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1년 이탈리아 총선
1. 개요
1861년 이탈리아 총선은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성립된 후 처음으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이다. 선거에는 카밀로 벤소 카보우르 백작이 이끄는 보수 성향의 역사적 우파, 우르바노 라타치가 이끄는 자유주의 성향의 역사적 좌파, 주세페 마치니가 이끄는 급진주의 성향의 역사적 극좌가 참여했다. 총 유권자 418,696명 중 239,583명이 투표했으며, 선거 결과 역사적 우파가 46.1% 득표율로 342석을 확보하여 원내 과반수를 차지했고, 카보우르 백작은 초대 총리가 되었다.
| 선거명 | 1861년 이탈리아 총선 |
|---|---|
| 국가 | 이탈리아 |
| 유형 | 의회 |
|---|---|
| 정당명 | 아니오 |
| 정당색 | 예 |
| 선거일 | 1861년 1월 27일 (1차) |
| 1861년 2월 3일 (2차) | |
| 차기 선거 | 1865년 이탈리아 총선 |
| 차기 선거 연도 | 1865년 |
| 선출 의석 | 443 |
| 과반 의석 | 222 |
| 투표율 | 57.22% |
| 지도자 | 카밀로 벤소 카보우르 백작 |
|---|---|
| 선거 연합 | 역사적 우파 |
| 색 | 역사적 우파 |
| 의석 | 342석 |
| 득표수 | 약 110,400표 |
| 득표율 | 4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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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 | 우르바노 라타치 |
|---|---|
| 선거 연합 | 역사적 좌파 |
| 색 | 역사적 좌파 |
| 의석 | 62석 |
| 득표수 | 약 48,900표 |
| 득표율 | 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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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자 | 주세페 마치니 |
|---|---|
| 선거 연합 | 역사적 극좌 |
| 색 | 역사적 극좌 |
| 의석 | 14석 |
| 득표수 | 약 5,500표 |
| 득표율 |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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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 | 총리 |
|---|---|
| 선거 전 | 없음 |
| 선거 후 | 카밀로 벤소 카보우르 백작 |
| 선거 후 정당 | 역사적 우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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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2월 -
끼호아 전투
끼호아 전투는 1861년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이 응우옌 찌 프엉이 이끄는 베트남군의 강력한 방어선을 공격하여 승리한 전투로,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 발판 마련과 베트남 민족 저항 의지 표출의 의미를 지닌다. -
1861년 1월 -
1861년 1월 11일 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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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총선 -
2006년 이탈리아 총선
2006년 이탈리아 총선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중도우파 '자유의 집'과 로마노 프로디의 중도좌파 '연합' 간 대결로, 경제 정책 등을 쟁점으로 치러져 '연합'의 승리로 로마노 프로디가 총리에 취임하며 이탈리아 정치 지형에 큰 변화를 가져온 선거이다. -
이탈리아의 총선 -
1919년 이탈리아 총선
1919년 이탈리아 총선은 '비엔니오 로소' 시기에 치러져 이탈리아 사회당과 이탈리아 민중당이 약진하고 비례대표제 도입 및 유권자 기준 확대가 이루어졌으나, 자유연합의 분열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며 베니토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2. 선거 제도
당시 선거는 제한 선거로, 전체 인구 중 극히 일부에게만 투표권이 부여되었다.
3. 참여 정당
1861년 이탈리아 초대 총선에는 3개의 정파가 참여했다. 카밀로 벤소 카보우르 백작이 이끄는 역사적 우파는 사르데냐 왕국 총리 출신으로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주도했다. 우르바노 라타치가 이끄는 역사적 좌파는 자유주의 성향의 이탈리아 좌익 원내단체의 창립자였다. 주세페 마치니가 이끄는 역사적 극좌는 급진주의 성향으로 이탈리아 혁명가이자 통일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 정당 | 성향 | 대표 |
|---|---|---|
| 역사적 우파 | 보수 | 카밀로 벤소 디 카보우르 |
| 역사적 좌파 | 자유 | 우르바노 라타치 |
| 역사적 극좌 | 급진 | 주세페 마치니 |
3.1. 역사적 우파
역사적 우파는 카밀로 벤소 카보우르 백작이 이끌었던 보수주의 정파이다. 카보우르 백작은 사르데냐 왕국 총리를 지냈으며,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 정당 | 성향 |
|---|---|
| 역사적 우파 | 보수 |
3.1.1. 주요 인물
카밀로 벤소 카보우르 백작은 사르데냐 왕국 총리를 지냈으며,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역사적 좌파의 우르바노 라타치는 자유주의 성향으로 이탈리아 좌익 원내단체의 창립자였다. 역사적 극좌의 주세페 마치니는 이탈리아 혁명가이자 통일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 정당 | 대표 |
|---|---|
| 역사적 우파 | 카밀로 벤소 디 카보우르 |
| 역사적 좌파 | 우르바노 라타치 |
| 역사적 극좌 | 주세페 마치니 |
3.3. 역사적 극좌
역사적 극좌는 주세페 마치니를 중심으로 한 급진주의 정파였다. 마치니는 이탈리아의 혁명가이자 이탈리아 통일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3.3.1. 주요 인물
주세페 마치니는 이탈리아의 혁명가이자 통일 운동의 핵심 인물로, 역사적 극좌 성향 후보 연합을 이끌었다.
4. 선거 결과
선거 결과 역사적 우파가 46.1%의 득표율로 443석 중 342석을 차지하여 원내 제1당이 되었다. 이들은 주로 북부 이탈리아의 부유한 귀족 출신으로, 국왕에게 충성하고 온건한 정치 성향을 가졌다. 역사적 우파의 대표인 카밀로 벤소 디 카보우르는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총리가 되었다.
당시에는 후보들이 특정 정당 소속으로 출마하는 현대적인 선거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원들의 성향을 분류하는 기준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4.1. 정당별 득표율 및 의석수
선거 결과 역사적 우파 성향의 후보가 전체 득표율 가운데 46.1%, 443석 정원에 342석을 차지해 원내 제1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북부 이탈리아의 불로소득 부유층을 대표하는 귀족들로서 국왕에 충성하고 낮은 수준의 정부예산을 운용하며 온건 성향의 정치관을 지녔다. 우파 대표 카밀로 벤소 디 카보우르는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총리로 당선됐다.
오늘날의 선거처럼 특정 정당에 후보가 소속되어 출마한 선거가 아니었으므로 성향 분류기준에 따라 세부적인 선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다음은 2010년 Nohlen과 Stöver의 연구에서 분류한 선거 결과이다.
| 정당 | 득표율 | 의석 수 |
|---|---|---|
| 역사적 우파 | 46.1% | 342 |
| 역사적 좌파 | 20.4% | 62 |
| 역사적 극좌 | 2.3% | 14 |
| 무소속 | 3.9% | 23 |
| 기타 | 27.3% | 0 |
5. 선거 이후
선거 결과 우파 성향의 후보가 전체 득표율 가운데 46.1%, 443석 정원에 342석을 차지해 원내 제1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북부 이탈리아의 불로소득 부유층을 대표하는 귀족들로서 국왕에 충성하고 낮은 수준의 정부예산을 운용하며 온건 성향의 정치관을 지녔다. 우파 대표 카밀로 벤소 디 카보우르는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총리로 당선됐다.
오늘날의 선거처럼 특정 정당에 후보가 소속되어 출마한 선거가 아니었으므로 성향 분류 기준에 따라 세부적인 선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