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스틴 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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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구스틴 가인사는 "피루"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19시즌 동안 활약하며 라리가 2회 우승, 코파 델 레이 7회 우승을 포함해 총 9번의 주요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33경기 출전하여 10골을 기록했으며, 1950년 FIFA 월드컵에서는 주장을 맡아 팀의 4위를 이끌었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아틀레틱 빌바오 감독을 역임했으며, 1995년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구스틴 가인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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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사 아틀레티코 빌바오
전체 이름Agustín Gaínza Vicandi
출생일1922년 5월 28일
출생지바사우리, 스페인
사망일1995년 1월 6일 (72세)
사망지바사우리, 스페인
신장1.72m
포지션공격수
선수 경력
유소년 클럽아틀레틱 빌바오
클럽1940–1959: 아틀레틱 빌바오 (380경기 119골)
국가대표1945–1955: 스페인 (33경기 10골)
감독 경력
감독1964–1965: 빌바오 아틀레틱
1965–1968: 아틀레틱 빌바오
스페인어 이름
이름Agustín Gaínza Vica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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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피루"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가인사는 현역 시절 전부를 아틀레틱 빌바오 선수로 보냈다. 비스카이아도 바사우리 출신인 그는 1939년에 에란디오를 상대로 비스카이아 선수권 대회 데뷔전을 치렀다.

가인사는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19시즌을 뛰며 380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해 119골을 기록했다. 라리가 2회,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7회, 코파 에바 두아르테 1회 우승을 포함하여, 총 9번의 주요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코파 델 레이 개인 최다 우승, 최다 결승전 출전, 단일 구단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47년 8강 2차전 셀타 비고와의 경기에서는 8골을 기록하여 단일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1958년 5월,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 FC와 헌정 경기를 가졌다. 1959년, 37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494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하여 당시 구단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다.

2.1. 유소년 시절

Piru스페인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가인사는 비스카이아 도 바사우리 출신으로, 1939년 1월 15일에 에란디오와의 비스카이아 선수권 대회 경기에서 16세 7개월 18일의 나이로 데뷔하여 득점까지 기록했다. 이는 도밍고 고메스-아세도에 이어 아틀레틱 빌바오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첫 경기를 치른 기록이었으며, 2009년에 이케르 무니아인이 7일 앞당기면서 기록이 깨졌다.

2.2. 아틀레틱 빌바오 (1940-1959)

가인사는 1940년 10월 13일, 에르쿨레스 CF와의 원정 경기에서 라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9시즌 동안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활약하며 380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해 119골을 기록했다. 그는 아틀레틱 빌바오 소속으로 라리가 2회 우승(1942-43, 1955-56),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7회 우승(1943, 1944, 1944-45, 1949-50, 1955, 1956, 1958), 코파 에바 두아르테 1회 우승(1950)을 포함하여 총 9번의 주요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1958년 5월, 가인사는 잉글랜드의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 FC와 헌정 경기를 치렀다. 1959년 3월, 세비야 FC와의 경기에서 36세 298일의 나이로 득점하여, 당시 구단 역사상 최연장 득점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2017년 12월 아리츠 아두리스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지 58년 동안 유지되었다.

가인사는 1947년 8강 2차전 셀타 비고와의 경기에서 8골을 기록하여, 대회 단일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

2.3. 감독 경력 (아틀레틱 빌바오, 1965-1969)

가인사는 1965년부터 1969년까지 아틀레틱 빌바오 감독을 맡았다. 1968-69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으며, 후임은 라파엘 이리온도였다. 이리온도는 1969년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에서 아틀레틱 빌바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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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틱 빌바오 감독 시절 성적
시즌리그 순위경기
1965-665위3014610
1966-677위3011910
1967-687위3011109
1968-69-6114

3. 국가대표팀 경력

가인사는 1945년 3월 11일 포르투갈과의 친선경기에서 스페인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33경기에 출전하여 10골을 기록했다. 1950년 FIFA 월드컵에서 스페인 주장을 맡아 선수단을 4위로 이끌었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는 2경기에 출전했고, 본선에서는 5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스페인은 2차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역대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유럽 예선에도 2경기에 출전했다.

