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브로드 스트리트의 콜레라 유행
1. 개요
1854년 브로드 스트리트의 콜레라 유행은 런던 소호 지역에서 발생한 콜레라 대규모 발병 사건이다. 당시 런던의 열악한 위생 환경과 콜레라 원인에 대한 상반된 이론(악취설 vs. 세균설)이 혼재된 상황에서, 의사 존 스노우는 펌프의 물이 오염원임을 밝혀내고 역학 조사를 통해 콜레라의 전파 경로를 규명했다. 존 스노우는 점 지도와 통계적 분석을 활용하여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가 콜레라 발병의 근원임을 밝혀냈으며, 헨리 화이트헤드의 도움을 받아 지역 주민 인터뷰를 통해 이를 뒷받침했다. 스노우의 연구는 공중 보건 및 역학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으며, 현재 브로드윅 스트리트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물이 설치되어 있다.
| 이름 | 1854년 브로드 스트리트 콜레라 발생 |
|---|---|
| 날짜 | 1854년 |
| 장소 | 소호, 런던, 영국 |
| 원인 | 비브리오 콜레라 균이 하수로 오염된 펌프 물에 존재 |
| 사망자 수 | 616명 |
| 관련 | 1846–1860년 콜레라 유행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웹사이트 | http://%7B%7BCite%20journal%7Clast=Eyeler%7Cfirst=William%7Cdate=July%202001%7Ctitle=The%20changing%20assessments%20of%20John%20Snow's%20and%20William%20Farr's%20Cholera%20Studies%7Cjournal=Sozial-%20und%20Pr%C3%A4ventivmedizin%7Cdoi=10.1007/BF01593177%7Cpmid=11582849%7Cvolume=46%7Cissue=4%7Cpages=225%E2%80%9332%7Cs2cid=9549345%7Cdoi-access=free%7D%7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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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 발생 -
2010년대 아이티 콜레라 유행
2010년대 아이티 콜레라 유행은 2010년 아이티 지진 이후 발생하여 수많은 사망자를 냈으며, 네팔 평화유지군 기지의 위생 문제와 유엔의 초기 대응 미흡 등으로 논란이 되었고, 현재 백신 접종 캠페인과 새로운 접근 방식을 통해 콜레라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1854년 9월 -
SS 아크틱호
1854년 뉴욕에서 리버풀로 향하던 SS 아크틱호는 베스타호와 충돌하여 침몰, 3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며 미국 해운 산업과 해상 안전 규정에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남겼다. -
1854년 과학 -
1854년 11월 20일 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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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과학 -
1854년 5월 26일 일식
1854년 5월 26일 일식은 스티븐 알렉산더와 랑겐하임 형제가 각각 은판 사진과 부분 일식 사진을 촬영하여 일식 연구와 사진 기술 발전에 기여했으며, 사로스 주기 135, 이넥스 주기, 트리토스 주기에 속하는 특별한 천문 현상으로 1854년 5월 12일 부분 월식과 연관되었다.
2. 배경
19세기 중반 소호는 인구 과밀과 열악한 위생 시설로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런던의 하수 시스템은 소호 지역까지 닿지 않아 오물 문제가 심각했다. 길거리에는 우사, 도살장, 기름때를 끓이는 곳이 널려 있었고, 원시적인 하수도에는 동물 배설물과 부패한 액체 등이 흘러 들어갔다. 각 가정의 지하실 바닥 밑에는 오물 구덩이가 있었는데, 하수구와 외부에서 스며드는 오물로 인해 만들어졌다. 오물 구덩이가 넘쳐나자 런던 정부는 템스강에 오물을 버리기로 결정했고, 이는 상수도를 오염시켰다. 런던은 1832년과 1849년에 이미 콜레라로 인해 총 14,137명이 사망하는 등 "점점 더 나빠지는 일련의 콜레라 사태"를 겪은 경험이 있었다.
당시 의학계는 콜레라의 원인에 대해 미아즈마설과 세균설로 나뉘어 논쟁을 벌였다.
