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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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데사주는 우크라이나 남서부에 위치한 주로, 면적은 약 33,314 km²이며, 흑해 저지대의 일부인 평평한 스텝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1년 독립 국민투표에서 독립 선언에 찬성했으며, 2021년 기준 인구는 약 237만 명이다. 오데사주는 7개의 라이온(지역)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되었으며, 오데사 시, 빌호로드드니스트로프스키 요새, 포템킨 계단, 오데사 오페라 하우스 등 다양한 문화 명소가 있다. 주요 산업은 정유, 화학, 운송, 농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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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사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및 위치 정보 | |
![]() | |
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오데스카 오블라스티 |
로마자 표기 | Odeska oblast |
행정 중심지 | 오데사 |
국가 | 우크라이나 |
지리 | |
면적 | 33,313.69 km² |
면적 순위 | 1위 |
인구 | |
총인구 (2022년) | 2,351,392명 |
인구 순위 | 6위 |
인구 밀도 | auto |
행정 구역 | |
라욘 수 | 26 |
도시 수 (총) | 19 |
지역 도시 수 | 7 |
도시형 정착촌 수 | 33 |
마을 수 | 1138 |
정치 및 정부 | |
주지사 | 올레흐 키페르 |
주의회 의석 수 | 84석 |
주의회 의장 | 흐리호리 디덴코 |
경제 | |
총 GDP | ₴ 2720억 (70억 유로) |
1인당 GDP | ₴ 115,129 (3,000 유로) |
사회 및 기타 정보 | |
HDI (2022년) | 0.740 (높음) |
기타 정보 | |
시간대 | 동유럽 표준시(EET) |
UTC 오프셋 | +2 |
서머타임 | 동유럽 서머타임(EEST) |
UTC 오프셋 (서머타임) | +3 |
우편번호 | 65000-68999 |
지역 번호 | +380-48 |
ISO 코드 | UA-51 |
FIPS 10-4 | UP17 |
공식 웹사이트 | 오데사 주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
오데사주 지역은 신석기 시대부터 여러 문화가 교차하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고대에는 그리스인들이 흑해 연안에 티라스, 니코니움과 같은 식민 도시를 건설했으며, 이후 스키타이, 사르마티아인 등 다양한 민족의 영향을 받았다.
중세 시기에는 슬라브족이 정착하여 키예프 루스(Kievan Rus')의 일부가 되었으며, 몽골 제국, 제노바 공화국,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지배를 차례로 경험했다.
근세에 들어서는 오스만 제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향력 아래 있었으며, 특히 오스만 제국은 이 지역에 Özü Eyaleti|외지 주ota를 설치하기도 했다.[7] 18세기 후반 러시아-튀르키예 전쟁을 거치며 러시아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Новороссия|노보로시야ru 지역의 일부로 개발되었다. 이 과정에서 1794년 오데사 시가 건설되었다.
20세기에는 러시아 혁명과 우크라이나 독립 전쟁의 혼란기를 거쳐 우크라이나 SSR의 일부가 되었다. 1932년 공식적으로 오데사주가 설치되었으나, 홀로도모르(1932-1933)와 NKVD의 폴란드 작전(1937)과 같은 소비에트 정권 하의 비극을 겪기도 했다.[10]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추축국에 의해 점령되어 루마니아가 관리하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총독부에 속했으며, 전후 소비에트 통치가 복원된 후 1954년 남부의 이즈마일주와 통합되었다.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면서 오데사주는 독립 우크라이나의 일부가 되었으며,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에서 주민 대다수가 독립을 지지했다.[11][12]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전쟁의 피해를 겪었으며, 국제 사회의 복구 지원 대상이 되었다.[13]
2. 1. 고대 및 중세

오데사주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증거는 신석기 시대의 구멜니차(Gumelnița), 쿠쿠테니-트리필리아, 우사토보 문화 유적과 매장지에서 발견된다. 또한 청동기 시대 프로토-인도-유럽인들이 남긴 고분과 매장품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기원전 1천년기에는 밀레투스 출신 그리스인들이 흑해 북부 해안을 따라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현재 오데사주에 위치한 티라스(Tyras)와 니코니움(Niconium) 도시가 대표적이다. 그리스인들은 채색된 그릇, 도자기, 조각, 비문, 예술 공예품 등을 남겨 고대 문명의 번영을 보여준다.
