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92년 UEFA컵
1. 개요
1991-92년 UEFA컵은 64개 팀이 참가하여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토너먼트로 진행되었으며, AFC 아약스가 토리노 FC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각 라운드는 1, 2차전 합계 점수, 원정 다득점 규칙, 연장전, 승부차기 순으로 승자를 결정했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이 각각 4팀을 출전시켰으며, 잉글랜드는 헤이젤 참사 징계로 인해 1팀만 참가했다. 결승전은 1, 2차전 합계 2-2로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아약스가 우승했다.
| 대회 이름 | UEFA컵 |
|---|---|
| 연도 | 1991–92 |
| 대회 기간 | 1991년 9월 18일 – 1992년 5월 13일 |
| 참가 팀 수 | 64 |
| 경기 수 | 126 |
| 총 득점 | 304 |
| 총 관중 | 1,968,035 |
| 이전 시즌 | 1990–91 |
| 다음 시즌 | 1992–93 |
| 우승팀 | 아약스 |
|---|---|
| 우승 횟수 | 1 |
| 준우승팀 | 토리노 |
| 득점왕 | 딘 손더스 (리버풀) |
| 득점왕 득점 | 9골 |
-
UEFA컵 시즌 -
1997-98년 UEFA컵
1997-98년 UEFA컵은 1996년 UEFA 랭킹 기준 102개 클럽이 참가한 대회로, 알바니아 내전 및 챔피언스리그 진출팀 조정으로 변동이 있었으며, 인터 밀란이 라치오를 꺾고 우승, 스테판 기바르슈가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
UEFA컵 시즌 -
2004-05년 UEFA컵
2004-05년 UEFA컵은 예선, 조별 리그, 토너먼트를 거쳐 CSKA 모스크바가 스포르팅 CP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
UEFA 유로파리그에 관한 -
1997-98년 UEFA컵
1997-98년 UEFA컵은 1996년 UEFA 랭킹 기준 102개 클럽이 참가한 대회로, 알바니아 내전 및 챔피언스리그 진출팀 조정으로 변동이 있었으며, 인터 밀란이 라치오를 꺾고 우승, 스테판 기바르슈가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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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년 UEFA컵
2004-05년 UEFA컵은 예선, 조별 리그, 토너먼트를 거쳐 CSKA 모스크바가 스포르팅 CP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
1991년 축구 -
1991년 코파 아메리카
1991년 코파 아메리카는 칠레에서 10개국이 참가하여 조별 리그와 결선 리그를 거쳐 아르헨티나가 우승하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득점왕을 차지한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이다. -
1991년 축구 -
1991년 카리브컵
1991년 카리브컵은 자메이카에서 열렸으며, 자메이카가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꺾고 우승하여 CONCACAF 골드컵 출전 자격을 얻었다.
2. 대회 방식
1991-92년 UEFA컵에는 총 64개 팀이 참가하여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의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각 라운드는 두 번의 경기로 구성되었으며, 1, 2차전 합계 점수가 높은 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합계 점수가 동점일 경우 원정 다득점 규칙이 적용되었고, 원정 다득점도 같을 경우 연장전과 승부차기를 통해 승자를 결정했다.
대회는 1라운드부터 시작하여 6번의 녹아웃 라운드를 거쳤다. 경기 일정은 아래 표와 같다.
| 라운드 | 1차전 | 2차전 |
|---|---|---|
| 1라운드 | 1991년 9월 17–19일 | 1991년 10월 1–3일 |
| 2라운드 | 1991년 10월 22–24일 | 1991년 11월 5–7일 |
| 3라운드 | 1991년 11월 27일 | 1991년 12월 10–12일 |
| 8강 | 1992년 3월 4일 | 1992년 3월 18–19일 |
| 준결승 | 1992년 4월 1일 | 1992년 4월 15일 |
| 결승 | 1992년 4월 29일 | 1992년 5월 13일 |
2.1. 참가팀 선정 방식
1991-92년 UEFA컵은 1990년 UEFA 국가 계수에 따라 참가팀이 결정되었다. UEFA 국가 계수는 1985-86 시즌부터 1989-90 시즌까지의 유럽 대항전 성적을 기반으로 산정되었다. 헤이젤 참사로 인한 5년 징계가 끝난 잉글랜드는 유럽 대항전에 복귀했지만, 징계 기간 동안 유럽 대항전에 참가하지 못해 점수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UEFA컵에 단 한 팀만 참가할 수 있었다.
