
3. 국가대표 경력
발렌시아의 축구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1978년 FIFA 월드컵 대회에서 아르헨티나 대표로 출전했을 때였다. 첫 경기에 출전했지만, 세사르 루이스 메노티 감독의 전술 변경으로 인해 팀에서 제외되었다. 그는 모뉴멘탈 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아르헨티나가 첫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발렌시아는 1982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대표로 출전했지만, 팀은 2차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는 대회 종료 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총 41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4. 수상 경력
4.1. 클럽
코르도바 탈레레스에서 코파 에르만다드 1회(1977), 코르도바 축구 리그 4회 (1975, 1976, 1977, 1978, 1979) 우승을 달성했다.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는 1977 나시오날 준우승을 기록했다.
4.2. 국가대표
호세 다니엘 발렌시아는 아르헨티나 청소년 대표팀 소속으로 1975년 툴롱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는 1978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여 우승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