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퀠 토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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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퀠 토레스는 1928년 영화 《남해의 하얀 그림자》로 데뷔한 멕시코계 미국인 배우이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초반에 걸쳐 영화, 보드빌, 브로드웨이 등에서 활동했으며, 특히 열대 섬 소녀나 혼혈 미녀 역할을 주로 맡았다. 1935년 사업가 스티븐 에임스와 결혼하며 배우 활동을 중단했다. 1985년 화재로 자택이 피해를 입었고, 1987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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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퀠 토레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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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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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08년 11월 11일 |
출생지 | 에르모시요, 멕시코 |
사망일 | 1987년 8월 10일 (향년 78세) |
사망지 | 말리부, 캘리포니아주, 미국 |
직업 | 배우 |
활동 기간 | 1928년–1936년 |
배우자 | 스티븐 에임스 (결혼 1935년; 사망 1955년) 존 홀 (결혼 1959년; 이혼) (결혼; 이혼) |
2. 초기 생애
토레스는 독일 이민자 아버지와 멕시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멕시코 에르모시요에서 태어났다.[2] 그녀의 어머니는 라퀠이 아주 어렸을 때 사망했고, 이후 가족은 미국으로 이주하여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2] 그녀는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을 따르고 가짜 억양을 사용하는 등, 당시 헐리우드가 요구하는 '라틴계'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2]
라퀠 토레스는 메트로-골드윈-마이어(MGM)가 제작한 초기 유성 영화 《남해의 하얀 그림자》(1928)에서 폴리네시아 미녀 역할로 데뷔했다.[3] 그녀는 이 역할을 위해 300명의 경쟁자를 제쳤으며, 목소리가 녹음된 최초의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4] 이후 아카데미 수상작인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1929)와 서부극 《사막의 기수》(1929) 등에 출연하며 경력을 이어갔다.
3. 경력
1930년대에는 《바다의 박쥐》(1930), 《알로하》(1931) 등에서 이국적인 역할을 주로 맡았으며, 뉴욕에서 보드빌 공연을 하거나 브로드웨이 연극 《아담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1932)에 출연하기도 했다.[5][6] 코미디 영화 《그래서 이것이 아프리카다》(1933)와 마르크스 형제와 함께한 《오리 수프》(1933)를 끝으로, 1935년 사업가 스티븐 에임스와 결혼하며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했다.[7]
3. 1. 초기 경력
토레스는 타히티에서 촬영된 무성 영화이자 메트로-골드윈-마이어(MGM)가 제작한 최초의 음악 및 효과 동기화 장편 영화인 《남해의 하얀 그림자》(1928)에서 폴리네시아 미녀 역을 맡으며 데뷔했다. 그녀는 300명의 지원자를 제치고 이 역할을 따냈으며,[3] "영화 배우를 선발하는 새로운 시스템"의 일환으로 목소리가 녹음된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4]
이듬해인 1929년에는 손턴 와일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부분적으로 소리가 들어간 토키 영화였으며, 토레스는 릴리 다미타와 어니스트 토렌스에 이어 세 번째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이 작품은 무너지는 다리에 갇힌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초기 재난 영화 중 하나로, 아카데미 미술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토레스는 서부극 배우 팀 맥코이의 상대역으로 《사막의 기수》(1929)에 출연하여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토레스는 《바다의 박쥐》(1930)와 《알로하》(1931)에서도 이국적인 섬 소녀나 혼혈 미녀 역할을 맡으며 열대 이미지를 이어갔다. 1931년에는 뉴욕에서 보드빌 공연을 하기도 했다.[5] 1932년에는 브로드웨이 연극 《아담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에서 테레사 역을 맡았다.[6]
1933년에는 코미디 영화 두 편에 출연했다. 《그래서 이것이 아프리카다》에서는 코미디 듀오 버트 휠러와 로버트 울시의 상대역으로, 《오리 수프》에서는 마르크스 형제의 상대역으로 등장했다. 특히 《오리 수프》에서 그루초 막스는 토레스에게 "소들이 집에 올 때까지 당신과 춤을 출 수 있어요. 다시 생각해보니, 당신이 집에 올 때까지 소들과 춤을 추는 게 낫겠어요."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겼다.
토레스는 1935년 사업가 스티븐 에임스와 결혼한 후 갑작스럽게 은퇴했다. 그녀의 남편은 나중에 전후 "B급 영화"를 제작했지만,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영화계로 돌아가지 않았다.[7]
3. 2. 1930년대 활동
토레스는 《바다의 박쥐》(1930)와 《알로하》(1931)에서 다양한 섬 소녀와 혼혈 미녀 역을 맡으며 열대 섬 분위기를 이어갔다. 또한 1931년에는 뉴욕에서 보드빌 공연을 했다.[5] 브로드웨이에서는 《아담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1932)에서 테레사 역을 맡았다.[6]
그녀는 마지막 촬영 해인 1933년, 《그래서 이것이 아프리카다》에서 버트 휠러와 로버트 울시의 코미디 듀오의 조력자 역할을, 《오리 수프》(1933)에서는 마르크스 형제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그루초 마르크스는 "소들이 집에 올 때까지 당신과 춤을 출 수 있어요. 다시 생각해보니, 당신이 집에 올 때까지 소들과 춤을 추는 게 낫겠어요."라는 유명한 대사를 그녀에게 했다.
