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모네다궁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모네다궁은 이탈리아 건축가 호아킨 토에스카가 설계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1784년 건설을 시작하여 1805년에 완공되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조폐국으로 사용되었으며, 1845년부터는 대통령 관저이자 정부 청사로 사용되었다. 1973년 칠레 쿠데타 당시 칠레 공군의 공격을 받아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사망하고 건물은 크게 손상되었으나, 복구 공사를 거쳐 현재까지 칠레의 주요 랜드마크로 남아있다. 현재는 전통적인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며, 남아메리카 국가 연합 긴급 정상 회의가 개최되기도 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조폐국 - 일본 조폐국
    일본 조폐국은 메이지 시대 통화 현대화를 위해 설립된 화폐 제조 기관으로, 지폐 및 주화 제조, 훈장 제작, 금속 분석 등의 사업을 수행하며 오사카 본국과 사이타마, 히로시마 지국으로 구성되어 세계적인 위조 방지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한국 화폐 제조 참여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 조폐국 - 미국 조폐국
    미국 조폐국은 1792년 주화법에 따라 설립되어 현재 재무부 소속으로, 기념 주화, 메달, 금괴 등을 생산하고 주화의 디자인, 제작, 마케팅을 담당하며 국내외 주화 생산, 금괴 관리, 주화 배포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 산티아고의 관광지 - 칠레 국립동물원
    칠레 국립동물원은 1882년 킨타 노르말 공원에서 개장하여 1925년 산티아고의 산 크리스토발 언덕으로 이전한 동물원으로, 158종 1,000마리 이상의 동물을 보유하고 칠레 토착종을 포함한 다양한 야생 동물과 외래종을 전시하고 있다.
  • 산티아고의 관광지 - 구 국회의사당 (칠레)
    칠레 산티아고에 위치한 구 국회의사당은 1876년 완공 후 화재로 재건되었고, 군사 쿠데타 이후 외교부 청사로 사용되다가 2000년대 초 국회 사무소 이전으로 칠레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을 상징하는 역사적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 산티아고의 건축물 -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데 칠레
    칠레 산티아고에 위치한 국립 경기장인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데 칠레는 1938년 개장하여 FIFA 월드컵 결승전 개최, CD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홈 경기장 사용, 1973년 칠레 쿠데타 당시 구금 시설 사용 등의 역사를 거쳐 현재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며, 2008년에는 "에스타디오 나시오날 훌리오 마르티네스 프라다노스"로 공식 명칭이 변경되었다.
  • 산티아고의 건축물 - 칠레 국립동물원
    칠레 국립동물원은 1882년 킨타 노르말 공원에서 개장하여 1925년 산티아고의 산 크리스토발 언덕으로 이전한 동물원으로, 158종 1,000마리 이상의 동물을 보유하고 칠레 토착종을 포함한 다양한 야생 동물과 외래종을 전시하고 있다.
모네다궁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라 모네다 궁전
이름라 모네다 궁전
원어 이름Palacio de La Moneda
상세 정보
위치산티아고, 칠레
건축가호아킨 토에스카
의뢰인칠레 정부
착공일1784년
완공일1805년
건축 양식신고전주의 건축

2. 역사

라 모네다 궁전의 정면


라 모네다 궁전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 이탈리아 건축가 호아킨 토에스카의 설계로 조폐국 건물로 지어졌다.[1] 1784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1805년에 완공되었으며, 1814년부터 동전을 생산하는 역할을 했다.[1]

1845년 6월, 마누엘 불네스 대통령 재임 시기부터는 칠레의 정부 청사이자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기 시작하며 칠레 정치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이후 가브리엘 곤잘레스 비델라 대통령 시기를 마지막으로 대통령 관저로서의 기능은 중단되었다.