| 순위 | 협회 | 계수 | 팀 수 | 비고 |
|---|---|---|---|---|
| 1 | 45.427 | 4 | ||
| 2 | 43.212 | |||
| 3 | 42.666 | |||
| 4 | 36.233 | 3 | ||
| 5 | 28.633 | |||
| 6 | 28.100 | |||
| 7 | 26.966 | |||
| 8 | 26.500 | |||
| 9 | 26.300 | 2 | ||
| 10 | 24.800 | |||
| 11 | 22.600 | |||
| 12 | 20.500 | |||
| 13 | 19.950 | |||
| 14 | 동독 | 19.250 | ||
| 15 | 16.750 | |||
| 16 | 15.750 | |||
| 17 | 14.581 | |||
| 18 | 13.998 | 2 | ||
| 19 | 12.749 | |||
| 20 | 12.250 | |||
| 21 | 12.250 | |||
| 21 | 11.000 | 1 | ||
| 23 | 10.998 | |||
| 24 | 10.666 | |||
| 25 | 5.999 | |||
| 26 | 5.666 | |||
| 27 | 4.333 | |||
| 28 | 4.000 | |||
| 29 | 1.999 | |||
| 30 | 1.332 | |||
| 31 | 0.999 | |||
| 32 | 0.000 |
UEFA 계수에 따라 상위 1~3위 국가는 4팀, 4~8위 국가는 3팀, 9~21위 국가는 2팀, 22~32위 국가는 1팀이 참가했다. 잉글랜드는 예외적으로 1팀만 참가했다.
3. 1라운드
1991-92년 UEFA컵 1라운드에는 64개 팀이 참가하여 32강 진출을 위한 경기를 펼쳤다. 1차전은 1991년 9월 17일부터 19일까지, 2차전은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진행되었다.
몇몇 경기에서는 이변이 발생했는데, 특히 서독의 바이에른 뮌헨이 덴마크의 볼클루벤 1903에 합계 1-3으로 패배(1차전 1-1 무승부, 2차전 0-2 패배)한 사건은 큰 충격을 주었다.
1라운드 경기 결과는 다음과 같다.
| 팀 1 | 합계 | 팀 2 | 1차전 | 2차전 |
|---|---|---|---|---|
| 애버딘 (스코틀랜드) | 0-3 | 볼클루벤 1903 (덴마크) | 0-1 | 0-2 |
| 아약스 (네덜란드) | 4-0 | 외레브로 SK (스웨덴) | 3-0 | 1-0 |
| 아노르토시스 파마구스타 (키프로스) | 3-4 |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루마니아) | 1-2 | 2-2 (연장) |
| 뱅고어 (북아일랜드) | 0-6 | 시그마 올로모우츠 (체코슬로바키아) | 0-3 | 0-3 |
| 보아비스타 (포르투갈) | 2-1 | 인테르나치오날레 (이탈리아) | 2-1 | 0-0 |
| 셀틱 (스코틀랜드) | 3-1 | 헤르미날 에케런 (벨기에) | 2-0 | 1-1 |
| 코크 시티 (아일랜드) | 1-3 | 바이에른 뮌헨 (서독) | 1-1 | 0-2 |
| HAŠK 그라잔스키 (유고슬라비아) | 3-4 | 트라브존스포르 (튀르키예) | 2-3 | 1-1 |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서독) | 11-1 | 스포라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 6-1 | 5-0 |
| 흐로닝언 (네덜란드) | 0-2 | 로트바이스 에르푸르트 (독일) | 0-1 | 0-1 |
| 이카스트 FS (덴마크) | 1-6 | 오세르 (프랑스) | 0-1 | 1-5 |
| 슈바로프스키 티롤 (오스트리아) | 3-2 | 트롬쇠 IL (노르웨이) | 2-1 | 1-1 |
| 할레셔 (독일) | 2-4 | 토르페도 모스크바 (소련) | 2-1 | 0-3 |
| 함부르크 SV (서독) | 4-1 | 구르니크 자브제 (폴란드) | 1-1 | 3-0 |
| KAA 헨트 (벨기에) | 1-1 (승) 4-1 | 로잔 스포르 (스위스) | 0-1 | 1-0 |
| KR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 | 1-8 | 토리노 (이탈리아) | 0-2 | 1-6 |
| 블라즈니아 슈코더르 (알바니아) | 0-3 | AEK 아테네 (그리스) | 0-1 | 0-2 |
| 리버풀 (잉글랜드) | 6-2 | 쿠쉬시 라흐티 (핀란드) | 6-1 | 0-1 |
| 미켈린 팔로일리야트 (핀란드) | 1-5 |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소련) | 0-2 | 1-3 |
| 뇌샤텔 크사막스 (스위스) | 2-0 | 플로리아나 (몰타) | 2-0 | 0-0 |
| 올랭피크 리옹 (프랑스) | 2-1 | 외스테르스 IF (스웨덴) | 1-0 | 1-1 |
| PAOK (그리스) | 2-1 | KV 메헬렌 (벨기에) | 1-1 | 1-0 |
| CSKA 소피아 (불가리아) | 1-1 (원) | 파르마 (이탈리아) | 0-0 | 1-1 |
| 슬라비아 소피아 (불가리아) | 1-4 | 오사수나 (스페인) | 1-0 | 0-4 |
| 레알 오비에도 (스페인) | 2-3 | 제노아 (이탈리아) | 1-0 | 1-3 |
| 살게이루스 (포르투갈) | 1-1 (승) 2-4 | 칸 (프랑스) | 1-0 | 0-1 |
| 슬로반 브라티슬라바 (체코슬로바키아) | 2-3 |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 1-2 | 1-1 |
| 슈투름 그라츠 (오스트리아) | 1-4 | 위트레흐트 (네덜란드) | 0-1 | 1-3 |
| 스포르팅 CP (포르투갈) | 1-2 | 디나모 부쿠레슈티 (루마니아) | 1-0 | 0-2 (연장) |
| 스포르팅 히혼 (스페인) | 2-2 (승) 3-2 | 파르티잔 (유고슬라비아) | 2-0 | 0-2 |
| 바치 이초 MTE (헝가리) | 2-4 | 디나모 모스크바 (소련) | 1-0 | 1-4 |
| 슈투트가르트 (서독) | 6-3 | 페치 MFC (헝가리) | 4-1 | 2-2 |
4. 2라운드
2라운드에서는 1라운드를 통과한 32개 팀이 16강 진출을 위해 경쟁했다.
