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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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는 1922년 창단된 러시아의 축구 클럽이다. 소련 시절 2번의 컵 대회 우승(1936, 1957)과 1959년 리그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1950년대 후반 해외 친선 경기를 통해 "축구 대사" 역할을 수행했다. 러시아 시대에는 2002년, 2004년, 2017-18 시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6, 1997, 2000, 2001, 2007, 2015, 2017, 2019, 2021년에 러시아 컵에서 우승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유럽 클럽 협회에서 회원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홈 구장은 RZD 아레나이며, 미하일 갈라크티오노프가 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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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는 1923년에 창단되었다. 초기에는 '카잔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1924년에는 모스크바 철도 시스템의 여러 노선에서 가장 강력한 선수들을 모아 '10월 혁명(KOR)' 클럽을 결성했다. 1931년에는 다시 '카잔카'로 이름을 바꾸었다.[1]
1936년 로코모티프 자발적 스포츠 사회가 창설되면서 '카잔카'의 최고 선수들과 발렌틴 그라나트킨, 니콜라이 일린, 알렉세이 소콜로프 등 강력한 소련 축구 선수들이 팀에 합류했다. 로코모티프는 소비에트 컵 결승에서 디나모 트빌리시를 2-0으로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로코모티프는 성적이 부진하여 소련 제1 리그로 두 번 강등되기도 했지만, 1951년 2위를 기록하며 소비에트 톱 리그로 승격했다. 1957년에는 두 번째 소비에트 컵 우승을, 1959년에는 소련 리그에서 준우승을 달성하며 소련 시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1950년대 후반까지 소련 팀과의 국제 스포츠 교류는 드물었지만, 로코모티프는 1955년부터 세계 각지에서 친선 경기에 참여하며 소련의 "축구 대사"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까지 1부와 2부 리그를 오가는 불안정한 시기를 겪었다. 1960년에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2경기 모두 완패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 로코모티프는 모스크바의 주요 클럽 중 약체로 여겨졌으나, 유리 세민 감독의 지휘 아래 2002년과 2004년에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2002년에는 CSKA 모스크바와 승점이 같아 "골든 매치"를 치렀고, 드미트리 로스코프의 결승골로 클럽 역사상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세민 감독이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떠난 후, 로코모티프는 여러 감독을 거치며 부침을 겪었다. 2009년 세민 감독이 복귀했지만, 2010년 피터 오뎀윙기 이적과 관련된 인종차별 논란이 발생하며 어려움을 겪었다.[3] 이후 여러 감독들이 팀을 이끌었으나, 2013-14 시즌 3위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로코모티프는 UEFA 컵위너스컵에서 1997-98 시즌과 1998-99 시즌에 준결승까지 진출했다.[1]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클럽 협회(ECA)는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3]
로코모티프의 러시아 리그 및 컵 대회, 유럽 클럽 대항전 기록은 다음과 같다.
2. 1. 초기 (1922-1935)
로코모티프는 1922년 '''카잔카'''(모스콥스코-카잔스카야 Zh.D)로 창단되었다. 1924년, 이 클럽은 모스크바 철도 시스템의 여러 노선에서 가장 강력한 축구 선수들을 모아 KOR(10월 혁명 클럽)을 결성했다. 1931년, 클럽은 다시 '''카잔카'''(모스콥스카야-카잔스카야 Zh.D)로 개명되었다.[1]2. 2. 소련 시대 (1936-1991)
1936년 로코모티프 자발적 스포츠 사회가 창설되면서, '카잔카'의 최고 선수들과 발렌틴 그라나트킨, 니콜라이 일린, 알렉세이 소콜로프, 표트르 테렌코프, 미하일 주코프, 일리야 그보즈드코프, 이반 안드레예프 등 당시 강력한 소련 축구 선수들이 팀에 합류했다. 로코모티프는 1936년 5월 22일 디나모 레닌그라드와의 경기로 최초의 소련 축구 클럽 선수권 대회에 데뷔하여, 봄 시즌 5위, 가을 시즌 4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소비에트 컵 결승에서 디나모 트빌리시를 2-0으로 꺾고 첫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로코모티프는 성적이 부진하여 소련 제1 리그로 두 번이나 강등되기도 했지만, 1951년 2위를 기록하며 소비에트 톱 리그로 승격했다. 1957년에는 두 번째 소비에트 컵 우승을 차지했고, 1959년에는 소련 리그에서 준우승을 달성하며 소련 시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1950년대 후반까지 소련 팀과의 국제 스포츠 교류는 드물었지만, 로코모티프는 1955년부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 등 세계 각지에서 친선 경기에 참여하며 소련의 "축구 대사"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개방 정책은 블라디미르 마슬라첸코, 발렌틴 부부킨, 빅토르 보로실로프, 자우르 칼로예프, 유리 코발료프와 같은 최고의 소련 선수들이 팀에 합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선수들이 팀을 떠나면서, 로코모티프는 다시 1980년대 말까지 1부와 2부 리그를 오가는 불안정한 시기를 겪었다.
