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본티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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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본티의 저주는 1972년 에어 캐나다 실버 브룸 세계 남자 컬링 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 캐나다와 미국 간의 경기에서 비롯된 징크스이다. 경기 막바지에 미국의 로버트 라본티가 실수로 캐나다 스톤을 건드려 캐나다가 2점을 얻고 연장전 끝에 우승했다. 이후 라본티가 캐나다에 저주를 걸었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캐나다는 1980년까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멜레슈크가 담배를 문 채로 샷을 하는 모습과 함께 컬링 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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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본티의 저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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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의 미신 | |
유형 | 미신 |
관련된 스포츠 | 컬링 |
상세 내용 | |
라본티의 저주 (영문) | Curse of LaBonte |
설명 | 컬링에서, 컬링 스톤을 던질 때 넘어지는 것은 저주로 여겨짐. |
2. 1972년 에어 캐나다 실버 브룸
1972년 에어 캐나다 실버 브룸은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개최된 세계 남자 컬링 선수권 대회이다.
1972년 에어 캐나다 실버 브룸 결승전은 오레스트 멜레슈크가 스킵을 맡은 캐나다 팀과 로버트 라본티가 스킵을 맡은 미국 팀의 대결이었다.[1] 캐나다는 이 대회에서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2] 마지막 엔드에서 캐나다는 2점 뒤지고 있었으며, 동점을 만들기 위해 2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1]
3. 결승전: 캐나다 vs 미국
3. 1. 경기 진행 상황
당시 결승전은 오레스트 멜러슈크가 스킵을 맡은 캐나다팀과 로버트 라본티가 스킵을 맡은 미국팀의 경기였다.[1] 캐나다는 이 대회에서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여겨졌으나,[2] 마지막 엔드에서 미국에 9-7로 두 점 뒤지고 있었다. 연장전으로 가기 위해 캐나다는 마지막 엔드에서 반드시 두 점을 따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엔드에서 해머(마지막 스톤 투구 권한)를 가진 팀은 캐나다였다.[1]
캐나다팀의 스킵 멜러슈크가 마지막 스톤을 던질 차례가 되었을 때, 하우스 안의 스톤 배치는 다음과 같았다. 버튼(중심원)에 가장 가까운 스톤은 미국팀의 것이었고, 그 바로 다음으로 캐나다팀의 스톤이 두 번째로 가까웠다. 그리고 또 다른 미국팀의 스톤 하나가 8피트 원 가장자리에 걸쳐 세 번째로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캐나다가 2점을 얻어 동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멜러슈크가 마지막 스톤으로 버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미국의 스톤을 쳐내면서(테이크아웃), 동시에 자신의 스톤이 8피트 원 안의 다른 미국 스톤보다 버튼에 더 가깝게 멈추도록 해야 했다.
멜러슈크가 던진 스톤은 중앙의 미국 스톤을 정확히 맞혀 밀어냈고, 이후 계속 미끄러져 8피트 원 바깥쪽을 향해 굴러갔다. 스톤이 멈췄을 때, 이 스톤과 8피트 원에 걸쳐 있던 미국 스톤 중 어느 것이 버튼에 더 가까운지 육안으로는 판별하기 어려웠다. 미국팀의 서드(third)였던 프랭크 아산드는 자신들의 스톤이 더 가깝다고 판단하여 승리를 확신하며 환호했다.[1] 하지만 캐나다팀의 서드 데이브 로마노는 계속해서 두 스톤의 위치를 신중하게 비교하며 확인하고 있었다.
로마노가 스톤 위치를 살피는 동안, 미국팀의 스킵 라본티 역시 승리를 예감하고 기뻐하며 뛰어오르다 실수로 얼음에 미끄러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그만 캐나다팀의 스톤을 발로 건드려 위치를 옮기고 말았다. 캐나다의 로마노가 아직 어느 스톤이 더 가까운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라본티가 스톤을 건드렸기 때문에, 컬링 규칙에 따라 심판진은 논란이 된 스톤의 위치를 캐나다에게 유리하게 판정했다. 즉, 캐나다가 2점을 획득한 것으로 인정되어 점수는 9-9 동점이 되었고, 승부는 연장 엔드로 넘어가게 되었다. 비디오 판독으로도 라본티가 건드리기 전 어느 스톤이 더 가까웠는지 명확히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연장 엔드에서 캐나다는 추가로 1점을 더 획득(스틸)하여 최종 스코어 10-9로 미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3] 그러나 이 우승 이후 캐나다는 1980년 대회 전까지 다시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3. 2. 논란의 장면: 라본티의 실수
1972년 에어 캐나다 실버 브룸 결승전은 오레스트 멜러슈크가 스킵을 맡은 캐나다 대표팀과 로버트 라본티가 스킵을 맡은 미국 대표팀 간의 경기였다.[1] 캐나다는 당시까지 무패 행진을 이어왔으나,[2] 결승전 마지막 엔드에서 미국에 2점 뒤지고 있었다. 캐나다는 연장전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엔드에서 반드시 2점을 따내야 했으며, 마지막 스톤을 던질 수 있는 해머를 가지고 있었다.[1]
멜러슈크가 마지막 스톤을 던질 차례가 되었을 때, 하우스 안에는 버튼에 가장 가까운 미국 스톤, 그 다음으로 캐나다 스톤, 그리고 8피트 라인 가장자리에 걸쳐 있는 또 다른 미국 스톤이 위치해 있었다. 캐나다가 2점을 얻기 위해서는, 멜러슈크가 던지는 마지막 스톤이 가장 안쪽의 미국 스톤을 쳐내면서, 동시에 8피트 라인 근처의 다른 미국 스톤보다 버튼에 더 가깝게 멈춰야만 했다.
