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이그나시오 오테로
1. 개요
후안 이그나시오 오테로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라 코루냐의 에르쿨레스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으며, 수영 선수로도 두각을 나타냈다. 17세에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 합류하여 1952-53 시즌에 1군으로 데뷔했고, 1954년부터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했다. 이후 레알 베티스, 그라나다 CF를 거쳐 1966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라 코루냐로 돌아가 대리석 작업장을 운영하며 데포르티보와 오리야마르의 골키퍼 코치를 맡기도 했다. 1955년에는 트로페오 테레사 에레라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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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루냐 출신 -
루카스 페레스
루카스 페레스는 스페인 갈리시아 출신의 축구 선수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소년팀과 라요 바예카노를 거쳐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아스널 FC 등 다양한 팀에서 활약했으며 갈리시아 대표팀으로도 활동한 이력을 가진 선수이다. -
아코루냐 출신 -
안토니오 카사스
안토니오 카사스는 스페인 배우로서, 1960년대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에서 선량한 중년 남성 역할로 알려졌으며, 1950년대부터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고, 클래식 음악 감상과 미술에 조예가 깊으며 검소한 생활과 환경 보호에 관심을 가졌다. -
1929년 출생 -
찰스 틸리
찰스 틸리는 미국의 사회학자, 정치학자, 역사학자로, 역사 사회학, 사회 운동, 국가 형성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며 관계적, 과정 중심적 접근 방식으로 사회과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929년 출생 -
정석모
경찰 출신 행정가이자 정치인인 정석모는 치안국장, 도지사, 차관, 6선 국회의원,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충청권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정계 은퇴 후에는 건양대학교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
남자 축구 골키퍼 -
마크 슈워처
마크 슈워처는 독일계 호주인 골키퍼로,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109경기에 출전했고, 미들즈브러에서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남자 축구 골키퍼 -
나이절 마틴
나이절 마틴은 1987년 브리스톨 로버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크리스털 팰리스, 리즈 유나이티드, 에버턴 등에서 골키퍼로 활약하며 크리스털 팰리스와 리즈 유나이티드 시절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23번의 A매치에 출전한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오테로는 라 코루냐의 에르쿨레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축구 외에도 수영과 다이빙에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1949년에는 100미터 배영 영역에서 스페인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을, 갈리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계에서, 그는 라 코루냐의 중소 구단에서 유소년 축구에 몸담았는데, 모넬로스 고등학교를 비롯한 곳에서 활약하다가 17세의 나이로 데포르티보에 합류했다. 그는 후베닐 데포르티비스타 소속으로 6년을 활약했다.
1952-53 시즌, 그는 1군으로 올라갔고, 이후 1952년 9월 14일에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라 리가 신고식을 치렀다. 구단주가 교체된 후, 그는 구단의 간판 수장 후안 아쿠냐를 대신해 1954년부터 구단의 대표 수문장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오테로는 최소 실점을 기록해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듬해, 라 코루냐 연고 구단은 트로페오 테레사 에레라에서 구단 사상 첫 우승을 거두었다.
그는 1957년에 소속 구단 데포르티보가 강등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파랑 하양 군단 소속으로 2부 리그에서 1958-59 시즌의 1년을 보낸 후, 그는 베티스로 이적하여 1부 리그에서 4년을 더 보냈다. 그 후, 그는 2부 리그의 그라나다로 이적하였다. 그는 1966년까지 그라나다 선수로 활약했는데, 그의 마지막 현역 시즌에 소속 구단이 1부 리그로 승격되었다. 구단 수뇌부와의 불화로 그는 재계약을 거절하였는데도 구단이 오테로의 소유권을 주장하자, 그는 37세에 장갑을 벗었다.
은퇴 후, 그는 라 코루냐로 복귀해 대리석 작업장을 개업해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축구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는데, 데포르티보와 오리야마르의 골키퍼 코치를 맡기도 했다.
2.1. 유소년 시절
2.2.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오테로는 라코루냐의 에르쿨레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축구 외에도 수영과 다이빙에도 두각을 나타냈으며, 17세의 나이로 데포르티보에 합류하여 후베닐 데포르티비스타 소속으로 6년을 활약했다.
1952-53 시즌, 1군으로 승격되었고, 1952년 9월 14일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라 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구단주가 교체된 후, 1954년부터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트로페오 리카르도 사모라를 수상했다. 이듬해, 트로페오 테레사 에레라에서 데포르티보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1957년 데포르티보가 강등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958-59 시즌에는 2부 리그에서 활약한 후, 베티스로 이적하였다.
2.4. 그라나다 CF
오테로는 1963년에 그라나다 CF로 이적하였다. 1966년까지 그라나다 선수로 활약했는데, 그의 마지막 현역 시즌에 소속 구단이 1부 리그로 승격되었다. 구단 수뇌부와의 불화로 그는 재계약을 거절하였는데도 구단이 오테로의 소유권을 주장하자, 그는 37세에 은퇴했다.
3. 은퇴 후 경력
4. 수상 내역
4.1. 클럽
트로페오 테레사 에레라에서 1955년에 우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