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혜남
1. 개요
황룡혜남은 11세에 출가하여 19세에 구족계를 받고, 여러 선승에게 참선하여 조주의 공안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황벽산을 거쳐 황룡산으로 옮겨 공안을 사용하여 종풍을 떨쳤으며, 그의 활동은 임제종의 한 분파인 황룡파 개창의 시초가 되었다. 1069년에 입적하여 보각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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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선승 -
목계
묵계는 남송 시대 중국의 선승이자 화가로, 중국에서는 잊혀졌지만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관음원학도》, 《여섯 개의 감》 등의 작품이 유명하며, 그의 작품 대부분은 일본에 소장되어 국보 및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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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종고
대혜종고는 남송 시대의 선승이자 임제종 양기파 승려로, 간화선 수행법을 주창하고 묵조선을 비판하며 중국, 한국, 일본 임제종 공안 수행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대혜어록』, 『정법안장』 등의 저서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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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가
혜가는 중국 선종의 제2대 조사로, 보리달마를 만나 제자가 되기 위해 팔을 자르는 일화로 유명하며, 달마로부터 법을 전수받아 선종을 널리 알리다가 승려의 모함으로 처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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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회해
백장회해는 당나라 시대 마조도일의 제자로, 선 수행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고 최초의 독립적인 선 사찰을 발전시켰으며, 노동과 농사를 수행 생활에 포함시키고 《백장청규》를 제정하여 선종 발전에 기여한 선승이다.
2. 생애
황룡혜남은 11세에 정수원의 지란 아래에서 출가하여 19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여러 선사들에게 참선했으며, 석상초원의 제자가 되어 조주의 공안에서 크게 깨달았다. 여산 귀종사로 돌아갔으나 화재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출옥 후 황룡산으로 옮겨 종풍을 떨쳤고, 임제종의 한 분파인 황룡파를 개창하였다. 1069년에 입적하였고, 보각선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주요 법계 제자로는 동림상총, 운암극문, 회당조심, 운거원우 등이 있다. 어록으로 『황룡남선사어록』, 『황룡남선사어요』 및 『황룡남선사서척집』이 있다.
2.1. 출가와 수행
정수원의 지란 아래에서 11세에 출가하여 19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여산 귀종사의 자보, 여산 서현사의 징시, 기주 삼각산의 회징, 형주 운봉사의 문열에게 참선했으며, 문열에 의해 석상초원을 소개받아 그의 제자가 되었다. 경우 4년(1037년) 조주의 공안에서 대오했다.
2.2. 황룡파 개창
여산 귀종사로 돌아갔으나, 절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죄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 출옥 후 황벽산(강서성 북서부)을 거쳐 황룡산(강서성·호남성·호북성의 경계 부근)으로 옮겨 공안을 사용하여 종풍을 떨쳤고, 호남성과 호북성에 크게 법을 펼쳤다. 임제종의 한 분파인 황룡파(黃龍派)를 개창하였다.
2.3. 입적
1069년 (희녕 2년) 3월 17일에 입적하였다. 보각선사(普覺禪師)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