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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빈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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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머빈 킹은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영국 중앙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유학했으며,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1990년 영국 중앙은행 비상임 이사, 1991년 수석 경제학자 겸 상임 이사를 거쳐 1998년 부총재가 되었다. 총재 재임 기간 중 2008년 금융 위기에 대응했으며, 이후 금융 정책에 대한 비판도 받았다. 퇴임 후에는 귀족 작위를 받았으며, 저서를 출간하고, 스포츠 관련 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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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빈 킹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공식 초상화, 2024년
존칭 접두사The Right Honourable
이름로스버리의 킹 남작
출생 이름머빈 앨리스터 킹
출생일1948년 3월 30일
출생지체샴 보이스, 버킹엄셔, 잉글랜드
배우자바바라 멜란더 (2007년 결혼)
학력킹스 칼리지, 케임브리지 (BA, MA)
세인트 존스 칼리지, 케임브리지
하버드 대학교
공직
직책잉글랜드 은행 총재
임명권자고든 브라운
임기 시작2003년 7월 1일
임기 종료2013년 7월 1일
전임자에드워드 조지
후임자마크 카니
의회 경력
직책상원 의원, 세속 남작
임기 시작2013년 7월 22일 (종신 귀족 작위)
임기 종료현재
기타 정보
교수 직위뉴욕 대학교 스턴 경영대학원, 앨런 그린스펀 경제학 교수

2. 생애 및 경력

머빈 킹은 전쟁 후 지리 교사로 재교육받은 철도 운반원 에릭 킹과 캐슬린(옛 성 Passingham)의 아들이다.[70][3] 그는 버킹엄셔주 체샴 보이스(Chesham Bois)에서 태어나 울버햄프턴의 워스톤스 주니어 스쿨과 울버햄프턴 문법학교(Wolverhampton Grammar School)에서 공부했다. 그는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 Cambridge)에서 (1969년 경제학 1급 학위 획득; MA); 케임브리지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 Cambridge); 그리고 케네디 장학생으로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에서 수학했다.[4][5] 케임브리지 재학 중 킹은 1968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자유주의 클럽(Cambridge University Liberal Club)의 재무였다.[4][6] 하버드 재학 시절, 킹의 학문적 자문과 멘토는 미국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이었으며, 그는 펠드스타인을 "매우 중요한 영향"이라고 묘사했다.[7]

졸업 후,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 리처드 스톤(Richard Stone)과 테리 바커(Terry Barker)와 함께 케임브리지 성장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 후 그는 버밍엄 대학교(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강의했고 하버드 대학교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방문 교수를 지냈으며, 그곳에서 당시 조교수였던 벤 버냉크(Ben Bernanke)와 사무실을 함께 사용했다. 킹은 버밍엄에 있을 때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7] 1984년 10월부터 그는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금융 시장 그룹을 설립했다.[4] 1981년 그는 더 타임스(The Times)에 보낸 서한에 서명한 364명의 대학교 경제학자 중 한 명이었으며, 이 서한은 제프리 하우(Geoffrey Howe)의 1981년 영국 예산(1981 United Kingdom budget)을 비난했다.[8][9][10]

울버햄프턴 그래머 스쿨(Wolverhampton Grammar School)을 졸업한 후, 1969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서 경제학 1등급 학위를 취득했다. 세인트 존스 칼리지, 하버드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버밍엄 대학교에서 교직을 역임했고, 하버드 대학교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1984년부터는 런던 정경대학교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다.

1990년부터 영국 중앙은행의 비상임 이사를 역임했고, 1991년에는 수석 경제학자 겸 상임 이사로 영국 중앙은행에 입행했다. 1998년에는 부총재에 취임했고, 같은 해 G30에 합류했다. 2003년 6월 30일, 전임 에드워드 조지(Edward George)로부터 이어받아 영국 중앙은행 총재에 취임하여 2013년 6월 30일에 퇴임했다. 후임은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였던 마크 카니(Mark Carney)이다. 2006년 케임브리지 대학교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옥스퍼드 대학교 너필드 칼리지의 객원 연구원이기도 하다.

