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양현읍성
1. 개요
흥양현읍성은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에 있는 읍성으로, 주월산을 뒤에 두고 축조되었다. 조선 태조 4년(1395)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광양현에 진을 설치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고종 8년(1871)에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다. 현재 높이 약 6m, 폭 약 4m의 성벽과 옹성이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초기 성곽 축조 양식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 이름 | 흥양현읍성 |
|---|---|
| 한자 표기 | 興陽縣邑城 |
| 유형 | 기념물 |
| 지정 번호 | 35 |
| 지정일 | 1978년 9월 22일 |
| 주소 |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 145-4번지 |
| 면적 | 알 수 없음 |
| 수량 | 일원 |
| 참고 사항 | 알 수 없음 |
| 문화재청 ID | 23,0035000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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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왜성은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호남 공략 거점으로 삼아 순천에 약 3개월 만에 축조한 왜성으로, 남해안 왜성들을 연결하는 군사 요충지였으며 현재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왜교성 전투와 축성 방식으로도 주목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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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왜성은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호남 공략 거점으로 삼아 순천에 약 3개월 만에 축조한 왜성으로, 남해안 왜성들을 연결하는 군사 요충지였으며 현재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왜교성 전투와 축성 방식으로도 주목받는다.
2. 역사
조선 태조 4년(1395),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광양현에 진을 설치하면서 흥양현읍성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종 8년(1871)에 크게 고쳐 쌓았으며, 원래는 성 위에 쌓은 낮은 담인 여장과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쌓은 작은 성인 곡성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높이 약 6m, 폭 약 4m의 견고한 성벽과 길이 7m 정도의 옹성이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초기 성곽 축조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2.1. 축성 배경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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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산을 뒤에 끼고 있는 흥양현읍성은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에 있다.
평지에 읍성을 만드는 것은 조선 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성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태조 4년(1395) 광양현에 진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고종 8년(1871)에 크게 고쳐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여장(성 위에 쌓은 낮은 담), 곡성(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쌓은 작은 성)이 있었다.
2.2. 축성 및 중수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에 있는 이 읍성은 뒷쪽에 주월산을 끼고 쌓은 성이다.
평지에 읍성을 만드는 것은 조선 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성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태조 4년(1395) 광양현에 진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만든 것이라 여겨진다. 고종 8년(1871)에 크게 고쳐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여장(성 위에 쌓은 낮은 담), 곡성(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쌓은 작은 성)이 있었다.
현재 높이 약 6m, 폭 약 4m의 견고한 성벽과 길이 7m 정도의 옹성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초기 성곽의 축조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3. 구조
흥양현읍성은 조선 태조 4년(1395) 광양현에 진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종 8년(1871)에 크게 고쳐 쌓았다. 원래는 여장(성 위에 쌓은 낮은 담)과 곡성(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쌓은 작은 성)이 있었다. 현재 높이 약 6m, 폭 약 4m의 견고한 성벽과 길이 7m 정도의 옹성이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초기 성곽의 축조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3.1. 위치 및 형태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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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현읍성은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에 있는 읍성으로, 뒷쪽에 주월산을 끼고 쌓은 성이다.
평지에 읍성을 만드는 것은 조선 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성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태조 4년(1395) 광양현에 진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만든 것이라 여겨진다. 고종 8년(1871)에 크게 고쳐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여장(성 위에 쌓은 낮은 담), 곡성(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쌓은 작은 성)이 있었다.
현재 높이 약 6m, 폭 약 4m의 견고한 성벽과 길이 7m 정도의 옹성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초기 성곽의 축조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3.2. 규모 및 시설
흥양현읍성은 평지에 읍성을 만드는 방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다. 조선 태조 4년(1395) 광양현에 진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고종 8년(1871)에 크게 고쳐 쌓았으며, 원래는 여장(성 위에 쌓은 낮은 담)과 곡성(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쌓은 작은 성)이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높이 약 6m, 폭 약 4m로 견고하며, 길이 7m 정도의 옹성도 남아있다. 이는 조선시대 초기 성곽의 축조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4. 의의와 가치
읍성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흥양현읍성은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에 있으며, 뒤쪽에 주월산을 끼고 쌓은 성이다.
평지에 읍성을 만드는 것은 조선 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성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태조 4년(1395년) 광양현에 진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만든 것이라 여겨진다. 조선 고종 8년(1871년)에 크게 고쳐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는 여장(성 위에 쌓은 낮은 담), 곡성(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쌓은 작은 성)이 있었다.
현재 높이 약 6m, 폭 약 4m의 견고한 성벽과 길이 7m 정도의 옹성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초기 성곽의 축조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