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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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황역은 유표의 부하로, 장릉 태수를 지냈다. 199년, 유훈을 돕기 위해 손책에게 공격받는 유훈에게 원군을 보냈으나, 유훈이 패하여 퇴각했다. 이후 손권 휘하의 서성에게 패하여 시상 공격에 실패했다. 황역은 예형과 친분이 있었으며, 예형을 황조에게 소개했지만, 예형이 황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황조 사후 황역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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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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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역 | |
기본 정보 | |
성, 이름 | 황역(黃射) |
자 | 문후(文侯) |
생몰년도 | ? ~ 208년 |
출생지 | 양양군(襄陽郡) |
소속 | 유표 |
관직 | 장사(長沙) 태수(太守) |
작위 | 무릉정후(武陵亭侯) |
가족 | 황조 (아버지), 황승언 (사촌) |
생애 | |
초기 생애 | 황조의 아들로, 유표의 휘하에서 활약했다. 아버지 황조와 함께 강하를 지켰다. |
최후 | 조조의 남정 때 황조가 패사하자 함께 죽었다. |
평가 | |
인물평 | 뛰어난 문장가로 명성이 높았으며, 빈객을 좋아했다. |
손권의 평가 | 황역은 다만 빈객을 접대하는 일만 잘 할 뿐이다.(黃射 唯能供賓客耳) |
2. 생애
유표의 부하.
건안 4년(199년), 황역은 장릉태수였다. 황조와 황역은 부자가 같은 시기에 형주 내 2개 군의 태수를 맡고 있었다.
같은 해, 노강의 유훈이 손책에게 공격받아 서새산 중의 유기성으로 도망치자, 황조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황조는 황역에게 수군 5천 명을 이끌고 원군으로 보냈다. 그러나 유훈이 손책에게 격파되어 조조에게 의탁하였기 때문에, 황역은 퇴각했다. 손책은 하구까지 공격해 황조군을 격파하고, 황조의 처자식 7명을 포로로 잡았다. 황역이 이후에도 활동했기 때문에, 포로로 잡힌 7명 중에 황역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건안 13년(208년), 황조는 손권에게 공격받아 멸망했다. 그러나 황역의 생사는 불명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2. 1. 초기 활동과 여강 전투
건안 4년(199년), 여강태수 유훈은 손책에게 공격받아 유기성(流沂城)으로 퇴각하면서 황조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장릉태수였던 황역은 황조의 명령으로 원군을 이끌고 유훈에게 갔으나, 도착하기도 전에 유훈이 패하여 조조에게 달아났기 때문에 철군하였다. 손책은 그대로 하구(夏口)까지 진격하였고, 황조의 처자식 7명을 사로잡았다.[3]건안 5년(200년), 손책이 피살당하고 그의 동생 손권이 즉위하였다. 손권 대에 황역은 수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시상(柴桑)을 공격하였으나,[3] 현장 서성이 병사 200명을 이끌고 황역을 공격하여 크게 패하였다.
황역은 평소 친분이 있었던 문장가 예형과 친밀하였고, 그를 황조에게 소개하였다. 처음에는 황조 또한 예형을 높이 평가하였으나, 그의 불손한 언행을 참지 못하고 죽였다. 황역은 이를 만류하려 하였으나, 당시에 황조와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황조는 곧 이를 후회하였고, 예형을 후하게 장사지내었다.
2. 2. 시상 전투와 서성과의 대결
건안 4년(199년), 여강태수 유훈이 손책에게 공격받아 유기성(流沂城)으로 퇴각하면서 황조에게 도움을 청했다. 장릉태수였던 황역은 황조의 명령으로 원군을 이끌고 유훈에게 갔으나, 도착 전에 유훈이 패하여 조조에게 달아났기 때문에 철군하였다. 손책은 그대로 하구(夏口)까지 진격하여 황조의 처자식 7명을 사로잡았다.[3]건안 6년(201년) 이후, 황역은 수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시상현을 공격했지만[2], 손권군의 서성에게 단 200명의 병사로 요격당했다. 황역은 이 전투에서 크게 패하였다.[3]
2. 3. 예형과의 관계와 황조의 실수
황역은 평소 친분이 있었던 문장가 예형과 친밀하였고, 예형을 황조에게 소개하였다.[3] 황조는 처음에는 예형을 높이 평가하였으나, 예형의 불손한 언행을 참지 못하고 그를 죽였다. 황역은 이를 만류하려 하였으나, 당시에 황조와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황조는 곧 이를 후회하였고, 예형을 후하게 장사지내었다. 유표는 예형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어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지 않으려고 황조에게 떠넘겼지만, 황조는 그런 내막을 모르고 예형을 함부로 죽여 본인 스스로의 평판을 크게 떨어뜨렸다.3. 일화: 뛰어난 기억력
어느 날, 황역은 예형과 함께 외출하였다가 어떤 무덤 앞을 지나갔다. 둘은 묘비를 읽고 떠났다. 한참 후 황역이 예형에게 말했다.[1]
아까 보았던 비문은 정말 명문이었는데, 베껴가지 않은 것이 참 유감입니다.중국어
예형이 답했다.[1]
경(卿)은 묘지의 주인 이름만 기억하실 테지만, 저는 한 번 보고도 모두 암기하였습니다.중국어
그러고는 비문을 써내려갔는데, 마지막 한 글자만은 비석의 글자가 떨어져나가 있었기 때문에 분명하지가 않았다. 예형은 글자의 반쪽을 쓰고는 말했다.[1]
아마 이 글자였을 것인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중국어
황역이 보니 그 글자가 맞았다.[1]
참조
[1]
서적
後漢書 禰衡伝
[2]
서적
삼국지
오서
206년
[3]
서적
삼국지
2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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