| 팀 1 | 합계 | 팀 2 | 1차전 | 2차전 |
|---|---|---|---|---|
| 오세르 (프랑스) | 2-3 | 리버풀 (잉글랜드) | 2-0 | 0-3 |
| 칸 (프랑스) | 1-2 | 디나모 모스크바 (소련) | 0-1 | 1-1 |
| B 1903 (덴마크) | 6-3 | 바이에른 뮌헨 (서독) | 6-2 | 0-1 |
| 오사수나 (스페인) | 3-2 | 슈투트가르트 (서독) | 0-0 | 3-2 |
| 위트레흐트 (네덜란드) | 1-4 | 레알 마드리드 (스페인) | 1-3 | 0-1 |
| 로트바이스 에르푸르트 (동독) | 1-5 | 아약스 (네덜란드) | 1-2 | 0-3 |
|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소련) | 1-2 | AEK 아테네 (그리스) | 0-0 | 1-2 |
| 제노아 (이탈리아) | 5-3 | 디나모 부쿠레슈티 (루마니아) | 3-1 | 2-2 |
| 함부르크 (서독) | 6-1 | CSKA 소피아 (불가리아) | 2-0 | 4-1 |
| 헨트 (벨기에) | 1-0 |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서독) | 0-0 | 1-0 |
| 뇌샤텔 크사막스 (스위스) | 5-2 | 셀틱 (스코틀랜드) | 5-1 | 0-1 |
| 리옹 (프랑스) | 4-8 | 트라브존스포르 (튀르키예) | 3-4 | 1-4 |
| PAOK (그리스) | 0-4 | 슈바로프스키 티롤 (오스트리아) | 0-2 | 0-2 |
| 시그마 올로모우츠 (체코슬로바키아) | 2-0 | 토르페도 모스크바 (소련) | 2-0 | 0-0 |
| 스포르팅 히혼 (스페인) | 2-3 |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루마니아) | 2-2 | 0-1 |
| 토리노 (이탈리아) | 2-0 | 보아비스타 (포르투갈) | 2-0 | 0-0 |
특히, 잉글랜드의 리버풀은 프랑스의 오세르를 꺾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7. 준결승전
8.1. 결승전 결과
1991-92년 UEFA컵 결승전은 이탈리아의 토리노와 네덜란드의 아약스가 맞붙은 경기였다. 1차전은 2-2 무승부, 2차전은 0-0 무승부로 합계 2-2를 기록하였으나,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아약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8.1.2. 2차전
1992년 5월 13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아약스와 토리노의 1991-92년 UEFA컵 결승 2차전은 0-0 무승부로 끝났다. 1차전 결과(2-2)와 합산하여 총 2-2 동률을 이루었으나,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아약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9. 한국의 관점에서의 1991-92 UEFA컵
1991-92년 UEFA컵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994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탈락한 직후 열린 대회였다. 당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축구의 강세와 더불어 일본 축구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이런 가운데, 유럽 축구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고, UEFA컵은 유럽 축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였다. 특히 아약스의 우승은 토털 풋볼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졌으며, 이는 한국 축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당시 한국 축구는 김주성, 황선홍, 홍명보 등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세대교체를 진행 중이었다. 이들은 유럽 축구의 선진 전술과 기술을 배우고, 한국 축구에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10. 영향 및 의의
1991-92년 UEFA컵은 동구권 축구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특히 아약스의 우승은 토털 풋볼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졌으며, 이후 유럽 축구 전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대회는 유럽 축구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했으며, 이는 곧 다가올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 유럽 팀들의 강세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