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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코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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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이코바츠는 세르비아 콜루바라 구에 위치한 도시이다. 로마 시대 유적과 제1차 세계 대전 중 벌어진 콜루바라 전투의 유물을 포함한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라이코바츠는 한때 중요한 철도 허브였으며, 1908년 개통된 철도 노선을 통해 여러 도시와 연결되었다. 이 도시는 2014년 동남 유럽 홍수와 같은 홍수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는 콜루바라 석탄 광산에서 일하는 주민이 많다. 라이코바츠는 보고바자 수도원과 수차를 포함한 관광 명소로도 알려져 있으며, 세르비아 민요 "이데 밀레 라이코바츠콤 프루곰"의 배경이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2. 역사

야부체, 스코발, 네프리차바, 보고바쟈 등 라이코바츠 주변 마을에는 로마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첼리예에는 잘 보존된 로마 시대 빌라와 주요 영지가 있는 Anine 유적지가 있다. 아니네 유적지는 콜루바라강과 류이그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약 1km 떨어져 있다. 또한 이 지역에는 중세 세르비아 시대, 제1차 세르비아 봉기, 제2차 세르비아 봉기 및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관련된 유물과 기념물들이 남아 있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4년 11월에서 12월 사이에 침략한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와 맞서 싸운 주요 전투인 콜루바라 전투가 이 지역에서 벌어졌다.[6]

2. 1. 철도 교통의 중심지

라이코바츠를 통과하는 첫 번째 철도 노선은 1908년 9월 14일에 운행을 시작한 오브레노바츠에서 발레보까지의 760mm(보스니아 게이지) 협궤 노선이었다.[6] 2년 후인 1910년에는 믈라데노바츠로 가는 노선이 추가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세르비아 정부는 차차크로 가는 노선 건설을 시작했으나, 전쟁 초기 작전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가 도시를 공격하여 많은 기반 시설이 파괴되었지만, 이후 같은 군대가 차차크행 노선 건설을 계속 진행했다. 1921년 전쟁이 끝난 후 차차크 노선이 완공되면서 라이코바츠는 사라예보 및 아드리아 해 항구인 두브로브니크, 헤르체그 노비와 연결되었다. 1928년에는 오브레노바츠 노선이 베오그라드까지 연장되어 라이코바츠는 중요한 철도 중심지로 발전했다.

철도 주변 지역은 빠르게 도시화되었고, 많은 상업 시설, 특히 '카파나'(선술집 또는 작은 식당)가 들어섰다. 1930년대 후반 라이코바츠에는 11개의 카파나가 있었는데, 이는 베오그라드, 아란젤로바츠, 믈라데노바츠, 사라예보 등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라이코바츠에서 열차를 환승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Železnička restoracija"("철도 식당")는 인기가 많았으며, 2018년 3월 기준으로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이곳의 유명한 단골 손님으로는 정치인 메흐메드 스파호와 수학자 미카 페트로비치 알라스가 있었다. 이 시기 라이코바츠는 주요 철도 교차로로서 크게 번영했으며, 오늘날 라이코바츠의 "황금기"로 여겨진다. 당시 마을에는 41개의 철도 선로가 있었고, 10분마다 열차가 도착했으며, 한때 1,500명의 철도원이 근무했다.[6]

표준 궤간을 사용하는 첫 번째 열차는 1968년 7월 7일에 라이코바츠에 도착했다.[7]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 철도의 협궤 노선망이 쇠퇴하면서, 1970년대에는 모든 협궤 노선의 운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베오그라드-바 철도 표준 궤간 노선이 라이코바츠를 통과하게 되었다.

급수탑(별명 ''부조메타르''), 턴테이블, 차량 정비고 및 많은 차량 보관고와 같은 협궤 시대의 인프라 상당 부분이 오늘날에도 도시에 남아 있다.[6] 급수탑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은 여전히 표준 궤간 기관차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이 시설들을 철도 박물관으로 개조하려는 계획이 있다.

2. 2. 홍수 피해

이 도시는 콜루바라강으로 인해 심각한 홍수 피해를 겪었다. 1926년 7월에는 홍수로 농작물이 모두 파괴되고 철도가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또한 2014년에 발생한 2014년 동남 유럽 홍수 때에도 큰 피해를 겪었다.[6]

3. 정착촌

라이코바츠 시 외에도, 다음 정착촌들이 라이코바츠 시에 포함되어 있다.


  • 야부체
  • 라이코바츠 (마을)
  • 보고바자
  • 네프리차바
  • 브라체비치
  • 도니 라이코바츠
  • 루브리브레자
  • 마르코바 크르크바
  • 라트코바츠
  • 프리드보리차
  • 말리 보라크
  • 스코발
  • 페펠레바츠
  • 슬로바츠
  • 스테파네
  • 스트르모보
  • 바예바츠
  • 첼리예

4. 인구

라이코바츠의 연도별 인구 변화[3]
연도194819531961197119811991200220112022
인구17,58718,41118,98518,27017,95017,71617,06215,47513,825


4. 1. 민족 구성

라이코바츠 시의 민족 구성:[4]

민족인구%
세르비아인14,38192.93%
로마7755.01%
몬테네그로인220.14%
유고슬라비아인160.10%
마케도니아인130.08%
크로아티아인110.07%
기타2571.66%
총계15,475


