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자총통
1. 개요
황자총통은 조선 시대에 제작된 화포의 일종이다. 세종 26년(1444년) 군기감에서 시험 사격 기록이 있으며, 태종 때 최해산이 총통을 개발할 때 이미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초기에는 사거리가 500보를 넘지 못했으나, 세종 27년(1445년) 화기 개량을 통해 사거리가 800보 이상으로 증가하고, 화살 4개를 동시에 발사할 수 있도록 성능이 향상되었다. 국조오례의 서례 병기도감조에 있는 삼총통과 형태와 크기가 유사하며, 약통, 격목통, 부리, 부이, 모병 등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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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황자총통 (黃字銃筒) |
|---|---|
| 유형 | 보물 |
| 지정 번호 | 886 |
| 지정일 | 1988년 11월 29일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
| 소유자 | 국유 |
| 시대 | 조선시대 |
| 수량 | 1점 |
| 문화재청 ID | 12,0886000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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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mm 포 -
호준포
호준포는 중국에서 개발된 무기로, 초기에는 투석기였으나 화약 무기의 발달로 대포로 발전했으며, 임진왜란에서 활약했다. -
40 mm 포 -
4.2 cm 41호 경대전차포
4. 2 cm 41호 경대전차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서 3.7 cm PaK 36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대전차포로, 더 강력한 관통력을 제공했으나 텅스텐 부족으로 생산량이 제한되어 북아프리카 전선과 동부 전선에서 운용되다 5cm Pak 38로 교체되었다. -
총통 -
현자총통
현자총통은 조선 시대에 사용된 화포의 일종으로, 임진왜란 시기 수군의 주력 무기였으며, 국립진주박물관과 국립광주박물관에 보물로 지정된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
총통 -
지자총통
지자총통은 고려 말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의 화포로, 약통, 격목통, 부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부리의 죽절이라는 마디는 한국 총통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고, 장군전과 수철연의환을 발사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전통적인 유통식 점화 방식을 사용했다. -
서울특별시 공개자료를 인용한 문서 -
옻칠
옻칠은 우루시올을 주성분으로 하는 천연 수지로 만든 도료로, 동아시아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마감재이며, 단단하고 견고하며 아름다운 광택을 내는 특징이 있으며, 가구, 그릇, 악기 등 다양한 생활용품과 예술품 제작에 사용되고, 옻칠은 우수한 내구성과 방수성을 지니지만, 자외선에 약하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
서울특별시 공개자료를 인용한 문서 -
동국대학교
동국대학교는 1906년 명진학교로 시작하여 여러 캠퍼스를 운영하며 불교 정신을 바탕으로 교육하고 특성화된 학과와 부속 기관을 갖춘 대한민국 사립 종합대학교이다.
2. 역사
황자총통은 조선 초기에 개발된 주요 화포 중 하나이다. 정확한 개발 시점은 특정하기 어렵지만, 태종 대에 최해산 등이 화포 개발에 힘쓸 때 이미 그 초기 형태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공식 기록상으로는 세종 26년(1444년) 군기감에서 천자총통과 함께 시험 발사되었다는 내용이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당시 황자총통은 사거리가 500보에 미치지 못하는 등 초기 성능은 미흡했다.
이후 세종 27년(1445년)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화기 개량을 통해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다. 사거리가 800보 이상으로 늘어나고, 한 번에 여러 발의 화살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게 되는 등 이 시기에 이르러 황자총통의 일반적인 형태와 제원이 완성된 것으로 평가된다.
2.1. 개발 배경
세종 26년(1444년) 군기감에서 화포를 시험할 때, 황자총통이 천자총통과 함께 사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황자총통이 늦어도 태종 때 최해산이 총통을 개발하던 시기에는 이미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당시 황자총통의 성능은 사거리가 겨우 오백 보를 넘지 못할 정도로 낮았다.
세종 27년(1445년)에 이루어진 화기 개발과 혁신을 통해 사거리가 800보 이상으로 늘어나고, 한 번에 화살 4개를 동시에 발사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크게 개선되었다. 따라서 황자총통의 일반적인 형태와 제원은 1445년에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황자총통은 국조오례의 서례 병기도감조에 기록된 삼총통과 형태 및 크기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본 구조는 화약을 넣는 약통, 격목이나 토격을 넣는 격목통, 총신에 해당하는 부리, 운반 및 설치를 위한 부이(손잡이 고리)로 이루어져 있다. 약통 끝부분에는 이총통이나 삼총통처럼 나무 손잡이를 끼우기 위한 모병(자루 구멍)이 있다.
2.2. 성능 개선
세종 26년(1444년) 군기감에서 화포를 시험할 때 황자총통이 천자총통과 함께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때 황자총통의 초기 성능은 사거리가 500보를 넘지 못할 정도로 낮았다.
이후 세종 27년(1445년)에 이루어진 화기 개량을 통해 성능이 크게 개선되었다. 사거리는 800보 이상으로 늘어났고, 한 번에 화살 4개를 동시에 발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 황자총통의 일반적인 형태와 제원이 완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3. 구조
황자총통의 기본적인 구조는 화약을 넣는 약통, 격목이나 토격이 삽입되는 격목통, 총신 역할을 하는 부리, 그리고 총통을 운반하거나 거치하기 위한 부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약통의 끝부분에는 이총통이나 삼총통과 유사하게 나무로 된 손잡이를 끼울 수 있는 모병(冒柄)이 있다. 1445년경 완성된 황자총통의 일반적인 형태와 크기는 국조오례의 서례 병기도감조에 실린 삼총통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제원
황자총통의 일반적인 형태와 제원은 1445년(세종 27년)에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황자총통은 국조오례의 서례 병기도감조에 있는 삼총통과 그 형태와 크기가 비슷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세종 26년(1444년) 군기감에서 천자총통과 함께 시험 발사되었을 때는 사거리가 500보를 넘지 못했으나, 1445년 화기에 대한 전반적인 개발과 혁신을 통해 성능이 개선되었다. 개선된 황자총통은 사거리가 800보 이상으로 늘어났고, 한 번에 화살 4개를 동시에 발사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다.
* 약통: 화약을 넣는 부분.
* 격목통: 격목이나 토격이 삽입되는 부분.
* 부리: 총신에 해당되는 부분.
* 부이: 총통을 운반하거나 설치하기 위한 부분.
* 모병: 약통 끝부분에 있으며, 이총통과 삼총통처럼 나무 손잡이를 끼우기 위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