총재직에서 퇴임 직후인 2013년 7월, "런던 시티의 로스베리의 로스베리 경(Baron King of Lothbury, of Lothbury in the City of London)"이라는 작위를 받아 영국 상원 의원이 되었다.[86][87] 상원에서는 중립 의원(Crossbencher)이다.[87]

2014년 4월 23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의해 가터 훈장을 받았다.[88]

2008년 4월 11일, 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당시 사진. 후열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킹

2. 1. 초기 생애 및 학력

머빈 킹은 철도 운반원이었던 아버지 에릭 킹과 캐슬린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후에 지리 교사로 재교육을 받았다.[70][3] 그는 버킹엄셔주 체샴 보이스(Chesham Bois)에서 태어나 워스톤스 주니어 스쿨과 울버햄프턴 문법학교(Wolverhampton Grammar School)에서 공부했다. 1969년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 Cambridge)에서 경제학 1급 학위를 받았으며, MA) 학위를 취득했다.[4][5] 이후 케임브리지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 Cambridge)와 케네디 장학생으로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에서 수학했다.[4][5] 케임브리지 재학 시절, 킹은 1968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자유주의 클럽(Cambridge University Liberal Club)의 재무를 맡았다.[4][6]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의 지도를 받았으며, 킹은 펠드스타인을 "매우 중요한 영향"이라고 묘사했다.[7]

졸업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리처드 스톤(Richard Stone)과 테리 바커(Terry Barker)와 함께 케임브리지 성장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일했다. 버밍엄 대학교(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강의했고,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방문 교수를 지냈으며, MIT에서는 벤 버냉크(Ben Bernanke)와 사무실을 함께 사용했다. 킹은 버밍엄에 있을 때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7] 1984년 10월부터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며 금융 시장 그룹을 설립했다.[4] 1981년에는 제프리 하우(Geoffrey Howe)의 1981년 영국 예산(1981 United Kingdom budget)을 비난하는 서한에 서명한 364명의 대학교 경제학자 중 한 명이었다.[8][9][10]

2. 2. 학계 경력

머빈 킹은 체샴 보이스(Chesham Bois)에서 철도 운반원이었던 아버지와 지리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70][3] 울버햄프턴 문법학교(Wolverhampton Grammar School)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 Cambridge)에서 1969년 경제학 1급 학위를 받았다.[4][5] 케임브리지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 Cambridge); 그리고 케네디 장학생으로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에서 수학했다.[4] 케임브리지 재학 중 킹은 1968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자유주의 클럽(Cambridge University Liberal Club)의 재무였다.[4][6]

졸업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리처드 스톤(Richard Stone)과 테리 바커(Terry Barker)와 함께 케임브리지 성장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일했다. 버밍엄 대학교(University of Birmingham)에서 강의했고 하버드 대학교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에서 방문 교수를 지냈으며, 그곳에서 당시 조교수였던 벤 버냉크(Ben Bernanke)와 사무실을 함께 사용했다. 킹은 버밍엄에 있을 때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7] 1984년 10월부터 런던 정치경제대학교(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 경제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금융 시장 그룹을 설립했다.[4] 1981년 그는 더 타임스(The Times)에 보낸 서한에 서명한 364명의 대학교 경제학자 중 한 명이었으며, 이 서한은 제프리 하우(Geoffrey Howe)의 1981년 영국 예산(1981 United Kingdom budget)을 비난했다.[8][9][10]

3. 영국 중앙은행 (Bank of England)

킹은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비상임이사를 역임한 후, 1991년 3월 수석 경제학자 겸 상무이사로 영국 중앙은행에 합류했다.[11] 1997년 영국 중앙은행 부총재로 임명되어 1998년 6월 1일 취임했다.[11] 같은 해, 킹은 G30(그룹 오브 서티)의 회원이 되었다.[11] 1997년 출범 이후 영국 중앙은행의 금리 설정 기구인 통화정책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으로서 매월 회의에 참석했다.[11] 그는 2003년 7월 1일 에드워드 조지 경의 뒤를 이어 총재가 되었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알현한 영국 중앙은행 최초의 현직 총재이기도 하다.[11]

총재 재임 중, 킹은 매튜 불턴과 제임스 와트를 50파운드 지폐에, 애덤 스미스를 20파운드 지폐에, 윈스턴 처칠을 5파운드 지폐에 등장시키는 것을 담당했다.[12][7]

3. 1. 입행 및 부총재

킹은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비상임이사를 역임한 후, 1991년 3월 수석 경제학자 겸 상무이사로 영국 중앙은행에 합류했다.[11] 1997년 영국 중앙은행 부총재로 임명되어 1998년 6월 1일 취임했다.[11] 같은 해, 킹은 G30(그룹 오브 서티)의 회원이 되었다.[11] 1997년 출범 이후 영국 중앙은행의 금리 설정 기구인 통화정책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으로서 매월 회의에 참석했다.[11]

