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진
1. 개요
모진은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에 활동한 서적 수집가이자 출판업자이다. 그는 1599년에 태어나 전겸익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과거에 낙방한 후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모진은 8만 4천여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급고각을 설립하여 600여 종의 서적을 간행했으며, 특히 희귀본을 필사하는 것을 즐겨 '모초'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출판 활동은 명대 출판사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받으며, 아들 모의 또한 서적 수집 및 간행에 기여했다.
| 이름 | 모진 (毛晉) |
|---|---|
| 자 | 자구(子晋), 희황(希黄) |
| 호 | 급고각주인(汲古閣主人) |
| 출생 | 명나라 만력 27년 (1599년) |
| 사망 | 청나라 순치 8년 (1651년) |
| 국적 | 중국 명나라 |
| 직업 | 서적 수집가, 출판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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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 시대 | 명나라 말기 ~ 청나라 초기 |
|---|---|
| 주요 활동 | 고서적 수집 및 출판 급고각(汲古閣) 운영 |
| 특징 | 방대한 장서 수집, 뛰어난 서적 출판 능력, 당시 서적 문화에 큰 영향 |
| 편집 서적 |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사마천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당서(唐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서(梁書)》 《진서(陳書)》 《위서(魏書)》 《북제서(北齊書)》 《주서(周書)》 《수서(隋書)》 《남사(南史)》 《북사(北史)》 《원사(元史)》 《자치통감(資治通鑑)》 《전당시(全唐詩)》 《원곡선백종(元曲選百種)》 《육십가소본(六十家小説)》 《진본십종곡(眞本十種曲)》 《맥산서옥십종(脉山书屋十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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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인물 | 모이도 (毛扆, 아들) 모선가 (毛先舒, 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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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중국역대인명사전 청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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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사람 -
호유용
호유용은 명나라 초 좌승상으로 권력을 남용하다 홍무제에 의해 역모죄로 처형되었고, 이 사건으로 재상 제도가 폐지되고 황제 중심의 독재 체제가 강화되었으며, 최근에는 사건 조작 가능성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
명나라 사람 -
유대유
유대유는 명나라의 무장으로 왜구 토벌에 공을 세웠으며, 소림권을 발전시키고 『검경』을 저술한 무예가였고,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을 지녔다. -
1659년 사망 -
가타쿠라 시게나가
가타쿠라 시게나가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다테 가문의 가신이었으며, 오사카 전투에서 공을 세워 명성을 얻었고, 사나다 노부시게 유족을 보호하며 사나다 가문과 인연을 맺었다. -
1659년 사망 -
이이 나오타카
이이 나오타카는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자 다이묘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으로서 오사카 전투 등에서 활약하고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임종 시 이에미쓰의 후견인으로 임명되어 막부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며 히코네번 이이 가문의 번영을 이끌었다. -
1599년 출생 -
안토니 반 다이크
안토니 반 다이크는 1599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1641년 런던에서 사망한 플랑드르 출신 화가로, 찰스 1세의 궁정 화가로 활동하며 영국 초상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599년 출생 -
교황 알렉산데르 7세
알렉산데르 7세는 1655년부터 1667년까지 재위한 교황으로, 로마 도시 계획과 건축 사업을 추진하고 중국 전통 의례를 허용했으며 얀센주의를 비판하며 금서 목록을 발행했다.
2. 생애
모진은 1599년 정월 5일에 태어났다. 전겸익을 스승으로 배웠고, 13세에 제생(諸生)이 되었으며 26세에 박사제자원(博士弟子员)으로 선발되었으나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다. 이후 벼슬하지 않고 수재(秀才) 신분으로 학문에 전념했다.
상숙 모씨는 상숙현의 대지주 집안으로, 송(宋), 원(元) 시대의 각본으로 우수한 선본 8만 4천여 권에 달하는 책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모진은 급고각(汲古阁)과 목경루(目耕楼)를 지어 이를 소장하였다.
같은 고향 출신 전겸익에게서 배웠고, 명나라 말기에 여러 차례 과거 시험을 치렀으나 낙방하여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모진은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값을 치르고 옛 책들을 구입하여 급고각(汲古閣)과 목경루(目耕樓)에 소장하고, 스스로 교감하여 출판했다.
전겸익 또한 서적 수집가로 알려졌지만, 그의 강운루(絳雲樓)가 1650년 화재로 소실되었기 때문에, 청나라 초기에 모진이 최대의 서적 수집가가 되었다.
아들로 모양(毛襄), 모포(毛褒), 모곤(毛袞), 모표(毛表), 모의(毛扆) 다섯 명과 딸 네 명이 있었다. 특히 모의(毛扆)는 서적 수집가이자 교감가로 유명하다. 『설문해자』 급고각본은 모진과 모의에 의해 출판되었다.
