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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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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국보)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한송사 절터에 있던 고려 시대의 보살상으로,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반환되었다. 흰 대리석으로 제작되었으며, 원통형 보관, 풍만한 얼굴, 미소 등은 고려 초기 10세기에 제작된 다른 보살상들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보물)과 함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후기 학자 이곡의 동유기 기록을 통해 고려 후기까지 문수당에 함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송사는 해일 피해로 폐사되었고, 보살상도 잊혀졌으나, 최근 폐사지 조사에서 화강암 대좌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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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국보)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정면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정면
일반 정보
이름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로마자 표기Gangneung Hansongsaji Seokjobosaljwangsang
영어 이름Stone Seated Bodhisattva from Hansongsa Temple Site, Gangneung
지정 종류국보
지정 번호124
지정일1967년 6월 21일
소재지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우석로 70, 국립춘천박물관 (석사동,국립춘천박물관)
시대고려시대
소유자국유
문화재청 ID11,01240000,32

2. 역사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원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한송사 터에 있던 보살상이다.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반환되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었다가 2002년 국립춘천박물관 개관과 함께 이관되었다.

2. 1. 유래와 제작 배경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원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한송사 터에 있던 보살상이다. 1912년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되돌려 받았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었고, 2002년 국립춘천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이관되었다.

이 불상은 공양상의 형태로 주불을 좌우에서 협시하는 형태로 조영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1호)과 함께 문수보살, 보현보살로 여겨진다.

고려 후기 학자 이곡의 동유기(관동지역 여행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두 석상이 땅 속에서 솟아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고려 후기까지 두 보살상이 문수당이라는 사찰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수당은 이후 문수사로 불렸고, 어느 시점에 한송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문수당이라는 사찰 이름에서 동해안 지역에서 유행한 문수신앙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한송사는 해일 피해로 폐사되었다고 하며, 그 과정에서 보살상 역시 잊혀졌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조사에서 두 보살상과 관련된 두 기의 화강암 대좌가 발견되었지만, 본격적인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송사지가 군부대 관리 지역에 있어 조사도 쉽지 않으며, 일각에서는 현재 한송사지가 실제 사찰 위치가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 2. 한송사의 폐사와 보살상의 수난

이 불상은 원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한송사 터에 있었다.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65년 한일협정 체결에 따라 반환되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었다가 2002년 국립춘천박물관 개관과 함께 이관되었다.

이곡의 《동유기》(관동지역 여행기)에는 경포대에서 강릉으로 이동하여 문수당을 방문했는데, 그곳 땅속에서 솟아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석상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후기까지는 보물 제81호와 함께 두 보살상이 문수당이라는 절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수당은 이후 문수사로 불렸고, 어느 시점에 한송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한송사는 해일 피해로 폐사되었다고 하며, 그 과정에서 보살상도 잊혀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 폐사지 조사에서 두 보살상 관련 화강암 대좌 2기가 모래 속에 파묻힌 채 발견되었다. 다만, 한송사지가 군부대 관리 지역이라 본격적인 발굴은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한송사지로 알려진 곳이 실제 절터가 아니며, 일제강점기 유물 반출 과정에서 잠시 놓아둔 장소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 3. 보살상의 반환과 현재

이 불상은 원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한송사 절터에 있었으나,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따라 반환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었다가, 2002년 국립춘천박물관 개관과 함께 이관되었다. 머리 부분을 붙인 흔적과 이마 부분의 백호(白毫)가 떨어져 나간 손상이 있지만,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3. 특징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주불을 좌우에서 모시는 공양상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한국 석불상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들어지지만, 이 보살상은 흰 대리석으로 제작되어 희귀하다. 대리석 특유의 질감과 색조는 정교한 조각 기법과 어우러져 우아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3. 1. 조형적 특징

머리에는 매우 높은 원통형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관 위로 높이 솟아 있다. 볼이 통통한 네모난 얼굴에는 지긋이 감은 눈이 새겨져 있고,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져 있다. 목에는 세 줄의 굵은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으며, 세 줄의 목걸이(영락장식)가 가슴까지 내려와 우아함을 더한다. 오른손은 검지 손가락을 편 채 연꽃가지를 잡고 가슴까지 들어 올렸으며, 왼손 역시 검지 손가락을 편 채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발은 오른쪽 다리를 안으로 하고 왼쪽 다리를 밖으로 하고 있어서 같은 곳에서 발견된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1호)과 반대이다.

이러한 외형적 특징은 주불을 좌우에서 협시하는 공양상의 형태로 조영된 보살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한국 석불상의 재료가 거의 화강암인데 비하여 이 보살상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점이 특이하다. 재료에서 오는 질감과 색조가 조각 수법과 어우러져 좀 더 우아하고 온화한 기품을 느끼게 한다. 약간 오른쪽으로 향한 듯한 얼굴과 몸은 풍요로우며, 조각 수법 또한 원숙하고 정교하다. 원통형의 보관, 풍만한 얼굴, 입가의 미소 등은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4호)과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인데, 이들보다 한층 더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만든 시기는 고려 초인 10세기로 추정된다.

3. 2. 재료와 조각 기법

이 불상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한국 석불상 재료가 대부분 화강암인 점을 고려하면 특이한 점이다. 재료에서 오는 질감과 색조는 조각 수법과 어우러져 우아하고 온화한 기품을 느끼게 한다. 원통형 보관, 풍만한 얼굴, 입가의 미소 등은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4호)과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러나 이 불상은 그들보다 한층 더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며, 고려 초인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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