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윈샌즈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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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굿윈샌즈 해전은 1652년 5월 29일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함대가 도버 해협에서 우연히 마주치면서 발발한 해전이다. 잉글랜드는 자국 함선에 경례하지 않은 네덜란드 함대에 경고 사격을 가했고, 이에 맞서 네덜란드 함대가 반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는 5시간 동안 치열하게 이어졌지만, 뚜렷한 승패 없이 밤이 되면서 양측 함대는 물러났다. 잉글랜드는 네덜란드 선박 2척을 나포했지만, 네덜란드는 잉글랜드의 해명 요구와 나포 선박 반환 요구를 거부했다. 이 사건은 1652년 7월 10일 잉글랜드가 네덜란드에 전쟁을 선포하는 계기가 되었고, 제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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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2년 분쟁 - 제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제1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은 17세기 중반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공화국 간의 해상 전쟁으로, 잉글랜드의 항해법 통과와 해군 전술 개선으로 네덜란드가 패배하고 웨스트민스터 조약으로 종결되었다.
2. 배경
17세기 중반, 잉글랜드와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였다. 잉글랜드는 네덜란드의 중개 무역을 견제하기 위해 1651년 10월 항해조례를 제정하였다. 이 조치는 잉글랜드와 그 식민지로 들어오는 상품을 잉글랜드 또는 상품 원산지 국가의 선박으로만 운송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당시 해상 무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네덜란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항해조례 이후 네덜란드 상인들은 잉글랜드의 조치에 큰 불만을 품었다. 1652년 초, 조지 에이스큐가 무역 금지령을 어기고 왕당파 식민지인 바베이도스와 거래하던 네덜란드 선박 27척을 나포하면서 양국 간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다.[1]
1652년 5월 29일(율리우스력 5월 19일), 도버 해협 근처에서 마르턴 트롬프 제독이 이끄는 40척의 네덜란드 함대와 로버트 블레이크 제독이 이끄는 25척의 잉글랜드 함대가 우연히 마주쳤다.[1] 올리버 크롬웰은 북해 또는 영국 해협에 있는 모든 외국 함대가 잉글랜드 함선에 경례 (깃발을 내려 인사)할 것을 요구하는 조례를 발표했다.[1] 이는 잉글랜드의 해상 주권을 과시하려는 의도였으나, 네덜란드는 이를 자국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로버트 블레이크는 기함 ''제임스''에서 트롬프의 기함 브레데로데를 향해 세 발의 경고 사격을 가했다. 세 번째 탄이 브레데로데를 명중시켜 선원들에게 부상을 입히자, 트롬프는 즉각 브레데로데에서 광역 사격으로 응사했다.[3] 블레이크도 ''제임스''에서 광역 포격을 퍼부으며 5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다.[3]
양측 함대는 모두 피해를 입었지만, 어두워지면서 네덜란드 함대는 호송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 대형을 유지하며 물러났다. 잉글랜드는 네덜란드 선박 신트 로렌스(Sint Laurensnl)와 신트 마리아(Sint Marianl) 두 척을 나포했다.[1] 그러나 신트 로렌스는 사용되지 않았고, 신트 마리아는 버려졌다가 네덜란드로 반환되었다.[1] 트롬프는 블레이크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나포된 선박의 반환을 요청했지만, 블레이크는 이를 거부했다.[1]
굿윈 샌즈 해전 이후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1652년 7월 10일(율리우스력 7월 8일) 잉글랜드 연방은 네덜란드에 전쟁을 선포했다.[1] 이로써 제1차 영란전쟁이 시작되었다.
