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자위관 소총 난사 사건
1. 개요
훈련자위관 소총 난사 사건은 1984년 2월 27일 육상자위대 야마구치 주둔지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21세의 이등 육사 A가 사격 훈련 중 64식 소총을 난사하여 4명이 중경상을 입고, 이 중 1명이 사망했다. A는 지프를 타고 도주했으나 야마구치시에서 체포되었으며, 조사 결과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 상실 상태로 기소되지 않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이 사건으로 자위대 내 징계가 이루어졌고, A의 직속상관이 자살하는 등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 사건명 | 훈련자위관 소총 난사 사건 |
|---|---|
| 발생일 | 1984년(쇼와 59년) 2월 27일 |
| 발생 장소 | 야마구치 주둔지 |
| 가해자 | (이름 미상) 이등육사 |
| 원인 | 중증의 우울증에 의한 심신상실 상태 |
| 결과 | 야마구치현 경찰에 체포됨 |
| 사망자 | 1명 |
|---|---|
| 부상자 | 3명 |
| 처분 내용 | 육상자위관 24명의 감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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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2월 -
1984년 동계 올림픽
1984년 동계 올림픽은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공산주의 국가 최초의 동계 올림픽으로 49개국이 참가하여 6개 종목 39개 경기가 치러졌으나, 이후 보스니아 전쟁으로 경기 시설이 파괴되는 비극을 겪었다. -
1984년 2월 -
제34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1984년에 개최된 제34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는 리브 울만이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존 카사베츠 감독의 《러브 스트림스》가 황금곰상을, 에토레 스콜라 감독이 《무도회》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에른스트 루비치, 줄스 다신, 멜리나 메르쿠리의 회고전이 진행되었다. -
육상자위대의 역사 -
경찰예비대
경찰예비대는 한국 전쟁으로 인한 주일 미군 철수 후 일본의 방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1950년 창설된 준군사 조직으로,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했으나 사실상 군대 역할을 수행하며 이후 국가안전대를 거쳐 육상자위대의 전신이 되었다. -
육상자위대의 역사 -
미시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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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난사 사건 -
쓰야마 사건
1938년 일본 쓰야마시 가모초쿠라미에서 토이 무츠오가 엽총과 일본도 등으로 마을 주민 30명을 살해하고 5명에게 중상을 입힌 후 자살한 쓰야마 사건은 사회 공동체의 붕괴와 개인의 고립 심화가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진 사례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방지 및 사회 안전망 강화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
일본의 난사 사건 -
2007년 사세보시 총기 난사 사건
2007년 일본 사세보시의 스포츠 클럽에서 마고메 마사요시가 일으킨 총기 난사 사건으로 두 명이 사망하고 여섯 명이 부상당했으며, 범인은 체포 후 자살하여 일본 사회에 총기 규제 논의와 법률 개정의 계기가 되었다.
2. 사건의 개요
1984년 2월 27일 낮 무렵, 육상자위대 야마구치 주둔지에 있는 제17보통과연대 사격장에서 사격훈련을 받은 60명의 대원 중 왼쪽 끝에 있던 이등 육사 A(당시 21세)가 뒤돌아서 갖고 있던 64식 소총을 사격장에 나란히 앉은 자위관을 향해 난사했다. 그 결과 4명이 중경상을 입고, 그 중 1명(당시 18세)은 다음날 사망했다. A는 소총을 휴대한 채 지프로 도주, 즉각 자위대와 야마구치현 경찰은 경계태세를 취하고 오후 4시 40분에 야마구치시 내에서 신병을 구속했다.
2.1. 사건 발생
1984년 2월 27일 낮, 육상자위대 야마구치 주둔지에 있는 제17보통과연대 사격장에서 60명의 대원이 사격 훈련을 받았다. 이 중 왼쪽에 있던 이등육사 A(당시 21세)가 갑자기 뒤돌아보며 64식 소총을 난사했다. 사격장에 나란히 앉아있던 자위관들을 향해 발포된 총탄에 4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그 중 1명(당시 18세)은 다음날 사망했다.
A는 소총을 휴대한 채 73식 소형 트럭#1기 (1973년 - 1997년) J-24A/23A/25A형|지프로 도주했다. 자위대와 야마구치현 경찰은 즉각 경계 태세를 갖추고 수색에 나섰으며, 오후 4시 40분에 야마구치시 내에서 A의 신병을 확보했다.
2.2. 피해 상황
1984년 2월 27일 낮, 육상자위대 야마구치 주둔지의 제17보통과연대 사격장에서 훈련 중이던 이등육사 A(당시 21세)가 64식 소총을 난사하여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중 1명(당시 18세)은 다음날 사망했다.
2.3. 범인 도주 및 체포
1984년 2월 27일 낮, 범인 A는 소총을 휴대한 채 지프를 타고 도주했다. 즉각 육상자위대와 야마구치현 경찰은 경계태세를 취하고 추격에 나섰다. 오후 4시 40분, 야마구치시 내에서 A의 신병을 확보하여 체포했다.