멜러슈크가 던진 스톤은 목표했던 미국 스톤을 정확히 쳐냈고, 이후 8피트 라인 바깥쪽을 향해 계속 미끄러져 나갔다. 스톤이 멈췄을 때, 이 캐나다 스톤과 8피트 라인 근처에 있던 미국 스톤 중 어느 것이 버튼에 더 가까운지 육안으로는 명확히 판별하기 어려운 애매한 상황이 연출되었다.[1]
미국팀의 서드였던 프랭크 아산드는 자신들의 스톤이 더 가깝다고 판단하여 승리를 확신하며 미리 환호성을 질렀다.[1] 반면, 캐나다팀의 서드 데이브 로마노는 침착하게 두 스톤의 위치를 비교하며 어느 팀이 점수를 획득했는지 신중하게 확인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미국팀의 스킵 라본티 역시 승리를 예감하고 기뻐하며 뛰어오르다가 얼음에 미끄러졌고, 이 과정에서 실수로 아직 위치 판정이 끝나지 않은 캐나다 스톤을 발로 건드리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3]
캐나다의 로마노는 아직 어느 스톤이 더 가까운지에 대해 동의하지 않은 상태였고, 라본티가 스톤을 건드리자 즉시 규정에 따라 공식적인 측정을 요구했다.[3] 측정 결과, 캐나다의 스톤이 미국의 스톤보다 버튼에 더 가까운 것으로 판정되었다. 하지만 라본티가 스톤을 건드리기 전에 실제로 어느 스톤이 더 가까웠는지는 끝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비디오 판독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이 미세한 차이를 정확히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3]
결국 심판진은 규정에 따라 캐나다의 2점 득점을 인정했고, 경기는 9-9 동점으로 연장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어진 연장전에서 캐나다는 1점을 추가로 획득하여 최종 스코어 10-9로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3] 그러나 이 대회 우승 이후 캐나다는 1980년 대회까지 다시 우승하지 못하는 긴 침체기를 겪었다. 이 사건은 라본티의 실수와 당시 기술적 한계가 겹쳐 발생한 컬링 역사상 유명한 논란 중 하나로 남았다.
3. 3. 판정 논란과 캐나다의 승리
당시 결승전은 오레스트 멜러슈크가 스킵을 맡은 캐나다 팀과 로버트 라본티가 스킵을 맡은 미국 팀의 경기였다.[1] 캐나다는 대회 무패를 기록 중이었지만,[2] 마지막 엔드에서 미국에 2점 뒤지고 있었다. 연장전으로 가기 위해 캐나다는 반드시 2점을 따내야 했고, 마지막 스톤을 던질 수 있는 해머를 가지고 있었다.[1]
멜러슈크가 마지막 스톤을 던질 차례가 되었을 때, 하우스 중앙(버튼)에 가장 가까운 스톤은 미국 팀의 것이었고, 캐나다 팀의 스톤이 그 다음으로 가까웠다. 그리고 미국 팀의 또 다른 스톤 하나가 8피트 원 가장자리에 걸쳐 있었다. 캐나다가 2점을 얻어 동점을 만들려면, 멜러슈크의 마지막 스톤이 버튼에 가장 가까운 미국 스톤을 쳐내고, 8피트 원 가장자리에 있는 다른 미국 스톤보다 버튼에 더 가깝게 멈춰야 했다.