2. 2. 1. 소련 컵 우승 (1936, 1957)
1936년 로코모티프 자발적 스포츠 사회가 창설되면서 '카잔카'의 최고 선수들과 발렌틴 그라나트킨, 니콜라이 일린, 알렉세이 소콜로프, 표트르 테렌코프, 미하일 주코프, 일리야 그보즈드코프, 이반 안드레예프 등 당시 강력한 소련 축구 선수들이 팀에 합류했다. 로코모티프는 소비에트 컵 결승에서 디나모 트빌리시를 2-0으로 꺾고 첫 번째 소비에트 컵 우승을 차지했다.[1]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로코모티프는 성적이 부진하여 소련 제1 리그로 두 번이나 강등되었다가 1951년 2위를 기록하며 소비에트 톱 리그로 승격했다. 1957년, 로코모티프는 두 번째 소비에트 컵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번 소련 축구의 강자로 떠올랐다.[1]
2. 2. 2. 리그 준우승 (1959)
1957년 로코모티프는 소비에트 컵에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2년 후인 1959년에는 소련 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소련 시대 동안 로코모티프가 기록한 최고 성적이었다.2. 2. 3. 강등과 승격 (1960년대-1980년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로코모티프는 성적이 부진하여 5년 동안 소련 제1 리그로 두 번이나 강등되었다. 1951년 로코모티프는 2위를 차지했고 소비에트 톱 리그로 승격했다. 이는 로코모티프의 두 번째 부활을 알렸고, 1960년대 초반까지 소련 최고 트로피를 놓고 경쟁했다. 1957년 로코모티프는 두 번째로 소비에트 컵에서 우승했고, 2년 후에는 소련 리그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위는 소련 시대 동안 로코모티프가 얻은 최고의 순위였다.그러나 로코모티프의 최고 선수들이 클럽을 떠나면서 다시 몰락했고, 1980년대 말까지 1부와 2부 리그를 오가는 불안정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2. 3. 러시아 시대 (1992-)
1990년대 초, 로코모티프는 모스크바의 주요 클럽 중 약체로 여겨졌으나, 2002년 로코모티프 경기장 건설 이후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유리 세민 감독의 지휘 아래, 로코모티프는 2002년과 2004년에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세민 감독이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떠난 후, 로코모티프는 여러 감독을 거치며 부침을 겪었다. 슬라볼류프 무슬린, 아나톨리 비쇼베츠, 라시드 라히모프 등 여러 감독들이 팀을 이끌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09년 세민 감독이 복귀했지만, 2010년 피터 오뎀윙기 이적과 관련된 인종차별 논란이 발생하며 어려움을 겪었다.[3] 이후 유리 크라스노잔, 조제 코세이로, 슬라벤 빌리치, 레오니트 쿠추크 등 다양한 감독들이 팀을 이끌었으나, 2013-14 시즌 3위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클럽 협회(ECA)는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3]
2. 3. 1. 유리 세민 감독 시대 (1992-2005, 2009-2010, 2016-2020)
1990년대 초, 로코모티프는 모스크바의 주요 클럽 중 "가장 약한 고리"로 여겨질 정도로 경기력과 팬들의 지지가 모두 부족했다. 그러나 2002년, 잉글랜드식 경기장을 닮은 로코모티프 경기장이 건설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같은 해, 로코모티프는 CSKA 모스크바와 승점이 같아 "골든 매치"를 치렀고, 디나모 스타디움에서 주장 드미트리 로스코프의 결승골로 클럽 역사상 첫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년 후인 2004년에도 CSKA를 승점 1점 차로 제치고 다시 한번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2005년, 오랜 기간 팀을 이끌었던 유리 세민 감독이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 위해 팀을 떠났고, 블라디미르 에슈트레코프가 그의 뒤를 이었다. 그러나 로코모티프는 시즌 막바지에 부진하며 3위로 떨어졌고, 에슈트레코프는 해고되었다. 이후 슬라볼류프 무슬린이 클럽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준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해고되었다. 아나톨리 비쇼베츠가 후임으로, 유리 세민은 팀 회장으로 복귀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7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다만, 러시아 컵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세민 감독은 다시 로코모티프의 지휘봉을 잡았고, 좋지 않은 시작에도 불구하고 팀을 회복시켜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0년, 피터 오뎀윙기가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으로 이적한 직후, 로코모티프 팬들이 오뎀윙기의 이적을 축하하며 인종차별적인 현수막을 사용한 사진이 공개되어 논란이 되었다.[3] 이 현수막에는 바나나 그림과 함께 "웨스트 브롬에게 감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3]
