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사라오난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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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마스 사라오난디아는 아틀레틱의 전설적인 공격수 텔모 사라의 형으로, 동생이 축구계에 입문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는 아레나스 게초 소속으로 라리가 1930-31 시즌에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했다. 이후 레알 오비에도와 CA 오사수나에서 활동하다 스페인 내전으로 잠정 은퇴했으며, 1939년 동생을 돕기 위해 현역에 복귀했다. 1939-40 시즌 말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입고 은퇴했다.

토마스 사라오난디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전체 이름Tomás Zarraonandia Montoya
출생일1910년 12월 28일
출생지스페인 뭉기아
사망일2000년 2월 13일
사망지스페인 라스 아레나스
키1.80m
포지션은퇴 (과거 골키퍼)
클럽 경력
클럽 연도1928–1932
클럽아레나스 게초
클럽 연도1933–1934
클럽오비에도
클럽 연도1935–1936
클럽오사수나
클럽 연도1939–1940
클럽에란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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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력

그는 아틀레틱의 전설적인 공격수 텔모 사라의 형으로, 동생 텔모를 축구계로 이끌었다. 토마스 사라오난디아는 아레나스 게초에서 프로 무대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고, 프리메라 디비시온 1930-31 시즌에는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받았다. 이후 세군다 디비시온 구단들에서 활동하다가 1936년 스페인 내전으로 잠시 은퇴하기 전까지 오비에도와 CA 오사수나를 거쳤다. 1939년 현역 복귀 계획은 없었으나, 동생이 에란디오에 입단하면서 그를 돕기 위해 함께 입단하였다. 1939-40 시즌 말, 아틀레틱 빌바오 경기에서 기예르모 고로스티사와 충돌하여 오른손 약지 부상을 입고 은퇴했다.

2.1. 선수 경력

토마스 사라오난디아는 아틀레틱의 전설적인 공격수 텔모 사라의 형으로, 텔모 사라를 축구계로 입문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토마스 사라오난디아가 처음 프로 무대에서 활약한 구단은 아레나스 게초였고, 당시 프리메라 디비시온에 속했던 구단 소속으로 1930-31 시즌에는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세군다 디비시온의 구단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갔는데, 1936년에 스페인 내전으로 잠정적 은퇴를 하기 전까지 오비에도와 CA 오사수나에서 활동했다. 본래 종전 후인 1939년에 현역에 복귀할 계획은 없었으나, 그의 동생이 1939년에 에란디오에 입단하면서, 텔모를 돕기 위해 그도 같이 한배에 탔다.

1939-40 시즌 말, 그는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기예르모 고로스티사와 충돌했는데, 고로스티사가 실수로 사라오난디아의 오른손 약지를 밟았다. 그에 따라, 베테랑 수문장은 몇 경기를 더 출전하지 못했지만, 완치되지 못했고, 결국 축구화를 벗었다.

2.2. 부상과 은퇴

1939-40 시즌 말,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기예르모 고로스티사와 충돌했는데, 고로스티사가 실수로 사라오난디아의 오른손 약지를 밟았다. 그에 따라 베테랑 수문장은 몇 경기를 더 출전하지 못했고, 완치되지 못해 결국 축구화를 벗었다.

3.1. 개인

토마스 사모라오난디아는 1930–31 시즌에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