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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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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권환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이후 활동한 시인으로, 본명은 권경완이다. 일본 유학 시절 독서회 사건으로 투옥되었으며, 유학생 잡지 『학조』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김남천, 안막, 임화 등과 교류하며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 동경지부에서 활동했고, 귀국 후에는 카프 소장파로 활동하며 주도권을 장악했다. 1930년대 볼셰비키 예술운동을 주도하며 시와 평론을 발표했고, 여러 차례 검거와 투옥을 겪었다. 해방 후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에서 활동했으며, 6.25 전쟁 직전까지 교편을 잡다가 1954년 폐병으로 사망했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자화상』, 『윤리』, 『동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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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환 - [인물]에 관한 문서
작가 정보
이름권환
권환 작가
권환 작가
본명권경완(權景完)
출생일1903년 1월 6일
출생지대한제국 경상남도 창원군
사망일1954년 7월 30일
사망지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시
국적대한제국→대한민국
장르

2. 생애

권환은 1903년 1월 6일 대한제국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현 창원시)에서 태어나[1], 일본 유학과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 활동, 해방 이후의 문단 활동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야마가타 고등학교와 교토 제국대학 독문과를 졸업하고, KAPF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문학 활동을 펼쳤다. 여러 차례 투옥되기도 했지만, 해방 이후에도 조선문학가동맹에서 활동하며 문학적 열정을 이어갔다.

이 시기 중외일보, 조선일보 등의 기자와 조선여자 의학 강습소(현재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강사, 김해 농장원, 경성 제국대학 도서관 사서 등 직업을 전전하며, 1943년에 첫 시집 『자화상』, 1944년에 『윤리』를 발간했다.

6.25 전쟁 직전까지 마산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54년 7월 30일 마산 요양소에서 폐병으로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2. 1. 초기 생애와 일본 유학

본명은 권경완(權景完)이며, 1903년 1월 6일 대한제국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현 창원시)에서 태어났다.[1] 일본 야마가타 고등학교를 거쳐 교토 제국대학 독문과를 졸업했다. 학부 재학 시절 독서회 사건으로 구금 투옥된 바 있다.

1925년 일본 유학생 잡지 『학조(學潮)』에 작품을 발표하였고, 1929년 『학조』 필화 사건으로 또다시 구속되었다. 이 시기 일본 유학 중이던 김남천, 안막, 임화 등과 교류하며 카프 동경지부인 무신자사에서 활약하는 등 진보적 지식인의 면모를 보였다.

2. 2. KAPF 활동과 문학적 성과

1925년 일본 유학생 잡지 『학조(學潮)』에 작품을 발표하였고, 1929년 『학조』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다.[1] 이 시기 김남천, 안막, 임화 등 일본 유학생들과 교류하며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 도쿄 지부인 무신자사에서 활동하는 등 진보적 지식인의 면모를 보였다.

1930년 임화 등과 함께 귀국, 카프의 소장파로서 구카프계인 박영희, 김기진 등을 따돌리고 카프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가랴거든 가거라」(조선지광, 1930. 3), 「머리를 땅까지 숙일 때까지」(음악과 시, 1930. 8) 등 목적 일변도의 시와 「무산예술운동의 별고와 장래의 전개책」, 「조선예술운동의 당면한 구체적 과정」 등 강경 계급문학적 비평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카프시인집』(1931)에도 참여하여 1930년대 볼셰비키 예술운동의 주도적인 인물로 부상하였다.[1]

1931년 카프 1차 검거 때 체포되어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1935년 제3차 검거 때는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1]

2. 3. 해방 이후 활동과 죽음

해방 후 권환은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 및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을 맡는 등 프로측 문인으로 활약하면서, 1946년에 시집 『동결』을 펴냈다.[1]

6.25 전쟁 직전까지 마산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남로당계 카프 출신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프로문인들의 대거 월북에 편승하지 못하고 있다가 1954년 7월 30일 마산 요양소에서 폐병으로 사망하였다.[1]

3. 주요 작품 목록

제목발표 지면발표 시기
이 꼴이 되다니무산자1929년 5월
가려거든 가거라조선지광1930년 3월
머리를 땅까지 숙일 때까지음악과 시1930년 8월
소년공의 노래『카프시인집』, 집단사1931년
그대『카프시인집』1931년
자화상시집 『자화상』, 조선출판사1943년 8월
한역시집 『자화상』1943년 8월
윤리시집 『윤리』, 성문당서점1944년 12월
고향『횃불』, 우리문핛194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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