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령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구주령은 울진군 온정면에 위치한 고개로, 국도 제88호선 상에 휴게소가 있으며 옥녀당 사당이 있다. 구주령 일대에는 백악기 경상 누층군 가송동층의 붉은색 사암층이 드러나 있으며, 반화강암이 관입하고 단층이 발달하는 지질 구조를 보인다. 조선 인조 때 영해부사 딸 옥녀가 구주령에서 죽은 후, 주민들이 그녀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전설이 전해진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영양군 - 수비면
수비면은 경상북도 영양군에 위치하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설치되었고, 발리리에 면 행정복지센터가 있으며, 9개의 법정리와 15개의 행정리로 구성되고, 수비초등학교, 수비중학교, 수비고등학교 등의 교육 기관이 있다. - 영양군 - 경상북도립영양공공도서관
1983년 개관한 경상북도립영양공공도서관은 자료실, 디지털자료실, 문화강좌실, 어린이자료실 등의 시설을 갖춘 공공도서관으로 매주 월요일에 정기 휴관한다. - 국도 제88호선 - 한티로 (영양군)
한티로는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과 수비면을 연결하는 도로로, 영양로, 낙동정맥로, 본신로와 교차하며 백암온천로와 직결되고, 주변에는 한티재, 수비면사무소, 수비초등학교 등이 있다. - 국도 제88호선 - 백암온천로
백암온천로는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과 평해읍을 연결하는 국도 제88호선으로, 한티로와 직결되고 백암온천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이자 온정종합터미널 등의 주요 시설이 위치하며 구주령, 더티재 등의 고개를 지나는 지역 교통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도로이다. - 울진군 - 평해읍
평해읍은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한 읍으로, 1980년 12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동해안의 주요 항구였고, 현재는 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등학교가 위치하며, 국도 제7호선과 국도 제88호선이 지나가고, 울진 월송정과 평해향교 대성전 등의 명소가 있다. - 울진군 - 경상북도립울진공공도서관
경상북도립울진공공도서관은 1974년 울진군 공공도서관으로 개관하여 1991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1996년 신축 이전하여 평생학습관으로 지정, 다양한 자료실과 열람실을 운영한다.
| 구주령 | |
|---|---|
| 구주령 정보 | |
![]() | |
| 해발 | 550 m |
| 소재지 |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
| 산맥 | 태백산맥, 금장지맥 |
| 교통로 | 국도 제88호선 백암온천로, 한티로 |
2. 지리
구주령은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과 영양군 수비면의 경계에 있다.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 구주령 휴게소 일대에는 백악기 경상 누층군 가송동층의 적색 사암층이 대규모로 드러나 있다. 이 퇴적암 지층에서는 층리면을 따라 두께 5m의 반화강암이 암상으로 관입하고 있으며 퇴적층과 관입체는 남-북, 북동, 동-서 주향으로 발달하는 방사상의 사교 이동성 단층들에 의해 절단되는 특이한 지질구조를 보이고 있다.
