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태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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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눈사태 정석은 바둑에서 소목에 한 칸 높은 걸침에 대해 아래 붙임을 하는 수로 시작되는 정석이다. 1927년 기타니 미노루에 의해 알려졌으며, 중앙 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신포석 개발의 일환으로 연구되었다. 소(小) 눈사태와 대(大) 눈사태로 나뉘며, 대 눈사태는 복잡하고 난해한 변화를 보인다.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소 눈사태에서는 흑이 늘어서 집을 확보하는 형태가 많이 사용되고, 대 눈사태는 프로 기사들도 최신 연구를 숙지해야 할 정도로 복잡하게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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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태 정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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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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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 눈사태 정석(雪崩定石)은 바둑에서 정석 중 하나이며, 귀의 돌을 공격할 때, 마치 눈사태가 쏟아지는 듯한 형태를 띠는 변화를 말한다. |
특징 | 수읽기가 복잡하고 변화가 다양하다. 실리와 세력의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 정확한 판단과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 |
로마자 표기 | Nadare Jōseki |
진행 | |
기본 형태 | 흑이 귀에 돌을 둔 후, 백이 씌워오는 수에 대해 흑이 붙여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
변화 | 백이 젖히는 것에 대해 흑이 막는 형태 백이 끊는 것에 대해 흑이 늘어가는 형태 흑이 젖히는 것에 대해 백이 막는 형태 |
주의사항 | |
실리 vs. 세력 | 눈사태 정석은 변화가 복잡하여 실리와 세력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수읽기 | 정확한 수읽기를 통해 유리한 결과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
응용 | 기본적인 형태 외에도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상황에 맞춰 적절한 변화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
참고 | |
관련 용어 | 정석 포석 수읽기 |
2. 기원과 역사
눈사태 정석은 일본기원이 창립된 지 3년 후인 1927년, 당시 18세였던 기타니 미노루가 처음 사용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2] 기타니는 이 정석을 실험하기 시작했고, 1930년대 일본 바둑에 혁명을 일으킨 신 포석 개발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눈사태" 정석에서 중앙 세력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관심을 초기에 엿볼 수 있다.
기본 형태는 소목에 한 칸 높은 걸침에 흑1로 아래 붙임을 했을 때 백2 - 백4로 진행되는 형태이다. 프로 기사는 과거에 이 형태를 백의 악수로 여겨 두지 않았지만, 아마추어 사이에서는 꽤 자주 두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흑 3 이후 백 4와 같이 두는 것은 "'두 돌 머리에 젖혀라'"라는 바둑 격언에 따라 ''b''에 두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악수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판의 다른 곳의 상황에 따라 백 6은 충분히 둘 만한 수이며, 더 선호될 수도 있다.
기본형은 소목에 대한 한 칸 높은 걸침에 흑 1과 아래 붙임을 했을 때 백 2 - 백 4로 진행되는 형태이다. 프로 기사는 과거에 이 형태를 백의 악수로 여겨 두지 않았지만, 아마추어 사이에서는 꽤 자주 두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쇼와 시대에 들어서, 잡지 『기원』의 투고란에서 아마추어로부터 이 형태에 대한 질문을 받은 하세가와 아키라 명예 8단이 조사해 보니 의외로 어려운 점을 깨닫고 연구하여, 기타니 미노루와의 대국에서 실전에 사용하여 정석화했다.[2] 하세가와 이전에 방원사의 이와사키 겐조가 실전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연구했다고도 전해진다.[3]
이 형태에서 흑의 응수는 a - e가 있으며, 흑 c라면 소 나다레 정석, 흑 d라면 대 나다레 정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나다레의 명명자는 우칭위안 또는 바둑 작가인 미호리 마사시[4]라고 전해진다.
3. 기본 형태 및 전개
쇼와 시대에 들어서, 잡지 『기원』의 투고란에서 아마추어로부터 이 형태에 대한 질문을 받은 하세가와 아키라 명예 8단이 조사해 보니 의외로 어려운 점을 깨닫고 연구하여, 기타니 미노루와의 대국에서 실전에 사용하여 정석화했다[2]。덧붙여, 하세가와 이전에 방원사의 이와사키 겐조가 실전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연구했다고도 전해진다[3]。
흑은 간명하게 갈라지는 형태도 선택할 수 있지만, 전투가 되는 형태에는 '''소(小) 나다레''' 정석, '''대(大) 나다레''' 정석이 있다. 흑의 응수는 a - e가 있으며, 흑 c라면 소(小) 눈사태 정석, 흑 d라면 대(大) 눈사태 정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흑이 a에 두면 간명한 형태가 된다.
나다레의 명명자는 우칭위안 또는 바둑 작가인 미호리 마사시[4]라고 전해진다.
3. 1. 간명한 형태
흑1(a)에 젖히면, 백2로 늘어 흑3, 백4 등으로 되면 간단하게 갈라진다. 백은 흑3까지 수읽기를 할 수도 있다.
흑1(b)의 2단 젖힘은 어떤 형태로, 백2 - 백6까지 흑1을 버림돌로 하여 온건한 갈라짐을 얻는다.
3. 2. 소(小) 눈사태
흑이 1(c)에 두면, 백 2 - 흑 5가 되어 소(小) 나다레 정석이라고 불리는 형태가 된다. 이후, 사활 관계나 주위의 상황에 따라 험난한 접촉전이 벌어진다.