3. 전투의 발단
트롬프는 잉글랜드 함대에 경례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깃발을 내리지 않았다. 이에 블레이크는 경고 사격을 가했고,[1] 세 번째 경고탄이 트롬프의 기함 브레데로데에 명중하면서 양측 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2][3]
4. 전투 경과
태킹을 하던 중, ''브레데로데''는 ''보나벤처''와 격렬하게 접촉했고, 근접전이 벌어져 트롬프의 승무원이 공격자들을 격퇴했다. 이때 ''갈랜드''가 ''브레데로데''의 반대편으로 와서 ''보나벤처''와 ''갈랜드'' 사이에 끼이게 되었다. 요한 에버츠는 트롬프의 위기를 파악하고 자신의 배를 ''보나벤처'' 바로 옆에 위치시켜 일제 사격을 가하여 모든 돛대를 절단했다.[4]
밤이 되면서 양측 함대는 뚜렷한 승패 없이 물러났다.[5]
5. 전투 결과
6. 전쟁 발발
7. 교전 함선
굿윈샌즈 해전에서 잉글랜드 해군은 로버트 블레이크, 앤서니 영, 느헤미야 본이 이끌었으며, 총 24척의 함선과 908문의 대포를 보유했다. 네덜란드 해군은 마르턴 트롬프가 이끌었으며, 총 44척의 선박과 1274문의 대포를 보유했다.[1]
잉글랜드 함대는 세 개의 함대로 나뉘었다. 앤서니 영의 함대는 ''프레지던트''를 포함한 3척,[1] 로버트 블레이크의 함대는 ''제임스''를 기함으로 하여 12척,[1] 느헤미야 본의 함대는 ''앤드루''를 포함한 9척이었다.[1]
네덜란드 함대는 호송선과 다운즈(The Downs)에 있던 함대로 나뉘었다. 다운즈에 있던 함대는 ''브레데로데''를 기함으로 한 31척과 피터 플로리센이 이끄는 12척으로 구성되었다. 호송선은 Groningen|흐로닝언nl 38문 (요리스 반 데르 자안)과 Zeelandia|젤란디아nl 34문 (야콥 휘르뤼트)을 포함한 2척이었다.
7. 1. 잉글랜드 (로버트 블레이크)
잉글랜드 해군은 총 24척의 함선과 908문의 대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함대는 앤서니 영, 로버트 블레이크, 느헤미야 본이 이끌었다.[1]
7. 1. 1. 앤서니 영의 함대
''프레지던트'' 36문 (앤서니 영)7. 1. 2. 로버트 블레이크의 함대 (라이 만)
7. 1. 3. 느헤미야 본의 함대 (다운스)
- ''앤드루'' 56문 (느헤미야 본)
- ''트라이엄프'' 62문 (윌리엄 펜) – 전투 중 좌초
- ''페어팩스'' 52문 (존 로슨)
- ''엔트런스'' 44문
- ''센츄리온'' 36문
- ''어드벤처'' 36문 (앤드루 볼)
- ''어슈어런스'' 40문 (벤자민 블레이크)
- ''그레이하운드'' 20문 (헨리 사우스우드)
- ''세븐 브라더스'' 26문 (고용 상선, 로버트 랜드)
7. 2. 네덜란드 (마르턴 트롬프)
네덜란드 함대는 총 44척의 선박과 1274문의 대포를 보유하고 있었다.[1] 이 함대는 호송선과 다운즈(The Downs)에 있던 함대로 나뉘었다.;다운즈(The Downs)에 있던 함대
;전위:
7. 2. 1. 호송선
- Groningen|흐로닝언nl 38문 (요리스 반 데르 자안)
- Zeelandia|젤란디아nl 34문 (야콥 휘르뤼트)
7. 2. 2. 다운즈(The Downs)에 있던 함대
참조
[1]
서적
Hannay, 1886, pp. 77-78
[2]
서적
Lambert, 2008, p. 52
[3]
서적
Dixon, 1852, pp. 191-192
[4]
서적
Mets, 1902, pp. 162
[5]
서적
Low, 1872, p. 36
[6]
서적
Dixon, 1852, pp. 191-192
[7]
서적
Hannay, 1886, p. 100
[8]
서적
Low, 1872, p. 36
[9]
서적
Britannica,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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