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K리그 드래프트
1. 개요
1988 K리그 드래프트는 1987년 12월 8일에 실시되었으며, K리그의 첫 번째 드래프트였다. 총 58명이 드래프트에 신청하여 연고지역 우선지명 6명, 드래프트 순번내 지명 12명 등 총 18명이 지명되었다.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이후 프로 구단의 과열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며, 각 구단은 연고 지역 고등학교 졸업 대졸 선수들을 우선 지명할 수 있었다. 럭키 금성 황소가 1순위 우선 지명권을 행사했고, 현대 호랑이는 김종부 파동으로 인해 드래프트에 불참했다. 1차 선발 지명 시 계약금은 4천만 원, 연봉은 1천 8백만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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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드래프트 -
2009 K리그 드래프트
2009 K리그 드래프트는 2008년 11월 5일에 408명이 지원하여 160명이 선발되었으며, 클럽 유스팀 우선지명, 강원 FC 창단팀 우선지명, 드래프트 지명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
K리그 드래프트 -
2010 K리그 드래프트
2010 K리그 드래프트는 487명 중 157명이 지명되어 총 170명이 프로 구단에 입단한 신인 선수 선발 방식으로, 각 구단은 드래프트, 번외 지명, 유스팀 지명 등을 통해 전력을 보강했으며, 드래프트 외에도 다양한 선수 선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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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2
K리그2는 2012년 K리그 분할 시스템 도입으로 출범한 대한민국의 2부 프로 축구 리그로, 초기에는 K리그 챌린지로 불렸으나 2018년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승강 플레이오프를 통해 K리그1 승격팀을 결정하고 단일 리그 방식을 유지하며, 2025년부터 외국인 선수 등록 규정 변경 및 홈그로운 선수, U-22 출전 의무 규정이 도입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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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현
설기현은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 동점골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유럽 및 아시아 여러 클럽에서 활약하며 A매치 82경기 19골을 기록했고, 은퇴 후에는 대학 및 프로팀 감독을 역임했다.
2. 일시 및 개요
1987년 12월 8일에 드래프트가 실시되었다. 총 58명이 드래프트에 신청했으며, 연고지역 우선지명 6명, 드래프트 순번내 지명 12명으로 총 18명이 지명되었다.
| 지명 형식 | 숫자 |
|---|---|
| 연고지역 우선지명 | 6명 |
| 드래프트 순번내 지명 | 12명 |
| | 18명 |
3. 특징
1988년 드래프트는 K리그 최초의 드래프트 제도였다.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사건 이후 프로 구단들의 과열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각 프로 구단은 연고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졸업 예정인 선수들을 드래프트 개최 이전에 2명까지 우선 지명할 수 있었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않은 선수들은 자유 계약으로 영입할 수 있었다.
1987년 시즌 최하위였던 럭키 금성 황소가 1순위 우선 지명권을 행사했으며, 이후 드래프트 순서는 시즌 순위의 역순으로 배정되었다.
3.1.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과 현대 축구단의 드래프트 불참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당시 현대 호랑이 축구단이 일방적으로 팀 해체 선언을 했기 때문에, 1988년 드래프트에서 단 한 명의 선수도 지명하지 못했다. 결국 김종부 선수는 포항제철로 임대되었고, 1988년 1월 현대가 축구단을 부활을 선언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4. 지명 결과
5. 계약금 및 연봉
| 선발 순위 | 계약금 | 연봉 |
|---|---|---|
| 1차 지명 | 40 | 18 |
| 2차 지명 | 30 | 15.6 |
| 3차 지명 | 25 | 14.4 |
위의 금액은 당시 물가 기준이다.
6. K리그 선수 선발 제도의 변화
K리그는 1988년 드래프트를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이는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사건 이후 프로 구단들의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였다.
각 프로 구단은 연고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졸 선수들을 드래프트 개최 전에 2명까지 우선적으로 연고 지명할 수 있었다. 당시 드래프트 신청은 대학 졸업 예정 선수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않은 선수들은 자유 계약으로 영입할 수 있었다.
1987년 시즌 최하위였던 럭키 금성 황소 축구단이 1순위 우선 지명권을 행사하였다. 이후 시즌 순위에 따라 역순으로 드래프트권을 배정하였다.
현대 호랑이 축구단은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당시 현대가 일방적으로 팀 해체를 선언했기 때문에, 1988년 드래프트에서 단 한 명의 선수도 지명하지 못했다. 이 사태는 김종부 선수의 포항제철 임대, 1988년 1월 현대의 축구단 부활 선언으로 일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