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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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치바는 폴 고드프리, 로스 고드프리 형제와 스카이 에드워즈로 구성된 영국의 트립합 밴드이다. 1990년대 중반 결성되어 1996년 데뷔 앨범 ''Who Can You Trust?''를 발매했으며, 이후 ''Big Calm'', ''Fragments of Freedom'' 등의 앨범을 발표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2003년 에드워즈가 탈퇴한 후 여러 보컬리스트를 기용하며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고, 2009년 에드워즈가 재합류하여 ''Blood Like Lemonade''와 ''Head Up High''를 발매했다. 2014년 폴 고드프리가 탈퇴한 후 로스 고드프리와 에드워즈는 Skye & Ross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18년과 2021년 각각 ''Blaze Away''와 ''Blackest Blue''를 모치바 명의로 발매했다. 밴드 이름은 대마초 속어 "cheeba"와 미들 오브 더 로드(MOR)를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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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치바 - [음악 그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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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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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명 | Morcheeba |
국적 | 영국 |
결성지 | 켄트주포크스톤 |
장르 | 트립 합 일렉트로니카 얼터너티브 록 R&B 다운템포 |
활동 기간 | 1995년 – 현재 |
레이블 | 인도차이나 에코 사이렌 리프라이즈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 디스커버리 |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구성원 | |
현재 구성원 | 스카이 에드워즈 로스 고드프리 |
이전 구성원 | 폴 고드프리 데이지 마티 |
2. 결성 및 초기 활동 (1995-2001)
모치바는 1990년대 중반 고드프리 형제(폴 고드프리, 로스 고드프리)와 보컬 스카이 에드워즈가 만나 결성된 영국의 트립합 그룹이다.[8][12] 이들은 런던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엔지니어 피트 노리스와 함께 초기 음악 작업을 진행했다.[8][19][15]
1995년 차이나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같은 해 10월 데뷔 EP ''Trigger Hippie''를 발매했으며,[8][13][14] 이듬해인 1996년 4월 첫 정규 앨범 ''Who Can You Trust?''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14] 이 앨범은 힙합, 사이키델릭 록, 소울 보컬이 결합된 독특한 트립합 사운드를 선보였다. 밴드는 라이브 밴드를 구성하여 유럽과 북미 투어를 진행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16][17]
1998년에 발매된 두 번째 앨범 ''Big Calm''은 기존의 트립합 사운드에서 벗어나 좀 더 팝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22][24] 특히 싱글 "The Sea"는 라디오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 시기 모치바는 데이비드 번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고,[19][20][21] 레드 핫 오가니제이션의 AIDS 기금 마련 컴필레이션 앨범 ''Red Hot + Rhapsody''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협업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2000년에는 세 번째 앨범 ''Fragments of Freedom''을 발매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이 앨범 역시 상업적으로 성공했으나, 비평가들의 반응은 이전 앨범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2001년, 고드프리 형제는 짐 화이트의 앨범 ''No Such Place''에 참여하여 세 곡의 작업에 기여했다.[26]
