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회의 (18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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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런던 회의 (1832년)는 1832년 5월 영국 외무장관 팔머스턴 경 주도로 영국, 프랑스, 러시아 외교관들이 모여 그리스의 독립과 관련된 문제를 논의한 회의이다. 회의 결과, 그리스는 군주국으로 결정되었으며, 바이에른 왕국의 오토 왕자가 그리스 국왕으로 추대되었다. 또한 왕위 계승, 그리스와 바이에른의 동군연합 금지, 콘스탄티노플 조약을 통한 그리스-오스만 제국 간 국경 확정 등이 결정되었다. 이 회의는 그리스 독립 전쟁의 종결과 근대 그리스 국가 수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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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회의 (1832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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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
회의 정보 | |
회의 명칭 | 런던 회의 |
개최 연도 | 1832년 |
관련 국가 | 프랑스 영국 러시아 제국 바이에른 왕국 |
회의 목적 | 그리스 왕국 설립 |
주요 내용 | |
그리스 독립 인정 |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그리스 독립 인정 |
그리스 왕국 수립 | 독립적인 그리스 왕국을 수립하기로 결정 |
왕정 형태 결정 | 그리스 왕국의 왕정 형태를 결정 |
국경선 확정 | 그리스 왕국의 국경선을 확정 |
그리스 왕위 계승 | 바이에른의 왕자 오토를 그리스 왕으로 선출 |
결과 및 영향 | |
그리스 왕국 탄생 | 1832년 5월 7일 그리스 왕국 공식 출범 |
유럽 세력 균형 | 유럽의 세력 균형에 영향을 미침 |
추가 정보 | |
관련 조약 | 콘스탄티노플 조약 (1832년) |
2. 역사적 배경
영국, 프랑스 왕국, 러시아 제국의 도움으로 그리스는 그리스 독립 전쟁(1821~1829)에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1830년 2월 3일, 런던 의정서에서 세 열강은 새로운 국가의 국경을 설정했다. 그러나 1831년 그리스 총독 이오아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가 나프프리온에서 암살당하면서 그리스 반도는 혼란에 빠졌다. 열강은 전쟁의 공식적인 종식과 그리스 내 인정받는 정부 구성을 추구했다.
2. 1. 그리스 독립 전쟁과 열강의 개입
그리스 독립 전쟁(1821년–1829년)에서 그리스는 영국, 프랑스 왕국,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1830년 2월 3일 런던 의정서에서 열강 3국은 새로운 국가의 경계를 할당했다. 그러나 그리스 대통령 이오아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가 나프프리온에서 암살되면서 그리스 반도가 혼란에 빠졌다. 열강은 전쟁의 공식적인 종결과 그리스에서 인정받는 정부를 요구했다.2. 2. 1830년 런던 의정서와 그리스의 불안정한 상황
그리스는 영국, 프랑스 왕국, 러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아 그리스 독립 전쟁(1821년–1829년)에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1830년 2월 3일 런던 의정서(London Protocol (1830)영어)에서 열강 3국은 새로운 국가의 경계를 할당했다. 그러나 그리스 대통령 이오아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가 나프프리온에서 암살되면서 그리스 반도가 혼란에 빠졌다. 열강은 전쟁의 공식적인 종결과 그리스에서 인정받는 정부를 요구했다.[1]3. 1832년 런던 회의
1832년 5월, 영국 외무장관 헨리 존 템플 팔머스턴 경은 프랑스와 러시아 외교관들과 회담을 열고, 그리스를 군주국으로 세우기로 결정했다. 회의에서는 바이에른 왕국의 오토 왕자를 그리스의 왕으로 추대하고, 왕위 계승은 오토의 자손에게, 자손이 없을 경우 그의 남동생들에게 돌아가도록 정했다. 또한 그리스와 바이에른의 왕위가 인적 동군연합을 이루는 일은 없도록 결정했다. 군주국의 공동 보증국으로서 열강들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주재 자국 대사들에게 그리스 독립 전쟁을 종결지을 권한을 부여했다.
