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부인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만월부인은 신라 제35대 왕 경덕왕의 두 번째 왕비이다. 이찬 김순정의 손녀이며, 혜공왕의 어머니이다. 경덕왕의 후궁이 된 후 아들을 얻기 위해 표훈의 도움을 받아 혜공왕을 낳았으며, 혜공왕 즉위 후 태후로서 섭정했으나, 정사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혜공왕이 김지정의 난으로 시해된 이후 만월부인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섭정 기간 동안 신라 왕실의 권위가 약화되고 귀족들의 권력 다툼이 심화되었으며, 이는 신라 하대의 혼란을 예고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신라의 왕비 - 미실
미실은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신라 시대 인물로, 여러 왕과 관계를 맺으며 권력을 행사했고, 그녀의 삶은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로 제작되었으나 실존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다. - 신라의 왕비 - 마야부인 (신라)
신라 진평왕의 왕비인 마야부인은 복승 갈문왕의 딸로 김씨 성에 복힐구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진평왕과의 사이에서 천명공주, 선덕여왕, 선화공주를 낳았다. - 신라의 불교 신자 - 진성여왕
진성여왕은 신라 경문왕의 딸로, 정강왕 사후 887년에 즉위하여 음란한 행실과 국정 문란, 민란 발생으로 혼란을 겪다가 897년 효공왕에게 양위하고 사망했다. - 신라의 불교 신자 - 진덕여왕
진덕여왕은 647년 신라의 제28대 왕으로 즉위하여 김유신과 함께 비담의 난을 진압하고 나당동맹을 통해 백제와 고구려에 대응하다 654년에 사망했다. - 한국의 섭정 - 의친왕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자 순종의 이복 동생인 의친왕은 대한제국의 황족으로서 독립운동에 투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광복 후에는 남북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한 독립운동가이다. - 한국의 섭정 - 광해군
광해군은 조선 제15대 국왕으로, 임진왜란 중 세자로 책봉되어 전란 수습에 기여하고 즉위 후 대북파를 등용,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고 후금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했으나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으며, 대동법 시행, 『동의보감』 편찬 등의 업적과 폐모살제 등의 논란으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만월부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
만월부인 | |
작위 | 신라 왕비 |
재위 | 765년 ~ 778년 |
배우자 | 경덕왕 |
가계 | |
왕조 | 신라 |
부왕 | 알 수 없음 |
모후 | 알 수 없음 |
기타 | |
종교 | 불교 |
2. 가계
만월부인은 신라 왕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조부는 이찬 김순정이며, 아버지는 김의충이다. 남편은 신라 제35대 왕 경덕왕이며, 아들 혜공왕은 신라 제36대 왕이 되었다. 딸로는 경주 김씨 부인이 있었다.
2. 1. 조부모와 부모
구분 | 이름 | 비고 |
---|---|---|
조부 | 김순정(金順貞) | 이찬(伊飡) |
조모 | 수로부인 | |
부친 | 김의충(金義忠) | |
모친 | 미상 |
2. 2. 배우자와 자녀
만월부인(경수태후)은 경덕왕의 첫 번째 왕비인 삼모부인(이찬 순정의 딸)이 아들을 낳지 못해 궁에서 쫓겨난 후, 두 번째 왕비로 간택되었다.[1] 이후, 표훈을 통해 천제에게 간청하여 아들 혜공왕을 낳았다. 혜공왕이 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태후로서 섭정하였으나, 정사를 잘 돌보지 못하고 혜공왕은 시해당하였다. 이후 만월부인에 관한 기록은 없다.[1]
3. 생애
3. 1. 혜공왕 출생과 섭정
만월부인은 경덕왕의 첫 번째 왕비인 이찬 순정의 딸 삼모부인이 아들이 없어 궁에서 쫓겨난 뒤 두 번째 왕비로 들어갔다. 왕비가 되고 나서 아들을 낳지 못하자, 경덕왕은 불국사의 승려 표훈에게 하늘로 올라가 천제에게 아들을 낳도록 간청하게 하였다. 표훈의 청을 받은 천제가 딸을 낳게 해준다는 것을, 다시 간청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가 제36대 혜공왕이 된 건운이었다.[1]
혜공왕이 즉위할 당시 나이가 여덟 살이었으므로 경수왕후는 태후로서 섭정하였으나 나랏일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혜공왕은 시해당하였다. 이후 만월부인에 관한 기록은 없다.[1]
3. 2. 혜공왕 시해와 말년
경덕왕의 차비(次妃)였던 만월부인은 아들을 낳지 못해 승려 표훈(表訓)을 통해 천제(天帝)에게 간청하여 아들 건운(乾運)을 낳았고, 이 아들이 혜공왕이 되었다. 혜공왕이 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태후로서 섭정하였으나, 정사를 잘 돌보지 못했다. 결국 혜공왕은 재위 16년 만에 김지정의 난 와중에 시해당하고 말았다. 혜공왕의 죽음 이후 만월부인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참조
[1]
서적
Overlooked Historical Records of the Three Korean Kingdoms
2006
[2]
서적
삼국사기
114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