2. 1. 결성 배경
모치바의 핵심 멤버인 고드프리 형제, 즉 DJ이자 프로듀서인 폴 고드프리와 멀티 악기 연주자 로스 고드프리는 원래 하이드, 켄트 북쪽의 작은 마을 솔트우드 출신이다.[8] 이들은 10대 후반에 런던으로 이주했다.[9][10][11][19] 1990년대 중반, 그리니치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형제는 스카이 에드워즈를 만났다. 당시 에드워즈는 펑크 밴드에서 백 보컬을 맡고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 만남을 계기로 세 사람은 함께 곡 작업을 시작했고, 곧 트리오 '모치바'를 결성했다.[8][12] 초기에는 엔지니어 피트 노리스와 함께 자택 스튜디오에서 트랙을 제작했다.[8][19][15]이후 모치바는 앵거스 블레어(A&R)에 의해 차이나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고,[8] 1995년 10월 데뷔 EP인 ''Trigger Hippie''를 발매했다.[13][14] 같은 시기 폴 에이블렛이 매니저로 합류했다.[15] 1996년 4월에는 밴드의 첫 정규 앨범 ''Who Can You Trust?''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폴 고드프리의 힙합적 기반, 로스 고드프리의 사이키델릭 록 영향력, 그리고 에드워즈의 소울 스타일 보컬이 결합된 트립 합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14] 두 번째 싱글 "Tape Loop"는 1996년 7월에 발표되었다. 밴드는 유럽과 북미 지역을 순회하며 라이브 공연을 시작했으며,[16] 라이브 공연에는 5명의 추가 멤버가 함께했다.[17] 이 시기 밴드는 자택 녹음 환경에서 벗어나 자체 스튜디오를 마련했다.[18] 1997년에는 데이비드 번의 앨범 ''Feelings'' 작업에 참여하여 녹음 및 제작에 기여했다.[19][20][21]
2. 2. 데뷔 및 초기 성공
영국 하이드 북쪽의 작은 마을 솔트우드 출신인[8] 고드프리 형제, 즉 DJ이자 프로듀서인 폴 고드프리와 멀티 악기 연주자 로스 고드프리는 10대 후반에 런던으로 이주했다.[9][10][11][19] 1990년대 중반, 그리니치에서 열린 한 파티에서 형제는 당시 펑크 밴드에서 백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던 스카이 에드워즈를 만났다. 이 만남을 계기로 세 사람은 함께 음악 작업을 시작하며 트리오 모치바(Morcheeba)를 결성했다.[8][12] 초기에는 엔지니어 피트 노리스와 함께 자택 스튜디오에서 곡을 만들었다.[8][19][15]이후 A&R 담당자 앵거스 블레어에 의해 차이나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8] 1995년 10월 데뷔 EP ''Trigger Hippie''를 발매했다.[13][14] 같은 시기 폴 에이블렛이 밴드의 매니저가 되었다.[15] 1996년 4월에는 첫 정규 앨범 ''Who Can You Trust?''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폴 고드프리의 힙합적 배경, 로스 고드프리의 사이키델릭 록 영향, 그리고 에드워즈의 소울 스타일 보컬이 결합된 트립합 장르의 특징을 보여주었다.[14] 두 번째 싱글 "Tape Loop"는 1996년 7월에 나왔다. 밴드는 5명의 추가 멤버와 함께 라이브 밴드를 구성하여 유럽과 북미 투어를 시작하며 본격적인 라이브 활동에 나섰다.[16][17] 이 시기에 밴드는 자택 녹음 환경에서 벗어나 자체 스튜디오를 마련했다.[18] 1997년에는 데이비드 번의 앨범 ''Feelings'' 작업에 참여하여 녹음과 프로듀싱을 도왔다.[19][20][21]
보다 전문적인 녹음 환경을 갖춘 고드프리 형제는 두 번째 앨범 구상에 들어갔다. 대부분의 곡은 이미 준비된 상태였고, 다시 피트 노리스와 협력하며 밴드는 좀 더 대중적인 사운드를 추구했다.[18] 한편, 스카이 에드워즈는 BBC의 자선 싱글 "Perfect Day" 녹음에 참여하기도 했다.[22] 1998년에 발매된 두 번째 앨범 ''Big Calm''은 트립 합에서 벗어나 팝적이고 노래 중심적인 사운드로 변화를 보여주었다.[22] 이는 데뷔 앨범 수록곡 "Moog Island"를 팝 스타일의 "The Music That We Hear"로 재작업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23] 앨범의 싱글 중 하나인 "The Sea"는 라디오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앨범 자체도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모치바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24] 같은 해, 모치바는 조지 거슈윈 헌정 앨범이자 AIDS 인식 개선 및 기금 마련을 위한 레드 핫 오가니제이션의 컴필레이션 앨범 ''Red Hot + Rhapsody''에 휴버트 로스(Hubert Laws)와 함께 참여하여 클래식 곡 "Summer Time"을 녹음했다.