이후, 대표적인 정석의 형태는 아래와 같다.[1] 백 9는 수를 빼고, 도망가는 것을 허용하고 두는 수도 있다.[1]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소(小) 나다레에 대해서는 흑 1과 같이 늘어짐으로 간단하게 집을 확보하는 예가 늘었다.[2] 흑 3에서는, a에 붙여서 윗변을 집으로 만들기도 한다.[2]
3. 3. 대(大) 눈사태
흑이 한 칸 벌리고 백이 젖힌 후, 흑이 끊으면서 시작되는 매우 복잡하고 긴 정석이다. 흑1 (d)에 한 칸 벌리고, 백2를 기다려 흑3으로 끊어 가면, 이후 백4 - 백6이 되면서 대나다레 정석이라고 불리는 형태가 된다. 이후, 흑a의 '''내 꺾기''' 형태, 흑b의 '''외 꺾기''' 형태의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둘 다 난해한 장수 정석이 된다. 초창기에는 외 꺾기가 사용되었지만, 오청원에 의해 내 꺾기가 등장했다. 또한 흑1 시점에서 백이 손을 빼는 경우도 있다.
위 그림에서 백2에, 오른쪽 그림처럼 흑1로 끈기 있게 두면, 더 이상 백이 귀를 공격하지 않는다.[1] 백은 여기까지의 형태를 교환으로 보고 만족하여 더 이상 두지 않거나, 백2 - 백4 등으로 두는 수가 고려될 수 있다.[1]
대나다레 형태는 현재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수와 새로운 정석이 등장하고 있으며, 최신 연구를 모르면 프로라도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2] 2005년 대한민국에서는 아래 그림의 흑1과 같이 놀라운 수도 연구되어 사용되고 있다.[2]
난해한 변화를 피해서 백1, 흑2로 두고, 백3 또는 여기서 손을 빼고 a 등으로 변으로 펼쳐가는 수도 오래전부터 있으며, 2006년경부터 다시 많이 사용되고 있다.[3]
4. 변화 및 이형(異形)
흑의 하변 붙임에 대해 백1로 물러서는 수도 종종 볼 수 있다. 이에 흑2로 다시 기어들면 백3 - 백5로 대눈사태로 진행한다.
소목에 대해 백이 두 칸 높은 걸침을 하고 흑1로 굳혔을 때 백2, 흑3으로 진행하면, 이하 백4 - 백6으로 이것 또한 대눈사태로 진행한다.
5. 현대 바둑에서의 눈사태 정석
1997년 4월 14일 제10기 후지쯔배 세계 바둑 선수권 대회 2회전 왕리청 - 류샤오광 대국에서 흑 1(23수)은 당시 연구되던 바깥으로 꺾는 새로운 형태였다. 흑 15는 느슨한 수였으며, 백 16으로 걸침을 당해 흑 3점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은 함정이었다. 282수 끝, 백 17집 반 승. 왕리청은 눈사태 정석의 손꼽히는 연구가이기도 했는데, 이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6. 실전보
일본기원이 창립된 지 3년 후인 1927년, 당시 18세였던 기타니 미노루는 상대가 자신에게 이 정석을 사용한 후, 이 정석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기타니는 1930년대 일본 바둑에 혁명을 일으킨 신 포석 개발의 선두 주자였으며, "눈사태" 정석에서 중앙 세력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관심을 초기에 엿볼 수 있다.
고 세이겐이 1957년 다카가와 가쿠와의 최강위 결정전에서 발견한 새로운 수는 19세기 초 ''대세''에서의 '비밀병기' 수 이후 가장 유명한 ''정석'' 혁신일 것이다. 이는 이 정석에 대한 현대적이고 집중적인 연구를 촉발했다. 이 수는 선수가 귀를 차지하게 하며, 일반적으로 중앙에서 복잡하고 대규모의 전투로 이어집니다.
- 초기 외 꺾기 정석: 1947년 제4기 본인방전 도전 5번기 제3국 (이와모토 가오루 vs 기타니 미노루)

당시에는 대나다레에 백 1(16수)의 초기 외 굽힘 형태밖에 없었다. 흑 18에서는 그 왼쪽 아래에 두는 것이 당시의 정형이었지만, 선수 기타니는 흑 18, 20으로 격렬한 싸움을 걸었다. 잠시 후에는 백 7로 16에 젖히는 야스나가 하지메 창안이라고 불리는 수가 많이 놓이게 된다. 바둑은 오른쪽 위 전투에서 흑이 유리하게 진행되지만, 중반부터 백이 따라잡아 209수 완, 백 2집 반 승리. 도중에 기타니가 빈혈로 쓰러지는 사고도 있었다. 이와모토는 최종 제5국에서도 승리하여 본인방 2연패를 달성했다.

좌상귀 대 눈사태에서의 흑 1 (37수)이 처음으로 둔 내 굽이 형태로, 그 전까지는 이 수로 3에 두는 외 굽이가 정석이었다. 그 후, 백 2에서는 백 4, 흑 5를 먼저 두는 것이 수순이며, 백 10은 보류하는 등 개량되어 정석형이 되었다. 본국(本局)의 포석에서는 흑이 유리하지만, 선(先)을 잡은 고 세이겐이 어려운 국면을 잘 풀어내 151수까지 중반 승리했다. 고 세이겐은 리그전 8승 2패로 제1기 최강위에 올랐다.
참조
[1]
서적
楽しい囲碁心理学
日本棋院
[2]
서적
ナダレ定石
日本棋院
[3]
서적
ナダレ定石
日本棋院
[4]
서적
黒白縦横
東京書籍
1979
[5]
웹인용
눈사태형정석
https://m.terms.nave[...]
202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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