궁전의 역사는 1973년 9월 11일 칠레 쿠데타라는 비극적인 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당시 칠레 공군의 폭격으로 궁전은 크게 파손되었고,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궁전 내부에서 사망했다.[10][11][12][13]

쿠데타 이후 궁전은 복원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지시로 지하 벙커가 건설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시민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 시기에는 궁전 일부가 개방되고, 아옌데 대통령의 마지막 길과 관련 있는 모란데 80 게이트가 복원되는 등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2006년에는 지하에 모네다 궁전 문화 센터가 개관하여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라 모네다 궁전은 칠레 대통령의 집무 공간이자, 격동의 현대사를 간직한 중요한 역사적 건축물로 남아있다.

2. 1. 식민지 시대 조폐국 (1784-1845)

라 모네다 궁전은 원래 스페인 식민지 시절 조폐국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호아킨 토에스카가 설계를 맡아 1784년에 건설을 시작했으며, 1805년에 완공되었다.[1] 이곳에서는 1814년부터 칠레의 동전을 생산했다. 이후 1845년 6월, 마누엘 불네스 대통령 재임 시기부터 정부 청사이자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 2. 대통령궁 시대 (1845-현재)

1872년 라 모네다 궁전, 레카레도 산토스 토르네로가 ''Chile Ilustrado''에 게재


1944년 라 모네다 궁전 앞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


1845년 6월 마누엘 불네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원래 조폐국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칠레의 정부 청사이자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30년에는 궁전 앞에 ''플라사 데 라 콘스티투시온''("헌법 광장")이 조성되었다. 이후 가브리엘 곤잘레스 비델라 대통령 재임 시기를 끝으로 대통령 관저로서의 기능은 중단되었다.

1973년 9월 11일 칠레 쿠데타 당시 폭격으로 손상된 라 모네다


1973년 9월 11일 발생한 칠레 쿠데타 당시, 칠레 공군은 모네다 궁전을 로켓과 기관포로 공격했다. 당시 궁전에서 집무 중이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쿠데타 과정에서 사망하였으며, 2011년 칠레 당국의 유해 조사 결과 자살로 최종 확인되었다.[10][11][12][13] 쿠데타로 인해 건물은 심하게 파손되었다.

파손된 궁전의 복구 공사는 1981년 3월에 완료되었으나, 쿠데타 당시의 총탄 자국 일부는 역사적 기록으로 보존되어 현재도 볼 수 있다. 1973년부터 1980년까지 진행된 복원 기간 동안에는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비상시 이용할 목적으로 정문 광장 아래에 지하 사무실 단지(소위 "벙커")를 건설하기도 했다.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타글레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궁전 외벽이 흰색으로 칠해졌다.[3]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 시기에는 궁전의 안뜰이 특정 시간에 일반 시민에게 개방되었고, 20세기 초부터 칠레 대통령들이 이용했던 모란데 80 게이트가 복원되었다. 이 문은 본래 건축 계획에 없다는 이유로 피노체트 정권 시기 복원 과정에서 철거되었으나, 대통령이 정문 의전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민처럼 드나들던 통로라는 상징성, 그리고 1973년 쿠데타 당시 아옌데 대통령의 시신이 운구되었던 역사적 의미 때문에 복원되었다.

2006년에는 궁전 지하에 모네다 궁전 문화 센터가 완공되어 시민 문화 공간으로 개방되었다. 2008년 9월 15일에는 당시 칠레 대통령 미첼 바첼레 주재로 모네다 궁전에서 남아메리카 국가 연합 긴급 정상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농민 학살 사건을 과거 칠레의 아옌데 정권 전복 쿠데타에 비유하며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모네다 궁전 앞에서는 전통적인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이 행사는 1850년대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격일[4](홀수 달에는 홀수 날, 짝수 달에는 짝수 날, 일요일 포함)로 평일 오전 10시, 주말 오전 11시에 시작된다(2015년 6월 기준). 약 30분간 진행되는 교대식은 군악대 연주와 함께 칠레 카라비네로스 소속 보병 대대 및 근위 기병 기병대로 구성된 경비 부대의 의장 행사로 이루어진다.