멜러슈크가 던진 스톤은 중앙의 미국 스톤을 쳐냈고 8피트 원 바깥쪽으로 굴러갔다. 스톤이 멈췄을 때, 캐나다 스톤과 8피트 원 가장자리에 있던 미국 스톤 중 어느 것이 버튼에 더 가까운지 육안으로는 판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국 팀의 서드(third)인 프랭크 아산드는 승리를 확신하며 환호했다.[1] 반면, 캐나다 팀의 서드인 데이브 로마노는 신중하게 스톤들의 위치를 비교하고 있었다.
로마노가 스톤 위치를 살피는 동안, 승리를 예감한 미국 팀 스킵 라본티 역시 기뻐하며 뛰어오르다가 얼음에 미끄러졌고, 이 과정에서 실수로 캐나다 팀의 스톤을 발로 건드리고 말았다. 로마노는 아직 스톤의 위치에 대한 판정이 내려지기 전이었으므로, 라본티가 스톤을 건드리자 규정에 따라 측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라본티가 스톤을 건드리기 전 두 스톤의 정확한 위치는 비디오 판독으로도 명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컬링 규칙에 따르면 경기 중 스톤이 외부 요인(선수의 신체 접촉 등)에 의해 위치가 변경되었을 경우, 상대 팀에게 유리하게 판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심판진은 건드려진 캐나다 스톤에 유리하게 판정하여 캐나다의 2점 득점을 인정했다.[3]
이 판정으로 캐나다는 2점을 획득하여 9-9 동점을 만들었고, 승부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전에서 캐나다는 1점을 추가로 득점하여 최종 스코어 10-9로 미국을 꺾고 에어 캐나다 실버 브룸 우승을 차지했다.[3] 그러나 이 극적인 우승 이후 캐나다는 1980년 대회 전까지 다시 우승하지 못했다.
4. 라본티의 저주
라본티 사건 이후, 캐나다는 1980년까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는데, 이를 두고 '라본티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났다.[4]
4. 1. 저주의 기원
라본티가 캐나다에 "저주"를 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는 캐나다가 1980년까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4] 캐나다 언론인 래리 터커는 1980년 캐나다의 승리를 설명하기 위해 이 징크스를 만들어낸 것으로 여겨진다.4. 2. 저주의 해소?
이후 라본티가 캐나다에 "저주"를 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실제로 캐나다는 1980년이 되어서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우승할 수 있었다.[4] 캐나다의 언론인 래리 터커는 1980년 캐나다 팀의 승리를 설명하기 위해 이러한 징크스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으로 여겨진다.한편, 비슷한 관점에서 미국에도 또 다른 "저주"가 있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미국에서는 노스다코타주 출신 팀이 오랫동안 세계 컬링 선수권 대회에 미국 대표로 출전하지 못하다가, 1997년에 이르러 랭던 출신의 크레이그 디셔가 이끄는 팀이 비로소 미국을 대표하여 대회에 참가했다.
5. 멜레슈크의 담배
1972년 브라이어 결승전에서 헥터 멜레슈크가 입에 담배를 문 채로 결정적인 샷을 날리는 장면은 시간이 흐르면서 반복적으로 회자되었다. 이 모습은 당시 컬링이 사교적인 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경기 중 흡연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시대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여겨진다.
5. 1. 당시 컬링 문화와 흡연
컬링은 사교적인 게임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술과 담배 소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심지어 엘리트 수준의 경기에서도 경기 중 흡연은 금지되지 않았고 널리 비난받지도 않았다. 헥터 저베이 멜레슈크가 입에 담배를 문 채 결정적인 샷을 날리는 장면은 시간이 흐르면서 반복적으로 회자되며 이러한 과거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흡연에 대한 의학적,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자 컬링계 역시 이미지 쇄신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되었다. 캐나다의 경우, 1927년부터 전국 남자 선수권 대회가 매킬도널드 담배 회사의 후원을 받으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얽히기도 했다. 결국 1980년에 이르러 매킬도널드는 후원사에서 제외되었고(후임은 주요 맥주 회사인 라바트였다), 1980년 라바트 브라이어 대회를 기점으로 경기 중 흡연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는 공교롭게도 라본티의 저주가 깨진 해와 같은 해였다.