2.1. 미아즈마설 (Miasma theory)
1854년 브로드 스트리트 콜레라 유행 이전에, 의사와 과학자들은 인체 내 콜레라의 원인에 대해 악취설과 세균설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런던 의료계는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 콜레라 유행의 원인에 대해 이 두 가지 이론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콜레라를 일으키는 세균인 비브리오 콜레라는 1854년에 분리되었지만, 그 발견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널리 알려지고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악취설 지지자들은 콜레라가 썩은 물질이나 기타 오염된 유기물에서 발생하는 공기 중의 입자, 즉 "악취"에 의해 발생한다고 결론 내렸다. "악취" 입자는 공기를 통해 이동하여 개인을 감염시켜 콜레라를 유발한다고 생각했다. 1851년 런던 인구 조사 위원이자 일반 등록소의 일원이었던 윌리엄 패러 박사는 악취가 템스강 주변의 토양에서 발생한다고 믿었다. 여기에는 악취 입자를 포함하는 부패하는 유기 물질이 들어 있었고 런던의 공기 중으로 방출되었다. 악취설 지지자들은 "미생물학의 더 순수한 과학적 접근 방식보다는 정화와 세척"을 믿었다. 패러는 나중에 스노우의 출판물을 통해 스노우의 세균설에 동의했다.
2.2. 세균설 (Germ theory)
콜레라의 원인에 대한 또 다른 이론은 세균설인데, 콜레라는 비브리오 콜레라균에 의해 발생한다는 주장이었다. 존 스노우는 이 이론을 지지했으며, 오염된 물이 주요 전파 경로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세균이 물을 통해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파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런던의 병리학자이자 수석 의료 책임자였던 존 사이먼은 스노우의 세균설을 "특이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스노우의 이론을 이해했지만, 콜레라의 원인과의 관계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사이먼은 콜레라가 환자의 배설물에서 나오는 '병적인 물질'에 의해 전파되며, 이 물질이 음식이나 물의 오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된다고 보았다. 그는 질병의 세균이 위와 장 내부에서 증식하여 콜레라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비브리오 콜레라균은 1854년에 분리되었지만, 이 발견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널리 알려지고 받아들여졌다.
3. 1854년 브로드 스트리트 콜레라 대유행
1854년 8월 31일, 런던 소호 지역에서 콜레라가 크게 발생했다. 의사 존 스노우는 이를 "이 나라에서 발생한 콜레라 집단 발병 중 가장 끔찍하다"고 기록했다. 3일 만에 브로드 스트리트(현 브로드윅 스트리트) 근처에서 127명이 사망했고, 9월 10일까지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발병이 끝날 무렵에는 616명이 사망했다.
많은 희생자들이 미들섹스 병원으로 옮겨졌고,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9월 초에 치료를 도왔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은 편지에서 나이팅게일이 밤낮으로 환자들을 돌보았다고 기록했다.
존 스노우는 지역 주민들과의 대화와 헨리 화이트헤드 목사의 도움으로 발병의 근원이 브로드 스트리트에 있는 공공 수도 펌프임을 확인했다. 스노우는 점 지도를 사용하여 콜레라 환자가 이 펌프 주변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보여주었다. 그는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을 이용하여 각 펌프에 가장 가까운 지점을 나타내는 셀을 생성했고,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가 콜레라 발병률이 가장 높은 지역의 가장 가까운 물 공급원임을 확인했다.
스노우는 사우스워크 앤 복스홀 수도 회사와 램버스 수도 회사의 수도 시설을 통계적으로 비교하여, 전자의 수도 회사가 공급하는 주택의 콜레라 사망률이 후자가 공급하는 주택의 14배임을 보여주었다.
