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카와 오키쓰라
1. 개요
호소카와 오키쓰라는 일본 에도 시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에 걸쳐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1832년 히타치 야타베 번 번주 호소카와 오키타테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852년 아버지의 은퇴로 번주직을 계승했다. 야타베 번주 재임 기간 동안 흉작과 백성들의 봉기로 번 재정이 어려움을 겪었다. 1868년 교토 경호를 맡아 신정부에 협력했고, 판적봉환 이후 야타베 번 지번사, 모기 번 지사를 역임했다. 폐번치현으로 면직된 후, 금록공채를 받았으며 1884년 자작 작위를 받았다. 1890년부터 1904년까지 귀족원 의원을 지냈으며, 1907년 도쿄에서 사망했다.
| 각국어 표기 | 호소카와 오키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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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출생일 | 1833년 1월 28일 (천보 3년 12월 8일) |
|---|---|
| 사망일 | 1907년 9월 11일 (메이지 40년 9월 11일) |
| 출신지 | 불명 |
| 전직 | 히타치국야타베번 번주 |
| 작위 및 훈장 | 정3위, 자작 |
| 배우자 | 시즈 (호소카와 유키카타 딸) |
| 자녀 | 오키쓰구(장남), 리(장녀), 시즈(차녀), 호리 치카아쓰(차남), 가메이 간이치(삼남), 다케마로(사남) |
| 직책 | 귀족원 의원 |
|---|---|
| 임명일 | 1897년 7월 10일 |
| 퇴임일 | 1904년 7월 10일 |
| 직책2 | 야타베번(모테기번) 지사 |
| 임명일2 | 1869년 7월 30일 (메이지 2년 6월 22일) |
| 퇴임일2 | 1871년 8월 29일 (메이지 4년 7월 14일) |
| 군주 | 메이지 천황 |
| 군주 직책 | 천황 |
| 당주 | 호소카와 오키쓰라 (9대) |
|---|---|
| 임기 | 1852년 ~ 1907년 |
| 후임 | 호소카와 오키쓰구 |
| 번주 (야타베 호소카와가) | 야타베번 (9대) |
|---|---|
| 임기 | 1852년 ~ 1870년 |
| 후임 | 번청을 모테기로 이전 |
| 번주 (야타베 호소카와가) | 모테기번 |
| 임기 | 1870년 ~ 1871년 |
| 전임 | (호소카와 오키모토) |
| 후임 | 폐번치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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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타베번주 -
호소카와 오키모토
호소카와 오키모토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무장이자 다이묘로, 호소카와 후지타카의 차남으로 태어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의 공로로 야타베 번의 다이묘가 되었다. -
야타베번주 -
모테기번
모테기번은 호소카와 오키모토가 1615년에 세운 에도 시대의 번으로, 오사카 전투 공헌으로 영지가 추가되었고 야타베 번으로 존속하다가 메이지 시대에 다시 모테기로 이전 후 1871년 폐번치현으로 폐지, 잠시 모테기현으로 설치되었다가 우쓰노미야현에 통합되었다. -
야타베 호소카와가 -
호소카와 오키모토
호소카와 오키모토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무장이자 다이묘로, 호소카와 후지타카의 차남으로 태어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의 공로로 야타베 번의 다이묘가 되었다. -
야타베 호소카와가 -
모테기번
모테기번은 호소카와 오키모토가 1615년에 세운 에도 시대의 번으로, 오사카 전투 공헌으로 영지가 추가되었고 야타베 번으로 존속하다가 메이지 시대에 다시 모테기로 이전 후 1871년 폐번치현으로 폐지, 잠시 모테기현으로 설치되었다가 우쓰노미야현에 통합되었다. -
지번사 -
부번현 삼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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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번사 -
판적봉환
판적봉환은 1868년부터 1871년까지 일본에서 시행된 제도로, 봉건적 막번 체제를 개혁하고 중앙집권화를 강화하기 위해 각 번의 토지와 백성을 천황에게 반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2. 생애
덴포 3년 (1832년) 12월, 히타치 야타베 번 8대 번주 호소카와 오키타테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에이 5년 (1852년) 9월 6일, 아버지의 은거로 가독을 이어받아 종5위하・겐바노카미에 서위, 임관되었다. 번정에서는 흉작이 이어져 백성들의 봉기도 빈번하게 일어나 번 재정이 어려웠다.
