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사천왕
1. 개요
도쿠가와 사천왕은 에도 시대에 아라이 하쿠세키의 저서에서 처음 등장한 명칭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보좌한 네 명의 가신을 지칭한다. 이들은 혼다 다다카쓰,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이이 나오마사, 사카이 다다쓰구이며, 불교의 사천왕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들은 도쿠가와 가문의 간토 지방 이봉과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활약하며 막부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도쿠가와 사천왕 외에도 도쿠가와 가문을 섬긴 무장들을 기리는 도쿠가와 16신장, 24장군, 28장군 등의 명칭이 존재하며, 이들을 소재로 한 소설 작품도 있다.
| 명칭 | 도쿠가와 사천왕 |
|---|---|
| 일본어 표기 | 徳川四天王 (도쿠가와 시텐노) |
| 이이 나오마사 | |
| 혼다 타다카쓰 | |
|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 |
| 사카이 다다쓰구 |
| 역할 | 도쿠가와 가문을 섬긴 네 명의 뛰어난 무장 |
|---|---|
| 특징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핵심적인 가신이자 뛰어난 무용과 지략을 겸비함 |
| 평가 | 도쿠가와 막부 창립에 크게 기여, 이에야스의 천하 통일에 공헌 |
-
미카와국 -
마쓰다이라씨
마쓰다이라씨는 기원이 불분명하나 세이와 겐지 닛타씨의 후예로 여겨지기도 하고 가모씨나 스즈키씨의 일족일 가능성도 있으며 미카와국 유래설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의 무가로, 14세기경 미카와 마쓰다이라 마을에 세력을 확립한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배출하고 에도 시대까지 이어졌다. -
미카와국 -
니시오시
아이치현 남부 미카와만 북쪽 해안에 위치한 니시오시는 야하기 강 동쪽 기슭의 미카와 지역에서 중요한 도시로, 도요하시, 오카자키와 함께 미카와 삼도로 불리며, 특히 니시오차로 유명한 일본 최대 덖음차 생산지이자 니시오성 등의 관광 명소를 갖춘 도시로, 2011년 하즈군 3정 편입으로 현재 행정구역이 되었다. -
센고쿠 무장 -
오다 나가마스
오다 나가마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센노 리큐에게 다도를 배워 유라쿠류를 창시한 다인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호 유라쿠는 도쿄도 유라쿠초 지명의 유래 설이 있다. -
센고쿠 무장 -
사나다 노부시게
-
도쿠가와 이에야스 -
반쇼지
반쇼지는 오다 노부히데가 1540년에 창건한 나고야 소재 사찰로, 나고야성 축조 이후 이전, 오와리 도쿠가와가의 주인사 역할, 대공습 후 재건, 조동종 관계 폐지 후 단립사찰, 부동산 소유 및 타이틀전 개최, 오다 노부나가 및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관련성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
오다와라 정벌
오다와라 정벌은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호조 우지마사의 교토 방문 거부를 계기로 간토 지방의 호조씨를 정벌한 전투로, 도요토미군의 압도적인 병력과 포위 작전으로 호조씨의 여러 성이 함락되고 호조씨 영토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할양되어 일본 통일의 전환점이 되었다.
2. 명칭의 유래와 변천
'도쿠가와 사천왕'이라는 명칭은 센고쿠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에도 시대 아라이 하쿠세키의 저서 『한칸푸』에서 처음 등장했다. 1586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혼다 다다카쓰,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이이 나오마사를 교토에 보냈는데, 이들은 "도쿠가와 삼걸"로 불렸다. 이후 사카이 다다쓰구가 합류하면서 '도쿠가와 사천왕'이라는 명칭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894년 프레데릭 빅터 디킨스는 영어로 센고쿠 시대에 "도쿠가와 사천왕"의 존재를 기록했지만, 이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메이지 시대 중기에는 일본뿐 아니라 서양에도 알려질 정도로 유명해졌다.
2.1. 도쿠가와 16신장, 24장군, 28장군
도쿠가와 16신장(도쿠가와 주로쿠신쇼진)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긴 16명의 무장을 가리키는 말로, 닛코 도쇼구 신사에 봉안되어 있다. 이들은 사천왕 외에도 다음 인물들을 포함한다.
도쿠가와 16신장은 불교의 12신장과 사천왕을 합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인격 숭배의 중심인물로 연결하려는 종교적, 문화적 측면을 담고 있다.
