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마리아 에체바리아
1. 개요
호세 마리아 에체바리아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1933년 게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38년 아틀레틱 빌바오에 합류했다. 그는 1939-40 시즌부터 빌바오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1940-41 시즌에는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했다. 1942-43 시즌에는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그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1경기에 출전했다. 부상과 결핵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했으며, 이후 사업가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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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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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프라스트
마누엘 프라스트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서 레알 마드리드 CF의 초창기 주요 선수였으며, 은퇴 후에는 중앙 지역 연맹의 심판 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아 스페인 축구 심판 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
라리가의 축구 선수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는 CSKA 소피아와 FC 바르셀로나에서 맹활약하며 유러피언 골든 부츠, 라리가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994년 FIFA 월드컵 득점왕, 발롱도르를 수상한 불가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이자 논란이 많은 감독이다. -
라리가의 축구 선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게초 출신 -
호세 마리아 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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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초 출신 -
호세 마리아 예르모
호세 마리아 예르모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였다.
2.1. 아틀레틱 빌바오 시절
1938년, 그는 스페인 내전 이후 재건 중이던 아틀레틱 빌바오에 합류했다. 그는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SEU 데 게초 친선 대회에 참가했는데, 이 대회에는 39개 구단 선수들이 참여했다.
빌바오 초기에 그는 아구스틴 가인사, 마칼라와 함께 젊은 빌바오 선수단을 이끌었다. 1939-40 시즌은 내전 이후 첫 시즌이었는데, 그는 팀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당시 빌바오는 1936년까지 활약했던 전설적인 골키퍼 그레고리오 블라스코가 멕시코로 떠나면서 새로운 주전 골키퍼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1940년 2월 18일, 그는 아틀레티코 아비아시온을 상대로 라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1940-41 시즌에는 18경기에서 단 21골만 실점하며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했고, 팀은 리그 2위를 차지했다. 리그와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우승을 차지한 1942-43 시즌 초반, 9월 6일 오비에도와의 친선 경기에서 상대 선수 안토니오 차스와 충돌하여 갈비뼈 골절 부상을 당했다. 10월에 복귀했지만, 11월 1일 결핵 진단을 받으면서 결국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했다. 그는 이후 마드리드의 타블라다 요양병원에서 7개월, 미란다 데 에브로의 베고냐 성모 요양병원에서 3개월을 보냈다. 1946년에는 빌바오로 돌아와 산타 마리나 요양병원에서 10월까지 머물며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퇴원 후 사업가로 활동했지만, 선수 시절 앓았던 결핵 후유증으로 인해 주기적인 건강 검진이 필요했다.
1966년, 에체바리아는 45세의 나이로 레사 요양병원에서 심폐기관 정지로 사망했다.
4. 수상 내역
선수 시절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활약하며 라리가 우승과 코파 델 레이 우승을 경험했고, 개인적으로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