이후, 1832년 7월 21일, 영국 대사 스트래포드 캐닝 경과 다른 대표들은 콘스탄티노플 조약을 체결하여 아르타-볼로스 선을 따라 새로운 그리스 왕국의 경계를 확정했다.[1]
3. 1. 회의 개최 배경과 주요 참가국
1832년 5월, 영국 외무장관 헨리 존 템플 파머스턴 경은 프랑스와 러시아 외교관들을 소집하여 회담을 열었다. 이 회담에서 이들은 그리스를 군주국으로 세우기로 결정했다. 회의에서는 바이에른 왕국의 오토 왕자를 그리스의 왕으로 추대하기로 제안했다. 또한, 왕위는 오토의 자손에게 이어지며, 자손이 없을 경우에는 그의 남동생들에게 돌아가도록 정해졌다. 어떠한 경우에도 그리스와 바이에른의 왕위가 인적 동군연합을 이루는 일은 없도록 결정되었다. 군주국의 공동 보증국으로서 열강들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주재 자국 대사들에게 그리스 독립 전쟁을 확실하게 종결지을 권한을 부여했다.3. 2. 오토 왕자 추대와 그리스 왕국 수립
1832년 5월, 영국 외무장관 헨리 존 템플 팔머스턴 경은 프랑스 및 러시아 외교관들과 회담을 갖고, 그리스 측과의 협의 없이 그리스를 군주국으로 결정했다. 이 회의에서 바이에른 왕국의 오토 왕자에게 왕위를 제안했다. 또한 왕위 계승은 오토의 자손에게 이어지고, 자손이 없을 경우 그의 남동생들에게 돌아가도록 정했다. 그리스와 바이에른의 왕관이 인적 동군연합을 이루는 경우는 없도록 결정했다. 군주국의 공동 보증국으로서 열강들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자국 대사들에게 그리스 독립 전쟁의 종식을 확보할 권한을 부여했다.[1]1832년 7월 21일, 영국 대사 스트래포드 캐닝 경과 다른 대표들은 콘스탄티노플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아르타-볼로스 선을 따라 새로운 그리스 왕국의 경계를 설정했다.[1]
3. 3. 콘스탄티노플 조약과 그리스-오스만 국경 확정
1832년 7월 21일, 영국 대사 스트래포드 캐닝 경과 다른 대표들은 콘스탄티노플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으로 아르타-볼로스 선을 따라 새로운 그리스 왕국의 국경이 확정되었다.4. 런던 회의의 영향과 역사적 의의
런던 회의는 그리스의 독립을 확정하고, 오스만 제국의 쇠퇴를 가속화했으며, 발칸 반도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더욱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회의는 유럽 열강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 정세에 개입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4. 1. 그리스의 독립과 근대 국가 수립
1832년 5월, 영국 외무장관 헨리 존 템플은 프랑스와 러시아 외교관들을 소집하여 그리스가 군주제 국가여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바이에른 왕국의 오토 왕자를 그리스 왕으로 추대하는 것이 제안되었다. 또한 오토와 그의 자손, 또는 오토에게 후계자가 없을 경우 그의 동생에게 왕위 계승권이 주어지는 계보가 확립되었다. 더불어 그리스 왕위와 바이에른 왕위는 결코 통합되지 않는다는 결정도 내려졌다. 열강들은 군주제 수립을 보장함과 동시에 그리스 독립 전쟁을 확실하게 종결짓기 위해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주재 대사들에게 권한을 부여하였다.1832년 7월 21일, 영국 대사 스트래트포드 캐닝과 다른 대표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조약을 체결하여 아르타-볼로스 선을 새로운 그리스 왕국의 국경선으로 확정하였다.[1]
4. 2.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발칸 반도의 정세 변화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은 점차 쇠퇴하고 있었으며, 발칸 반도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 독립 전쟁이 발발하였고, 열강들은 그리스의 독립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였다. 1832년 5월, 영국 외무장관 헨리 존 템플(제3대 팔머스턴 자작)은 프랑스와 러시아 외교관들을 소집하여 그리스를 군주국으로 만들고, 바이에른 왕국의 오토 왕자를 국왕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오토의 자손이나 동생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고, 그리스 왕위와 바이에른 왕위는 통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열강들은 그리스 독립 전쟁을 확실하게 종결짓기 위해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주재 대사에게 권한을 부여하였다. 1832년 7월 21일, 영국 대사 스트래트포드 캐닝과 다른 대표들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조약을 체결하여 아르타-볼로스 선을 따라 새로운 그리스 왕국의 경계를 확정하였다.[1]
참조
[1]
서적
The foundation of the modern Greek state: Major treaties and conventions, 1830–1947
[2]
서적
Empires and Peninsulas: Southeastern Europe between Karlowitz and the Peace of Adrianople, 1699–1829
https://books.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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