2000년에는 세 번째 앨범 ''Fragments of Freedom''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는 ''Big Calm''의 성공을 이어갔지만, 비평가들로부터는 이전만큼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2002년에 발표된 네 번째 앨범 ''Charango''에서는 에드워즈의 참여 비중이 다소 줄어들었다. 이 앨범에서는 "Otherwise"와 "Way Beyond"가 싱글로 발매되었다. 수록곡 "Undress Me Now"의 가사는 램찹의 커트 와그너(Kurt Wagner)와 공동으로 작사했으며, 래퍼 페이스 원(Pacewon)과 슬릭 릭도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2003년 1월, 모치바는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서 대규모 투어를 진행했다.[25] 한편, 2001년에는 고드프리 형제가 짐 화이트의 앨범 ''No Such Place''에 수록된 세 곡의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26]
2. 3. 협업 및 음악적 확장
1997년 모치바는 데이비드 번의 앨범 ''Feelings'' 작업에 참여하여 녹음과 제작을 도왔다.[19][20][21] 1998년에는 휴버트 로(Hubert Laws)와 협력하여 레드 핫 오가니제이션의 조지 거슈윈 헌정 컴필레이션 앨범 ''Red Hot + Rhapsody''에 참여, 고전곡 "Summer Time"을 녹음했다. 이 프로젝트는 AIDS 인식 개선 및 관련 자선 기금 마련에 기여했다.2000년 발매된 세 번째 앨범 ''Fragments of Freedom''은 ''Big Calm''의 상업적 성공을 이어갔으나 비평가들의 반응은 이전과 달랐다. 2001년에는 짐 화이트의 앨범 ''No Such Place''에 세 곡을 제공하며 협업을 이어갔다.[26]
2002년 발매된 네 번째 앨범 ''Charango''에서는 음악적 확장을 시도했다. 이 앨범에서는 보컬 스카이 에드워즈의 참여 비중이 줄어든 대신 다양한 외부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이루어졌다. Lambchop의 커트 와그너(Kurt Wagner)가 "Undress Me Now" 작사에 참여했으며, 래퍼 페이스 원(Pacewon)과 슬릭 릭도 앨범 작업에 참여하여 다채로운 사운드를 만들었다.
3. 전성기 및 변화 (2000-2008)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모치바는 멤버 구성과 음악적 방향에 있어 중요한 변화를 맞이했다. 2003년 말, 밴드의 상징적인 목소리였던 보컬 스카이 에드워즈가 창작 및 개인적인 의견 차이를 이유로 고드프리 형제와 결별했다.[27] 에드워즈의 탈퇴 이후, 밴드의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베스트 앨범 ''Parts of the Process''와 라이브 DVD ''Morcheeba: From Brixton to Beijing''이 발매되었다.
고드프리 형제는 밴드를 계속 이어가기로 결정하고,[29] 2005년에는 데이시 마티를 새로운 보컬로 영입하여 다섯 번째 정규 앨범 ''The Antidote''를 발표했다. 하지만 마티와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고, 투어 도중 조디 스턴버그로 교체되는 등 보컬리스트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30][31]
이러한 변화 속에서 모치바는 2008년 여섯 번째 정규 앨범 ''Dive Deep''을 발매하며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시도했다. 이 앨범에서는 특정 보컬리스트를 두는 대신, 포크 록 가수 주디 추크, 노르웨이의 토마스 딥달, 블루스 뮤지션 브래들리 버지스, 한국계 미국인 래퍼 쿨 캄 피트, 프랑스 가수 만다 등 다양한 국적과 장르의 보컬리스트들을 객원으로 참여시켜 다채로운 사운드를 선보였다.[32] 이 시기는 모치바에게 멤버 변화와 음악적 탐색이 두드러진 중요한 전환기였다.