스노우의 설득으로 세인트 제임스 교구 당국은 우물 펌프의 손잡이를 제거하여 작동을 중단시켰다. 이 조치가 발병을 종식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스노우는 전염병이 이미 급격히 감소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예외적으로, 인근 브로드 스트리트 양조장의 노동자들은 콜레라에 걸리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이 매일 맥주를 받았기 때문에 인근 우물의 물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이 공공 우물이 다른 곳에서 콜레라에 걸린 아기가 사용한 기저귀를 씻은 폐수에서 유출된 오래된 정화조로부터 약 0.91m 떨어진 곳에 파여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콜레라 유행이 진정된 후, 정부 관계자는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 손잡이를 교체했다. 그들은 스노우의 이론을 거부했는데, 이는 질병의 구강-분변 전파 방식을 간접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4. 존 스노우의 역학 조사
존 스노우는 환자들의 거주지와 사망 위치를 점 지도 기법으로 지도에 표시했다. 이를 통해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 주변에 환자가 집중된 것을 확인하고, 펌프의 물이 오염원이라고 추정했다. 헨리 화이트헤드 목사의 도움을 받아 지역 주민들을 인터뷰하여, 오염된 펌프 사용과 콜레라 발병 간의 연관성을 밝혀냈다.
스노우는 세인트 제임스 교구 당국을 설득해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의 손잡이를 제거했고, 이는 콜레라 확산을 늦추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스노우는 전염병이 이미 급격히 감소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우스워크 앤 복스홀 수도 회사가 공급하는 지역은 램버스 수도 회사가 공급하는 지역보다 콜레라 사망률이 14배나 높았다. 이는 템스 강 하류에서 물을 끌어다 쓴 사우스워크 앤 복스홀 수도 회사의 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스노우는 런던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수도 회사에 따른 콜레라 발병률의 현저한 차이를 통해 이를 확인했다.
스노우의 연구는 공중 보건 및 건강 지리학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역학의 창립 사건으로 간주된다. 그는 미아스마 이론 대신 세균설에 근거하여 콜레라가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5. 헨리 화이트헤드의 역할
헨리 화이트헤드 목사는 1854년 콜레라 유행 당시 소호의 성 루카 교회에서 교구 목사 보좌였다.
화이트헤드는 과거 악취설을 믿었으나, 이 이론이 잘못되었음을 반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콜레라가 인간의 배설물에 오염된 물 섭취를 통해 확산된다는 존 스노의 이론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스노우의 소호 지역 콜레라 환자 지도 연구는 화이트헤드가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가 지역 감염의 근원이라고 확신하게 만들었다. 화이트헤드는 스노우와 함께 오염원을 결함 있는 정화조와 유행의 지표 환자(콜레라에 걸린 아기)까지 추적했다.
화이트헤드의 연구는 스노우와 함께 인구 통계학 연구와 과학적 관찰을 결합하여 역학의 중요한 선례를 세웠다.
6. 보건 당국의 대응과 논란
런던 보건 위원회는 과학 조사 위원회를 통해 콜레라 발생을 조사했다. 위원회는 런던의 대기 환경과 여러 수도 회사에서 가져온 물 샘플을 조사하여, 가장 오염된 물 공급원이 사우스 런던의 수도 회사인 사우스워크와 복스홀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과학 조사 위원회의 일원이었던 리처드 던다스 톰슨(Richard Dundas Thomson)과 아서 힐 해설(Arthur Hill Hassall)은 톰슨이 "비브리오"라고 부른 것을 조사했다. 톰슨은 다양한 콜레라 병동의 공기 샘플에서 비브리오 발생을 조사했고, 해설은 물 샘플에서 비브리오를 관찰했으나, 둘 다 비브리오를 콜레라의 원인으로 밝히지는 못했다.
보건 위원회는 의사들을 골든 스퀘어 지역과 주민들의 상황을 조사하도록 보냈지만, 결국 1854년 유행병의 원인을 악취설/미아즈마설로 결론지었다.
에드윈 랭커스터 박사는 1854년 브로드 스트리트 콜레라 유행을 연구한 지역 연구 컨소시엄의 의사였다. 1866년 랭커스터는 펌프 자체가 콜레라 발병의 원인이라는 존 스노우의 결론에 대해 썼다. 그는 당시 스노우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대중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랭커스터는 스노우의 감염 패턴 이론과 데이터를 근거로 펌프를 폐쇄했고, 감염률은 현저히 감소했다. 그는 이후 세인트 제임스 교구 (펌프가 위치한 지역)의 초대 보건 의료 책임자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