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가브릴로프
1. 개요
유리 가브릴로프는 소련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7세에 축구를 시작하여 FC 디나모 모스크바를 거쳐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며 소련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소비에트 톱리그 득점왕을 두 번 차지했으며, 선수 시절 총 140골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콩고 민주 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경기를 지휘했다.
| 전체 이름 | 유리 바실례비치 가브릴로프 |
|---|---|
| 로마자 표기 | Yuri Vasilyevich Gavrilov |
| 출생일 | 1953년 5월 3일 |
| 출생지 | 소련 세툰 (현재 러시아 오딘초프스키) |
| 키 | 1.85m |
| 포지션 | 은퇴 (과거 미드필더) |
| 1972년 | 이스크라 모스크바 |
|---|---|
| 1973–1976년 | 디나모 모스크바 |
| 1977–1985년 |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
| 1986년 |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
| 1987년 |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
| 1988–1989년 | 포린 팔로토베리트 |
| 1990년 |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
| 1991–1992년 | 아스마랄 모스크바 |
| 1992년 | 프레스냐 모스크바 |
| 1993년 | 인테로스 모스크바 |
| 1994년 | 사투른 라멘스코예 |
| 1995–1996년 | 아그로 키시너우 |
| 1996–1997년 | 스푸만테 크리코바 |
| 출장수 (골) | 이스크라 모스크바: 0 디나모 모스크바: 37 (5)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80 (89)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25 (3)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35 (12) 포린 팔로토베리트: 36 (11) 아스마랄 모스크바: 16 (0) 프레스냐 모스크바: 60 (8) 인테로스 모스크바: 10 (4) 사투른 라멘스코예: 38 (5) 아그로 키시너우: 41 (13) 스푸만테 크리코바: 16 (0) |
| 1978–1985년 | 소련 |
|---|---|
| 출장수 (골) | 46 (10) |
| 1994년 | 사투른 라멘스코예(수석 코치) |
|---|---|
| 1996년 | 아그로 키시너우 (수석 코치) |
| 1996–1997년 | 콘스트루크토룰 키시너우 (수석 코치) |
| 2000년 | 칼로베츠-올림피크 노보시비르스크 |
| 2001년 | 콩고 민주 공화국 |
| 2002년 | 모스트란스가즈 가조프로보드 |
| 2003년 | 토르페토-메탈루르흐 모스크바 (2군 수석 코치) |
| 스포츠 | 남자 축구 |
|---|---|
| 경기 | 하계 올림픽 |
| 동메달 | 1980 모스크바 단체전 |
-
핀란드에 거주한 소련인 -
레오니드 부랴크
레오니드 부랴크는 소련의 오데사 출신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디나모 키예프의 핵심 미드필더로서 1976년 하계 올림픽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으며 소련 올해의 축구 선수 3위, 발롱도르 23위에 오르는 등 공헌을 인정받아 훈장을 수훈했다. -
몰도바에 거주한 러시아인 -
이고리 도브로볼스키
이고리 도브로볼스키는 소련, 독립국가연합, 러시아를 대표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FC 디나모 모스크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에서 활약하며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소속으로 1992-93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국가대표로 1988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월드컵, 유로 대회에 출전했으며 은퇴 후 몰도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등을 역임했다. -
몰도바의 외국인 축구 감독 -
샤르헤이 바로우스키
샤르헤이 바로우스키는 FC 디나모 민스크 선수로 활약하고 소련 국가대표팀으로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벨라루스 국가대표팀과 여러 클럽을 지도하며 우승을 기록한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
몰도바의 외국인 축구 감독 -
이고리 도브로볼스키
이고리 도브로볼스키는 소련, 독립국가연합, 러시아를 대표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FC 디나모 모스크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에서 활약하며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소속으로 1992-93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국가대표로 1988년 하계 올림픽 금메달, 월드컵, 유로 대회에 출전했으며 은퇴 후 몰도바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등을 역임했다.