3. 2. 금융정책위원회 (Monetary Policy Committee)

머빈 킹은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비상임이사를 역임한 후, 1991년 3월 수석 경제학자 겸 상무이사로 영국 중앙은행에 합류했다.[11] 1997년 영국 중앙은행 부총재로 임명되어 1998년 6월 1일 취임했다. 같은 해, 킹은 G30(그룹 오브 서티)의 회원이 되었다.[11] 1997년 출범 이후 영국 중앙은행의 금리 설정 기구인 금융정책위원회(Monetary Policy Committee; MPC)의 당연직 위원으로서 매월 회의에 참석했다.

킹의 투표 태도는 종종 매파적(タカ派)으로 여겨졌으며, 총재에 취임하기 전에는 다른 위원들과 비교해 금융정책을 더욱 긴축하는 방향으로 투표했다. 그러한 경향은 취임 이후 점차 줄어들었지만, 2005년 8월의 금리 인하 결정이나 2007년 6월의 금리 인상 결정 시에는 반대표를 던지는 등, 스스로 소수파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태도는 중앙은행 총재로서는 특이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지루한(退屈な) 금융정책을 지향한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영란은행이 채택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에 끊임없이 주목함으로써 향후 금융정책의 방향성을 가능한 한 예측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인플레이션 광(狂)"("inflation nutter")이라는 도 킹이 만들었다.

3. 3. 총재 취임 및 활동

킹은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비상임이사를 역임한 후, 1991년 3월 수석 경제학자 겸 상무이사로 영국 중앙은행에 합류했다. 그는 1997년 영국 중앙은행 부총재로 임명되어 1998년 6월 1일 취임했다. 같은 해, 킹은 G30(그룹 오브 서티)의 회원이 되었다. 1997년 출범 이후 영국 중앙은행의 금리 설정 기구인 통화정책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으로서 매월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2003년 7월 1일 에드워드 조지 경의 뒤를 이어 총재가 되었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알현한 영국 중앙은행 최초의 현직 총재이기도 하다.[11]

총재 재임 중, 킹은 매튜 불턴과 제임스 와트를 50파운드 지폐에, 애덤 스미스를 20파운드 지폐에, 윈스턴 처칠을 5파운드 지폐에 등장시키는 것을 담당했다.[12][7]

3. 4. 2000년대 후반 금융 위기

머빈 킹은 영란은행 총재가 된 후 영란은행의 정책이 앨런 그린스펀 시대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정책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그린스펀은 자신의 접근 방식을 "거품 붕괴로 인한 여파를 완화하는 것"이라고 묘사했다.[13] 킹은 "자산 가격 '거품'을 식별하기는 어렵다"는 앨런 그린스펀의 의견에 동의했다.[13]

영국 경제사회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Economic and Social Research)[14]와 OECD[15]는 영국 주택 시장에 대한 경고를 하였다. 킹은 2004년 초 RPIX와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차이가 "이례적으로 컸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이는 소비자물가지수는 주택 가격을 인플레이션 측정에 포함하지 않지만 RPIX는 포함하기 때문이다.[16] 6개월 후에는 영국 주택 가격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수준을 훨씬 웃돌았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20% 이상, 전년 대비 5년 이상 100% 이상 상승한 수치였다.[17]

2005년,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영국 주택 가격 상승을 "역사상 최대 거품"의 일부로 묘사했다.[18] 2007년 10월, IMF는 영국 주택 시장이 "최대 40% 과대평가되었다"고 보고했다.[20] OECD는 주택 가격 변동성이 은행 및 모기지 부문의 주택 시장 노출로 인해 시스템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21]

딘 베이커(Dean Baker)는 아메리칸 프라스펙트(The American Prospect)에서 그린스펀과 킹이 각국의 주택 시장 거품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 거품 붕괴 시 치명적인 "여파"를 초래하여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후 양국 모두 최악의 경기 침체를 야기했다고 비판했다.[22] 이러한 영미권 국가들의 무대응은 중화인민공화국[23][24][25][26][27]과 오스트레일리아[28]의 조치와 비교될 수 있다.

