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다다스케
1. 개요
혼다 다다스케는 1599년 혼다 야스토시의 차남으로 태어난 인물이다. 오사카 전투에 참전하고, 1616년 미카와국 헤키카이군에 1000석을 하사받아 니시바타 촌에 진야를 세웠다. 도쿠가와 이에미쓰 시대에 쇼인반가시라로 승진하여 8000석의 하타모토가 되었으며, 도쿠가와 이에쓰나 시대에는 루스이역을 역임했다. 1672년 장남에게 가독을 양도하고 은거하여, 1682년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씨명 | 혼다 다다스케 |
|---|---|
| 시대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전기 |
| 출생 | 게이초 4년 (1599년) |
| 사망 | 덴나 2년 2월 26일 (1682년4월 3일) |
| 이명 | 기요사부로 (유명), 슈리 |
| 묘소 | 도쿄도미나토구도라노몬 3정목 (니시쿠보)의 텐토쿠지탑두의 와고인 지바현소데가우라시 다이슈쿠의 조렌지 |
| 관위 | 종5위하, 미마사카 수 |
| 막부 | 에도 막부하타모토(쇼인반가시라 → 루스이 야쿠) |
| 주군 | 도쿠가와 히데타다 → 도쿠가와 이에미쓰 → 도쿠가와 이에쓰나 |
| 번 | 미카와니시바타 령 영주 (하타모토・8000석) |
| 씨족 | 혼다 히코하치로 가 |
| 부모 | 부: 혼다 야스토시, 모: 스가누마 사다미쓰의 딸 |
| 형제 | 혼다 도시쓰구 혼다 다다스케 혼다 도시마사 혼다 도시유키 혼다 가케쓰구 여동생 (마에다 도시타카 실) |
| 배우자 | 정실: 이나가키 시게쓰나의 딸 |
| 자녀 | 혼다 다다마사 (장남) 나카니시 다다요시 (차남) 혼다 다다키요 (삼남) 딸 (곤도 요시마사 실) 딸 (오쿠보 다다토모 실, 후에 이혼) 딸 (홋타 가즈테루 실) 딸 (다케다 노부사다 실) 딸 (사쿠마 가쓰토요 실) |
| 양녀 | 오쿠보 다다토모의 딸( 요코야마 모토토모 실) |
| 후임자 | 혼다 다다마사 |
|---|---|
| 직책 | 니시바타 령 영주 (혼다 히코하치로 가) |
| 임기 | 1616년 ~ 1672년 |
| 대수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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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막부 루스이 -
나이토 마사카쓰 (1643년)
나이토 마사카쓰는 에도 시대 무사로 나이토 마사스에의 장남이자 나이토 마사쓰구의 데릴사위였으며, 도쿠가와 이에쓰나를 섬겨 고쇼, 쇼인반, 루스이 등을 역임하고 오사카 정번으로 임명되어 무사시국 히키군 아카누마 촌에 거주하였으나 이듬해 사망하였다. -
에도 막부 루스이 -
사카이 다다타카 (1648년)
사카이 다다타카는 에도 시대 마에바시 번의 번주로,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를 알현하며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여러 직책을 역임했고, 번주로서는 번정 개혁에 힘썼으며 막부 정치 개혁을 제언하기도 했다. -
히코하치로 혼다가 -
간베번
간베번은 이세국 간베(현재의 미에현 스즈카시)에 위치했던 번으로, 에도 시대 초기에는 이치야나기 씨가, 이후에는 이시카와 씨와 혼다 씨가 다스렸으며, 특히 혼다 씨는 번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다. -
히코하치로 혼다가 -
제제번
제제 번은 에도 시대 교토로 가는 길목을 통제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했으며, 여러 씨족이 번주를 역임하다 혼다 씨의 지배가 확립되어 번교 운영과 특산품 육성을 통해 발전했지만 폐번치현으로 시가현에 편입되었다. -
1599년 출생 -
모진
모진은 명말청초의 부유한 서적 수집가이자 출판가로, 급고각과 목경루를 통해 다양한 서적을 출판하고 희귀본 '모초'로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출판 활동은 사가 출판의 최고봉으로 평가받았다. -
1599년 출생 -
안토니 반 다이크
안토니 반 다이크는 1599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1641년 런던에서 사망한 플랑드르 출신 화가로, 찰스 1세의 궁정 화가로 활동하며 영국 초상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내용 없음)
2.1. 출생과 가계
게이초 4년(1599년), 시모사국 시모노고에서 혼다 야스토시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야스토시는 도쿠가와 사천왕의 필두인 사카이 타다츠구의 차남이므로, 다다스케는 타다츠구의 손자에 해당한다. 또한, 다다스케와 아버지 야스토시의 형인 사카이 이에쓰구는 백부와 조카 관계에 해당한다.
2.2. 도쿠가와 히데타다 시대
오사카 전투 양쪽에 아버지와 함께 참가했다. 게이초 19년(1614년)의 오사카 겨울 전투에서는 아버지와 함께 오미 제제성을 지켰다. 다음 해의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는 아버지, 형과 함께 싸움에 참여하여 무공을 세웠다.
그 전공으로, 겐나 2년(1616년)에 미카와국 헤키카이군에 1000석을 하사받아, 니시바타 촌 (현 헤키난시)에 진야를 세웠다. 이후 가즈사국·시모사국 내에 2500석, 헤키카이군 1500석이 가증되었다.
2.3. 도쿠가와 이에미쓰 시대
간에이 원년(1624년)에는 시모사국 가토리군에서 500석이 가증되었다. 간에이 5년(1628년)에는 가즈사국, 시모사국 내에서 2000석이 추가로 늘어났다. 간에이 7년(1630년)에는 미카와국 헤키카이군 내 1500석이 더해졌다.
간에이 9년(1632년)에는 쇼인반가시라로 승진했다. 다음 해인 간에이 10년(1633년)에는 아와국, 가즈사국 내에서 3000석을 하사받아, 총 8000석의 영지를 가진 상급 하타모토가 되었다. 간에이 15년(1638년)에는 도쿠가와 막부 아래에서 처음으로 검지를 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