2. 3. 1973년 칠레 쿠데타와 아옌데 대통령



1973년 9월 11일 칠레 쿠데타 당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집무하던 모네다 궁전은 칠레 공군에 의해 로켓과 자동포 공격을 받았다.[10] 이 공격으로 아옌데 대통령은 궁전 내부에서 사망했다. 아옌데 대통령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교전 중 전사설과 자살설이 있었으나, 2011년 칠레 당국의 유해 조사 결과 자살로 최종 확인되었다.[10][11][12][13] 쿠데타 이후 아옌데 대통령의 시신은 모란데 80 게이트를 통해 수습되었다.

궁전은 폭격으로 인해 심하게 파손되었으며, 1973년부터 1980년까지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기간 중에는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유사시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정문 광장 아래 지하에 소위 "벙커"라고 불리는 사무실 단지가 건설되었다. 파손된 궁전의 복구 공사는 1981년 3월에 완료되었지만, 일부 총탄 자국은 의도적으로 보존되어 현재까지 남아있다.

2008년 9월 15일, 미첼 바첼레 당시 칠레 대통령은 모네다 궁전에서 열린 남아메리카 국가 연합 긴급 정상 회의에서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농민 학살 사건을 비판하며, 이를 과거 칠레의 아옌데 정권에 대한 쿠데타 상황에 빗대어 언급하기도 했다.

2. 4. 쿠데타 이후 복원과 개방

1973년 9월 11일 칠레 쿠데타 당시 칠레 공군의 폭격으로 모네다 궁전은 크게 파괴되었다.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사망했다는 설이 있었으나, 이후 2011년 칠레 당국의 유해 조사 결과 자살로 최종 확인되었다.[10][11][12][13]

쿠데타 이후 손상된 궁전의 복구 공사는 1981년 3월에 완료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총탄 흔적 일부는 역사적 의미를 고려하여 보존되어 현재까지 남아있다. 한편, 1973년부터 1980년까지 진행된 복원 기간 동안에는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유사시 안전하게 탈출할 목적으로 정문 광장 아래에 지하 사무실 단지, 이른바 "벙커"가 건설되기도 했다.

에두아르도 프레이 루이스-타글레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궁전 외벽이 흰색으로 칠해졌다.[3]

리카르도 라고스 대통령은 궁전의 일부 안뜰을 특정 시간에 일반 시민에게 개방했다. 또한, 20세기 초부터 칠레 대통령들이 비공식적으로 이용했던 모란데 80 게이트를 다시 열었다. 이 문은 궁전 복원 과정에서 원래 설계에 없다는 이유로 제거되었으나, 대통령이 정문 의전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시민처럼 드나들던 통로이자 1973년 쿠데타 당시 아옌데 대통령의 시신이 운구된 문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커 복원되었다.

2006년에는 궁전 지하에 모네다 궁전 문화 센터(Centro Cultural Palacio de La Moneda)가 완공되어 시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개방되었다.

현재 모네다 궁전 앞 광장에서는 전통적인 근위병 교대식이 열린다. 이 행사는 1850년대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매 이틀마다[4] (격월 홀수일 또는 짝수일) 평일 오전 10시, 주말 오전 11시에 약 30분간 진행된다. 칠레 카라비네로스 소속 보병 대대와 근위 기병 기병대가 군악대 연주에 맞춰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5. 남아메리카 국가 연합 긴급 정상 회의 (2008)

2008년 9월 15일, 모네다 궁전에서는 당시 칠레 대통령이었던 미첼 바첼레의 주재로 남아메리카 국가 연합 긴급 정상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농민 학살 사건을 논의했으며, 바첼레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과거 1973년 칠레 쿠데타 당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겪었던 상황에 비유하며 강력히 비판했다.

