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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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9년 한국시리즈는 정규 시즌 1위 빙그레 이글스와 플레이오프 승리팀 해태 타이거즈의 대결로, 해태 타이거즈가 4승 1패로 승리하며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다. 정규 시즌 1위 빙그레는 1차전을 승리했으나 이후 4연패하며 해태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해태 타이거즈는 강력한 투수진과 타선을 앞세워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으며, MVP는 박철우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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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한국시리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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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한국시리즈 정보 | |
개최 연도 | 1989년 |
우승 팀 | 해태 타이거즈 |
우승 팀 승리 수 | 4 |
무승부 수 | null |
우승 팀 감독 | 김응용 |
우승 팀 시즌 성적 | 65승 4무 51패 (정규시즌 2위) |
상대 팀 | 빙그레 이글스 |
상대 팀 승리 수 | 1 |
상대 팀 감독 | 김영덕 |
상대 팀 시즌 성적 | 71승 3무 46패 (정규시즌 1위) |
경기 일정 | 1989년 10월 26일 ~ 11월 1일 |
MVP | 박철우 |
2. 정규 시즌
순위 | 구단 | 승 | 무 | 패 | 승률 | 승차 |
---|---|---|---|---|---|---|
1위 | 빙그레 | 71 | 3 | 46 | 0.604 | 0.0 |
2위 | 해태 | 65 | 4 | 51 | 0.558 | 5.5 |
3위 | 태평양 | 62 | 4 | 54 | 0.533 | 8.5 |
4위 | 삼성 라이온즈 | 57 | 5 | 58 | 0.496 | 13.0 |
5위 | OB | 54 | 3 | 63 | 0.463 | 17.0 |
6위 | MBC 청룡 | 49 | 4 | 67 | 0.425 | 21.5 |
7위 | 롯데 자이언츠 | 48 | 5 | 67 | 0.421 | 22.0 |
1989년 한국프로야구는 단일 리그 체제로 전환되면서 포스트시즌 진행 방식이 변경되었다. 정규 시즌 1위 팀은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3위와 4위 팀이 3전 2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를 치러 승리 팀이 정규 시즌 2위 팀과 플레이오프에서 한국시리즈 진출을 다투는 스텝 래더 토너먼트 방식으로 바뀌었다.
3. 포스트시즌
이 해 포스트시즌에서 주목받은 팀은 정규 시즌 3위 태평양 돌핀스였다.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투수력을 강화하여 정규 시즌 3위를 기록,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태평양은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꺾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해태 타이거즈에게 패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다.
한국시리즈는 2년 연속 빙그레 이글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대결로 펼쳐졌다. 정규 시즌 1위 빙그레는 강력한 타선과 송진우의 합류로 투수진을 보강하며 기대를 모았으나, 해태에게 1승 4패로 패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해태는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하며 최강팀임을 입증했다.스테이지 승리팀 성적 패배팀 준 플레이오프 태평양 돌핀스 (공식전 3위) 2승 1패 삼성 라이온즈 (공식전 4위) 플레이오프 해태 타이거즈 (공식전 2위) 3승 태평양 돌핀스 (공식전 3위) 한국시리즈 해태 타이거즈 (공식전 2위) 4승 1패 빙그레 이글스 (공식전 1위)
3. 1. 준플레이오프
정규 시즌 3위 태평양 돌핀스와 정규 시즌 4위 삼성 라이온즈가 맞붙은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태평양이 삼성을 2승 1패로 꺾었다. 김성근 감독 체제 하의 태평양 돌핀스는 강력한 투수력을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3. 2. 플레이오프
해태 타이거즈(정규 시즌 2위)는 플레이오프에서 준플레이오프 승리팀인 태평양 돌핀스를 상대로 3승 0패로 승리했다. 해태 타이거즈는 강력한 투수진을 보유하고 있었던 반면, 태평양 돌핀스는 타선의 약점을 보였다.4. 한국시리즈
1989년 한국시리즈는 정규 시즌 1위 빙그레 이글스와 플레이오프 승리팀 해태 타이거즈가 맞붙은 7전 4선승제 경기였다. 해태는 4승 1패로 우승,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다. 이는 2014년 삼성 라이온즈와 타이기록이나, 현재까지 한국 프로 야구 최다 연승 기록이다.
이 해부터 한국 프로 야구는 단일 리그 체제로 전환, 포스트 시즌은 스텝 래더 토너먼트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정규 시즌 1위 팀은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3, 4위 팀 간 준플레이오프 승리 팀이 정규 시즌 2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정규 시즌 3위 태평양 돌핀스는 김성근 감독 지휘 아래 투수력을 강화해 포스트 시즌에 진출,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꺾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해태에 패했다.
빙그레는 강력한 타선과 송진우의 합류로 투수진을 강화,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 승리로 기대감을 높였으나, 2차전 장종훈의 실책 이후 4연패하며 해태에 우승을 내줬다.
해태는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정규 시즌 5경기 차로 앞섰던 빙그레를 압도하며, "첫 경기 승리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 징크스를 깼다.
