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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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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당산철교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과 마포구 합정동을 잇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철교이다. 1980년 착공하여 1983년 준공되었으며, 1984년 5월 2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전 구간 개통과 함께 운행을 시작했다. 개통 후 안전 문제로 인해 1996년 12월 31일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전면 철거에 들어가 1999년 11월 22일 재개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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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철교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교량 정보
이름당산철교
당산철교
교통 시설서울 지하철 2호선
횡단서울특별시 영등포구와 마포구 사이의 한강
위치서울특별시 영등포구 ~ 마포구
관리서울교통공사
구조구 당산철교 : 3경간 연속 곡현 트러스교
신 당산철교 : 연속 강상형교
길이1,360m
너비10m
착공일구 당산철교 : 1980년 2월
신 당산철교 : 1997년 1월 1일
완공일구 당산철교 : 1983년 11월
신 당산철교 : 1999년 11월 22일
개통일구 당산철교 : 1984년 5월 22일
신 당산철교 : 1999년 11월 22일
폐쇄일구 당산철교 : 1997년 1월 1일
로마자 표기
한국어Dangsan Cheolgyo
매큔-라이샤워 표기법Tangsan Ch'ŏlgyo

2. 연혁


  • 1980년 2월: 착공
  • 1983년 11월: 준공
  • 1984년 5월 2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전 구간 개통으로 운행 시작
  • 1997년 1월 1일: 전면 철거 돌입[2]
  • 1999년 11월 22일: 재개통[3]

2. 1. 건설 및 개통

1980년 2월에 착공하여 1983년 11월에 준공되었다. 1984년 5월 2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전 구간 개통과 함께 운행을 시작하였다. 이후 1997년 1월 1일에 전면 철거에 들어갔으며[2], 1999년 11월 22일에 재개통하였다.[3]

2. 2. 안전 문제 및 재시공

개통 3년 만인 1987년, 트러스 구조의 일부인 사재(斜材)가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열차 하중을 직접 지탱하는 주요 부재는 아니었기에 즉각적인 붕괴 위험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철교를 관리하던 지하철공사 내부에서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2호선 승무원들 사이에서도 당산철교 구간 운행 시 유독 진동이 심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4].

1992년 10월, 자체 점검 과정에서 세로보(Stringer)의 균열 등 구조적인 이상 징후가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실시된 정밀안전진단에서는 열차 하중이 가해지는 가로보(Floor Beam)와 세로보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는 현재 상태로는 교량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가로보와 세로보 교체만으로도 최소 1년간 열차 운행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5][6], 당시 지하철공사는 문제 부위에 임시방편으로 스톱홀(Stop Hole)[7]을 뚫고 해당 구간 운행 속도를 시속 30km/h로 제한하는 소극적인 조치만 취했다.

1994년 10월 21일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당산철교 안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성수대교 붕괴 이후 실시된 당산철교 안전 점검에서는 상판뿐만 아니라 교각 자체에서도 균열이 빠르게 확산되는 등 1992년 진단 당시보다 상황이 훨씬 악화된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균열 확산을 막기 위해 시공했던 스톱홀 공사마저 부적절한 공법 사용 등 비리가 있었음이 드러났고, 심지어 스톱홀을 시공한 부위에서도 균열이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결국 1994년 11월부터는 열차가 시속 30km/h 정도로 서행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져 전면 재시공이 결정되었다.[8]

당초 재시공은 1997년 3월경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이용객이 많은 2호선의 운행 중단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기를 앞당겨 1996년 12월 31일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1997년 1월 1일부터 공사에 착수했다. 이로 인해 당산역합정역 사이 구간의 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 철거 작업 첫날에는 우려했던 대로 교량 일부가 붕괴되는 사고가 있었고, 1997년 5월 22일에는 철거 중이던 상판이 기울어지는 아찔한 상황도 발생했다.[9] 약 3년간의 공사 기간 동안 당산역합정역, 홍대입구역을 임시로 연결하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되었으며, 당산역합정역에는 임시 회차선이 설치되어 열차가 회차 운행했다.

1999년 11월 22일, 약 3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당산철교는 다시 개통되어 현재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다.

3. 구 교량

최초 건설된 당산철교는 서울 지하철 2호선 순환선 개통 계획의 일환으로 건설되었다. 1983년 11월 완공되었고, 1984년 5월부터 열차 운행이 시작되어 2호선 순환 운행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건설 과정에서의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이후 안전성 논란이 제기되는 원인이 되었다.