3. 건축

모네다궁은 칠레 산티아고에 위치한 대통령궁으로,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래 왕립 조폐국으로 사용될 목적으로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호아킨 토에스카가 설계했으며, 그의 다른 주요 작품으로는 산티아고 대성당 등이 있다.[5] 건축 공사는 1784년에 시작되어 토에스카 사후인 1805년에 군 엔지니어 아구스틴 카바예로에 의해 완공되었다.[5]

이 건물은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드문 순수한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7][5] 건축에는 칠레 각지와 해외에서 조달된 다양한 자재가 사용되었으며, 1m가 넘는 두께의 견고한 벽돌 벽이 특징이다.[5]

시간이 흐르면서 모네다궁은 여러 변화를 겪었다. 1929년 카를로스 이바녜스 델 캄포 대통령 시기에는 알라메다 대로 방향으로 부속 건물이 증축되었고,[6] 1940년에는 파티오 데 로스 나란호스(오렌지 나무 안뜰)가 조성되었다.[6] 특히 1973년 칠레 쿠데타 당시 큰 피해를 입어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5]

궁 남쪽으로는 2005년 시우다다니아 광장( Plaza de la Ciudadanía|플라사 데 라 시우다다니아es )이 조성되었고, 광장 지하에는 칠레 문화와 역사를 다루는 모네다궁 문화 센터( Centro Cultural Palacio de La Moneda|센트로 쿨투랄 팔라시오 데 라 모네다es )가 자리하고 있다.[8][9]

3. 1. 건축 양식

모네다궁은 순수한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로마 도리아식의 영향을 받았다. 유네스코는 이 건물의 넓고 수평적인 형태와 직사각형 구성이 강인함과 안정성을 나타낸다고 평가한다.[5] 건물 정면은 모네다 거리를 향하고 있으며, 실내 공간은 횡축과 종축의 대칭축을 따라 배치되어 여러 개의 안뜰을 형성한다.[5]

정면 뒤편으로는 세 개의 주요 안뜰이 있다. 첫 번째는 입구 역할을 하는 '파티오 데 로스 카뇨네스'이며, 다음은 지붕이 있는 안뜰, 마지막으로 대통령 관련 행사가 열리는 '파티오 데 로스 나라뇨스'이다.

건축 전문 웹사이트 ARQHYS.com에 따르면, 모네다궁은 "라틴 아메리카에 존재하는 유일한 순수한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의 구조물"이다.[7]

이 건물은 여러 대통령을 거치며 수년에 걸쳐 여러 차례 개조되었다. 특히 1973년 칠레 쿠데타 당시 건물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어, 이후 대규모 복원 작업이 이루어졌다.[5]

3. 2. 건축 과정

호아킨 토에스카는 식민지 칠레에서 산티아고 대성당을 포함한 여러 공공 건물을 설계한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왕립 조폐국, 즉 훗날 모네다궁이 될 건물의 설계를 맡게 되었다.

건물 공사는 1784년에 시작되었고, 다음 해부터 칠레 각지와 해외에서 건축 자재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석회암은 폴파이코 영지에서, 모래는 마이포 강에서 가져왔으며, 붉은 돌은 산티아고의 세로 산 크리스토발 채석장에서, 흰 돌은 인근 세로 블랑코에서 조달했다. 참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는 발디비아에서, 스페인산 금속 제품은 비스카이아에서 운송되었다. 또한, 산티아고에서는 20가지 종류의 벽돌을 구워 1m가 넘는 두께의 견고한 벽, 인방, 모서리, 바닥, 몰딩 등을 건설하는 데 사용했다.[5]

토에스카는 건물이 완성되기 전인 1799년에 세상을 떠났고, 군 엔지니어 아구스틴 카바예로가 그의 뒤를 이어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산티아고 데 칠레 조폐국"은 1805년에 마침내 문을 열었다.[5]

1929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를로스 이바녜스 델 캄포는 산티아고의 주요 거리인 알라메다 애비뉴를 향하는 궁전의 정면을 만들기 위해 부속 건물 건설을 지시했다.[6] 이 증축 프로젝트는 호수에 스미스가 설계했으며, 그는 토에스카의 원래 디자인을 충실히 따랐다.[6] 이 3층짜리 부속 건물은 당시까지 조폐국으로 사용되던 원래 구조의 일부를 활용하여 지어졌고, 조폐국은 킨타 노르말 공원 인근 부지로 이전하게 되었다.