3. 지질
3. 1. 가송동층
울진군 온정면 외선미리 구주령 휴게소 일대에는 국도 제88호선 도로사면을 따라 백악기 경상 누층군 가송동층의 붉은색 사암층이 대규모로 드러나 있다. 이 퇴적암 지층에서는 층리면을 따라 두께 5m의 반화강암이 암상(巖床; sill)으로 관입하고 있으며 퇴적층과 관입체는 남-북, 북동, 동-서 주향으로 발달하는 방사상의 사교 이동성 단층들에 의해 절단되는 특이한 지질구조를 보이고 있다.[1]

4. 시설
구주령 정상 부근에는 구주령 휴게소와 구주령 비석, 옥녀당 사당이 있다.[1]
4. 1. 구주령 휴게소
국도 제88호선 상에 구주령 휴게소(도로명 주소: 울진군 온정면 백암온천로 67)와 비석이 있고, 고개 정상에는 옥녀당 사당이 있다.[1]4. 2. 옥녀당
고개 정상에는 금장산으로 연결된 등산로와 '옥녀당'이 있는데 여기에는 전설이 얽혀 있다.[1]조선 인조 때 영해부사로 근무하던 황(黃)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옥녀라는 딸이 있었다. 당시 영양은 독자적인 행정구역을 갖지 못하고 영해부에 편속되어 있었는데, 옥녀는 아버지의 명으로 영양 관아(수비)에 중요한 공문서를 전달하러 왔다가 영해로 돌아가는 길에 이 구주령에서 갑자기 병이 들어 나졸들이 급히 구급약으로 치료를 하였으나 하루만에 객사(客死)하고 말았다. 이에 주민들이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죽은 옥녀의 넋을 위로하고 공을 기리기 위해 옥녀가 죽은 이 고개에 무덤을 만들고 사당을 세웠으며, 매년 음력 정월 보름달에 동제(洞祭)를 지내왔다. 옥녀의 무덤에 벌초를 하면 득남(得男)하거나 작은 소원 하나가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와 득남을 원하는 부인들이 몰래 와서 벌초를 하였으며, 무덤이 길목에 있어 고개를 넘는 나그네와 지역 주민들의 정성스러운 관리로 묘의 보존이 잘 되었다. 옥녀 사당은 1995년 수비~온정간 도로 공사시 시멘트 건물로 이전 개축되었으나 민속자료로서의 원형 복구를 염원(念願)하는 지역 주민들의 건의에 의하여 현재의 건물로 복구되었으며, 2002년 5월 옥녀 무덤에 묘비석을 세우고 주변에 조경공사를 실시하였다.[1]
5. 전설
구주령에는 조선 인조 때 영해부사를 지낸 황씨의 딸 옥녀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진다. 옥녀는 아버지의 명으로 영양 관아에 공문서를 전달하고 돌아오던 길에 구주령에서 갑자기 병에 걸려 사망했다. 주민들은 옥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사당을 짓고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에 제사를 지냈다.[1] 옥녀의 무덤에 벌초를 하면 아들을 낳거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어, 사람들이 몰래 벌초를 하기도 했다.
5. 1. 옥녀 전설
고개 정상에는 금장산으로 연결된 등산로와 '옥녀당'이 있는데, 여기에는 전설이 얽혀 있다.[1]조선 인조 때 영해부사로 근무하던 황(黃)씨 성을 가진 사람에게 옥녀라는 딸이 있었다. 당시 영양은 독자적인 행정구역을 갖지 못하고 영해부에 편속되어 있었는데, 옥녀는 아버지의 명으로 영양 관아(수비)에 중요한 공문서를 전달하러 왔다가 영해로 돌아가는 길에 이 구주령에서 갑자기 병이 들어 나졸들이 급히 구급약으로 치료를 하였으나 하루 만에 객사(客死)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꽃다운 나이에 안타깝게 죽은 옥녀의 넋을 위로하고 공을 기리기 위해 옥녀가 죽은 이 고개에 무덤을 만들고 사당을 세웠으며,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에 동제(洞祭)를 지내왔다. 옥녀의 무덤에 벌초를 하면 득남(得男)하거나 작은 소원 하나가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와 득남을 원하는 부인들이 몰래 와서 벌초를 하였으며, 무덤이 길목에 있어 고개를 넘는 나그네와 지역 주민들의 정성스러운 관리로 묘가 잘 보존되었다. 옥녀 사당은 1995년 수비~온정 간 도로 공사 때 시멘트 건물로 이전, 개축되었으나 민속자료로서의 원형 복구를 염원(念願)하는 지역 주민들의 건의에 의하여 현재의 건물로 복구되었으며, 2002년 5월 옥녀 무덤에 묘비석을 세우고 주변에 조경 공사를 실시하였다.[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