게이오 4년 (1868년) 3월, 가신 119명을 이끌고 상경하여 교토 경호를 맡아 신정부에 공순의 뜻을 보였다. 메이지 2년 (1869년) 6월 22일 판적봉환으로 야타베 번지사가 되었다. 메이지 3년 (1870년) 12월, 번청을 모기로 옮겨 메이지 4년 (1871년) 2월 8일 모기번으로 개명하고, 모기 번지사에 임명되었다. 바로 뒤인 7월 14일, 폐번치현에 의해 지번사에서 면직되었다.
판적봉환 때 정해진 가록은 현미 385석이었다. 1876년 금록공채 증서 발행 조례에 따라 가록과 교환으로 지급된 금록공채 액수는 1만 4203엔 67전 3리였다.
메이지 17년 (1884년) 7월 7일 화족령 시행으로 화족이 오작제로 되면서 다음 날인 7월 8일 오키쓰라는 자작에 서임되었다. 메이지 23년 (1890년) 7월 10일, 귀족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메이지 37년 (1904년) 7월 10일까지 2기 역임했다. 메이지 40년 (1907년) 9월 11일, 도쿄부아사쿠사 이마도에서 사망했다. 향년 76세. 묘소는 도쿄도네리마구사쿠라다이 고토쿠지이다.
2.1. 초기 생애 (1832년 ~ 1852년)
1832년 12월, 히타치 야타베 번 8대 번주 호소카와 오키타테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52년 9월 6일, 아버지의 은거로 가독을 이어받아 종5위하・겐바노카미에 서위, 임관되었다.
2.2. 야타베 번주 시대 (1852년 ~ 1870년)
가에이 5년 (1852년) 9월 6일, 아버지 호소카와 오키타테의 은거로 가독을 이어받아 야타베 번谷田部藩일본어의 번주가 되었고, 종5위하 겐바노카미에 서위, 임관되었다. 번정에서는 흉작이 이어졌고 백성들의 봉기도 빈번하게 일어나 번 재정이 어려웠다.
게이오 4년 (1868년) 3월, 가신 119명을 이끌고 상경하여 교토 경호를 맡아 신정부에 공순(恭順)의 뜻을 보였다.
2.3. 모기 번지사 시대 (1870년 ~ 1871년)
1869년 6월 22일, 판적봉환으로 야타베 번지사가 되었다. 1870년 12월, 번청을 모기로 옮겼으며, 1871년 2월 8일에는 모기번으로 개명하여 모기 번지사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7월 14일, 폐번치현으로 인해 지번사에서 면직되었다.
2.4. 귀족원 의원 및 사망 (1871년 ~ 1907년)
1869년 6월 22일, 판적봉환으로 야타베 번지사가 되었다. 1870년 12월, 번청을 모기로 옮겨 1871년 2월 8일에 모기번으로 개명하고, 모기번 지사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7월 14일, 폐번치현에 의해 지번사에서 면직되었다.
판적봉환 때 정해진 가록은 현미 385석이었다. 1876년 금록공채 증서 발행 조례에 따라 가록과 교환으로 지급된 금록공채 액수는 1만 4203엔 67전 3리였다.
1884년 7월 7일 화족령 시행으로 화족이 오작제로 되면서 다음 날 8일, 구 소번 지사로서 오키쓰라가 자작에 서임되었다. 1890년 7월 10일, 귀족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1904년 7월 10일까지 2기 역임했다. 1907년 9월 11일, 도쿄부아사쿠사 이마도에서 사망했다. 향년 76세. 묘소는 도쿄도네리마구사쿠라다이 고토쿠지이다.
3. 가족
| 관계 | 이름 |
|---|---|
| 아버지 | 호소카와 오키타테 |
| 어머니 | 호소카와 타쿠 (호소카와 오키조의 딸, 호소카와 오키토쿠의 양녀) |
| 처 | 노부, 호소카와 이네코 (호소카와 유키요시의 딸) |
| 장남 | 호소카와 오키쓰구 |
| 장녀 | 리코 (오카 타다아키의 정실) |
| 차녀 | 시즈 (마쓰이 마사유키의 부인) |
| 차남 | 호리 치카아쓰 (호리 치카요시의 양자) |
| 삼남 | 가메이 간이치 |
| 사남 | 호소카와 겐마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