2.1. 출판 활동
모진은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 초기까지 약 40년간 고서를 출판하여 널리 보급하는 데 힘썼다. 이 기간 동안 600여 종의 책을 발간했는데, 당시 세상에서는 '모각본(毛閣本)' 또는 '급고각본(汲古閣本)'으로 불렸다. 특히 희귀한 책을 필사하는 것을 좋아하여, 이렇게 필사된 책은 후세에 '모초(毛钞)'라 불렸다.
모진은 《십삼경》(十三经), 《십칠사》(十七史), 《진체비서》(津逮秘书), 《육십종곡》(六十种曲) 등의 책을 교감하고 판각하여 널리 유포했다. 이는 역대 중국의 사설 출판업자 가운데서는 으뜸가는 것이었다.
그의 출판 활동은 당시의 관각(官刻)이나 서방(書坊)을 능가하는 것으로 명대 출판사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모진은 평생에 걸쳐 책을 찍어내는 일에 힘썼으며, 그가 판각해 펴낸 《십삼경》, 《십칠사》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너무 많은 책을 다루었다. 너무 바빠서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몰랐다. 낮에 언제 외출했는지, 밤에 언제 문을 닫았는지 몰랐다. 이제 머리는 온통 하얗게 세었고 눈은 흐릿해졌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좋은 책을 읽으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어긋날까 봐 그만둘 수 없었다."
만년에 모진은 그의 아들 모의(毛扆)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 "나는 검소하게 살면서 책 출판을 최우선으로 삼아 쉬지 않고 일했다. 이제 10만 장이 넘는 조판을 쌓았으니,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모진의 저서로는 《모시육소광요(毛時陸疎廣要)》, 《소미지림(蘇米志林)》, 《해우고금문원(海虞古今文苑)》, 《모시명물고(毛詩名物考)》, 《명시기사(明時紀事)》, 《사원영화(詞苑英華)》 등이 있다.
모진이 출판한 주요 서적은 다음과 같다.
| 서적명 | 비고 |
|---|---|
| 『십삼경주소(十三経注疏)』 | 급고각(汲古閣)본 |
| 『십칠사(十七史)』 | 급고각(汲古閣)본 |
| 『송육십명가사(宋六十名家詞)』 | |
| 『육십종곡』 | |
| 『진체비서』 |
2.2. 저술 활동
모진은 평생 벼슬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며, 자신이 소장한 고서를 바탕으로 다양한 서적을 교감하고 판각하여 널리 유포하는 데 힘썼다. 특히 송(宋), 원(元) 시대의 희귀본을 필사하고 출판하여 '모초(毛钞)'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의 출판 활동은 명나라 말기인 1628년부터 청나라 초기까지 약 40년간 이어졌으며, 이 기간 동안 600여 종의 책을 발간했다. 이 책들은 '모각본(毛閣本)' 또는 '급고각본(汲古閣本)'으로 불리며, 십삼경(十三經), 십칠사(十七史), 진체비서(津逮秘書), 육십종곡(六十種曲)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했다.
모진의 출판물은 당시 관각(官刻)이나 서방(書坊)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평가받으며, 명대 출판사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책의 교정 및 출판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책의 뒷면에는 자신의 노력과 열정을 담은 글귀를 남기기도 했다.
모진의 주요 저술로는 《모시육소광요(毛時陸疎廣要)》, 《소미지림(蘇米志林)》, 《해우고금문원(海虞古今文苑)》, 《모시명물고(毛詩名物考)》, 《명시기사(明時紀事)》, 《사원영화(詞苑英華)》 등이 있다. 또한, 그는 200권이 넘는 고전과 역사서를 교정하고 조판하였으며, 책마다 발문을 써서 『은호제발(隱湖題跋)』이라는 책으로 엮기도 했다.
그가 판각하여 펴낸 주요 서적은 다음과 같다.
2.3. 말년
모진은 만년에 아들 모의(毛扆)에게 "내가 먹고 입는 것도 아껴가면서 정신없이 서적 출판에 온 힘을 쏟아 지금은 서판이 10만 판에 달하게 되었다. 이것도 적다고야 할 수 없겠지만, 내 생각에 이것도 전해지는 서적들 중에서 보자면 아직 10분에 1도 미치지 못한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모진은 일생을 책 인쇄에 바쳤다. 『십삼경』과 『십칠사』의 인쇄를 완료한 후 그는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너무 많은 책을 다루었다. 너무 바빠서 계절이 바뀌는 것도 몰랐다. 낮에 언제 외출했는지, 밤에 언제 문을 닫았는지 몰랐다. 이제 머리는 온통 하얗게 세었고 눈은 흐릿해졌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좋은 책을 읽으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어긋날까 봐 그만둘 수 없었다."라고 술회했다.
3. 가족
모진은 아들로 모양(毛襄), 모포(毛褒), 모곤(毛袞), 모표(毛表), 모의(毛扆) 다섯 명과 딸 네 명을 두었다. 막내아들 모의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책을 찍어내는 일을 했다. 모의는 서적 수집가이자 교감가로 유명하다. 『설문해자』 급고각본은 모진과 모의에 의해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