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조 에이시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니조 에이시는 관백 니조 미치히라와 후지와라노 온시 사이에서 태어났다. 겐코 3년(1333년) 12월 28일에 고다이고 천황의 뇨고가 되었으며, 같은 날 고다이고 천황의 황녀 쇼시 내친왕이 이세 신궁의 재궁으로 정해졌다. 고다이고 천황이 1339년 9월 19일에 붕어한 후, 같은 해 10월에 지도 법친왕의 밑에서 출가하여 안푸쿠도노라고 불렸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무로마치·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후비후궁 - 아노 렌시
고다이고 천황의 후궁이자 고무라카미 천황의 생모인 아노 렌시는 가인으로서 『신엽화가집』에 작품이 실렸으며 남조의 국정에도 참여했으나, 대중문화에서는 '악녀'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하는 일본 남북조 시대의 인물이다. - 무로마치·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후비후궁 - 슌시 내친왕
고다이고 천황의 중궁인 슌시 내친왕은 겐무 신정의 안정을 위해 혼인했으나, 딸 출산 후 겐무 정권의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일찍 사망했으며, 고다이고 천황의 깊은 애정을 받았다. - 니조가 - 니조 요시모토
남북조 시대 공경인 니조 요시모토는 간파쿠와 셋쇼를 역임하며 조정의 안정과 권위 회복에 힘썼고, 렌가에 뛰어났으며, 아시카가 요시미쓰와의 관계를 통해 무가 정권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 니조가 - 니조 야스미치
니조 야스미치는 에도 시대 초기의 공경으로, 도요토미 히데카츠의 외손자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이름을 받았으며, 조정에서 요직을 역임하고 천황 옹립에 관여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하이카이와 교토 가노파 화가들과 교류하는 등 문화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 고다이고 천황의 정실과 측실 - 아노 렌시
고다이고 천황의 후궁이자 고무라카미 천황의 생모인 아노 렌시는 가인으로서 『신엽화가집』에 작품이 실렸으며 남조의 국정에도 참여했으나, 대중문화에서는 '악녀'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하는 일본 남북조 시대의 인물이다. - 고다이고 천황의 정실과 측실 - 니조 다메코
니조 다메코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의 시인이자 권대납언 니조 타메요의 딸로, 레이시 공주를 섬기며 고우다 천황이 주최한 가겐 백수에 참여했고 고다이고 천황이 되는 톤지 친왕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두었으며, 칙찬 가인으로 인정받고 니조파의 가풍을 따른 작품을 창작했으나 요절하여 고다이고 천황의 애도를 받았다.
니조 에이시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인명 | 니조 에이시 |
일본어 표기 | ja |
가문 | 후지와라노 북가쿠죠류 지류 니죠가 |
작위 | 뇨고 |
재위 기간 | 겐코 3년 (1333년) - 엔겐 4년/랴쿠오 2년 (1339년)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엔겐 4년/랴쿠오 2년 (1339년) 10월 이후 |
배우자 | 고다이고 천황 |
아버지 | 니죠 미치히라 |
어머니 | 후지와라노 온시 (종2위 온시(蔭子)) |
칭호 | (정보 없음) |
전체 이름 | (정보 없음) |
신분 | (정보 없음) |
경칭 | (정보 없음) |
어인 | (정보 없음) |
2. 생애
관백, 좌대신을 지낸 니조 미치히라와 종2위 온시 (후지와라노 온시) 사이에서 태어났다.[1] 겐무 신정이 시작되고 약 반년 후인 겐코 3년(1333년) 12월 28일, 고다이고 천황의 뇨고가 되었으며, 같은 날 고다이고 천황의 황녀 쇼시 내친왕이 이세 신궁의 재궁으로 복정(卜定)되었다.[1]
엔겐 4년/랴쿠오 2년(1339년) 8월 16일(1339년 9월 19일) 고다이고 천황이 붕어하자, 그 해 10월 지도 법친왕(고다이고 천황의 숙부)에게서 출가했다.[2] 이때 지도 법친왕이 슬픔에 잠겨 읊은 노래는 『후가와카슈(風雅和歌集)』 잡하에 수록되어 있고, 손엔 법친왕(지도 법친왕 다음 대 쇼렌인 몬제키)도 답가를 지었다.[2] 안푸쿠도노(安福殿)라 칭해졌으며,[2] 그 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2. 1. 뇨고 책봉
겐코 3년(1333년) 12월 28일, 고다이고 천황의 뇨고(女御)가 되었다.[1] 이는 고다이고 천황의 황녀 쇼시 내친왕이 이세 신궁의 재궁으로 복정(卜定)된 것과 같은 날이었다.[1]2. 2. 출가
엔겐 4년/랴쿠오 2년(1339년) 8월 16일(1339년 9월 19일) 고다이고 천황이 붕어하자, 그 해 10월 지도 법친왕(고다이고 천황의 숙부)에게서 출가했다.[2] 이때 지도 법친왕이 슬픔에 잠겨 읊은 노래는 『후가와카슈(風雅和歌集)』 잡하에 수록되어 있다.[1] 손엔 법친왕(지도 법친왕 다음 대 쇼렌인 몬제키)도 답가를 지었다.[2]2. 3. 이후
엔겐 4년/랴쿠오 2년(1339년 9월 19일)에 고다이고 천황이 붕어한 후, 그 해 10월에 지도 법친왕(고다이고 천황의 숙부) 밑에서 출가했다(『후가와카슈(風雅和歌集)』 잡하)[2]。이때 지도가 슬픔에 잠겨 읊은 노래가 『후가와카슈(風雅和歌集)』 잡하에 수록되어 있다[1]。손엔 법친왕(지도의 다음 대 쇼렌인몬제키)도 답가를 지었다[2]。안푸쿠도노(安福殿)라 칭했다(『존비분맥(尊卑分脈)』)[2]。그 후의 행적은 불명이다.
참조
[1]
대일본사료
『大日本史料』6編1冊342–343頁
https://clioimg.hi.u[...]
[2]
대일본사료
『大日本史料』6編5冊776–777頁
https://clioimg.hi.u[...]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