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안토니오 이피냐
1. 개요
후안 안토니오 이피냐는 1912년 오르투엘라에서 태어난 스페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선수 시절에는 레알 소시에다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거쳐 레알 마드리드에서 10년간 활약하며 코파 델 레이 2회 우승을 달성했다. 은퇴 후에는 레알 바야돌리드, 레알 마드리드, 세비야 FC, 아틀레틱 빌바오 등에서 감독 및 기술 매니저로 활동하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영입하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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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후안 안토니오 이피냐 이사 |
|---|---|
| 출생일 | 1912년 8월 23일 |
| 출생지 | 바스크 지방비스카야 주오르투에야 |
| 사망일 | 1974년 9월 7일 |
| 사망지 | 빌바오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해당 정보 없음 |
|---|---|
| 클럽 경력 | 1932–1933: 에란디오 1933–1935: 레알 소시에다드 1935–1936: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39–1949: 레알 마드리드 |
| 국가대표 경력 | 1936–1946: 스페인 |
| 출전 및 득점 (클럽) | 에란디오: 정보 없음 레알 소시에다드: 36경기 8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2경기 0골 레알 마드리드: 232경기 7골 |
| 출전 및 득점 (국가대표팀) | 스페인: 6경기 0골 |
| 감독 클럽 | 1950–1952: 레알 바야돌리드 1952–1953: 레알 마드리드 1958–1959: 세비야 1961–1962: 아틀레틱 빌바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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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 에란디오 클루브의 축구 선수 -
토마스 사라오난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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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 에란디오 클루브의 축구 선수 -
헤수스 가라이
헤수스 가라이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아틀레틱 빌바오, FC 바르셀로나, CD 말라가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29경기에 출전했으며, 1995년에 사망했다. -
레알 바야돌리드의 축구 감독 -
프란시스코 가르시아 고메스
프란시스코 가르시아 고메스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레알 오비에도와 발렌시아 CF에서 활약하며 1970-71 시즌 발렌시아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64년 유러피언 네이션스컵에서 우승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의 감독으로 활동했다. -
레알 바야돌리드의 축구 감독 -
라파엘 베니테스
라파엘 베니테스는 스페인 출신의 축구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동 후 여러 클럽을 지휘하며 라리가, 프리미어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 UEFA 유로파리그 등 주요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
아틀레틱 빌바오의 축구 감독 -
마르셀로 비엘사
마르셀로 비엘사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축구 감독으로, 선수 시절을 거쳐 여러 클럽팀과 국가대표팀을 지도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 U-23 대표팀을 금메달로 이끌고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로 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
아틀레틱 빌바오의 축구 감독 -
에르네스토 발베르데
에르네스토 발베르데는 스페인 국적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에는 FC 바르셀로나 등에서 활약했으며 감독으로서 아틀레틱 빌바오, FC 바르셀로나 등을 지휘하며 여러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 선수 경력
1912년 비스카이아 주 오르투엘라에서 태어나 1932년 비스카이아 주 에란디오의 클럽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이듬해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했고, 2년 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스페인 내전 이후인 1939년, 하시토 킨코세스 등 4명밖에 선수가 남지 않아 재건 중이던 레알 마드리드에 합류했다. 1944-45 시즌부터 주장을 맡았고, 1947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 개장 경기로 열린 CF 벨레넨세스와의 경기에서도 주장 완장을 찼다 . 다양한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던 이피냐는 팀의 필요에 따라 점차 포지션을 낮춰갔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10년간 공식 경기 302경기에 출전해 10골을 기록했고, 코파 델 레이를 2번 획득했다.
2.1. 클럽 경력
1912년 비스카이아 주 오르투엘라에서 태어나 1932년 비스카이아 주 에란디오의 클럽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했고, 2년 후에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스페인 내전 이후인 1939년, 하시토 킨코세스 등 4명밖에 선수가 남지 않아 재건 중이던 레알 마드리드에 합류했다. 1944-45 시즌부터 주장을 맡았고, 1947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의 개장 경기로 열린 CF 벨레넨세스와의 경기에서도 주장 완장을 찼다 . 다양한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던 이피냐는 팀의 필요에 따라 점차 포지션을 낮춰갔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10년간 공식 경기 302경기에 출전해 10골을 기록했고, 코파 델 레이를 2번 획득했다.
| 대회 | 우승 |
|---|---|
|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 1946, 1947 |
| 코파 에바 두아르테 | 1946 |
3. 감독 경력
은퇴 후에도 축구와 관련된 일을 계속했으며, 1950년 레알 바야돌리드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1950-51 시즌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6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1962-63 시즌에 기록한 4위에 이어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1952-53 시즌에는 루이스 몰로니, 미겔 무뇨스, 파이뇨 등을 보유한 레알 마드리드 감독을 맡았다. 이듬해부터는 레알 마드리드의 기술 매니저로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영입하는 데 공헌했다. 이후 세비야 FC, 아틀레틱 빌바오 등의 클럽 감독을 역임했다.
4. 수상 내역
후안 안토니오 이피냐스페인어는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에서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1946, 1947)와 코파 에바 두아르테 (1946) 우승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