도쿠가와 24장군(도쿠가와 니주시쇼진)은 16신장에 8명을 추가한 명칭이다.
| 인물 | 출생년도 | 사망년도 |
|---|---|---|
| 오스가 야스타카 | 1527년 | 1589년 |
| 이타쿠라 가쓰시게 | 1545년 | 1624년 |
| 도다 다다쓰구 | 1531년 | 1597년 |
| 미즈노 다다시게 | 1541년 | 1600년 |
| 아쓰미 가쓰키치 | 1557년 | 1616년 |
| 안도 나오쓰구 | 1555년 | 1635년 |
| 사카이 시게타다 | 1549년 | 1617년 |
| 마쓰다이라 사다카쓰 | 1560년 | 1624년 |
| 혼다 도시마사 | ? | ? |
도쿠가와 28장군(도쿠가와 니주하치신쇼진)은 쓰키오카 요시토시의 그림에 묘사된, 16신장에 12명을 추가한 명칭이다.
| 인물 | 출생년도 | 사망년도 |
|---|---|---|
| 오쿠다이라 노부마사 | 1555년 | 1615년 |
| 사카이 마사치카 | 1521년 | 1576년 |
| 이나 다다쓰구 | 1550년 | 1610년 |
| 혼다 다다토시 | ? | 1564년 |
| 오카베 나카모리 | 1568년 | 1632년 |
| 오쿠보 다다타카 | 1560년 | 1639년 |
| 스기누마 사다미츠 | 1542년 | 1604년 |
| 나이토 이에나가 | 1546년 | 1600년 |
| 나이토 노부나리 | 1545년 | 1612년 |
| 혼다 야스타카 | ? | ? |
| 마쓰다이라 고레타다 | 1537년 | 1575년 |
| 미즈노 가쓰나리 | 1564년 | 1651년 |
혼다 다다카쓰,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이이 나오마사 3명은 1590년 도쿠가와 씨의 간토 이봉부터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까지 도쿠가와 가문과 세키가하라 전투에 관련된 다이묘(영주) 공작 및 전후 처리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 막부의 기초를 다지는 데 공헌했다. 이들을 특별히 도쿠가와 삼인방 또는 도쿠가와 삼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역사학자 나카무라 타츠오는 1586년 9월, 도쿠가와 이에야스 대신 교토에 간 3명을 "도쿠가와 삼걸"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말한다. 그 후, 혼다, 사카키바라, 이이 3명은 다음 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상경에 동행하여 모두 작위를 받았고, 여기에 사카이 다다쓰구를 더한 4명의 "도쿠가와 사천왕"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1894년 프레데릭 빅터 디킨스는 저서에서 이이, 혼다, 사카키바라, 사카이 4씨를 불교의 사천왕에 빗대어 언급하며, 메이지 시대 중기에는 일본뿐 아니라 영국에도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음을 보여준다.
3. 도쿠가와 사천왕
도쿠가와 사천왕(일본어: 徳川四天王)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긴 4명의 유력 무장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에도 막부 성립에 큰 공헌을 하였다.
--
--
--
* 사카이 다다쓰구
* 혼다 다다카쓰
*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 이이 나오마사
이 별칭은 센고쿠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에도 시대 아라이 하쿠세키의 저서인 『한칸푸』에서 처음 등장했다. 1586년 "사카키바라 씨족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이에야스는 혼다 다다카쓰,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이이 나오마사를 대표로 교토에 보냈고, 그들은 "도쿠가와 삼걸" (도쿠가와의 세 명의 위대한 귀족)로 여겨졌다. 다음 달, 사카이 다다쓰구가 합류하여 이에야스를 따라 교토로 개인 여행을 갔고, 그들 넷은 "유명해졌다".
1894년 프레데릭 디킨스는 영어로 센고쿠 시대에 "도쿠가와 사천왕"의 존재를 기록했지만, 이들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2008년 4월 2일, NHK의 《그 때 역사가 움직였다.》에서는 도쿠가와 사천왕을 테마로 한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3.1. 사카이 다다쓰구 (1527년 ~ 1596년)
--
(1527년 - 1596년)
이에야스를 미카와 국 시절부터 섬긴 도쿠가와 가문의 오랜 가신이다. 사천왕 중 가장 연장자였으며, 주로 내정과 외교 분야에서 활약했다.
3.2. 혼다 다다카쓰 (1548년 ~ 1610년)
(1548년 ~ 1610년)
혼다 다다카쓰는 용맹한 무장으로, 수많은 전투에서 뛰어난 무공을 세워 '일본 제일의 강자'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그 용맹함이 널리 알려졌다. 1586년 사카키바라 씨족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혼다 다다카쓰,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이이 나오마사를 대표로 교토에 보냈는데, 그들은 도쿠가와 삼걸(도쿠가와의 세 명의 위대한 귀족)로 여겨졌다.
3.3.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1548년 ~ 1606년)
--
혼다 다다카쓰와 함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양대 가신으로 불렸으며,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정치적 식견을 겸비했다. 1586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혼다 다다카쓰,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이이 나오마사를 대표로 교토에 보냈는데, 그들은 "도쿠가와 삼걸"(도쿠가와의 세 명의 위대한 귀족)로 여겨졌다.