2011년, 세민 감독이 다시 팀을 떠났고, 유리 크라스노잔이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크라스노잔 감독은 안지 마하치칼라와의 경기에서 승부 조작 혐의로 해고되었다.[5][6][7] 이후 조제 코세이로, 슬라벤 빌리치, 레오니트 쿠추크 등이 감독을 맡았지만, 로코모티프는 2013-14 시즌 3위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 3. 2. 첫 리그 우승 (2002)
2002년,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와 CSKA 모스크바는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30라운드 종료 후 승점이 같아 우승팀을 가리기 위한 "골든 매치"를 치르게 되었다. 경기는 디나모 스타디움에서 매진된 관중 앞에서 열렸다. 경기에서 로코모티프는 주장 드미트리 로스코프의 슛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이 골은 결국 로코모티프가 클럽 역사상 첫 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3]2. 3. 3. 두 번째 리그 우승 (2004)
2004년, 로코모티프는 도시 라이벌 CSKA를 승점 1점 차로 제치고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에서 우승했다. 로코모티프는 CSKA가 홈에서 디나모에 패한 지 일주일 만에 신니크 야로슬라블을 2-0으로 꺾었다.[3]2. 3. 4. 세 번째 리그 우승 (2017-18)
2011-12 리그 시즌 전에 유리 세민 감독이 클럽을 떠났고, 전 스파르타크 날치크 감독 유리 크라스노잔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2011년 6월 4일, 로코모티프 회장 올가 스모로드스카야는 크라스노잔 감독이 5월 27일 홈에서 안지 마하치칼라에게 1-2로 패한 경기를 승부 조작했다고 의심하여 그를 해고하기로 결정했다는 소문이 퍼졌다.[5][6][7] 당시 로코모티프는 리그 5위였고, 1위 CSKA와 승점 1점 차였다. 7월 6일, 로코모티프 이사회의 회의 후, 크라스노잔의 계약은 "업무 태만"을 이유로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6][7][8][9] 러시아 축구 연맹은 이후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거부했다.[10]블라디미르 마미노프 수석 코치가 다시 3주 동안 임시 감독을 맡았고, 스포르팅 클루브 드 포르투갈 감독직을 임시로 마친 조제 코세이루가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코세이루 감독은 2011-12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시즌이 끝나고 계약을 갱신하지 않기로 클럽이 결정하면서 1년밖에 이 직책을 유지하지 못했다. 크로아티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슬라벤 빌리치가 유로 2012에 자국이 참가한 후 사임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로코모티프는 그를 3년 계약으로 서둘러 영입했다.
하지만 빌리치 감독의 첫 시즌은 또 다른 실망을 안겨주었고, 로코모티프는 9위로 마감하며 러시아 국내 축구의 소련 이후 시대에서 최저 순위를 기록했다. 2013-14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시즌 직전에 빌리치 감독이 해고되었고, 레오니트 쿠추크가 새로운 감독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결국 로코모티프는 기력을 다했고, 시즌 마지막 세 경기에서 단 한 점의 승점만을 얻은 후, 로코모티프는 3위에 만족해야 했다.
2. 3. 5. 유럽 대항전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는 UEFA 컵위너스컵에서 1997-98 시즌과 1998-99 시즌에 준결승까지 진출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1]2. 3. 6.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는 다른 러시아 클럽들과 마찬가지로 유럽 축구계에서 제재를 받았다. 유럽 클럽 협회(ECA)는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3]3. 경기장
로코모티프는 홈 경기를 RZD 아레나에서 치른다. 총 좌석 수는 27,320석이며, 모든 좌석이 지붕으로 덮여 있다. 이 경기장은 2002년 재건축 후 개장했다.[1]
"로코모티프(기관차)"라는 명칭은 철도성의 지원을 받던 것에서 유래하며, 현재도 홈 구장인 로코모티프 스타디움에서 골이 들어가면 커다란 기적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 명물이 되고 있다.[2]
4. 선수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의 선수단은 2024년 12월 11일[12] 기준으로 현재 선수 명단과 임대 선수 명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4. 1. 현재 선수 명단
기준[12]
4. 2. 임대 선수 명단
4. 3. 유명 선수
국제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다. 이름이 굵게 표시된 선수는 로코모티프에서 활약하며 자국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4. 4. 클럽 기록
5. 코칭 스태프
세르게이 알렉세예프
후안 알베르토 피나르 산스
드미트로 크라이토르
안드레이 오스마노프
알렉산드르 크루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