토레스는 1935년 사업가 스티븐 에임스와 결혼한 후 갑작스럽게 은퇴했다. 그녀의 남편은 나중에 영화 제작자가 되었지만, 그녀는 영화계로 돌아가지 않았다.[7]
4. 사생활
1934년 토레스는 할리우드 파티에서 뉴욕 증권 중개인 스티븐 에임스를 만났다. 당시 에임스는 영화 배우 아드리엔 에임스와 결혼한 상태였고, 토레스는 영화 에이전트 찰스 K. 펠드먼과 함께 파티에 참석했다. 토레스는 감기에 걸려 조용한 구석에서 혼자 있으려 했다. 에임스가 다가와 그녀에게 "왜 그렇게 조용하세요?"라고 물었고, 그녀는 그에게 "머리가 너무 아파요"라고 말했다. 에임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치료법에 대해 설명했고, 배우는 에임스의 배려심에 감사했다. 1년 후 그들은 뉴욕에서 다시 만났다. 에임스는 이혼한 상태였고 토레스는 예정되었던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은 뉴욕과 할리우드에서 여러 번 만났고, 스티븐은 춤을 추던 중 콜로니 클럽(Colony Club)에서 그녀에게 청혼했다. 하룻밤 고민한 후, 토레스는 다음 날 그가 전화를 걸자 그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에임스는 그녀에게 롤스로이스를 선물했고, 2주 후 그들은 결혼했다. 결혼 후 그들은 뉴욕과 플로리다에서 몇 달을 보낸 후, 고급 주거 지역인 로스앤젤레스 벨에어에 2.5acre의 토지를 매입하여 집을 짓고 싶어 했다. 에임스는 1955년에 사망했다.
1959년, 토레스는 1930년대와 1940년대 남태평양 서사시 영화의 영웅으로 알려진 배우 존 홀과 결혼했다.[8] 그들은 몇 년 후 이혼했다.
5. 화재 피해
1985년 10월, 캘리포니아주 말리부에서 발생한 화재로 라스 플로레스 캐년 지역의 여러 가옥이 피해를 입었다. 강풍에 의해 넓은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를 건너온 불티가 라켈 토레스의 집 지붕에 옮겨 붙었다. 그녀의 단층집은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 22350번지에 위치해 있었다. 집은 80% 파괴되었지만, 배우는 무사히 탈출하여 소방관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6. 사망
7. 출연 작품
(내용 없음)
7. 1. 영화
wikitext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
1928 | 남태평양의 하얀 그림자 | 페이웨이 | |
1929 | 샌 루이스 레이의 다리 | 페피타 | 무성 영화와 부분 유성 영화로 개봉, 부분 유성 영화 버전은 유실 |
사막의 기수 | 돌로레스 알바라도 | ||
1930 | 텍사스 달빛 아래서 | 라케라 | |
바다 박쥐 | 니나 | ||
별이 떴다 | 엘비라 로사스 | ||
타임지 | 본인 | 미개봉 | |
1931 | 알로하 | 일라누 | |
1933 | 이것이 아프리카다 | 타르자나 | |
내가 훔친 여자 | 테레시타 | ||
오리 수프 | 베라 마르칼 | ||
붉은 마차 | 시바 프린스 / 스타리나 | ||
1936 | 가자, 젊은이여 | 표류하는 여인의 리코의 여자친구 | 크레딧 없음 |
참조
[1]
간행물
Raquel Torres, Early Talkies Star, Dies at 78
Los Angeles Times
1987-08-11
[2]
서적
Heroes, Lovers, and Others: The Story of Latinos in Hollywood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15-05-10
[3]
뉴스
Lead Is Awarded Monte Blue in Flaherty's 'Southern Skies'
https://www.newspape[...]
2018-11-09
[4]
뉴스
Voice Test for Film Players
https://www.newspape[...]
2018-11-09
[5]
뉴스
Raquel Torres Dies; actress of early sound films
https://www.newspape[...]
2018-11-09
[6]
웹사이트
Raquel Torres
https://www.ibdb.com[...]
The Broadway League
2018-11-10
[7]
웹사이트
Raquel Torres biography
https://www.imdb.com[...]
2024-05-26
[8]
뉴스
Raquel Torres, Early Talkies Star, Dies at 78
https://www.newspape[...]
2018-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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