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1. 개요
18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민주공화당의 제임스 매디슨이 대통령에 당선된 선거이다. 민주공화당은 제임스 매디슨을 대통령 후보로, 조지 클린턴 부통령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으며, 연방당은 찰스 코츠워스 핑크니를 대통령 후보로, 루퍼스 킹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선거는 1807년 금수법에 대한 반대 여론 속에서 치러졌으며, 매디슨은 선거인단 투표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 선거 이름 | 18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
|---|---|
| 국가 | 미국 |
| 국기 연도 | 1795년 |
| 유형 | 대통령 선거 |
| 진행 여부 | 아니오 |
| 이전 선거 | 18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
| 이전 선거 연도 | 1804년 |
| 다음 선거 | 18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
| 다음 선거 연도 | 1812년 |
| 선거일 | 1808년 11월 4일 – 12월 7일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후보 이름 | 제임스 매디슨 |
|---|---|
| 정당 | 민주공화당 |
| 러닝메이트 | 조지 클린턴 |
| 출신 주 | 버지니아주 |
| 선거인단 투표 | 122 |
| 승리 주 | 12 |
| 득표수 | 124,964 |
| 득표율 | 65.0%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후보 이름 | 찰스 코츠워스 핑크니 |
|---|---|
| 정당 | 연방당 |
| 러닝메이트 | 루퍼스 킹 |
| 출신 주 | 사우스캐롤라이나주 |
| 선거인단 투표 | 47 |
| 승리 주 | 5 |
| 득표수 | 60,976 |
| 득표율 | 31.7% |
| 투표 대상 | 176명의 선거인단 |
|---|---|
| 필요한 득표수 | 89 선거인단 |
| 투표율 | 36.8% |
| 투표율 변화 | 13.0 pp 증가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선거 전 대통령 | 토머스 제퍼슨 |
|---|---|
| 선거 전 정당 | 민주공화당 |
| 선거 후 대통령 | 제임스 매디슨 |
| 선거 후 정당 | 민주공화당 |
-
1808년 11월 -
1808년 11월 18일 일식
-
제임스 매디슨 행정부 -
헨리 디어본
헨리 디어본은 미국 독립 전쟁, 1812년 전쟁에 참전하고 정치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토머스 제퍼슨 행정부의 전쟁 장관을 역임하고 포르투갈 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다. -
제임스 매디슨 행정부 -
18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1812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이 1812년 전쟁 중에 드위트 클린턴 뉴욕 시장을 누르고 재선에 성공한 선거로, 전쟁에 대한 찬반 여론이 주요 쟁점이었다. -
미국의 역사 (1789-1849) -
윌리엄 헨리 해리슨
미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인 윌리엄 헨리 해리슨은 미영 전쟁 영웅으로, 하원의원, 상원의원, 인디애나 준주 지사를 역임한 후 제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취임 한 달 만에 폐렴으로 사망하여 최단 기간 재임 대통령으로 기록되었고, 그의 죽음은 미국 대통령직 승계에 대한 헌법적 논쟁을 야기했다. -
미국의 역사 (1789-1849) -
존 애덤스
존 애덤스는 미국의 제2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미국 독립 혁명 시기 독립 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독립 후에는 외교관,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으로 재임하며 프랑스와의 준전쟁 해결, 해군 창설 등의 업적을 남겼다.
2. 후보 선출
18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후보 선출 과정은 민주공화당과 연방당 양당의 당원대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민주공화당에서는 현직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지지를 받은 제임스 매디슨 국무장관이 제임스 먼로와 조지 클린턴 부통령을 제치고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부통령 후보로는 조지 클린턴이 존 랭던을 누르고 지명되었다. 그러나 일부 민주공화당원들은 이러한 코커스 제도에 반대하며, 제임스 먼로와 조지 클린턴을 각각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는 그룹이 나타나기도 했다.
연방당은 1804년 대선 후보였던 찰스 코츠워스 핑크니와 러퍼스 킹을 다시 대통령 및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이는 패배한 정당이 이전과 동일한 후보 조합을 다시 지명한 유일한 사례이다.
| 제임스 매디슨 | 조지 클린턴 | ||||||||||||||||||||||||||||
|---|---|---|---|---|---|---|---|---|---|---|---|---|---|---|---|---|---|---|---|---|---|---|---|---|---|---|---|---|---|
| 대통령 후보 | 부통령 후보 | ||||||||||||||||||||||||||||
| 제5대 미국 국무장관 (1801–1809) | 제4대 미국 부통령 (1805–1812) | ||||||||||||||||||||||||||||
| 찰스 코츠워스 핑크니 | 러퍼스 킹 | ||||||||||||||||||||||||||||
|---|---|---|---|---|---|---|---|---|---|---|---|---|---|---|---|---|---|---|---|---|---|---|---|---|---|---|---|---|---|
| 대통령 후보 | 부통령 후보 | ||||||||||||||||||||||||||||
| -- | |||||||||||||||||||||||||||||
| 제6대 미국 공사(프랑스) (1796~1797) | 제3대 미국 공사(영국) (1796~1803) | ||||||||||||||||||||||||||||
2.1. 민주공화당
민주공화당은 당원대회를 통해 제임스 매디슨 국무장관을 대통령 후보로, 조지 클린턴 부통령을 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
당시 민주공화당의 주요 대통령 후보는 다음과 같았다.