3. 1. 구조 및 설계 특징

당산철교는 영등포구청역에서 출발하여 지상으로 나온 뒤 당산동을 고가교로 통과하며 한강을 건너는 구간에 위치했다. 한강 상류의 잠실철교와는 달리, 한강 북단인 합정동 측에는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절두산 순교성지)과 외국인 묘지 등이 있어 합정역에 도달하기 전에 지하로 진입하는 선형으로 계획되었다. 이러한 지장물 문제 때문에 합정역 도착 전 지하 접속 구간의 선형 계획은 쉽지 않았고, 어떤 계획안이든 곡선 구간이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초기 계획과 달리 당산역의 위치도 현재와 같이 합정 방향으로 약 200m 가량 조정되었는데, 이는 지상/지하 접속부의 기울기(구배)와 전동차의 등판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

건설 당시, 동쪽의 잠실철교처럼 교량 양측에 편도 2차선 도로를 함께 놓거나 현재의 청담대교와 같은 2층 구조의 철도·도로 병용교 건설 방안도 검토되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이미 양화대교가 있었고, 앞서 언급된 합정동 일대의 지장물 및 주택가 통과 문제, 그리고 강변도로와의 진입 램프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실제 계획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교량의 상부구조는 당산역 쪽 남단과 합정역 쪽 북단 접속부는 지간 40m의 단순 강판형교(Steel Plate Girder Bridge)로, 한강 중심부는 트러스교로 구성되었다. 트러스 구조는 단순 프랫 트러스(Pratt Truss)의 아래쪽을 곡선 형태로 만든 하부 곡현 프랫트러스 구조였다. 전체적으로는 선로가 트러스 아래쪽에 놓이는 하로교(下路橋, Deck Truss) 형태였지만, 교각 위 부분은 선로가 트러스 중간에 놓이는 중로교(中路橋, Half-Through Truss) 형태를 띠었다. 같은 단순 강판형교 구간이라도 남단과 북단은 미세한 차이가 있었는데, 남단은 자갈 없이 레일만 놓인 무도상(無道床) 교량이었고, 북단은 자갈이 깔린 유도상(有道床) 교량이었다.

교량은 1983년 11월에 완공되었으나, 서울 지하철 2호선 전체 공사 지연으로 실제 열차 운행은 1984년 5월에 시작되어 2호선 순환 운행이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건설 과정에서 자재 부족과 시공 능력 미흡 등의 문제로 인해 상부구조를 중심으로 부실 시공된 부분이 발생했고, 이는 훗날 안전성 논란의 원인이 되었다.

3. 2. 시공 상의 문제점

당산철교 건설 당시 상부구조를 중심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자재난과 시공 능력 부족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시공이 부실하게 이루어진 부분이 있었으며, 이는 이후 안전성 논란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4. 안전성 논란과 재시공

개통 초기부터 안전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본격적인 논란은 1992년 점검에서 구조적 결함이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지하철공사는 운행 중단을 피하기 위해 균열 부위에 스톱홀을 뚫는 등[7] 임시방편적인 조치[5][6]를 취했지만,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이후 실시된 정밀 점검에서 상판과 교각의 균열이 심화되는 등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이 확인되었다. 또한 기존의 임시 조치마저 부실 시공 및 관련 비리[8]가 드러나면서 전면 재시공이 결정되었다.

1996년 12월 31일 운행을 마지막으로 1997년 1월 1일부터 재시공에 들어가 당산역-합정역 구간 운행이 중단되었으며, 약 3년간의 공사 끝에 1999년 11월 22일 다시 개통되었다. 재시공 과정에서 철거 중 일부 붕괴나 상판 기울어짐 등의 어려움[9]과 시민 불편이 있었으나, 안전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재개통 이후 당산철교는 현재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다.

4. 1. 초기 안전 문제

개통 3년차인 1987년 트러스교 부분에서 트러스 주부재인 사재(斜材)가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열차 하중을 직접 지탱하는 가로보(Floor Beam)가 연결된 수직재(Vertical Beam)에서 일어난 사고는 아니었기에 당장 큰 위험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철교를 관리하는 지하철공사 내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당산철교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2호선을 운행하는 승무원들 사이에서도 "정상 속도로 운행할 경우 당산철교 구간에서만 진동이 심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4].