1940년에는 토에스카의 원래 설계에 포함되어 있던 옛 조폐국 파빌리온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파티오 데 로스 나란호스(오렌지 나무 안뜰)가 조성되었다.[6]

3. 3. 시우다다니아 광장 (Plaza de la Ciudadanía)

2010년 칠레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모네다궁 남쪽에 위치한 새로운 광장인 시민 광장( Plaza de la Ciudadanía|플라사 데 라 시우다다니아es, '시민 광장')이 베르나르도 오'히긴스 장군 해방 대로( Avenida Libertador General Bernardo O'Higgins|아베니다 리베르타도르 헤네랄 베르나르도 오이긴스es, 또는 "알라메다")까지 확장되어 건설되었다. 건설은 2004년 5월에 시작되었으며, 광장은 2005년 12월에 개장했다.

Undurraga Devés Arquitectos가 설계한 시민 광장은 칠레의 Plataforma Arquitectura 웹사이트에 의해 "지난 세기 가장 중요한 공공 사업 중 하나"로 불렸다.[8] 광장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길은 칠레 문화와 역사에 관한 다양한 전시를 주최하는 지하 모네다궁 문화 센터( Centro Cultural Palacio de La Moneda|센트로 쿨투랄 팔라시오 데 라 모네다es)로 이어진다.[9]

4. 근위병 교대식

근위병 교대식은 1, 4, 5, 8, 11, 12월에는 짝수일에, 2, 3, 6, 7, 9, 10월에는 홀수일에 열린다.[14]

5. 갤러리

라 모네다 대통령궁 내부의 오렌지 나무 정원


대통령이 방문객을 맞는 "파란 방"


라 모네다 대통령궁 내부의 대포 정원

참조

[1] 서적 The Rough Guide to Chile https://books.google[...] Penguin 2011-12-10
[2] 웹사이트 www.letsgochile.com: La Moneda Palace http://www.letsgochi[...] 2012-07-25
[3] 웹사이트 Palacio de La Moneda https://www.platafor[...] 2021-02-18
[4] 문서 Changing of the Guard http://www.gob.cl/ch[...]
[5] UNESCO Palacio de la Moneda https://whc.unesco.o[...] 2013-02-02
[6] 서적 Palacio de la Moneda http://www.memoriach[...] Dibam
[7] ARQHYS Palacio de la Moneda http://www.arqhys.co[...] ARQHYS.com Architecture and Construction team, ARQHYS.com 2013-02-04
[8] Plataforma Arquitectura Centro Cultural Palacio La Moneda – Plaza de la Ciudadanía/Undurraga Devés Arquitectos http://www.plataform[...] David Basulto, Plataforma Arquitectura 2013-02-02
[9] 뉴스 Palacio La Moneda Cultural Center will exhibit Latin American gold and silver artwork http://www.thisischi[...] ThisisChile.cl 2013-02-04
[10] 웹사이트 Allende’s Death Was a Suicide, an Autopsy Concludes http://www.nytimes.c[...] www.nytimes.com 2011-07-21
[11] 웹사이트 Informe del Servicio Médico Legal confirma la tesis del suicidio de ex Presidente Allende http://www.latercera[...] www.latercera.com 2011-07-21
[12] 뉴스 チリ・故アジェンデ大統領は「自殺」 クーデターで死亡 http://www.asahi.com[...] 朝日新聞社 2011-07-21
[13] 뉴스 アジェンデ元大統領は自殺 遺体掘り起こし確認 頭撃ち抜いて チリ http://sankei.jp.msn[...] 産経デジタル 2011-07-21
[14] Chile Changing the Guard | Chile / La Moneda Palace, Santiago https://changing-gua[...] Changing-Guard.com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