3. 1. ''Fragments of Freedom''과 ''Charango''
(내용 없음 - 주어진 원본 소스는 해당 섹션과 관련이 없습니다.)3. 2. 스카이 에드워즈 탈퇴와 ''The Antidote''
2003년 말, 고드프리 형제는 보컬 스카이 에드워즈와 창작 및 개인적인 의견 차이를 이유로 결별했다.[27] 에드워즈는 당시 상황에 대해 "매니저로부터 밴드가 끝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더 이상 밴드를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했다"고 회상하며, 밴드가 해체된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36]에드워즈 탈퇴 이후, 모치바는 베스트 앨범인 ''Parts of the Process''를 발매하여 밴드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자 했다. 이 앨범에는 빅 대디 케인이 랩 피처링으로 참여한 "What's Your Name"과 "Can't Stand It"이라는 두 개의 신곡이 수록되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라이브 DVD ''Morcheeba: From Brixton to Beijing''도 발매되었다. 훗날 로스 고드프리는 이 시기를 돌아보며 "숨을 쉴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18살 때부터 밴드 활동을 하고 투어를 다녔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휴식이든 정말 놀라웠다"고 말했다.[28]
1년 후, 고드프리 형제는 다시 뭉쳤다. 폴 고드프리는 "로스와 나는 모치바가 일종의 우리 가족 회사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기에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29] 2005년, 모치바는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이자 에드워즈 탈퇴 후 첫 앨범인 ''The Antidote''를 발매했다. 이 앨범에서는 데이시 마티(전 Noonday Underground 소속)가 에드워즈를 대신할 새로운 보컬리스트로 영입되었다.
그러나 마티의 활동 기간은 짧았다. 그녀는 앨범 홍보 투어 도중에 해고되었고, 조디 스턴버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마티는 이후 계약 위반 및 명예 훼손을 이유로 밴드를 고소했다.[30] 스턴버그 역시 투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잠시 참여했을 뿐, 밴드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로스 고드프리는 이 일련의 과정에 대해 "최소한 말하기 어려웠다. 거의 파산할 뻔했다"고 털어놓았다.[31]
몇 년간의 공백기 후, 모치바는 2008년 2월 여섯 번째 정규 앨범 ''Dive Deep''을 발매했다. 이 앨범에서 고드프리 형제는 다시 프로듀서 역할을 맡았고, 여러 보컬리스트를 기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포크 록 가수 주디 추크, 노르웨이 출신 토마스 딥달, 블루스 가수 겸 기타리스트 브래들리 버지스가 주요 보컬로 참여했으며, 한국계 미국인 래퍼 쿨 캄 피트와 프랑스 가수 만다(아만다 자몰로)도 힘을 보탰다.[32] 만다와 버지스는 2008년 투어에서 모치바와 함께 리드 싱어로 공연했다.
