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타 마사나카
1. 개요
홋타 마사나카는 에도 시대 초기의 다이묘로, 고즈케국 안나카 번주 홋타 마사토시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사망 후 고가 번의 2대 번주가 되었으며, 데와국 야마가타 번, 무쓰국 후쿠시마 번으로 전봉되었다. 번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가혹한 세금을 징수했으나,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총애를 받았다. 33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동생 홋타 마사토라가 양자가 되어 가문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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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명 | 홋타 씨 |
|---|---|
| 이름 | 홋타 마사나카 |
| 원어이름 | 堀田正仲일본어) |
| 가몬 | Japanese crest Hotta Mokkou.svg |
|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 출생 | 간분 2년 7월 19일(1662년 9월 1일) |
| 사망 | 겐로쿠 7년 7월 6일(1694년 8월 26일) |
| 별칭 | 사쿄(左京일본어. 통칭) |
| 시호 | 상락공(常楽公일본어) |
| 계명 | 상락원전기아법한영성대거사(常楽院殿其阿法漢映性大居士일본어) |
| 묘소 |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세이조코지(神奈川県藤沢市の清浄光寺일본어) |
| 관위 | 종5위하, 시모우사노카미, 종4위하 |
| 막부 | 에도 막부 |
|---|---|
| 주군 | 도쿠가와 쓰나요시 |
| 번 | 시모우사 국 고가 번주 데와국 야마가타번주 무쓰국 후쿠시마번주 |
| 씨족 | 홋타 가문(堀田氏일본어) |
|---|---|
| 부모 | 아버지:홋타 마사토시/ 어머니:이나바 마사노리(稲葉正則일본어)의 딸 |
| 형제 | 마사나카(正仲일본어) 마사토라(正虎일본어) 마사타카(正高일본어) 마사타케(正武일본어) |
| 배우자 | 정실:이케다 쓰나마사(池田綱政일본어)의 딸 |
| 자녀 | 마사노리(正徳일본어. 장남) 양자:홋타 마사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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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카번 사람 -
이타쿠라 가쓰노리
이타쿠라 가쓰노리는 에도 시대의 후쿠시마 번주로, 안나카 번주 이타쿠라 가쓰키요의 아들이자 가쓰유키의 양자로서 번주가 되었으며, 재임 중 사망하여 그의 차남이 뒤를 이었다. -
1694년 사망 -
메리 2세
메리 2세는 1662년에 태어나 1689년부터 1694년까지 윌리엄 3세와 함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공동 통치했으며, 명예 혁명 이후 권리 장전 통과를 통해 왕권 제한과 의회 권한 강화를 이끌었다. -
1694년 사망 -
마쓰오 바쇼
마쓰오 바쇼는 에도 시대 일본의 하이쿠 거장이자 시인으로, 자연과 여정을 담은 작품과 '가루미' 미학을 추구하며 하이쿠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 후대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662년 출생 -
메리 2세
메리 2세는 1662년에 태어나 1689년부터 1694년까지 윌리엄 3세와 함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를 공동 통치했으며, 명예 혁명 이후 권리 장전 통과를 통해 왕권 제한과 의회 권한 강화를 이끌었다. -
1662년 출생 -
도쿠가와 이에노부
도쿠가와 이에노부는 에도 막부 6대 쇼군으로, 살생금지령 폐지, 문치주의 강화, 재정 개혁 추진 등 막부 정치 쇄신을 꾀하고 아라이 하쿠세키 등 인재를 등용하여 막부 안정과 발전에 기여했다.
2. 생애
간분 2년(1662년), 고즈케국 안나카번주이자 로주였던 홋타 마사토시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조쿄 원년(1684년) 8월 28일 아버지 마사토시가 이나바 마사야스에게 암살당하자, 오쿠보 다다토모와 아베 마사타케 등이 협력하여 그 자리에서 마사야스를 죽였다. 10월 홋타 마사나카는 가문을 승계하고 고가 번의 2대 번주가 되었다. 이때 동생 마사토라에게는 오미야번 2만 석을, 또 다른 동생 홋타 마사타카에게는 사노번 1만 석 영지를 각각 분할해 주어, 마사나카 자신의 영지는 10만 석이 되었다.
조쿄 2년(1685년) 6월, 데와국 야마가타번으로, 이듬해인 조쿄 3년(1686년) 7월에는 무쓰국 후쿠시마번으로 옮겨갔다. 이는 아버지의 암살로 인한 처벌의 성격을 띤 전봉이었다. 후쿠시마 번은 척박한 농지가 많아 명목상 고쿠다카에 비해 실제 수확량이 낮아 번 재정이 궁핍했다.
이에 마사나카는 가신단을 정리해고하고, 연공, 운송 상납금 및 잡세를 엄격히 징수했다. 번내 주민들에게는 특산물인 견직물에 비단세를, 이자카 온천(飯坂温泉일본어)을 비롯한 영내의 각 온천에는 온천세를 각각 부과하는 등 갖가지 세금을 강제로 징수하여 영내 주민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로부터는 총애를 받았다.
겐로쿠 7년(1694년) 7월 6일 33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동생 홋타 마사토라가 양자가 되어 그 뒤를 이었다.
2.1. 출생과 가독 상속
간분 2년(1662년), 고즈케국 안나카번주이자 로주였던 홋타 마사토시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조쿄 원년(1684년) 8월 28일, 아버지 마사토시가 이나바 마사야스에게 암살당하자, 오쿠보 다다토모와 아베 마사타케 등이 협력하여 그 자리에서 마사야스를 죽였다. 10월에는 홋타 마사나카가 가문을 승계하고 고가 번의 2대 번주가 되었다. 이때 동생 홋타 마사토라에게는 오미야번 2만 석을, 또 다른 동생 홋타 마사타카에게는 사노번 1만 석 영지를 각각 분할해 주어, 마사나카 자신의 영지는 10만 석이 되었다.
2.2. 연이은 전봉과 번의 재정난
조쿄 2년(1685년) 6월, 데와국 야마가타번으로 전봉되었고, 이듬해인 조쿄 3년(1686년) 7월에는 무쓰국 후쿠시마번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일련의 전봉은 아버지 마사토시의 암살로 인해 이루어진 처벌조의 전봉이었다. 게다가 후쿠시마 번은 척박한 농지가 많아 명목상 고쿠다카에 비해 실제 수확량이 낮아 번 재정이 궁핍한 상태였다.
이에 마사나카는 가신단의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연공과 운송 상납금 및 잡세를 엄격히 징수하는 중세 조치를 취했다. 번내 주민들에 대해서는 특산물인 견직물에 비단세를, 이자카 온천(飯坂温泉일본어)을 비롯한 영내의 각 온천에는 온천세를 각각 부과하는 등 갖가지 세금을 강제로 징수하여 영내 주민들을 괴롭혔다.
2.3. 가혹한 세금 징수와 쇼군의 총애
마사나카는 번의 재정난을 해결하고자 가신들을 해고하고, 연공, 운송 상납금, 잡세 등을 엄격하게 거두는 중세적 조치를 취했다. 번의 백성들에게는 특산품인 견직물에 비단세를 매기고, 이자카 온천(飯坂温泉일본어) 등 영내 온천들에 온천세를 부과하는 등 가혹한 세금 징수로 백성들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로부터는 "공이 크다"는 칭찬을 받으며 총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