스테이지 | 승리팀 | 성적 | 비고 | 패배팀 |
---|---|---|---|---|
준 플레이오프 | 태평양 돌핀스 (공식전 3위) | 2승 1패 | 삼성 라이온즈 (공식전 4위) | |
플레이오프 | 해태 타이거즈 (공식전 2위) | 3승 | 태평양 돌핀스 (공식전 3위) | |
한국시리즈 | 해태 타이거즈 (공식전 2위) | 4승 1패 | 빙그레 이글스 (공식전 1위) |
4. 1. 1차전
1989년 한국시리즈한국어 1차전은 10월 26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렸다. 양 팀은 각각 선동열과 이상군을 선발 투수로 내세웠다. 선동열에 무게가 실리는 듯했으나, 이상군은 1989년 정규 시즌에서 해태를 상대로 3승 1세이브를 기록하며 '호랑이 킬러'로 불렸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1]빙그레 이글스는 1회말 이강돈의 홈런으로 선취점을 얻었다. 선동열은 이 홈런으로 흔들리며 8회에 김상국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는 등 4실점(3자책점)하며 팀의 0:4 완봉패의 원인을 제공했다. 반면 빙그레 이글스는 이상군이 7.1이닝 3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송진우를 거쳐 한희민으로 이어지는 투수진을 가동하여 해태 타이거즈를 6안타로 묶으며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1]
4. 2. 2차전
창단 이래 두 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에서 첫판을 승리로 장식한 빙그레 이글스는 1회 공방에서 4 대 1로 앞서며 2연승의 좋은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2회에 1점을 내준 빙그레는 3회초 해태 공격 1사 만루 상황에서 백인호가 병살타를 쳤으나, 유격수 장종훈의 실책으로 4 대 4 동점을 허용했다. 이어진 1사 1, 3루에서 김종모에게 우익수 희생플라이를 맞아 5 대 4로 역전당했다. 해태는 5회초 바뀐 유격수 황대연의 실책으로 1점을 추가하여 6 대 4로 승리, 시리즈 전적 1승 1패를 만들었다.[1]4. 3. 3차전
1989年韓國series|1989년 한국시리즈중국어 3차전은 10월 29일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열렸다. 해태 타이거즈는 문희수를, 빙그레 이글스는 한희민을 선발 투수로 내세웠다. 한희민은 해태에 강한 면모를 보였기에 팽팽한 투수전이 예상되었다.[1]경기는 예상대로 투수전으로 진행되었으며, 문희수는 7이닝 동안 2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3년 연속 승리 투수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8회 무사 1루에서 구원 등판한 선동열은 9회 초 무사 2, 3루 동점 위기를 맞았으나, 고원부를 삼진, 유승안을 투수 앞 땅볼, 강정길을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하며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1]
팀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최종 |
---|---|---|---|---|---|---|---|---|---|---|
빙그레 이글스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해태 타이거즈 | 0 | 1 | 0 | 1 | 0 | 0 | 0 | 0 | X | 2 |
4. 4. 4차전
10월 30일,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열린 4차전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빙그레 이글스를 6:2로 꺾었다. 해태 선발 김정수는 승리 투수가 되었고, 이강철은 세이브를 기록했다. 해태는 이순철 (3회말, 2점), 한대화 (4회말, 1점), 김성한 (6회말, 2점, 8회말, 1점)의 홈런 4개로 경기를 주도했다. 빙그레 장종훈은 9회초 솔로 홈런을 쳤으나, 승부를 뒤집지는 못했다.4. 5. 5차전
11월 1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5차전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삼성 라이온즈를 5:1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선동열이 승리 투수가 되었고, 한희민이 패전 투수가 되었다. 박철우는 18타수 8안타(타율 0.444)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했다.팀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득점 | 안타 | 실책 |
---|---|---|---|---|---|---|---|---|---|---|---|---|
해태 | 2 | 0 | 2 | 1 | 0 | 0 | 0 | 0 | 0 | 5 | 9 | 0 |
빙그레 | 0 | 1 | 0 | 0 | 0 | 0 | 0 | 0 | 0 | 1 | 5 | 1 |
5. 미디어
1989년 한국시리즈는 KBS 1TV와 MBC TV에서 TV 중계를, KBS 제1라디오와 MBC 표준FM에서 라디오 중계를 했다.[1]
5. 1. TV 중계
1989년 한국시리즈는 KBS 1TV와 MBC TV에서 중계방송했다.[1]5. 2. 라디오 중계
KBS 제1라디오와 MBC 표준FM에서 전국으로 라디오 중계를 하였다.[1]6. 여담
해태 타이거즈는 이 시리즈에서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한국 프로 야구 최장 기록이다. 또한, 공식전에서 5경기 차로 앞섰던 빙그레 이글스를 2차전 이후 압도하며, 그전까지 첫 경기를 이긴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다는 징크스도 깨뜨렸다.
이 시리즈에서 MVP는 해태의 외야수 박철우가 차지했으며, 18타수 8안타, 타율 0.444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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