3. 범인의 배경
A는 오사카 부의 사립대학을 중퇴한 후, 1981년 9월에 시가현 오쓰시에 있는 제109교육대대에 입대하여, 이후 히메지에 배속되었다. 그러나 1982년 7월에 무단 결근하고 간사이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6일 정직 처분을 받고 의원 면직된 전력이 있었다. 자위대는 A의 입대 당시 지능 검사 성적이 우수했고 채용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A는 "평소 욕을 하던 동료에 대하여 달갑지 않았다. 누구든 쏘고 싶었다"고 범행 동기를 진술했다. 또 "평소에 무시당해서 울분이 쌓였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중증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 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되어 기소되지 않고 정신과(정신 병원) 에 입원하게 되었다。
A는 1983년 6월에 다시 입대했지만, 자위대는 A의 입대 당시 지능 검사 성적이 우수했고 채용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는 이미 1982년에 무단 결근 및 6일 정직 처분을 받고 의원 면직된 전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입대 되었다. 이는 자위대의 허술한 인사 검증 시스템을 보여주는 사례로, 결과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을 예방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사건으로 A는 징계 면직 처분을 받았으며, 나쓰메 하루오 방위 사무 차관이 훈계 처분을 받은 것을 비롯해 자위대 상층부 24명이 감봉에서 주의까지의 처분을 받았다.
3.1. 범행 이전의 행적
A는 오사카 부의 사립대학을 중퇴한 후, 1981년 9월에 시가현 오쓰시에 있는 제109교육대대에 입대하여, 이후 히메지에 배속되었다. 그러나 1982년 7월에 무단 결근하고 간사이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6일 정직 처분을 받고 의원 면직된 전력이 있었다. 자위대는 A의 입대 당시 지능 검사 성적이 우수했고 채용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3.2. 범행 동기
A는 "평소 욕을 하던 동료에 대하여 달갑지 않았다. 누구든 쏘고 싶었다"고 범행 동기를 진술했다. 또 "평소에 무시당해서 울분이 쌓였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중증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 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되어 기소되지 않고 정신과(정신 병원) 에 입원하게 되었다。
A는 1983년 6월에 입대했지만, 자위대는 입대 당시 A의 지능 검사 성적이 우수했고 채용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A는 오사카 부의 사립대학 중퇴 후인 1981년 9월에 제109교육대대에 입대하여 히메지에 배속되었다. 그러나 1982년 7월에 무단 결근 및 6일 정직 처분을 받고 의원 면직된 전력이 있었다.
3.3. 자위대의 초기 대응 및 문제점
A는 "평소 욕을 하던 동료에 대하여 달갑지 않았다. 누구든 쏘고 싶었다"고 동기를 말했으나, 중증의 우울증에 의한 심신상실상태에 있어 기소되지 않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A는 1983년 6월에 입대했지만 당초 자위대는 입대시의 지능테스트의 성적이 우수하고, 채용에는 문제없었다고 주장했다.
A는 1981년 9월에 제109교육대대에 입대하여 히메지에 배속되었으나, 1982년 7월에 무단결근하고 간사이 방면을 돌아다녀 6일 정직 처분을 받고 의원퇴직한 전력이 있었다. 즉, 자위대는 문제없는 자위관을 다시 고용한 셈이다. 이 사건에서 A는 징계 면직처분을 받았고, 나쓰메 하루오 방위사무차관이 훈계처분을 비롯한 자위대 상층부 24명이 감봉과 주의처분을 받았다.
4. 사건의 여파 및 징계
사건이 발생한 같은 날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에 있는 해상자위대 제31항공군 소속 대잠초계기 PS-1이 훈련 중에 에히메현 이요나다 앞바다에 추락해 탑승자 12명 전원이 순직하는 참사가 발생해 방위청에서는 최악의 하루가 되었다.
A의 직속상관인 이등육조(당시 36세)는 A의 기묘한 행동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중대 소대에 빨리 적응하도록 격려했으나 자위대 고위층과 동시에 훈계처분을 받았다. 이 이등육조는 처분을 받은 4개월 후인 7월 3일에 자살했다.
4.1. 자위대 내부 징계
사건이 발생한 같은 날,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에 있는 해상자위대 제31항공군 소속 대잠초계기 PS-1이 훈련 중에 에히메현 이요나다 앞바다에 추락해 탑승자 12명 전원이 순직하는 참사가 발생해 방위청에서는 최악의 하루가 되었다.
A의 직속상관인 이등육조(당시 36세)는 A의 기묘한 행동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중대 소대에 빨리 적응하도록 격려했으나 자위대 고위층과 동시에 훈계처분을 받았다. 이 이등육조는 처분을 받은 4개월 후인 7월 3일에 자살했다.
4.2. 직속상관의 자살
A의 직속상관이었던 이등육조(당시 36세)는 A의 기묘한 행동을 인지하고 중대 소대에 빨리 적응하도록 격려했으나, 자위대 고위층과 함께 훈계 처분을 받았다. 이등육조는 처분 4개월 후인 7월 3일에 자살했다.
4.3. 사회적 파장 및 비판
사건이 발생한 같은 날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에 있는 해상자위대 제31항공군 소속 대잠초계기 PS-1이 훈련 중에 에히메현 이요나다 앞바다에 추락해 탑승자 12명 전원이 순직하는 참사가 발생해 방위청(현 방위성)에서는 최악의 하루가 되었다.
A의 직속상관인 이등육조(당시 36세)는 작년 말부터 A의 기묘한 행동을 알고 있어 중대 소대에 빨리 익숙해지도록 격려했으나 자위대 고위층과 동시에 훈계처분을 받았다. 이 이등육조는 처분을 받은 4개월 후인 7월 3일에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