같은 시기 흑해 연안 초원에 살았던 스키타이 부족의 문화는 유적과 매장지에서 발견된 유물, 무기, 청동솥, 기타 용기, 장신구 등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서기 1천년기 초에는 사르마티아인들이 스키타이인을 대체했다. 서기 3~4세기에는 체르냐호프 문화(Chernyakhov culture) 유물로 대표되는 부족 연합이 발전했으며, 1천년기 중반부터는 슬라브인의 형성이 시작되었다. 9세기에 동슬라브인들은 키예프(Kyiv)를 중심으로 키예프 루스(Kievan Rus')라는 국가를 세웠다. 이 시기 카자르(Khazars), 폴로브치(Polovtsy), 페체네그(Pechenegs) 등 다양한 민족들이 슬라브인들과 이웃하며 살았다. 9세기부터 14세기에 이르는 키예프 루스 시대의 고고학적 증거는 벨고로드, 카파-테오도시아(Theodosia), 베레잔 섬(Berezan Island)의 정착지와 도시 유물에서 확인된다.
13세기에 몽골이 흑해 연안을 장악했다.
1290년경부터 이 지역 일부는 제노바 공화국(Republic of Genoa)의 영토가 되어 적어도 14세기 중반까지 제노바 상업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6]
15세기 초에는 리투아니아 대공국(Grand Duchy of Lithuania)이 이 지역을 차지했다.
1593년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은 이 지역에 드니프로 주(외쥐 주)를 설치했는데, 비공식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칸국(Khanate of Ukraine)'으로 불리기도 했다.[7] 한편, 현재 오데사주의 북쪽 변두리 지역은 포돌리아(Podolia)의 일부로서 리투아니아 영토로 남아 있다가 1569년 폴란드 왕국에 귀속되었다. 이 지역은 소폴란드 주의 브라츠라우 군에 속하게 되었다. 사브란, 코디마(Kodyma), 요제프그루트(Józefgród)는 폴란드의 사유도시(private town)였으며,[8] 특히 코디마와 요제프그루트는 루보미르스키 가문(Lubomirski family)에 의해 건설되었다.
2. 2. 근세
13세기 몽골의 유럽 침략 이후 흑해 연안 지역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1290년경부터 이 지역 일부는 제노바 공화국의 영토가 되어 적어도 14세기 중반까지 제노바 상업 활동의 중심지로 기능했다.[6]15세기 초에는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이 지역을 획득했다. 그러나 15세기 말(1480년대)에는 오스만 제국의 속국인 크림 칸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특히 남부의 부자크(Budjak) 지방은 몰다비아 공국을 거쳐 오스만 제국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놓이기도 했으며, 이후 약 300년간 우크라이나-폴란드 왕국으로 향하는 이슬람 세력의 주요 침략 거점이 되었다. 1593년 오스만 제국은 이 지역에 Özü Eyaleti|외지브 주ota를 설치했는데, 이는 비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 칸국'으로 불리기도 했다.[7]
한편, 현재 오데사주의 북쪽 변두리는 포돌리아의 일부로서 리투아니아 영토로 남아 있다가, 1569년 루블린 연합 이후 폴란드 왕국에 편입되어 브라츠라우 주의 일부가 되었다. 이 지역의 사브란, 코디마, 요제프그루트(Józefgród) 등은 폴란드의 사유도시였으며, 특히 코디마와 요제프그루트는 루보미르스키 가문에 의해 건설되었다.[8]
18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은 흑해 방면으로의 남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이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여러 차례의 러시아-튀르크 전쟁(1768년~1774년, 1787년~1791년)을 거치면서 오데사주 대부분의 영토는 1791년 러시아 제국의 통제하에 들어갔다. 러시아 측 기록에서는 이 지역을 오차코프 주(Ochakov Oblast)라고 칭했다.[9] 북쪽 변두리 지역은 1793년 폴란드 제2분할 과정에서 러시아에 최종 합병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새로 획득한 영토를 신러시아(Novorossiya)로 명명하고 개발을 시작했으며, 1794년에는 현대 오데사 시의 기초가 되는 항구 도시를 건설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러시아의 지배 아래 코자크와 농민 등 우크라이나인들의 이주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2. 3. 근대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15세기 초에 이 지역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1480년대에 이르러서는 오스만 제국의 속국인 크림 칸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Буджак|부자크uk(Budjak) 지방은 몰도바 공국을 거쳐 오스만 제국의 직접 지배하에 놓였다. 이 지역은 이후 약 300년간 폴란드 왕국으로의 이슬람 세력 침략 거점으로 이용되었다.1569년 루블린 연합 이후, 현재 오데사주의 북쪽 변두리 지역은 포돌리아의 일부로서 폴란드 왕국에 귀속되어 소폴란드 주의 브라츠라우 주에 속하게 되었다. 사브란, 코디마, 발타(과거 Józefgród|요제프그루트pl) 등은 폴란드의 사유도시였으며, 특히 코디마와 요제프그루트는 루보미르스키 가문에 의해 건설되었다.[8] 한편, 1593년 오스만 제국은 이 지역에 드니프로 주(Özü Eyalet)를 설립했는데, 이는 비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 칸국'으로도 불렸다.[7]