5. 경제 및 인프라

과거에는 철도가 이 지역의 주요 고용 산업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라이코바츠, 라자레바츠, 우브 지역에 걸쳐 있는 콜루바라 석탄 광산이 주요 고용주이다. 그 외 주요 산업으로는 농업(특히 낙농과일 생산), 전선 금속 구조물 및 섬유 제조업 등이 있다. 노천 채광 덕분에 라이코바츠는 세르비아 내에서 평균 임금과 고용률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다음 표는 2017년 기준 핵심 활동별 총 고용자 수를 보여준다.[5]

활동총계
농업, 임업 및 어업29
광업1,313
가공 산업543
전력, 가스 및 수도 분배-
수도 및 폐수 관리 분배84
건설164
도매 및 소매, 수리293
교통, 보관 및 통신112
호텔 및 레스토랑65
미디어 및 통신15
금융 및 보험18
부동산 및 임대4
전문, 과학, 혁신 및 기술 활동50
행정 및 기타 서비스20
행정 및 사회 보장144
교육285
의료 및 사회 복지112
예술, 레저 및 휴양54
기타 서비스39
총계3,344



라이코바츠를 통과하는 첫 번째 철도 노선은 1908년 9월 14일에 운행을 시작한 오브레노바츠에서 발레보까지의 760mm 협궤 노선이었다.[6] 2년 후 믈라데노바츠로 가는 노선이 추가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세르비아 정부는 차차크로 가는 노선 건설을 시작했으나 전쟁으로 중단되었고, 1914년 도시를 점령한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가 건설을 이어갔다. 전쟁 후인 1921년 차차크 노선이 완공되어 라이코바츠는 사라예보 및 아드리아 해 항구인 두브로브니크, 헤르체그 노비와 연결되었다. 1928년에는 오브레노바츠 노선이 베오그라드까지 연장되면서 라이코바츠는 중요한 철도 허브로 발전했다.

철도 주변은 빠르게 도시화되었고, 주로 카파나(전통 식당)가 들어섰다. 1930년대 후반 라이코바츠에는 11개의 카파나가 있었는데, 이는 베오그라드, 아란젤로바츠, 믈라데노바츠, 사라예보 등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이 환승하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Železnička restoracija"(철도 식당)는 2018년 3월까지 운영되었으며, 정치인 메흐메드 스파호와 수학자 미카 페트로비치 알라스 등이 단골이었다. 이 시기는 라이코바츠의 "황금기"로 여겨지며, 마을에 41개의 철도 트랙이 있었고 10분마다 열차가 도착했으며, 한때 1,500명의 철도원이 근무했다.[6]

표준 궤간을 사용하는 첫 열차는 1968년 7월 7일에 도착했다.[7]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 철도의 협궤 노선망이 쇠퇴하면서 1970년대에 모든 협궤 노선 운행이 중단되었고, 동시에 베오그라드-바 철도 표준궤 노선이 라이코바츠를 통과하게 되었다.

급수탑(별명 ''부조메타르''), 턴테이블, 차량 정비고 및 다수의 차량 보관고 등 협궤 시절의 인프라 상당 부분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6] 급수탑을 제외한 시설들은 여전히 표준궤 기관차에 사용되고 있으며, 이 시설들을 철도 박물관으로 개조할 계획이 있다.

5. 1. 관광

마을과 그 인근의 주요 관광 명소로는 보고바자 수도원과 첼리예 마을의 성 조지 기념 교회가 있다.[6]

라이코바츠는 전통적인 수차(vodenica|보데니차srp)로도 유명하다. 2018년 기준으로 여전히 여러 수차가 운영되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관광 명소로 활용된다.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는 ''Jolića vodenica'', ''Kumova vodenica'', ''Ilića vodenica'', ''Sretenovića vodenica'' 등이 있다. 특히 ''Jolića vodenica''에서는 매년 민속 축제인 'Hajdučki rastanak'이 열린다.[6]

6. 갤러리

7. 기타

전통 민요 Ide Mile Lajkovačkom prugom|이데 밀레 라이코바츠콤 프루곰srp("밀레는 라이코바츠 철길을 따라 걷네"라는 뜻)은 이 마을에 관한 노래이다. 이 노래는 세르비아 민요 레퍼토리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토조바츠, 레파 루키치, 샤반 샤울리치, 브라차 바이지 등 많은 가수들이 녹음했다.

참조

[1] 문서 Serbian municipalities 2006
[2] 웹사이트 Census 2022: Total population, by municipalities and cities https://popis2022.st[...]
[3] 웹사이트 2011 Census of Population, Households and Dwellings in the Republic of Serbia http://pod2.stat.gov[...] Statistical Office of the Republic of Serbia 2017-08-18
[4] 웹사이트 Population by ethnicity and sex, by municipalities and cities http://pod2.stat.gov[...] Statistical Office of Serbia 2017-08-18
[5] 웹사이트 ОПШТИНЕ И РЕГИОНИ У РЕПУБЛИЦИ СРБИЈИ, 2018. http://publikacije.s[...] Statistical Office of the Republic of Serbia 2019-03-16
[6] 뉴스 Železničari simbol varoši http://www.politika.[...] 2018-03-25
[7] 뉴스 У Лајковац стигао први воз нормалног колосека 1968-07-08
[8] 웹인용 2011 Census of Population, Households and Dwellings in the Republic of Serbia http://pod2.stat.gov[...] Statistical Office of the Republic of Serbia 2017-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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