4. 사생활

가인사의 형 미겔(1920-1986)도 축구 선수였다. 미겔은 수비수로 아틀레틱 빌바오와 바라칼도에서 활동했다. 아구스틴은 유년 시절에 축구에 관심이 없었으며, 미겔의 추천으로 축구를 시작했고, 청소년기에 아틀레틱 빌바오가 영입을 제의했을 때 선수 생활을 할지에 대해 고민했으나, 형이 설득하여 합류를 결정했다고 알려졌다.

1997년, 조각가 호세 마누엘 알베르디는 가인사의 흉상 두 점을 제작했다. 한 점은 그의 고향 바사우리에 설치되었고(지역 지지 단체 기부), 다른 한 점은 아틀레틱 빌바오의 레사마 훈련 시설에 설치되었다.

5. 최후

가인사는 1995년 1월 6일, 고향 바사우리에서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6. 수상 내역

가인사는 선수 시절과 감독 시절 모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선수로서는 아틀레틱 빌바오에서만 뛰며 라 리가 2회,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7회, 코파 에바 두아르테 1회 우승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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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서는 1969년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우승을 이끌었다.

6.1. 선수

"피루"(Piru)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가인사는 현역 시절 전부를 아틀레틱 빌바오 선수로 보냈다. 비스카이아 도 바사우리 출신인 그는 1939년 1월 15일에 에란디오에서 벌어진 비스카이아 선수권 대회 경기에서 신고식을 치르고 득점을 올렸는데, 당시 그는 16세 7개월 18일이었다. 그에 따라 그는 1914년의 도밍고 고메스-아세도에 이어 최연소 첫 경기 출전 2위를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2009년에 이케르 무니아인이 7일 앞당기면서 경신되었다. 그 다음 주에는 또다시 득점으로 같은 부문 기록을 올렸다.

가인사는 1940년 10월 13일, 0-1로 패한 에르쿨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라 리가 신고식을 치렀고, 그 후로 빌바오 소속으로 19시즌을 활약하면서 380번의 경기에 출전해 119골을 넣었다. 그는 산 마메스의 사자 군단 소속으로 활약하면서 9번의 주요 대회 우승을 거두었는데, 이 중 2번은 리그 우승이며 7번은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우승이었고, 비스카이아 선수권 대회와 수페르코파의 전신인 코파 에바 두아르테도 우승했다. 1958년 5월, 그는 잉글랜드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과 헌정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 경기의 결승골 득점자인 로니 앨런은 나중에 아틀레틱의 감독으로 취임했고, 구단 사이의 더 많은 친선 경기를 계획하기에 이르었다.

1958-59 시즌이 끝나고, 37세의 가인사는 494번의 공식 경기 출전 기록을 내고 은퇴를 선언하였는데, 당시 가인사는 구단 역사상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이었다. 그는 구단의 역대 최연소 득점 목록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구단 역사상 최연장 득점 기록도 세우고 있는데, 이 기록을 1959년 3월 세비야와의 경기에서 기록할 당시 그의 나이는 36세 298일이었다. 그의 기록은 58년 동안 이어졌는데, 이 기록은 2017년 12월에 아리츠 아두리스가 경신했다.

가인사는 코파 델 레이 개인 최다 우승 기록도 세웠다. 그는 7번 우승을 거두었고, 9번의 결승전에 출전했으며, 99경기에 출전해 단일 구단으로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1차전에서 0-1로 패하고 12-1로 이긴 셀타 비고와의 1947년 8강 2차전 경기에서는 단일 경기 최다 득점 기록도 세웠다.

6.2. 감독

*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