18세기 후반, 흑해를 향한 러시아 제국의 남진 정책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러시아-튀르키예 전쟁(1768년-1774년, 1787년-1791년, 1806년-1812년)이 벌어졌고, 그 결과 오데사주 대부분의 영토는 러시아의 통제하에 들어갔다. 1791년에는 흑해 연안 지역이 러시아에 합병되었으며(러시아 측은 이 지역을 오차코프 주(Ochakov Oblast)라고 불렀다[9]), 1793년 폴란드 제2분할을 통해 북쪽 변두리 지역마저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이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신러시아( Новороссия|노보로시야ru, Novorossiya) 지역의 일부가 되었다.

1794년에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항구 도시 오데사가 건설되었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러시아 지배 하의 우크라이나 중북부 지역에서 코사크와 농민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2. 4. 현대
1917년 러시아의 2월 혁명 이후, 오데사 지역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1917년~1918년)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곧 러시아 자원군(백군의 일부)과 볼셰비키 적군에게 차례로 점령당했다. 1918년에는 남부의 부자크 지방이 루마니아에 의해 점령되어 1940년까지 통치되었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이어진 우크라이나 독립 전쟁 끝에, 1920년 소비에트 당국이 오데사주 영토를 완전히 장악하여 우크라이나 SSR에 편입시켰다.1932년 2월 27일, 오데사 구(Okruha), 페르보마이스크 구, 키로보흐라드 구, 미콜라이우 구, 헤르손 구의 5개 구를 통합하여 오데사주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 오데사주는 1932년~1933년의 홀로도모르(대기근)와 1937년 NKVD의 폴란드 작전과 같은 소비에트 정권에 의한 인명 피해를 겪었다.[10] 1937년 소련 중앙집행위원회는 오데사주의 동쪽 지역을 분리하여 미콜라이우주를 신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추축국 세력이 이 지역을 점령했으며, 루마니아가 오데사주를 점령하여 트란스니스트리아 총독부 (1941년~1944년)의 일부로 관리했다. 전쟁이 끝난 후 소비에트 정부는 전쟁 이전의 경계로 오데사주를 다시 복구했다.
1954년 오데사주는 남쪽에 위치한 이즈마일주를 흡수하며 확장되었다. 이즈마일주는 베사라비아의 부자크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1940년 소비에트 연방이 루마니아로부터 베사라비아와 북부 부코비나를 점령한 결과, 베사라비아의 북부와 남부가 우크라이나 SSR에 편입되면서 형성된 지역이었다.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에서 오데사주 투표자의 85.38%가 우크라이나 독립 선언에 찬성하며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지지했다. 2014년 12월 키예프 국제 사회학 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오데사주 인구의 2.3%만이 러시아와의 합병을 지지했고, 91.5%는 이에 반대했으며, 나머지는 의견을 정하지 못했거나 응답하지 않았다.[11] 같은 해 9월 알렉세이 나발니가 보도한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12]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7월 4일부터 5일까지 스위스 루가노에서 열린 국제 우크라이나 복구 회의(URC 2022)에서는 오데사 지역의 재건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13]
3. 지리
오데사주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넓은 면적(약 33314km2)을 가진 주로, 국가 남서부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는 빈니차주와 키로보흐라드주, 동쪽으로는 미콜라이우주, 서쪽으로는 몰도바, 남서쪽으로는 루마니아와 국경을 접하며 남쪽으로는 흑해에 면한다.
