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일 오데사 충돌
1. 개요
2014년 5월 2일 오데사 충돌은 유로마이단 시위와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 이후 발생한 사회적 불안 속에서, 친러시아 시위대와 친우크라이나 시위대 간의 격렬한 충돌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다. 오데사의 소보르나야 광장에서 시작된 시위는 무역 연합 빌딩 화재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43명이 사망하고 174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우크라이나 내무부의 조사와 블라디미르 네미로프스키 오데사 주지사의 경찰 비판, 그리고 러시아 및 트란스니스트리아 국민의 연루 의혹 등 다양한 논란을 야기했다.
| 명칭 | 2014년 5월 2일 오데사 충돌 |
|---|---|
| 전체 |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분쟁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날짜 | 2014년 5월 2일 |
|---|---|
| 지역 | 우크라이나 오데사 |
| 원인 |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의 독립에 대한 반대 유로마이단 지지자 및 반대자들의 갈등 |
| 종류 | 시가전, 시위 |
| 결과 | 무역 연합 빌딩의 파괴 |
| 시위대 1 | 친우크라이나 시위대 FC 초르노모레츠 오데사의 축구 팬 FC 메탈리스트 하르키우의 축구 팬 우익 섹터 |
|---|---|
| 시위대 2 | 친러시아 무장 단체 트란스니스트리아 민족주의자 러시아 민족주의자 보로트바 |
| 사망자 | 46명 |
|---|---|
| 사망자 상세 | 우크라이나인 6명 러시아인 40명 |
| 부상자 | 214명 |
| 구금자 | 172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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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사의 역사 -
오데사 포위전 (1941년)
오데사 포위전은 1941년 8월부터 10월까지 루마니아군과 소련군 간에 벌어진 전투로, 루마니아는 독일의 지원을 받아 오데사를 포위했으나 흑해 함대의 지원으로 완전한 포위에 실패하고 많은 사상자를 낸 후 1944년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
오데사의 역사 -
러시아 전함 타우리스 공작 포툠킨
러시아 전함 타우리스 공작 포툠킨은 1897년 건조를 시작해 1905년 완공된 러시아 제국 해군 소속 전함으로, 당시 가장 강력한 함선으로 평가받았으며 1905년 선원 반란, 함명 변경,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등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
2014년 우크라이나 -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혁명 이후 크림반도 내 친러시아 세력의 움직임과 러시아군의 개입, 주민투표를 거쳐 크림반도를 자국 영토로 합병했으나, 국제 사회는 이를 불법으로 간주하며 우크라이나의 주권 침해로 규탄하고 있다. -
2014년 우크라이나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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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분쟁 -
스파르타 대대
스파르타 대대는 2014년 도네츠크에서 창설된 친러시아 분리주의 무장 조직으로, 돈바스 지역 주요 전투에 참여하고 전쟁 범죄 혐의를 받았다. -
2014년 우크라이나 친러시아 분쟁 -
우익 섹터
우익 섹터는 2013년 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 단체들이 연합하여 결성된 정치 조직으로, 유로마이단 시위 참여, 민족 국가 건설 목표, 극우 성향 논란, 우크라이나 동부 전쟁 참전 등의 활동을 했으나, 선거에서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 배경
유로마이단 시위와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 이후, 러시아어권인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에서 대규모 사회적 불안이 발생했다. 오데사주에서는 산발적인 안티마이단 시위가 있었고, 오데사 인민 공화국 설립 시도도 있었지만, 대부분 평화로운 상태였다. 도네츠크주 상황이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독립으로 악화되자, 친우크라이나 시위대가 오데사에서 연합 집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3. 전개
FC 초르노모레츠 오데사와 FC 메탈리스트 하르키우 팬 연합을 포함한 1,500명이 오데사의 소보르나야 광장에 모여 '국가 단결을 위한 행진'을 시작했다. 지역 정부에 따르면, 도시로 접근하는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을 실은 버스가 억류되었고, 탑승 그룹들은 경찰 고위 관계자의 명령으로 도시에서 추방되었다.
3.1. 충돌의 격화
이 집회는 나중에 야구방망이로 무장한 친러시아 무장 세력의 공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이 사망했다. 양측은 오후 내내 도시 전역에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바리케이드를 세우는 등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분리주의자 세력이 무장하면서 자동 소총을 발포하여 친우크라이나 시위대에서 처음으로 부상자가 발생했다.
3.2. 무역 연합 빌딩 화재
친러시아 무장 세력이 친우크라이나 시위대를 압도하면서, 누군가가 무역 연합 빌딩 밖의 들판에 불을 질렀다. 이후 친러시아 시위대가 건물에 진입하여 점거했다. 이 건물은 5층으로, 오데사 지역 노동 연맹의 본부였으며, 오데사 중심부인 쿠리코보 구에 위치했다.
건물을 방어하던 친러시아 무장 세력은 지붕에서 시위대에게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발포했다. 친우크라이나 시위대는 발포가 이루어진 장소에 화염병을 집중적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화재는 2층과 3층에서 시작되어 건물 전체로 번졌다. 소방차와 소방관 13명이 급히 파견되었지만, 건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화재 진압을 방해했다. 다른 곳에 있던 무장 세력은 창문에서 뛰어내렸지만, 지붕에 있던 친러시아 무장 세력 50명은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무역 연합 빌딩에 갇힌 31명은 불에 타 숨졌다.
4. 사상자
충돌 결과 총 43명이 사망했다. 경찰은 최소 3명 이상이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병원 직원들은 174명이 부상을 입었고, 25명이 중태라고 보고했다. 충돌 결과 130명이 구금되었으며, 불타는 건물에서 탈출한 무장 세력 38명은 경찰에 체포되었다.
TSN 기자는 화재로 사망한 사람들 중 15명은 러시아인이고 5명은 트란스니스트리아인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대부분 사망자의 신원 및 국적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5. 여파
오데사시는 충돌 희생자들을 위해 3일간 국가 애도의 날을 선포했다. 올렉산드르 투르치노우 우크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은 오데사 충돌 희생자들과 도네츠크주 2014년 슬로뱐시크 전투 희생자들을 위해 이틀간 애도의 날을 선포했다.
친러시아계와 친우크라이나계 시위대 양측 모두 충돌 다음 날 불에 타버린 무역 연합 빌딩 앞에 모였다. 약 2,000명의 친러시아 시위대가 "오데사는 러시아의 도시다"라고 외치며 모였고, 경찰과 약간의 몸싸움이 있었다.
내무부 조사 결과, 체포된 172명 중 상당수가 러시아 및 트란스니스트리아 국민으로 확인되었고, 다량의 총기가 압수되었다. 우크라이나 보안원(SBU)은 이번 충돌이 러시아 및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불법 군사 단체"에 의해 조직되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