3. 3. ''Dive Deep''과 음악적 실험
2014년, 폴 고드프리가 밴드를 떠났다.[40][41] 로스 고드프리는 나중에 이 상황에 대해 "폴과 나는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잘 지내지 못했고, 2013년 앨범 ''Head Up High'' 이후 폴은 밴드를 떠나고 싶어했으며, 스카이와 내가 그의 지분을 사주기를 원했다. 우리는 그 가치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스카이와 나는 우리가 만든 음반을 우리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모치바 앨범은 없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2] 폴 고드프리는 이후 헤이스팅스에 녹음 스튜디오 Sacrosync Sound를 설립하고, 레이첼 커밍과 함께 Morcheeba Productions라는 이름으로 "Cool Your Soul"이라는 새 앨범을 녹음했다.[42][43]한편, 로스 고드프리와 스카이 에드워즈는 2016년에 Skye & Ross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44] 그들은 투어를 진행했으며, 2016년 9월 2일에는 프로젝트와 동명의 앨범 ''Skye & Ross''를 발매했다.[45] 이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어쿠스틱 듀오로 시작했으나, 곧 에드워즈의 아들 제이가(드럼), 그녀의 남편 스티브 고든(베이스), 그리고 고드프리의 아내 아만다 자몰로(백 보컬)가 합류하며 밴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46][47] 앨범 작업에서 에드워즈가 가사를 담당했으며, 로스 고드프리는 녹음 과정이 "매우 유기적인 경험"이었다고 언급했다.[48]
4. 스카이 에드워즈 복귀 및 현재 (2009-현재)
2009년, 솔로 활동 중이던 스카이 에드워즈는 폴 고드프리와 로스 고드프리 형제와의 만남을 계기로 밴드에 복귀했다.[33][27][35] 에드워즈의 합류 후 모치바는 2010년 일곱 번째 앨범 ''Blood Like Lemonade''를 발매하고 월드 투어를 진행했으며,[36][37] 2013년에는 여덟 번째 앨범 ''Head Up High''를 발표했다.[38]
하지만 2014년, 창립 멤버였던 폴 고드프리가 음악적, 개인적 견해 차이로 밴드를 떠났다.[40][41][2] 이후 남은 멤버인 로스 고드프리와 스카이 에드워즈는 2016년 'Skye & Ross'라는 이름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동명의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을 이어갔다.[44][45]
4. 1. 재결합과 ''Blood Like Lemonade''
에드워즈는 솔로 활동 중 모치바와 같은 매니지먼트 회사 소속이었는데, 이 인연으로 2009년 런던 사무실에서 우연히 폴과 로스 형제를 만나게 되었다. 이들은 에드워즈에게 새로운 프로젝트 참여 가능성을 제안하며 다시 만났다. 처음 에드워즈는 "솔로 활동과 작사를 정말 즐기고 있다"며 망설였으나,[33] 결국 밴드에 다시 합류하여 트리오는 새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27] 당시 에드워즈는 솔로 앨범 홍보 투어 중이었고, 로스 고드프리는 캘리포니아에, 폴 고드프리는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었다.[34]2010년 2월 12일, 음악 매체 ''NME''은 에드워즈가 밴드에 복귀했음을 보도했고, 다음 날 밴드의 마이스페이스 블로그를 통해 폴 고드프리가 이를 공식 확인했다. 에드워즈는 2010년 4월 9일 스위스 카프리세스 페스티벌에서 밴드와 함께 라이브 무대에 복귀했다.[35] 에드워즈는 밴드 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가수이자 작곡가로서의 능력"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갖게 되면서 변화했으며, 녹음 과정에서 서로 "더 솔직해졌다"고 느꼈다고 밝혔다. 이는 결과적으로 "더 솔직한 음반"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덧붙였다.[36]
모치바는 2010년 6월, PIAS를 통해 일곱 번째 정규 앨범 ''Blood Like Lemonade''를 발매했으며, 싱글 "Even Though"가 앨범 발매에 앞서 공개되었다. 폴 고드프리가 프로듀싱한 이 앨범에 대해 그는 "따뜻하고 푹신한 사이키델리아의 담요" 같다고 묘사했고, 에드워즈는 가사에 "어두운 주제"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36] 에드워즈는 또한 고드프리 형제가 자신을 다시 창작 과정의 일부로 참여시켰다고 언급했다.[33] 앨범 발매 후 18개월 동안 밴드는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을 순회하는 투어를 진행했다.[37]