지형은 주로 평탄한 스텝 지대(흑해 저지대의 일부)이며, 드니스터강 하구가 주를 가로지르고 남쪽 경계는 다뉴브강과 접한다. 흑해 연안에는 모래 해변, 하구, 석호 등이 발달해 있다. 주 북부에는 포딜리아 고지대의 일부가, 남부에는 연못과 호수가 있는 평야 지대가 나타난다.
비옥한 흑토를 바탕으로 집약적인 농업이 이루어지며, 이는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남서부에는 과수원과 포도밭이 많다. 몰도바 방향으로 돌출된 남부 지역은 부자크라 불리며, 역사적으로 베사라비아의 일부였다.
기후는 전반적으로 대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인다.
3. 1. 지형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오데사주는 약 33314km2의 면적을 차지한다. 이 주는 우크라이나 남서부, 남부그강, 드니스테르강, 도나우강 하구 지역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빈니차주와 키로보흐라드주, 동쪽으로는 미콜라이우주, 서쪽으로는 몰도바, 남서쪽으로는 루마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남쪽으로는 흑해에 면해 있다.오데사주의 지형은 주로 평평한 스텝 지대(흑해 저지대의 일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드니스테르강 하구에 의해 나뉘고 남쪽으로는 다뉴브강과 접한다. 주 북부는 깊은 계곡으로 패인 포딜리아 고지대가 특징이며, 남부는 연못과 호수가 있는 평야가 펼쳐진다. 흑해 연안에는 많은 모래 해변, 하구 및 석호가 발달해 있다.
오데사주를 통과하여 흑해로 흘러드는 하천은 200개가 넘으며, 그중 도나우강, 드니스테르강, 코르디마강, 사우란카강(사우라니강)이 대표적이다.
이 지역의 토양, 특히 흑토는 비옥하여 집약적인 농업이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남서부에는 많은 과수원과 포도밭이 있으며, 다양한 작물이 주 전역에서 재배된다.
몰도바 방향으로 돌출된 남부 지역은 부자크라고 불리는데, 역사적으로 베사라비아의 일부였으며 루마니아 영토였던 시기도 있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로, 1월 평균 기온은 -3.5°C, 7월 평균 기온은 22°C이다.



3. 2. 수계
오데사주는 우크라이나 남서부의 남부그강, 드니스테르강, 다뉴브 강 하구 지역에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흑해와 넓게 접한다. 흑해 연안을 따라서는 많은 모래 해변과 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 그리고 석호들이 발달해 있다. 특히 드니스테르강 하구는 오데사주 내부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지리적 특징이며, 주의 남쪽 경계는 다뉴브 강과 맞닿아 있다.오데사주에는 크고 작은 200여 개의 하천이 흑해로 흘러든다. 이 가운데 규모가 큰 주요 하천으로는 다뉴브 강, 드니스테르강, 코르디마강, 사우란카강(사우라니강) 등이 있다. 이러한 강들은 오데사주의 지형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 북부의 포딜리아 고지대에서는 강물 침식으로 깊게 파인 계곡들을 볼 수 있으며, 남부 평야 지대에는 강과 관련된 연못과 호수가 다수 분포한다.
3. 3. 기후
기후는 대륙성 기후이다. 1월 평균 기온은 -3.5°C이고, 7월 평균 기온은 22°C이다.4. 인문 환경
오데사주는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지역적 특성을 지닌다. 2001년 우크라이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러시아인, 불가리아인, 몰도바인 등 다양한 소수 민족 집단이 함께 거주하고 있다.[27] 자세한 인구 통계, 민족 구성, 언어 및 종교 현황은 하위 문서를 참조할 수 있다.
