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사세보시 총기 난사 사건
1. 개요
2007년 사세보시 총기 난사 사건은 2007년 12월 14일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의 스포츠 클럽 르네상스 사세보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이다. 범인 마고메 마사요시는 산탄총을 난사하여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으며, 이후 자살했다. 사건 이후 일본의 총기 규제 미비가 지적되었고, 법률 개정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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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난사 사건 -
쓰야마 사건
1938년 일본 쓰야마시 가모초쿠라미에서 토이 무츠오가 엽총과 일본도 등으로 마을 주민 30명을 살해하고 5명에게 중상을 입힌 후 자살한 쓰야마 사건은 사회 공동체의 붕괴와 개인의 고립 심화가 극단적인 범죄로 이어진 사례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방지 및 사회 안전망 강화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
일본의 난사 사건 -
미쓰비시은행 인질극 사건
1979년 일본 도쿄 미쓰비시은행에서 우메카와 아키요시가 엽총 난사 및 인질극을 벌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으로, 은행 경비 시스템 강화 논의를 야기했다. -
2007년 12월 -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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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
2007년 FIFA 클럽 월드컵
2007년 FIFA 클럽 월드컵은 6개 대륙 클럽 대항전 우승팀과 개최국 대표를 포함한 7개 팀이 일본에서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쟁하여 AC 밀란이 우승했고, 카카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모든 참가 팀이 첫 출전이었다. -
사세보시의 역사 -
미나미타비라촌
미나미타비라촌은 1889년 고테다촌과 시모테라촌이 합병하여 성립되었으며, 1954년 타비라정과 합병하여 소멸되었다. -
사세보시의 역사 -
아이노우라정
아이노우라정은 나가사키현 북서부에 위치했던 자치체로 구주쿠시마와 다와라가우라 반도를 포함하며 에도 시대 히라도 번의 통치를 받았으나 1938년 사세보시에 편입되었다.
2. 사건 발생
2007년 12월 14일 오후 7시 15분경, 얼룩무늬 군복 차림의 마고메 마사요시가 산탄총을 들고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의 스포츠 클럽 '르네상스 사세보'에 들이닥쳤다. 클럽 안에는 70여 명이 있었는데, 마고메는 2층 수영장을 중심으로 총을 쏘았다. 후지모토 유지가 마고메를 제지하려 했으나 총탄을 맞고 쓰러졌고, 마고메는 달아나는 사람들을 쫓아가며 총을 쏘다가 도주했다.
2.1. 사건 배경
용의자는 마고메 마사요시(馬込政義일본어, 1970년 - 2007년 12월 14일)이다.
마고메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정한 직업을 오래 가지지 못하고, 취업 후 3년 이내에 그만두고 다른 곳에 취업하기를 반복했다. 1999년에는 직업훈련을 받아 용접 기술을 배웠으나, 직업으로 활용되지는 않았다. 1995년에는 통신교육을 실시하는 대학교에 입학하여 교육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마고메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취미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5년간 80만 엔 이상을 써서 산탄총과 공기총 등 총 4자루와 탄환 2000여 발을 구입했다. 또 낚시 도구를 즐겨 구입하여, 비교적 고가 브랜드의 물건을 구입했다고 마고메가 단골로 다녔던 낚시용품점 측은 증언하고 있다. 2007년에는 낚시용 보트를 구입하는 등, 취미에 많은 돈을 투입했으나, 주위에서는 마고메가 번 돈 외에 부모의 돈이나 빚도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고메의 총기 취미는 이웃 주민들에게 위험하게 비춰져 경찰에 신고되기도 했으나, 경찰은 이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2.2. 총기 난사
2007년 12월, 마고메는 학교 동창으로 알고 지내던 후지모토 유지(藤本勇司일본어, 당시 36세)를 비롯한 지인 몇 사람을 스포츠 클럽인 르네상스 사세보점(르네상스 사세보)으로 오도록 했다.
사건 당일인 12월 14일 오후 7시 15분경, 얼룩무늬 군복 차림의 마고메가 산탄총을 들고 르네상스 사세보에 들이닥쳤다. 4층 건물의 2층부터 4층까지를 사용하고 있는 클럽 내부에는 당시 종업원 20여 명과 손님 50여 명 등 70여 명이 있었는데, 마고메는 2층 수영장을 중심으로 총을 난사했다. 이를 본 후지모토가 마고메를 제지하려 했으나 다수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어 마고메는 달아나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총을 쏘다가 도주했다.
이 사건으로 후지모토와, 사세보 르네상스의 아르바이트 종업원인 구라모토 마이(倉本舞衣일본어, 당시 26세) 등 2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했다.
3. 범인
범인 마고메 마사요시( 馬込政義일본어 , 1970년 - 2007년 12월 14일)는 고등학교 졸업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취미에 많은 돈을 썼다. 5년간 800000JPY 이상을 써서 총기류를 수집하고 낚시 도구를 구입하는 데 몰두했다. 이웃 주민들은 그의 총기 취미를 위험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3.1. 신상 정보
용의자는 마고메 마사요시(馬込政義일본어, 1970년 - 2007년 12월 14일)다.