4. 2. ''Head Up High''와 폴 고드프리 탈퇴
모치바의 여덟 번째 앨범 ''Head Up High''는 2013년 10월 14일, 이전 앨범과 마찬가지로 PIAS를 통해 발매되었다.[38] 앨범 발매 이후 2014년, 밴드는 호주 투어를 진행했다.[39] 당시 투어 멤버는 스카이 에드워즈(보컬), 로스 고드프리(기타), 스티브 고든(베이스), 리차드 밀너(키보드), 마틴 칼링(드럼), 그리고 제임스 앤서니(데크)로 구성되었다.같은 해인 2014년,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폴 고드프리가 밴드를 떠났다.[40][41] 로스 고드프리는 이후 인터뷰에서 폴과의 음악적, 개인적 불화가 오래 지속되었음을 밝혔다. ''Head Up High'' 앨범 작업 이후 폴이 탈퇴 의사를 밝혔고, 자신의 밴드 지분을 스카이 에드워즈와 로스 고드프리가 사주기를 원했지만, 지분 가치에 대한 이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스카이 에드워즈와 로스 고드프리는 자신들의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기로 결정했으며, 로스는 "더 이상 모치바 앨범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2]
폴 고드프리는 밴드를 떠난 후 헤이스팅스에 녹음 스튜디오인 새크로싱크 사운드(Sacrosync Sound)를 설립했다. 그는 레이첼 커밍(Rachel Cuming)과 함께 '모치바 프로덕션(Morcheeba Productions)'이라는 이름으로 "Cool Your Soul"이라는 새 앨범을 녹음했다.[42][43]
한편, 로스 고드프리와 스카이 에드워즈는 2016년 '스카이 앤 로스(Skye & Ross)'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44] 그들은 투어를 진행했으며, 2016년 9월 2일에는 프로젝트와 동명의 앨범 ''Skye & Ross''를 발매했다.[45] 이 밴드는 어쿠스틱 듀오로 시작했으나, 곧 에드워즈의 아들 제이가(Jaega) (드럼), 그녀의 남편 스티브 고든(Steve Gordon) (베이스), 그리고 로스 고드프리의 아내 아만다 자몰로(Amanda Zamolo) (백 보컬)가 합류하며 밴드 형태를 갖추었다.[46][47] 에드워즈가 주로 가사를 썼으며, 로스 고드프리는 녹음 과정이 "매우 유기적인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48]
4. 3. Skye & Ross와 ''Blaze Away'', ''Blackest Blue''
2014년, 폴 고드프리가 밴드를 떠났다.[40][41] 로스 고드프리는 이후 "폴과 나는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잘 지내지 못했고, 2013년 앨범 ''Head Up High'' 이후 폴은 밴드를 떠나고 싶어했으며, 스카이와 내가 그의 지분에서 그를 사주기를 원했다. 우리는 그 가치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스카이와 나는 우리가 만든 음반을 우리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모치바 앨범은 없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2] 폴 고드프리는 밴드를 떠난 후 헤이스팅스에 녹음 스튜디오 Sacrosync Sound를 설립했고, 레이첼 커밍과 함께 Morcheeba Productions라는 이름으로 "Cool Your Soul"이라는 새 앨범을 녹음했다.[42][43]폴 고드프리의 탈퇴 이후, 로스 고드프리와 스카이 에드워즈는 2016년에 Skye & Ross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44] 그들은 투어를 진행했으며, 2016년 9월 2일 동명의 앨범 ''Skye & Ross''를 발매했다.[45] 이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어쿠스틱 듀오로 시작했으나, 곧 에드워즈의 아들 제이가(드럼), 그녀의 남편 스티브 고든(베이스), 그리고 고드프리의 아내 아만다 자몰로(백 보컬)가 합류하며 밴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46][47] 앨범 작업에서 에드워즈는 가사를 담당했으며, 로스 고드프리는 녹음 과정이 "매우 유기적인 경험"이었다고 언급했다.[48]
5. 밴드 이름의 유래
(해당 섹션 제목과 관련된 내용이 원본 소스에 없습니다.)
6. 음반 목록
모치바는 총 10장의 정규 음반, 6장의 컴필레이션 음반, 31장의 싱글을 발매했다.
6. 1. 정규 앨범
(판매 기준치)[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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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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