금융 위기의 결과, 킹은 1992년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 이후 시행되었고 2003년 총재가 된 후에도 킹이 계속했던 인플레이션 타겟팅에 대한 은행의 헌신적인 초점을 거부했다.[29] 킹은 위기에서 얻은 두 가지 초기 교훈 중 하나는 "물가 안정이 경제 전체의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 안정을 추구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는 개선 및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30]

2012년 금융 서비스 법안은 거시건전성 정책(Macroprudential policy) 규제 권한의 대부분을 금융감독청(FSA)에서 영란은행으로 이전하여 금융정책위원회(Financial Policy Committee)(킹이 의장직을 맡음)에 호황기에 대출을 억제할 권한, 즉 주택 담보 대출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제한할 권한을 부여할 것이다.[31] 전 영란은행 고위 관계자는 위기 이전 은행의 성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어떻게 뒤늦게 돌아보면서 성공으로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금융 안정을 책임졌고, 우리 생애 최악의 금융 위기를 피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전혀 취하지 못했습니다".[3] 데이비드 블랜치플라워(David Blanchflower)는 2008년 여름까지도 킹은 금융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32]

영란은행 책임에 대한 검토에서 재무위원회(Treasury Select Committee)의 주요 불만 중 하나는 은행이 금융 위기 중 성과에 대한 내부 검토를 거부한 것이었다.[33] 이러한 검토는 최고 정책 입안자들이 어떻게 결정에 도달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당연한 절차로 파기되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초래할 것이다.[33] 반대로 미국은 5년의 시차를 두고 연준의 심의 내용을 공개하며, 이는 "중앙은행 최고 관리들이 미국 경제와 세계 금융 시스템을 강타할 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에 대한 가장 자세한 그림을 제공했다".[34]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중앙은행 실패는 2010년 도드-프랭크 월가 개혁 및 소비자 보호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이라는 새로운 규제 체계로 이어졌다.[34]

3. 4. 1. 위기 대응

킹은 2008년 가을 금융 위기와 은행 시스템 붕괴 당시 자신과 다른 서구 중앙은행 총재들이 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인하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대공황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리가 있다"고 동의했다.[35] 2012년 서구 중앙은행들이 위기에 대응하여 취한 조치에 대한 검토 결과도 킹의 주장을 뒷받침했다.[36] 그러나 영란은행은 금리 인하 속도에 대한 비판을 받았는데, 2008년 10월 초부터 5.0%에서 0.5%로 낮추는 데 5개월이 걸렸고, 그 수준을 수년간 유지했기 때문이다.[37][38]

142년 역사상 두 번째로 영국 중앙은행 총재가 TUC 연설을 한 후, 킹은 실업과 은행 구제금융에 대해 사람들이 "화낼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39]

킹은 은행 부문이 붕괴된 이후, 특히 "놀라운" 1조 파운드의 구제금융과 2009년 보너스 지급 지속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은행 구조와 규제에 대한 심각한 검토를 촉구했다.[40]

2011년 3월 《데일리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킹은 은행들이 "이익을 사람보다 우선시했다"며, 부문 개혁 실패는 또 다른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고, 전통 제조업이 더 "도덕적인" 운영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41] 2012년 3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은행들이 여전히 그들의 행동에 대한 "매우 현실적이고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노를 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42] 은행가들은 그의 신랄한 견해와 도덕적 해이 방지에 대한 주장에 불만을 표했지만, 킹은 "[시장] 규율은 은행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은행들의 불만을 "그들의 은행 모델 실패를 직면하는 것이 매우, 매우 어렵다"는 점으로 지적했다.[42]

2013년 킹의 총재직 임기가 끝나면서 영국 주요 은행들은 덜 "적대적인" 인물이 후임으로 발탁되지 않으면 해외 이전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43][44] 2012년 11월 26일, 마크 카니가 킹의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3. 4. 2. 은행 구제금융

킹은 2007년 9월 노던 록 은행에 대한 자금 지원을 거부하여 1914년 이후 영국에서 볼 수 없었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45] 킹은 나중에 노던 록에 대한 필요한 지원을 거부한 결정권자는 자신이 아니라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알리스터 달링이었다고 주장했다.[46]

《타임스》 기자 데이비드 와이턴은 킹의 총재 재임 기간에 대한 검토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알리스터 달링은 회고록에서 2008년 가을 은행 시스템 붕괴가 발생했을 때 은행에 자금을 투입하여 구제하는 대신, 도덕적 해이(자신의 실수에 대한 결과로부터 은행을 구제하지 않는다는 원칙)를 강조한 킹을 비판했다.[47] 킹은 소매 은행에 자금 지원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책을 유지했으며, 재무위원회에 대한 답변에서 자신의 행동은 영국은행이 "최후의 대부"라는 근거에 따른 것이었지만, 이후 국유화되거나 부분적으로 국유화된 은행에 자금을 제공하는 조치를 지지했다고 주장했다.