마고메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정한 직업을 오래 가지지 못하고, 취업 후 3년 이내에 그만두고 다른 곳에 취업하기를 반복했다. 1999년에는 직업훈련을 받아 용접 기술을 배웠으나, 직업으로 활용되지는 않았다. 1995년에는 통신교육을 하는 대학교에 입학하여 교육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마고메는 취미에 돈을 아끼지 않아, 5년간 800000JPY 이상을 써서 산탄총과 공기총 등 총 4자루와 탄환 2000여 발을 구입했다. 낚시 도구도 즐겨 구입하여, 비교적 고가 브랜드의 물건을 구입했다고 마고메가 단골로 다녔던 낚시용품점 측은 증언하고 있다. 2007년에는 낚시용 보트를 구입하는 등, 취미에 많은 돈을 투입했으나, 주위에서는 마고메 본인이 번 돈 외에 부모의 돈이나 빚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고메의 총기 취미는 이웃 주민들에게 위험하게 비춰져 이웃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으나, 경찰은 이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3.2. 성장 과정 및 직업
마고메 마사요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정한 직업을 오래 가지지 못하고, 취업 후 3년 이내에 그만두고 다른 곳에 취업하기를 반복했다. 1999년에는 직업훈련을 받아 용접 기술을 배웠으나, 직업으로 활용되지는 않았다. 1995년에는 통신교육을 하는 대학교에 입학하여 교육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3.3. 취미 및 총기 소지
마고메 마사요시(馬込政義일본어, 1970년 - 2007년 12월 14일)는 취미에 돈을 아끼지 않아, 5년간 80만 엔 이상을 써서 산탄총과 공기총 등 총 4자루와 탄환 2000여 발을 구입했다. 낚시 도구도 즐겨 구입하여, 비교적 고가 브랜드의 물건을 구입했다고 마고메가 단골로 다녔던 낚시용품점 측은 증언하고 있다. 2007년에는 낚시용 보트를 구입하는 등, 취미에 많은 돈을 투입했으나 주위에서는 마고메 본인이 번 돈 외에 부모의 돈이나 빚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마고메의 총기 취미는 이웃 주민들에게 위험하게 비춰져 이웃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으나, 경찰은 이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4. 사건 이후
사건 현장이었던 르네상스 사세보는 2008년 1월 15일에 영업을 재개했고, 같은 해 3월 나가사키 지검은 이 사건을 용의자 사망으로 인한 불기소 처분하여 종결했다. 마고메를 제지하려 했던 후지모토는 의사자로 인정받았다.
이 사건으로 마고메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800발을 넘는 2000여 발의 총탄을 소지했던 점 등 법적 규제의 미비함이 지적되었고, 이듬해 발생한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의 영향으로 총기 규제 관련 법률이 개정되었다.
4.1. 범인 검거 및 자살
다음 날인 15일 오전 1시 경, 범행에 사용된 총을 제외한 3자루의 총이 실려 있는 마고메의 승용차가 발견되었다. 이어 오전 7시 경에는 시내 후나고시 성당에서 자살한 마고메의 사체와 범행에 사용된 산탄총이 발견되었다.,
후나고시 성당의 본당인 가시마에(鹿子前일본어) 성당 측에 따르면, 마고메는 어렸을 때 후나고시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20세를 전후하여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고 한다.
4.2. 수사 경과 및 종결
다음날인 15일 오전 1시 경, 범행에 사용된 총을 제외한 3자루의 총이 실린 마고메의 승용차가 발견되었다. 이어 오전 7시 경에는 시내 후나고시 성당에서 마고메가 자살한 채 발견되었으며, 범행에 사용된 산탄총도 함께 발견되었다.,
후나고시 성당의 본당인 가시마에(鹿子前일본어) 성당 측에 따르면, 마고메는 어렸을 때 후나고시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20세를 전후하여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건 현장이었던 르네상스 사세보는 한 달 뒤인 2008년 1월 15일에 영업을 재개했고, 같은 해 3월 나가사키 지검은 본 건을 용의자 사망으로 인한 불기소 처분하여 사건을 종결했다. 마고메를 제지하려 했던 후지모토는 의사자로 인정받았다.
마고메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800발을 넘는 2000여 발의 총탄을 소지했던 점 등 법적 규제의 미비함이 지적되었고, 이듬해 발생한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의 영향으로 법률이 개정되기에 이르렀다.
4.3. 사회적 영향
이 사건으로 마고메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800발을 넘는 2000여 발의 총탄을 가지고 있었던 점 등 법적 규제의 미비함이 지적되었고, 이듬해 발생한 아키하바라 살인 사건의 영향도 있어 총기 규제 관련 법률이 개정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