* 제임스 매디슨, 버지니아주 출신, 국무장관
* 제임스 먼로, 버지니아주 출신, 전 미국 주재 영국 대사
* 조지 클린턴, 뉴욕주 출신, 미국 부통령
--
--
부통령 후보로는 조지 클린턴 외에도 다음의 인물들이 거론되었다.
* 존 랭던, 뉴햄프셔주 출신, 뉴햄프셔 주지사
* 헨리 디어본, 매사추세츠주 출신, 미국 전쟁장관
* 존 퀸시 애덤스, 매사추세츠주 출신, 미국 상원의원
--
--
--
--
1808년 1월, 퇴임하는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지지를 받은 제임스 매디슨이 제임스 먼로와 조지 클린턴을 제치고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코커스에서는 존 랭던을 제치고 조지 클린턴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민주공화당원 17명은 코커스 제도에 반대하였는데, 존 랜돌프의 지지를 받은 제임스 먼로는 버지니아 민주공화당원 그룹에 의해 지명되었고, 조지 클린턴은 뉴욕 민주공화당원 그룹의 대통령 후보 지지를 받았다.
2.2. 연방당
연방당은 당원대회를 통해 프랑스 대사 찰스 핑크니를 다시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하였다.
| 찰스 C. 핑크니 | 러퍼스 킹 |
|---|---|
| 대통령 후보 | 부통령 후보 |
| -- | |
| 제6대 미국 공사(프랑스) (1796~1797) | 제3대 미국 공사(영국) (1796~1803) |
1808년 9월, 연방당 의원들은 모여 1804년 선거에서 내세웠던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찰스 코츠워스 핑크니 장군과 뉴욕 출신의 전 상원의원 러퍼스 킹을 재지명했다. 미국 역사상 패배한 주요 정당이 패배한 후보 조합을 두 번째로 다시 지명한 것은 이번이 유일한 경우이다.
3. 선거 운동
이 선거는 제퍼슨의 1807년 금수법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특징지어졌다. 유럽과의 무역 중단은 특히 뉴잉글랜드 상인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영국보다 프랑스를 편드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퍼슨은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았고, 핑크니는 매디슨에게 완패했지만, 1804년보다는 패배 규모가 적었다. 핑크니는 뉴잉글랜드를 제외한 지역에서 거의 선거인단 투표를 얻지 못했다.
4. 선거 결과
18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인기에 힘입어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제임스 매디슨 후보가 당선된 선거이다. 매디슨은 전체 투표의 64.7%를 획득하여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122표를 얻어, 47표를 얻은 연방당의 찰스 코츠워스 핑크니 후보를 크게 이겼다.
매디슨은 제퍼슨 대통령 하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했으며, 핑크니는 1804년 선거에서도 패배한 경험이 있었다. 제퍼슨 대통령 하에서 부통령을 역임했던 조지 클린턴 또한 대통령 후보로 나서, 매디슨의 출마를 인정하지 않은 민주공화당 일부로부터 6표의 선거인단 표를 얻었다.
이 선거는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지만 재임 중인 부통령이 직무를 계속한 미국의 역사에서 두 가지 예 중 첫 번째 사례이다. (다른 하나는 1828년 선거의 존 칼훈이다.)
핑크니는 1804년에 승리했던 코네티컷과 델라웨어의 선거인단 표를 유지했고, 뉴햄프셔,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노스캐롤라이나의 일부 선거구를 추가로 확보했다. 특히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지지세가 강화되었다.
득표율이 5% 미만 차이였던 주는 뉴햄프셔주(4.8% 차이)였고, 10% 미만 차이였던 주는 로드아일랜드주(6.6% 차이)와 노스캐롤라이나주(5.40% 차이)였다.
4.1. 주별 선거 결과
* 매사추세츠주
* 뉴햄프셔주
* 로드아일랜드주
제임스 매디슨은 전체 투표의 약 3분의 2에 가까운 64.7%를 획득하여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압승했다.
찰스 코츠워스 핑크니는 1804년 선거 당시 확보했던 선거인들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뉴햄프셔주, 매사추세츠주, 로드아일랜드주 전체 선거인과 노스캐롤라이나주 선거인 3명을 확보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를 제외한 모든 주는 뉴잉글랜드 지역이었다.
조지 클린턴에게 투표한 반대파는 모두 뉴욕주 선거인들이었다. 켄터키주 선거인 1명은 투표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