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전국체육대회
1. 개요
1923년 전국체육대회는 1923년 5월부터 12월까지 럭비, 야구, 정구, 축구 종목으로 진행되었다. 경성부의 휘문고등보통학교와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으며, 경기도를 비롯한 7개 도에서 선수단이 참가했다. 럭비는 시범 종목으로, 야구는 전조선야구대회로, 정구는 전조선정구대회로, 축구는 전조선축구대회로 진행되었다. 경기도가 종합 1위를 차지했으며, 평안북도와 평안남도가 그 뒤를 이었다.
| 연도 | 1923년 |
|---|---|
| 종류 | 하계 |
| 대회 | 제4회 전국체육대회 |
| 개최국 | 일제강점기 조선 |
| 개최지 | 경성 |
| 선수단 | 7 |
| 종목 | 4 |
| 세부 종목 | 9 |
| 일반부 종목 | 4 |
|---|---|
| 일반부 세부 종목 | 4 |
| 18세 이하부 종목 | 3 |
| 18세 이하부 세부 종목 | 3 |
| 12세 이하부 종목 | 3 |
| 12세 이하부 세부 종목 | 3 |
| 개막식 | 1923년 5월 17일 |
|---|---|
| 폐막식 | 1923년 12월 8일 |
| 개회 선언 | 고원훈 |
|---|
| 주경기장 |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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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5월 -
1923년 전조선축구대회 (평양기독교청년회)
1923년 평양기독교청년회 주최로 열린 전조선축구대회는 청년부에서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 학생부에서 숭인학교 축구단이 우승하며 조선 사회의 축구 열풍을 일으키고 한국 축구 발전과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
1923년 10월 -
1923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1923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4개국이 참가하여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풀리그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우루과이가 우승했다. -
1923년 10월 -
함부르크 봉기
함부르크 봉기는 192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독일 공산당 주도로 일어난 무장 봉기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계획되었으나 빠르게 진압되어 노동 운동 분열을 심화시키고 반공주의 정서를 강화했다. -
1923년 11월 -
뮌헨 폭동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1923년 11월 8일부터 9일까지 바이에른 주 정부를 전복하려 시도한 쿠데타인 뮌헨 폭동은 실패로 끝났으나 나치당의 인지도를 높이고 히틀러의 정치적 부상에 기여했으며 나치즘의 잔혹성과 독일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재평가된다. -
1923년 11월 -
1923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1923년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4개국이 참가하여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풀리그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우루과이가 우승했다.
2. 경기 종목
1923년 전국체육대회에서는 럭비, 야구, 정구, 축구 등 4개 종목의 경기가 개최되었다. 럭비는 시범 종목으로, 야구, 정구, 축구는 정식 종목으로 진행되었다. 각 종목별 대회와 개최 시기는 다음과 같다.
2.1. 럭비
럭비 종목은 제4회 전조선축구대회 도중 시범 경기 형식으로 진행된 시범 종목이다. 1923년 11월 21일부터 11월 22일까지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으며, 한국 최초의 공식 럭비 경기로 기록되고 있다. 1923년 11월 21일 오전에 럭비구락부 럭비단과 중앙고등보통학교 럭비단 간의 경기가 진행되었고, 1923년 11월 22일 오전에 럭비구락부 럭비단과 보성고등보통학교 럭비단 간의 경기가 진행되었다.
2.2. 야구
야구 종목은 제4회 전조선야구대회로 진행되었다. 제4회 전조선야구대회는 1923년 5월 17일부터 5월 19일까지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중등부 종목에서는 5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휘문고등보통학교가 결승에서 오산학교를 이기고 우승했고, 청년부 종목에서는 6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중앙체육단이 결승에서 대구청년회를 상대로 17:11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한편 청년부 종목의 중앙체육단과 배재청년단의 경기에서 3회 말 17:4로 앞서가던 중앙체육단의 공격 상황에서 배재 측 응원단이 중앙체육단 선수의 언동을 문제삼아 소란을 피우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당시 경기 주심이었던 윤치영 심판은 중앙체육단의 주장 박석윤과 배재청년단의 감독 마춘식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지만, 양 선수단이 모두 심판의 퇴장 조치에 불복하고 경기장 내 소란 상황이 계속되었다. 소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당시 심판은 배재 측 응원단의 소란이 더 심하다고 판단하고 배재 측 응원단에게 전원 퇴장 명령을 내리자, 이에 불복하여 배재청년단 측은 경기를 기권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2.3. 정구
정구 종목은 제3회 전조선정구대회로 진행되었다. 제3회 전조선정구대회는 1923년 10월 15일부터 10월 17일까지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이 대회부터 소학부 종목이 신설되었고, 소학부 종목에는 6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선천공립보통학교가 결승에서 보성초등학교를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중학부 종목에서는 6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휘문고등보통학교가 양정고등보통학교를 결승에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고, 청년부 종목에서는 11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금강구락부가 우승하며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2.4. 축구
축구 종목은 제4회 전조선축구대회로 진행되었다. 1923년 11월 21일부터 사흘간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청년부 종목에서는 3개월 이상 해당 선수단에 소속되어 있어야 출전이 가능하고, 소학부와 중학부 종목에서는 해당 학교에 1년 이상 재적해야 출전할 수 있다는 참가 규정이 신설되었다. 이 대회를 앞두고 신설된 이 규정으로 부정 선수 논란이 일어났고 결승전 당일 이에 대해 항의와 소란이 발생하자 결승 경기는 12월 8일로 연기하여 진행되었다. 소학부 종목에서는 7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광성보통학교가 우승을 차지했고, 중학부 종목에서는 8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배재고등보통학교가 우승을 차지했고, 청년부 종목에서는 6개 선수단이 참가하여 불교청년회가 우승을 차지했다.
3. 경기장
이번 대회는 경성부에 있는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과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4. 선수단
5. 대회 일정
1923영어년 전국체육대회는 1923년 5월부터 12월까지 개최되었다. 5월 17일부터 19일까지 야구 종목이,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정구 종목이, 11월 21일부터 23일까지 축구 종목이 진행되었고, 럭비 종목은 12월 8일에 시범 경기로 진행되었다.
| 1923년 | 5월 | 10월 | 11월 | 12월 | 종목 합계 | ||||||||
|---|---|---|---|---|---|---|---|---|---|---|---|---|---|
| 17일 | 18일 | 19일 | 15일 | 16일 | 17일 | 21일 | 22일 | 23일 | 8일 | ||||
| 청년부 | 0 | ||||||||||||
| 야구 | 청년부 | 2 | |||||||||||
| 중학부 | 1 | ||||||||||||
| 정구 | 청년부 | 3 | |||||||||||
| 중학부 | 1 | ||||||||||||
| 소학부 | 1 | ||||||||||||
| 축구 | 청년부 | 3 | |||||||||||
| 중학부 | 1 | ||||||||||||
| 소학부 | 1 | ||||||||||||
| 일일 합계 | 0 | 0 | 2 | 0 | 0 | 3 | 0 | 0 | 0 | 3 | 총계 | ||
| 누적 합계 | 0 | 0 | 2 | 2 | 2 | 5 | 5 | 5 | 5 | 8 | 8 | ||
6. 메달 집계
1923년 전국체육대회는 경기도가 종합 1위를 차지했으며, 평안북도와 평안남도가 그 뒤를 이었다. 청년부, 중학부, 소학부별 메달 집계도 별도로 진행되었다.
청년부 메달 집계
중학부 메달 집계
소학부 메달 집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