3. 5. 정치적 개입 논란

머빈 킹은 2009년 맨션 하우스 연설에서 국가 최대 은행들의 해체를 촉구하고, 은행에 재정 안정을 위한 더 적극적인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0][43] 그는 경제 재균형, 저축 증가, "구조적 적자 제거"를 제안했으며,[40] 2009년 11월에는 당시 노동당 정부의 적자 감축 계획이 불충분하다고 의원들에게 말했다.[48] 2010년 5월 연정 구성 후, 킹은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과 추가 지출 삭감 계획을 지지한다고 밝혔다.[48]

2010년 11월, 영란은행 일부 고위직 직원들은 킹의 정부 지출 삭감 지지가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의 경계를 넘었다고 비난했다.[32][48] 이는 킹이 "연합 정부 추종자"[51]이며 경제 정책에 "지나치게 정치적인"[52] 개입을 한다는 비난으로 이어졌다.[50] 위키리크스 케이블게이트[53][54] 이후 이러한 비난은 더욱 커졌고, 정치 및 헌법 개혁 특별 위원회는 킹에게 지출 삭감 지지 이유를 설명하도록 요청했다.[55] 킹은 위원회에 "정부 적자를 줄이기 위한 조치의 구성에 대해 어떤 조언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며,[56] 위원회는 그의 설명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였다.[57]

킹은 2012년 5월 BBC 라디오 4에서 연정의 긴축 조치를 승인했다는 비판을 받았고,[59] 2011년 5월 브뤼셀 유럽 의회 연설에서는 인플레이션보다 경제와 은행 부문의 광범위한 안정에 더 관심이 있다고 언급했다.[60] 2009년 3월, 킹은 영국 정부의 두 번째 재정 부양책 계획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62]

2009년 6월 맨션 하우스 연설에서 킹은 앨리스터 달링 재무장관이 은행에 더 큰 권한을 부여하는 규제 변화에 저항한 것을 비판했다.[63][64][65] 2012년 1월, 킹은 탄소 거품 가능성을 경고하는 편지를 받았다.[66] 2012년 3월, 영란은행의 금융정책위원회는 또 다른 금융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의회에 새로운 정책 도구를 요구하기로 합의했다.[68] 2019년 3월, 킹은 유럽연합 탈퇴 결정에 대해 합의 없이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69]

4. 퇴임 이후

5. 기타 활동

킹의 아내인 바버라 멜란더(Barbara Melander)는 바르바라 멜란데르/Barbara Melanderfi핀란드 출신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이며, 핀란드 스웨덴어 사용 소수 민족 출신이다. 두 사람은 2007년 헬싱키의 한 교회에서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70] 킹 경의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ABBA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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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스턴 빌라 팬인 킹은 한때 영국은행 직원들과 전 애스턴 빌라 선수들 간의 경기를 주선하기도 했다.[71][89] 그는 2016년 2월부터 4월까지 빌라 이사회에서 활동했으며, 이사회 동료였던 전 잉글랜드 축구 협회 회장인 데이비드 번스타인과 함께 구단주 랜디 러너의 구단 운영에 항의하며 사임했다.[72] 2024년 1월, 킹은 애스턴 빌라 FC 150주년 기념 시즌을 앞두고 애스턴 빌라로부터 '명예 기념 이사회' 회원으로 임명되었다.[73]

킹은 2005년 BBC 라디오의 "테스트 매치 스페셜"에서 애시즈 테스트 매치에 대한 해설을 잠시 맡았으며, 당시 사이먼 메이오의 인터뷰를 받았다. 학교에서 경쟁적인 크리켓을 장려하는 크리켓 재단 프로그램인 찬스 투 샤인의 회장인 킹 경은 AELTC과 MCC의 회원이다. 2015년에는 워스터셔 카운티 크리켓 클럽 회장이 되었고,[74] 2024년 5월에는 12개월 임기로 2024년 10월 1일부터 회장으로 MCC에서 활동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75]

