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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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승태는 11세기 대리국의 인물로, 양의진의 난을 평정하고 단수휘를 옹립하여 대리국의 군주제를 회복시켰다. 이후 단정명을 옹립하고, 1094년에는 스스로 왕위를 찬탈하여 국호를 대중국으로 바꾸고 연호를 상치로 사용했다. 그는 동생과 아들들을 분봉하고 통치했으나, 1095년 병에 걸려 아들에게 단씨에게 왕위를 돌려줄 것을 유언하고 사망했다. 사후에는 '부유성덕 표정황제'의 시호를 받았으며, 김용의 무협 소설 《천룡팔부》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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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고승태 |
한자 표기 | 高昇泰 |
로마자 표기 | Gao Shengtai |
출생 - 사망 | 1096년 사망 |
왕조 | |
정치 체제 | 대중 |
관직 | |
직책 | 대중 황제 |
재위 기간 | 1094년 – 1096년 |
전임자 | 단정명 (대리국) |
후임자 | 황제 중종 (대리국) |
생애 | |
시대 | 상치 (上治): 1094–1096 |
가문 | |
성 | 고 (高) |
아버지 | 고지승 |
자녀 | 고태명 (高泰明) 고태운 (高泰運) 고태혜 (高泰慧) |
시호 및 묘호 | |
시호 | 부유성덕표정황제 (富有聖德表正皇帝) |
2. 생애
고승태는 악후 고방의 후예로, 점창산 연화봉 기슭의 망용계 출신이다. 대리국에서 청평관 벼슬을 지냈다. 1080년(광안 4년), 상덕제가 양의진에게 살해되자, 아버지 고지승의 명으로 동쪽 군사를 이끌고 양의진을 공격해 멸망시키고 단수휘(상명제)를 황제로 옹립했다. 1081년(상명 원년) 선찬후에 봉해졌다. 이후 아버지와 함께 상명제를 출가시키고 단정명(보정제)에게 양위하게 했다.[1]
1094년(천우 4년), 고승태는 보정제를 폐하고 스스로 황제에 즉위하여[1] 국호를 대중국으로 정했다.[2] 동생 고승상을 선찬부에, 어린 아들 고태현을 영창부, 고태운을 등충부, 고태혜를 선거부에 각각 봉했다. 1095년 상치로 개원했으나, 같은 해 병에 걸려 아들 고태명에게 단씨에게 왕위를 반환하도록 유언하고 세상을 떠났다.[2]
고태명은 단정순(문안제)을 황제로 옹립했고, 이후 대리는 후리라고도 불렸다.[2] 고씨는 대대로 재상을 맡았지만 실권은 고씨에게 있었고, 국인들은 "고국주"라고 칭했다.[2]
2. 1. 초기 생애 및 양의진의 난 진압
1080년, 대리국의 12대 국왕 단련의는 양의진에게 쫓겨나 살해당했다. 양의진은 단련의로부터 왕위를 찬탈했다. 고승태와 그의 아버지인 고지성은 당시 산찬후(현재의 쿤밍)로서 군대를 이끌고 양의진을 공격하여 격파했다. 그들은 단수휘를 왕위에 옹립하여 대리국 군주제를 회복시켰다.1081년, 고지성과 고승태는 단수휘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단정명을 옹립했다.
고승태는 악후 고방의 후예로, 점창산 연화봉 기슭에 위치한 망용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대리국에서 청평관의 지위에 있었으나, 광안 4년 (1080년)에 상덕제가 양의진에게 살해되자, 아버지 고지승의 명을 받아 동쪽의 군사를 이끌고 양의진을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상덕제의 조카인 단수휘를 황제로 옹립했다(상명제). 상명 원년(1081년), 선찬후에 봉해졌다. 아버지와 함께 상명제에게 출가를 강요하고 단정명에게 양위하게 했다.[1] 1094년, 고승태는 단정명에게 왕위를 넘겨받은 후, 대리국의 국호를 "대중국"으로 바꾸고 연호를 "상치"로 사용했다.
2. 2. 대리국 권력 장악
1080년, 대리국의 12대 국왕 단련의는 양의진에게 쫓겨나 살해당했다. 양의진은 단련의로부터 왕위를 찬탈했다. 고승태와 그의 아버지 고지성은 당시 산찬후(현재의 쿤밍)로서 군대를 이끌고 양의진을 공격하여 격파했다. 그들은 단수휘를 왕위에 옹립하여 대리국 군주제를 회복시켰다.1081년, 고지성과 고승태는 단수휘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단정명을 옹립했다.
1094년, 고승태는 단정명에게 왕위를 넘겨받은 후, 대리국의 국호를 "대중국"으로 바꾸고 연호를 "상치"로 사용했다. 1095년 상치로 개원했지만, 같은 해에 병에 걸려, 운남의 여러 부족의 대중국에 대한 반대에 비추어 아들 고태명에게 단씨에게 왕위를 반환하도록 유언하고 세상을 떠났다.[2]
2. 3. 대중국 황제 즉위와 통치
1094년, 고승태는 단정명에게 왕위를 넘겨받은 후, 대리국의 국호를 "대중국"으로 바꾸고 연호를 "상치"로 사용했다.[1] 즉위한 고승태는 동생 고승상을 선찬부에, 어린 아들 고태현을 영창부, 고태운을 등충부, 고태혜를 선거부에 각각 분봉했다. 1095년에 상치로 개원했지만, 같은 해에 병에 걸려, 운남의 여러 부족의 대중에 대한 반대에 비추어 아들 고태명에게 단씨에게 왕위를 반환하도록 유언하고 세상을 떠났다.[2] 고태명은 보정제의 동생 단정순을 황제로 옹립했고(문안제), 대중국에서 복귀한 후의 대리는 후리라고도 불렸으며,[2] 대대로 고씨를 재상으로 삼았지만 실권은 고씨에게 있었으며,[2] 국인들은 "고국주"라고 칭했다.2. 4. 사망과 평가
1096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사망하기 전, 자신의 아들 고태명에게 왕위를 다시 단씨에게 돌려줄 것을 지시했다. 단정순은 단정명의 동생으로 새로운 통치자가 되었고, 왕국의 이전 이름을 되찾았다. 이러한 권력 이양에도 불구하고, 고승태의 친척들과 후손들은 그가 죽은 후에도 대리국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지위를 유지했다. 고승태는 시호 "부유성덕 표정황제"를 받았다.[1][2]3. 소설 속 등장
고승태는 김용의 무협 소설 武俠小說|무협 소설중국어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조연 인물이다.
참조
[1]
서적
滇略
[2]
서적
中華民族小史
[3]
문서
[4]
문서
[5]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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