4. 1. 인구
2021년 초 기준 오데사주의 인구는 2,368,107명이었으며, 이 중 약 43%가 주도인 오데사 시에 거주하고 있었다.우크라이나의 200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당시 오데사주의 인구 통계는 다음과 같다.[24][25][26]
- 총인구: 2,469,000명
- 도시 인구: 1,624,600명 (66%)
- 농촌 인구: 844,400명 (44%)
- 성별 인구:
- * 남성: 1,155,400명 (47%)
- * 여성: 1,313,600명 (53%)
2001년 인구 조사 기준 오데사주의 민족 구성은 다음과 같다.[27]
민족 | 비율 (%) | 인구 수 |
---|---|---|
우크라이나인 | 62.8 | 1,542,300명 |
러시아인 | 20.7 | 508,500명 |
불가리아인 | 6.1 | 150,600명 |
몰도바인 | 5.0 | 123,700명 |
가가우즈인 | 1.1 | 27,600명 |
유대인 | 0.5 | 13,300명 |
벨라루스인 | 0.5 | 12,700명 |
아르메니아인 | 0.3 | 7,400명 |
로마인 | 0.2 | 4,000명 |
4. 2. 민족 구성 (2001년)
2001년 우크라이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이 전체 인구의 62.8%를 차지하며 가장 큰 민족 집단이다. 우크라이나인은 오데사 주도를 포함하여 주의 북부, 중부, 남동부 지역에서 우세한 민족 집단으로 나타난다. 인구의 20.7%를 차지하는 러시아인은 이 지역에서 두 번째로 큰 집단이며 주로 도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다만, 남부 항구 도시인 이즈마일에서는 러시아인이 상대적 다수를 구성한다.상당한 규모의 불가리아인(6.1%)과 몰도바인(5.0%) 소수 민족도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주의 남동부에 분포한다.[14] 오데사주는 우크라이나의 다른 주들에 비해 유대인 비율이 가장 높지만(수도 키이우보다는 낮다), 오데사 시에는 소규모의 그리스계 공동체도 존재한다.
오데사주 내 부자크 지역의 경우, 인구의 21%는 불가리아인, 13%는 몰도바인이 차지하여 독특한 민족 구성을 보인다.
민족 | 비율 (%) | 인구 수 |
---|---|---|
우크라이나인 | 62.8 | 1,542,300명 |
러시아인 | 20.7 | 508,500명 |
불가리아인 | 6.1 | 150,600명 |
몰도바인 | 5.0 | 123,700명 |
가가우즈인 | 1.1 | 27,600명 |
유대인 | 0.5 | 13,300명 |
벨라루스인 | 0.5 | 12,700명 |
아르메니아인 | 0.3 | 7,400명 |
로마인 | 0.2 | 4,000명 |
4. 3. 언어 (2001년, 2022년)
2001년 우크라이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오데사주 인구의 46.3%가 우크라이나어를 모어로 사용하며, 42.0%는 러시아어, 4.9%는 불가리아어, 3.8%는 루마니아어를 모어로 사용한다고 응답했다.[16]2022년 10월 21일부터 27일까지 일코 쿠체리브 민주주의 이니셔티브 재단(Демократичні ініціативиuk)이 실시한 사회학적 조사 결과, 응답자의 57.8%가 우크라이나어를 모어로 꼽았고, 러시아어는 28.8%, 기타 언어는 5.4%였다. 7.9%는 어떤 언어를 모어로 생각하는지 답하기 어렵거나 응답을 거부했다.[17][15]
2023년 7월 10일부터 21일까지 동일 재단이 오데사주에서 실시한 사회학적 조사에 따르면, 집에서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는 응답자의 비율이 2021년 26%에서 42%로 증가한 반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응답자의 비율은 54%로 감소했다. 서비스업(상점, 카페, 이발소, 오락시설)에서의 우크라이나어 의무 사용에 대해서는 59%가 긍정적, 13%가 부정적, 17%가 무관심, 12%가 답변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공공장소에서의 러시아어 노래 공연 허용 여부에 대해서는 30%가 반대, 37%가 찬성, 20%가 무관심, 12%가 답변하기 어렵다고 응답하여 의견이 나뉘었다.[18]
4. 4. 종교 (2015년)
2015년 기준으로 오데사주에서 가장 큰 종교는 동방 정교회로, 인구의 84%가 신자이다.[19] 8%는 무종교이며, 6%는 교파에 속하지 않는 기독교인이다.[19]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는 각각 인구의 0.5%를 차지한다.[19]오데사주의 정교회 공동체는 2015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19]
- 무교파 – 46%
- 모스크바 총대주교청 관할 우크라이나 정교회 – 31%
- 키예프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 – 21%
- 우크라이나 자치 정교회 – 1%
- 불명 – 1%
5. 행정 구역
(km2)
(2015년)[20]
인구만*[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