2006년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명예 박사 학위 법학 박사(Hon LLD)를 받았고, 2013년 7월에는 어버테이 대학교에서 명예 문학 박사(Hon DLitt) 학위를 받았다.[76] 킹은 또한 옥스퍼드 너필드 칼리지의 방문 연구원으로 선출되었다.[77]

2015년 킹은 금융센터 국제 톱 500에서 11번째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되었다.[78]

6. 수상 및 서훈

머빈 킹은 2011년 생일 서훈에서 대영 제국 훈장 슈발리에 그랜드 크로스(GBE)로 서임되었고,[79][80] 2014년 4월 23일에는 가터 훈장에 서임되었다.[81][7]

2013년 7월 19일에는 '공공 봉사에 대한 공헌'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의해 종신 귀족 작위를 받았다.[86] 종신 귀족 작위를 받은 킹 경은 2013년 7월 22일 상원에 무소속 의원으로 입성하여 런던 시티 로드버리(Lothbury)의 킹 남작(Baron King of Lothbury) 작위를 취했다.[82][83]

2016년 1월 6일, 킹은 켄트 주의 주지사인 드 라일 자작(필립 시드니, 제2대 드 라일 자작)에 의해 켄트 주의 부주지사로 임명되었다.[84]

7. 저서

킹의 저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The British Tax System영어, (1979년 및 그 이후 4판), 존 케이(John Kay (economist))와 공저.
  • The End of Alchemy영어: 돈, 은행 및 세계 경제의 미래, (2016).[85]
  • Radical Uncertainty영어: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한 의사결정, (2020), 존 케이(John Kay (economist))와 공저.[85]