멜레슈크 자신은 훗날 선수들이 샷을 날리는 동안 재떨이에 담배를 두면 금방 꺼져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로 담배를 계속 물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TV 재방송을 통해 자신이 흡연하며 샷을 날리는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웠다"고 인정했으며, 이를 계기로 금연을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5. 2. 흡연에 대한 인식 변화
세월이 흐르면서, 헥터 멜레슈크가 입에 담배를 문 채 결정적인 샷을 날린 장면이 반복적으로 상영되면서 이 사건은 더욱 유명해졌다. 컬링은 사교적인 게임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술과 담배 소비와 관련이 깊었다. 심지어 엘리트 수준의 경기에서도 경기장 내 흡연은 금지되지 않았고 널리 비난받지도 않았다.시간이 지나면서 의학적, 사회적 여론이 흡연에 부정적으로 기울자, 컬링 운영 기구들은 게임의 이미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되었다. 캐나다에서는 1927년부터 전국 남자 선수권 대회를 매킬도널드 담배 회사가 후원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쉽지 않았다. 마침내 1980년, 매킬도널드는 후원사에서 교체되었고(비록 새로운 후원사는 주요 맥주 회사인 라바트였지만), 1980년 라바트 브라이어부터 경기 중 흡연이 금지되었다. 이는 공교롭게도 라본티의 저주가 깨진 해와 같았다.
멜레슈크 본인은 나중에 당시 컬링 선수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샷을 날리기 위해 재떨이에 담배를 두는 것을 꺼렸다고 회상했다. 담배를 다시 피우려고 할 때 이미 꺼져서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자신이 담배를 피우며 샷을 날리는 장면의 재방송을 보고 "당황스러웠다"고 인정했으며, 그 결과 금연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6. 1972년 대회가 남긴 유산
1972년 세계 컬링 선수권 대회 결승전은 극적인 승부 자체뿐만 아니라, 이후 컬링 역사에 여러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기억된다. 이 경기는 스포츠맨십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교훈을 남겼으며, 동시에 당시 컬링 문화의 일면과 그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6. 1. 스포츠맨십의 중요성
1972년 세계 컬링 선수권 대회 결승전, 캐나다의 오레스트 멜러슈크 팀과 미국의 로버트 라본티 팀의 경기는 스포츠맨십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마지막 엔드, 미국에 2점 뒤진 캐나다는 동점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2점을 얻어야 했다. 캐나다 스킵 멜러슈크의 마지막 스톤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스톤을 쳐냈지만, 멈춘 위치가 미국의 다른 스톤과 비슷하여 승부를 가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이때 미국 팀의 서드 프랭크 아산드는 승리를 예감하고 환호했다. 스킵 라본티 역시 승리를 확신하며 기뻐하다가 실수로 미끄러지면서 아직 위치 판정이 끝나지 않은 캐나다 팀의 스톤을 발로 건드리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당시 캐나다 팀의 서드 데이브 로마노는 두 스톤의 위치를 신중하게 비교하고 있었고, 아직 승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규칙에 따라, 상대 팀 선수가 판정 전 스톤을 건드릴 경우 해당 스톤은 유리하게 인정받는다. 라본티의 실수로 인해 캐나다는 2점을 획득하여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결국 연장전에서 캐나다가 1점을 더 얻어 10-9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라본티의 순간적인 부주의와 성급한 행동은 팀의 승리를 날려버렸고, 이는 승리 자체만큼이나 경기 규칙을 존중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스포츠맨십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교훈으로 남게 되었다.
6. 2. 컬링 문화의 변화
1972년 결승전에서 캐나다팀의 스킵이었던 오레스트 멜러슈크가 입에 담배를 문 채로 결정적인 샷을 날리는 장면은 이후 반복적으로 상영되면서 유명해졌다. 이는 당시 컬링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컬링은 사교적인 게임으로 시작되었기에 오랫동안 술과 담배 소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심지어 엘리트 수준의 경기에서도 경기장 내 흡연이 금지되거나 널리 비난받지 않았다.시간이 흐르면서 담배에 대한 의학적, 사회적 여론이 부정적으로 변화하자, 컬링 관련 기구들은 게임의 이미지를 쇄신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되었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1927년부터 전국 남자 선수권 대회를 매킬도널드 담배 회사가 후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더욱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마침내 1980년, 매킬도널드는 후원사에서 교체되었고(비록 주요 맥주 회사인 라바트로 바뀌었지만), 1980년 라바트 브라이어 대회를 시작으로 경기 중 흡연이 금지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는 '라본티의 저주'가 깨진 해와 같은 해였다.
멜러슈크 본인은 나중에 선수들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샷을 날리는 동안에도 담배를 계속 물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잠시 재떨이에 두었다가 다시 피우려고 하면 담배가 꺼져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텔레비전 재방송을 통해 자신이 담배를 피우며 샷을 날리는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웠다"고 인정했으며, 이를 계기로 금연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curse' of LaBonte
http://www.cbc.ca/ar[...]
CBC
[2]
웹사이트
World Curling Federation: 1972 Air Canada Silver Broom
http://www.worldcurl[...]
[3]
웹사이트
The Curling News - Labonte Curse
https://www.youtube.[...]
2007-11-16
[4]
웹사이트
The 'curse' of LaBonte
https://www.cbc.ca/a[...]
202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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