2. 경력
가브릴로프는 7세 때 이스크라 모스크바 축구 학교에 입학하면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는 이스크라 경기장에서 다른 소년들과 뛰다가 교육 기관장의 추천으로 입학했다. 그는 19세가 되었을 때, 콘스탄틴 베스코프를 따라 아마추어 구단인 이스크라 모스크바에서 디나모 모스크바로 이적했다. 그러나, 디나모는 1970년대에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 디나모 선수단 1군에 자리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브릴로프는 이후 콘스탄틴 베스코프를 다시 따라 1977년에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 입단했다. 가브릴로프는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주 플레이메이커로서, 베스코프가 구축한 선수단에 최적화되었다. 디나모에서 측면을 맡았던 가브릴로프는 스파르타크에서 역할을 바꾸어 적응했고, 소련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미드필더로 손꼽히게 되었다.
그는 공을 물 흐르듯이 잘 넘겼고, 직접 득점에도 능했다. 가브릴로프는 소비에트 톱리그 득점왕으로도 2번 등극했고, 현역 시절에 총 140골을 기록했다.
현역 시절, 가브릴로프는 핀란드의 포린 팔로토베리트와 몰도바의 아그로 키시너우에서도 활약했다.
2001년, 가브릴로프는 콩고 민주 공화국 경기를 1경기 동안 이끌었다. 그는 코트디부아르와의 2002년 월드컵 예선전 경기에서 콩고 민주 공화국을 딱 1경기 지도했다.
2.1. 클럽 경력
유리 가브릴로프는 7세 때 이스크라 모스크바 축구 학교에 입학하면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는 이스크라 경기장에서 다른 소년들과 뛰다가 교육 기관장의 추천으로 입학했다. 그는 19세가 되었을 때, 콘스탄틴 베스코프를 따라 아마추어 구단인 이스크라 모스크바에서 디나모 모스크바로 이적했다. 그러나, 디나모는 1970년대에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 디나모 선수단 1군에 자리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브릴로프는 이후 콘스탄틴 베스코프를 다시 따라 1977년에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 입단했다. 가브릴로프는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주 플레이메이커로서, 베스코프가 구축한 선수단에 최적화되었다. 디나모에서 측면을 맡았던 가브릴로프는 스파르타크에서 역할을 바꾸어 적응했고, 소련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미드필더로 손꼽히게 되었다.
그는 공을 물 흐르듯이 잘 넘겼고, 직접 득점에도 능했다. 가브릴로프는 소비에트 톱리그 득점왕으로도 2번 등극했고, 현역 시절에 총 140골을 기록했다.
현역 시절, 가브릴로프는 핀란드의 포린 팔로토베리트와 몰도바의 아그로 키시너우에서도 활약했다.
2001년, 가브릴로프는 콩고 민주 공화국 경기를 1경기 동안 이끌었다. 그는 코트디부아르와의 2002년 월드컵 예선전 경기에서 콩고 민주 공화국을 딱 1경기 지도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유리 가브릴로프는 7세 때 이스크라 모스크바 축구 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스크라 경기장에서 다른 소년들과 뛰다가 교육 기관장의 추천으로 입학했다. 19세 때 콘스탄틴 베스코프를 따라 아마추어 구단 이스크라 모스크바에서 디나모 모스크바로 이적했다. 그러나 디나모는 1970년대에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 1군에 자리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콘스탄틴 베스코프를 다시 따라 1977년에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 입단했다. 가브릴로프는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주 플레이메이커로서, 베스코프가 구축한 선수단에 최적화되었다. 디나모에서 측면을 맡았던 가브릴로프는 스파르타크에서 역할을 바꾸어 적응했고, 소련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미드필더로 손꼽히게 되었다.
그는 공을 물 흐르듯이 잘 넘겼고, 직접 득점에도 능했다. 가브릴로프는 소비에트 톱리그 득점왕으로도 2번 등극했고, 현역 시절에 총 140골을 기록했다.
현역 시절, 가브릴로프는 핀란드의 포린 팔로토베리트와 몰도바의 아그로 키시너우에서도 활약했다.
2001년에는 콩고 민주 공화국 대표팀을 1경기 동안 이끌었다. 그는 코트디부아르와의 2002년 월드컵 예선전 경기에서 콩고 민주 공화국을 지도했다.
2.3. 감독 경력
유리 가브릴로프는 현역 은퇴 후 감독으로 활동했다. 2001년에 콩고 민주 공화국 감독을 맡아 코트디부아르와의 2002년 월드컵 예선전 경기를 1경기 지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