8. 각주

wikitext

참조

[1] 방송 The Today Programme Lecture http://www.bbc.co.uk[...] 2012-05-02
[2] 웹사이트 NYU Stern - Mervyn King - Alan Greenspan Professor of Economics http://www.stern.nyu[...] 2017-09-26
[3] 뉴스 The trouble we're in and how to get out of it http://www.thetimes.[...] 2012-03-12
[4] 웹사이트 Bank of England profile http://www.bankofeng[...] 2011-03-02
[5] 뉴스 Wolverhampton Grammar School celebrates 500 years https://www.bbc.co.u[...] 2011-10-21
[6] 웹사이트 Profile http://keynessociety[...] 2015-03-30
[7] 웹사이트 Interview with Lord Mervyn King https://www.maxraski[...] 2023-03-22
[8] 웹사이트 Economy: Letter of the 364 university economists critical of monetarism (letter sent to academics and list of signatories) [released 2012] http://www.margarett[...] Margaret Thatcher Foundation 2024-09-17
[9] 뉴스 Were 364 economists all wrong? http://news.bbc.co.u[...] BBC 2006-03-13
[10] 뉴스 We can't reboot the economy without sacrifice http://www.thetimes.[...] 2012-02-07
[11] 뉴스 Queen invites Mervyn King, Bank of EnglandGovernor, to palace http://www.thetimes.[...] 2009-03-25
[12] 뉴스 £50 reward for industrial revolution pioneers on new bank note https://www.theguard[...] 2023-03-22
[13] 웹사이트 Comments on 'Risk and Uncertainty in Monetary Policy' by Alan Greenspan, AEA Annual Conference, 2004 http://www.bankofeng[...] 2015-03-30
[14] 논문 The Current Position of UK House Prices NIESR
[15] 웹사이트 III. Recent House Price Developments: The Role of Fundamentals http://www.oecd.org/[...] 2011-02-19
[16] 웹사이트 Speech to the Annual Birmingham Forward/CBI Business Luncheon http://www.bankofeng[...] 2011-03-08
[17] 웹사이트 Speech to the CBI Scotland Dinner at the Glasgow Hilton Hotel http://www.bankofeng[...] 2011-03-08
[18] 뉴스 The global housing boom: In come the waves http://www.economist[...] 2011-03-08
[19] 서적 This Time is Different: Eight Centuries of Financial Foll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 뉴스 UK house market is 'heading for crash' http://www.timesonli[...] 2011-02-18
[21] 웹사이트 Chapter 4. Housing and the Economy: Policies for Renovation http://www.oecd.org/[...] 2011-03-08
[22] 웹사이트 David Ignatius: Mervyn King Is Not Only an Incompetent Central Banker, He Also is a Bad Teacher http://prospect.org/[...] 2011-12-09
[23] 웹사이트 Chinese Finance Comes of Age http://www.project-s[...] Project Syndicate 2011-06-23
[24] 뉴스 Housing prices fall in Chinese cities http://www.ft.com/cm[...] 2012-01-24
[25] 뉴스 China Real Estate at 'Tipping Point': Nomura https://www.bloomber[...] 2012-03-28
[26] 뉴스 China property http://www.ft.com/cm[...] 2012-02-08
[27] 뉴스 China not to loosen regulations on housing market: premier http://news.xinhuane[...] 2012-03-28
[28] 뉴스 The trouble we're in and how to get out of it http://www.thetimes.[...] 2012-03-12
[29] 서적 Inflation Targeting: Lessons from the International Experi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30] 웹사이트 Speech at the Lord Mayor's Banquet for Bankers and Merchants of the City of London at the Mansion House http://www.bankofeng[...] 2012-03-14
[31] 뉴스 Osborne set to back Sir Mervyn in bitter battle over Bank rules https://www.independ[...] 2012-01-24
[32] 웹사이트 Mervyn King is a tyrant, but who will succeed him at the Bank? http://www.newstates[...] 2012-04-21
[33] 뉴스 Records of Bank policy meetings destroyed http://www.ft.com/cm[...] 2012-01-24
[34] 뉴스 Little Alarm Shown at Fed at Dawn of Housing Bust https://www.wsj.com/[...] 2012-01-24
[35] 뉴스 Lessons of the 1930s: There could be trouble ahead http://www.economist[...] 2012-02-07
[36] 논문 Policy Initiatives in the Global Recession: What Did Forecasters Expect? http://www.newyorkfe[...] Reserve Bank of New York 2012-04-05
[37] 뉴스 Who to blame for the Great Recession? So many big names are in the frame https://www.theguard[...] 2012-02-03
[38] 웹사이트 Statistical Interactive Database – official Bank Rate history http://www.bankofeng[...] Bank of England 2012-02-16
[39] 뉴스 We let it slip, Bank governor Mervyn King tells unions https://www.bbc.co.u[...] 2010-09-15
[40] 뉴스 Mervyn King launches blistering attack on £1tn banks bailout https://www.theguard[...] 2009-10-21
[41] 뉴스 We prevented a Great Depression... but people have the right to be angry https://archive.toda[...] 2011-03-05
[42] 뉴스 Sir Mervyn King: banks still in denial over failures http://www.thetimes.[...] 2012-03-12
[43] 뉴스 The night that King's speech left Labour lost for words http://www.thetimes.[...] 2012-03-14
[44] 뉴스 Warning over 'real' anger at banks in Britain https://www.independ[...] 2012-03-12
[45] 논문 Back from the Brink http://www.skidelsky[...] 2011-10-03
[46] 뉴스 Mervyn King interview with the BBC's Robert Peston: full transcript https://www.theguard[...] 200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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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뉴스 Concern that King 'blurs line' on policy http://www.ft.com/cm[...] 2010-11-09
[49] 뉴스 King backs plans to cut deficit http://www.ft.com/cm[...] 201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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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뉴스 King cannot be the coalition's courtier http://www.ft.com/cm[...] 2010-11-10
[52] 뉴스 Bank of England divisions are laid bare http://www.ft.com/cm[...] 2010-11-25
[53] 뉴스 WikiLeaks cables: Mervyn King had doubts over Cameron and Osborne https://www.theguard[...] 2010-11-30
[54] 뉴스 WikiLeaks: Mervyn King is consistently wrong: now his hawkish dogma has been exposed https://www.theguard[...] 201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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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간행물 2011-06-11
[80] 뉴스 Queen's birthday honours list: Knights https://www.theguard[...] 2011-06-11
[81] 간행물 2014-04-24
[82] 웹사이트 Mervyn King enters House of Lords http://www.parliamen[...] 2015-03-30
[83] 간행물 2013-07-24
[84] 간행물 2016-01-13
[85] 웹사이트 Radical Uncertainty: Decision-Making Beyond Numbers, with Mervyn King and John Kay https://fsclub.zyen.[...] 2020-11-13
[86] 간행물 2013-07-24
[87] 웹사이트 Lord King of Lothbury http://www.parliamen[...] 2014-10-10
[88] 간행물 2014-04-24
[89] 웹사이트 BBC SPORT | Football | Gossip & Transfers | Friday's gossip column http://news.bbc.co.u[...]
[90] 간행물 201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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