결국 개통 8년차인 1992년 10월 자체 점검에서 세로보(Stringer)의 균열 등 구조적 이상 징후가 처음으로 포착되었다. 이후 실시된 정밀안전진단 결과, 열차 하중이 가해지는 가로보와 세로보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는데, 이는 당시 상태로는 교량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로보와 세로보 교체만으로도 최소 1년간 열차 운행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5][6]이었기 때문에, 지하철공사 측은 문제가 발생한 곳에 스톱홀[7]을 뚫고 당산철교 구간 운행 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하는 소극적인 조치 외에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4. 2.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영향

1994년 10월 21일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당산철교의 안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부터 당산철교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내부적인 지적이 있었고[4], 1992년 정밀안전진단에서는 이미 열차 하중을 받는 주요 부재(가로보, 세로보)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었다.[5][6] 당시 지하철공사는 최소 1년간의 운행 중단[5][6]을 피하기 위해 균열 부위에 스톱홀(Stop Hole)[7]을 뚫고 운행 속도를 시속 30km/h로 제한하는 임시 조치만 취한 상태였다.

성수대교 붕괴 이후 실시된 당산철교 정밀 점검 결과, 상황은 1992년 진단 때보다 훨씬 심각해져 있었다. 상판뿐만 아니라 교각 자체에서도 균열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임시방편으로 시행했던 스톱홀 시공마저 부적절한 공법 사용 등 비리가 드러났으며, 심지어 스톱홀을 시공한 곳에서도 균열이 계속 번지고 있었다. 결국 1994년 11월부터는 2호선 전동차가 시속 30km 정도로 서행 운행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고, 전면적인 재시공이 불가피하다는 결정이 내려졌다.[8]

4. 3. 재시공 과정

1992년 10월 자체 점검에서 세로보의 균열 등 구조적 이상 징후가 처음으로 포착되었고, 이후 정밀안전진단 결과 열차 하중을 받는 가로보와 세로보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는 교량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의미였으며, 교체 공사에는 최소 1년의 운행 중단이 필요했다.[5][6] 하지만 당시 교량을 관리하던 지하철공사는 문제 부위에 스톱홀(Stop Hole)[7]을 뚫고 해당 구간 운행 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하는 임시 조치만 취했다.

이후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하면서 당산철교에 대한 안전 점검이 강화되었다. 점검 결과, 상판과 교각 자체의 균열이 빠르게 확산되는 등 1992년 진단 때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균열 확산을 막기 위해 시공했던 스톱홀 공법마저 부적절했으며 관련 비리가 드러났고, 심지어 스톱홀 시공 부위에서도 균열이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결국 1994년 11월부터는 전동차가 시속 30km 정도로 서행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균열이 심각해져 전면 재시공이 결정되었다.[8] 당초 1997년 3월 공사 시작 예정이었으나, 이용객이 많은 서울 지하철 2호선의 특성을 고려하여 시기를 앞당겨 1996년 12월 31일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1997년 1월 1일부터 재시공 공사가 시작되어 당산역합정역 사이 구간 운행이 중단되었다.

철거를 시작한 첫날, 우려했던 대로 당산철교 일부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1997년 5월 22일에는 철거 작업 중 상판이 기울어지는 사고도 있었다.[9] 약 3년간의 공사 기간 동안 당산역합정역, 홍대입구역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되었고,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는 당산역합정역에 설치된 임시 회차선을 이용해 운행되었다. 1999년 11월 22일 당산철교는 성공적으로 재개통되었으며, 현재까지 별다른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다.

참조

[1] 뉴스 32 Reported Dead as Bridge Collapses in Seoul https://www.nytimes.[...] 2022-10-26
[2] 뉴스인용 당산철교 폐쇄...31일밤 마지막 열차 통과 https://n.news.naver[...] 1996-12-31
[3] 뉴스인용 당산철교, 재공사 3년만에 재개통 https://news.kbs.co.[...] 1999-11-22
[4] 뉴스인용 [문근호 기자]당산철교, 어떻게 더욱 튼튼한 다리로 탈바꿈하였을까요? https://m.blog.naver[...] 2021-07-16
[5] 일반텍스트
[6] 일반텍스트
[7] 일반텍스트
[8] 뉴스인용 당산철교 97년 3월께 철거 https://n.news.naver[...] 1995-12-14
[9] 뉴스인용 <현장> 당산철교 `기우뚱'에 市간부들 `가슴 철렁' https://n.news.naver[...] 1997-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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