3.4. 이이 나오마사 (1561년 ~ 1602년)
--
이이 나오마사는 도쿠가와 사천왕 중 가장 젊은 나이에 등용되었지만, 뛰어난 능력으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붉은 갑옷을 입고 용맹하게 싸워 '이이의 붉은 도깨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의 외교 관계를 회복하는 데 힘썼으며, 조선은 그의 공을 인정하여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그를 칭송하였다.
4. 정치적 측면
159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간토 지방으로 이봉된 이후 도쿠가와 사천왕은 모두 1만 석 이상의 다이묘가 되어 도쿠가와 가문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이 나오마사는 가문 최고인 12만 석을 받아 다카사키 번을 건립했고, 사카키바라 야스마사는 다테바야시 번 10만 석, 혼다 다다카쓰는 오타키 번 10만 석을 받았다. 그러나 1588년에 은퇴한 사카이 다다쓰구는 그의 후계자인 사카이 이에쓰구가 우스이 번 3만 7천 석을 받는 데 그쳐 다른 사천왕과 격차가 있었다.
이러한 불균형에 대해 고쿠가쿠인 대학 교수 네기시 시게오는 이에야스가 간토 전봉 시 가신단 통제 강화책의 일환으로 신참 무장을 발탁하는 방침이 있었고, 새롭게 두각을 나타낸 혼다, 사카키바라, 이이 3명이 가문에서 중요하게 되었으며, 미카와에서 옛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사카이는 낮은 녹고에 만족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후 혼다, 사카키바라, 이이 3명(연구자에 따라서는 토리이 모토타다, 오쿠보 타다요를 더한 5명)의 영지 배치와 석고를 결정한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정권)라는 유력설이 등장하면서, 이에야스에 의한 가신단 통제만으로 논의가 성립되지 않게 되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이에야스는 후다이 다이묘 가신들에게 불균형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케다 테루마사와 같은 도자마 다이묘에게 야스마사, 다다카쓰, 나오마사와 같은 세습 후다이 가신보다 훨씬 더 큰 영지 증가를 보상했다. 아서 린제이 새들러는 나오마사와 혼다 다다카쓰가 이에야스에게 그들의 보상에 대한 불만을 표명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야스마사에게 25만 석, 다다카쓰에게 15만 석을 제공하려 했으나 그들 둘 다 거절하고 대신 아들들에게 영지 보상을 할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해롤드 볼리토는 도쿠가와 막부가 설립된 후, 이러한 후다이 영주들이 더 큰 정부 행정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각자의 군사 영지를 통치하는 데 집중했다고 지적했다.
5. 문화적 측면
'사천왕'이라는 명칭은 불교의 사천왕 신앙에서 유래했다. 이는 네 방위를 수호하는 신들을 의미한다. 도쿠가와 가신들을 기리는 문화는 '도쿠가와 사천왕' 외에도 다양하게 존재했다. 예를 들어, "[도쿠가와 16신장"은 사천왕을 포함하여 16명의 장군을 기리는 형태로, 닛코 토쇼구 신사에 봉헌되었다. 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인격 숭배의 중심으로 연결하려는 종교적, 문화적 측면을 보여준다. 마치 불교에서 부처가 16명의 신 또는 천신에 의해 보호받는 것과 유사하다.
'도쿠가와 16신장'에는 사천왕 외에도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포함된다.
| 오쿠보 타다요 (1532 – 1594) |
| 토리이 모토타다 (1539 – 1600) |
| 핫토리 한조 (1542 - 1596) |
| 와타나베 모리츠나 (1542 - 1620) |
| 오쿠보 타다스케 (1537-1613) |
| 요네기즈 츠네하루 (1524 - 1612) |
| 타카기 키요히데 (1526 - 1610) |
| 나이토 마사나리 (1528 - 1602) |
| 하치야 사다츠구 (1539-1564) / 우에무라 이에마사 (1541-1577) |
| 토리이 타다히로 (? - 1573) |
| 히라이와 치카요시 (1542 - 1611) |
| 마츠다이라 야스다타 (1545-1618) / 마츠다이라 이에타다 (1555-1600) |
이 외에도 '도쿠가와 24장군', 츠키오카 요시토시가 그린 그림에 묘사된 '도쿠가와 28장군' 등 다양한 형태로 도쿠가와 가신들을 기리는 문화가 존재했다.
6. 관련 작품
* 미나미하라 미키오 『도쿠가와 사천왕』 상・하 (신진물왕래사, 2003년 / 카도카와 문고, 2007년)
* 카와무라 신지 『도쿠가와 사천왕 이에야스에게 천하를 쥐게 한 남자들』 (PHP 연구소, 20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