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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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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화성 당성은 계곡을 둘러싼 포곡식 산성으로, 남북으로 긴 네모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 동문, 남문, 북문 터, 우물터, 건물터 등이 남아있으며, 내벽은 흙으로, 외벽은 돌로 쌓았다. 백제, 고구려, 신라 시대를 거치며 당성군, 당항성 등으로 불렸으며, 중국과의 교역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라 경덕왕 때 당은군으로, 신라 후기에는 당성진이 설치되어 청해진과 함께 해군의 근거지로 활용되었다. 2011년에는 문화재 명칭이 당성에서 화성 당성으로 변경되었다. 문화재청은 화성 당성의 체계적인 보존 관리를 위해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정비를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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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당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화성 당성
(華城 唐城)
유형사적
지정 번호217
지정일1971년 4월 15일
주소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32
시대삼국시대
소유자국유,사유
면적134,545 m²
문화재청 ID13,02170000,31

2. 역사

당성은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포곡식 산성으로, 남북으로 긴 네모꼴에 가깝다. 현재 동문·남문·북문 터와 우물터, 건물터가 남아 있으며, 성 안쪽은 흙으로 쌓고 바깥쪽은 돌로 쌓았다.[1]

이 지역은 처음에는 백제 땅이었으나, 475년 고구려가 점령하여 당성군이라 불렀다. 551년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당항성이라 칭하고, 중국과 교류하는 중요한 길목으로 삼았다.[1] 성벽은 무너져 흙과 돌을 섞어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남쪽 벽에는 흙성을 돌로 쌓아 올린 흔적이 남아있다.[1]

당성이 있는 남양 지역은 현재 화성시에 속해 있다. 신라 경덕왕 때인 757년에는 당은군으로 불리며 중국과의 교통로 역할을 했고, 829년에는 당성진이 설치되어 청해진과 더불어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중요하게 여겨졌다.[1] 당성은 당항성과 관련된 중요한 유적 중 하나로 꼽힌다.[1]

2. 1. 삼국시대

당성은 계곡을 둘러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남북으로 길다란 네모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는 동문·남문·북문 터와 우물터,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성의 내벽은 흙으로 쌓고, 외벽은 돌로 쌓았다.

이 지역은 처음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475년 고구려가 점령하고 당성군이라 하였으나, 551년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여 당항성이라 하였다. 이곳은 바다를 건너 중국과 통하는 길목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성벽은 쌓은 벽이 무너져 마치 흙과 돌을 합쳐서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흙성의 성벽을 돌로 쌓아 올린 흔적이 남벽 쪽에 약간 남아있다.

당성이 있는 남양지역은 지금은 화성시이지만, 신라 경덕왕(757년) 때는 당은군으로서, 중국과의 교통로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신라 후기 829년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해서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다.

2. 2. 신라 통일 이후

551년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여 당항성이라 하였다. 바다를 건너 중국과 통하는 길목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1] 성벽은 쌓은 벽이 무너져 마치 흙과 돌을 합쳐서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흙성의 성벽을 돌로 쌓아 올린 흔적이 남벽 쪽에 약간 남아있다.[1]

신라 경덕왕(757년) 때는 당은군으로서, 중국과의 교통로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신라 후기 829년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해서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다.[1] 이곳은 당항성과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유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1]

3. 구조

당성은 계곡을 둘러싼 포곡식 산성으로 남북으로 길다란 네모꼴에 가깝다. 현재 동문 터, 남문 터, 북문 터, 우물터, 건물터가 남아 있으며, 성 안쪽 벽은 흙으로 쌓고 바깥쪽 벽은 돌로 쌓았다.

성벽은 쌓았던 벽이 무너져 흙과 돌을 합쳐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흙성의 성벽을 돌로 쌓아 올린 흔적이 남쪽 벽에 약간 남아있다.[1]

4. 명칭 변경

2011년 7월 28일, 사적 지정 당시 문화재 명칭이었던 '''당성'''(唐城)에서 지역명 병기 및 한글 맞춤법(띄어쓰기)을 적용하여 '''화성 당성'''(華城 唐城)으로 변경되었다.[1]

5. 정비 계획

문화재청은 사적 제217호 화성 당성(華城 唐城)의 체계적인 보존 관리를 위해 종합 정비 계획을 수립·확정하고 화성시와 협의하여 연차적으로 정비를 추진할 계획이다.[2]

6. 당성 사적비 (미완성)

당성 사적비 관련 내용은 현재 비어 있다. 내용을 추가하여 문서를 완성해야 한다.

참조

[1]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명칭 변경 및 지정·해제 고시 문화재청장 2011-07-28
[2] 뉴스 문화재청, '화성 당성' 정비 본격 추진 https://web.archive.[...] 뉴시스 201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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